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95)
294. Raise the Flag
시릴 정도로 푸른 눈과 순백의 머리카락.
설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앨리스의 외모는 흔히 말하는 ‘은발 성애자’들의 심장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거기에 처음 만났을 때의 한없이 밝은 미소는 모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인기투표 급상승이나 1기 인기투표때는 꽤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메인 히로인은 아니지만 서브 히로인이면서 메인급을 위협하는 몇 안되는 캐릭터.
다만, 앨리스 마이스터의 본성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뭐 그런 앨리스도 좋아! 라는 팬덤이 생겨났지만 그건 레지나도 똑같다.
가문의 몰락을 등에 업고 입학하여 처음에는 음습하고 말이 없었지만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 스피카.
처음에는 밝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여러 비밀을 숨기고 있던 앨리스.
두 사람의 입지가 변해서, 스피카의 인기순위가 앨리스와 동률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뭐 아무튼.
“조언 감사합니다! 황자님!”
“음. 너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으마.”
“그럼요. 그럼요! 조언을 들은 사례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가 저택을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내 시종인 세실과 함께해도 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지.”
끝까지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는 앨리스.
사실 떨궈놓고 빨리 세실이랑 시장이나 돌아다니고 싶은데, 그걸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앨리스! 황자님을 끝까지 잘 안내해드려야 한다.”
“네! 할아버님!”
“자, 황자님. 앨리스와 함께 가시지요. 이 저택에는 볼 것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언제든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암살 마스터는 나를 보며 웃으면서 단둘이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심지어
거기에 가주 영감에게서 무언의 압박이 들어온다.
이 집안 진짜 피곤하게 산다. 그치?
【가주 아론다이트 마이스터에게서 위압이 발동됩니다.】
【황실 혈통 효과 발동. 모든 정신적 상태이상을 무효로 되돌립니다.】
그러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위압에 대한 오토 카운터 발동】
이 맞짱깔분아.
“【이것 참.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는가?】”
“…예?”
“【언제부터 고작 십이가문이 황가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었지?】”
음.
이거 완전히 텄다.
오토카운터의 멘트는 내가 체험한 결과, 상대의 정신적 공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게 나간다.
즉 이 정도의 멘트가 나간다는 것은, 저쪽에서 걸어온 압박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아.
편의점이고 뭐고 물 건너갔네 진짜.
하지만 갑자기 여기서 맞짱깔분아를 박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된거,
기분 잡친거라도 풀고 가야지.
앞으로 구르면 세 바퀴 구르고 예술점수 10점을 받아야 풀리는게 이영진이다.
멘트 내용을 조절할 수는 없어도 우선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볼륨은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시종이 아니라 내 바로 옆에서 멍때리고 있는 조손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호의를 가장하는 가문과 웃음을 가장하는 안내를 앞장세워 가문을 안내받으면 피살당할지 어떻게 아나?】”
“……황자전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언제 그런 기술을 썼다 말씀하십니까.”
“【그런가? 그럼 내 행동을 제어하려 한 것은? 그리고 자신의 손녀를 안내로 붙인 것은?】”
“앨리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가? 저 미소를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가 어리석어보였나. 아론다이트 경?】”
“…….”
음.
텄다.
음.
뭐 어쩌겠어.
저쪽이 시비를 걸어왔고, 스킬은 터졌다.
그렇다고 내가 참고 살 수는 없잖아?
아무튼.
뭔지는 몰라도 나에게 수작질을 걸려고 했던 가문과 제대로 된 거래를 틀 수 있을리도 만무했다.
얘네한테 신경쓰느니 믿을 수 있는 사브레영지. 트라이스타의 에덴. 글루코 마을. 남부에다가 편의점을 깔고 만다.
그래 뭐, 노른자 땅 한 두개 못 먹는다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말아먹는것도 아니고, 대륙은 넓다.
우선 이 표정없는 가면무도회를 떠서 생각하자.
“황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냉랭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소가 지워진 앨리스 마이스터의 목소리.
서릿발이 날리는 듯 한 착각.
“이대로 황자님께서 떠나시면 저희 가문은 황손을 모욕한 죄를 묻게 됩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앨리스.
목소리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나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이제야 가식을 벗고 진짜 대화 할 준비가 되었나 보구나. 앨리스 마이스터.”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마이스터 가문에서 키워낸 최강의 결함병기를 내가 어찌 모르겠나?”
오직 앨리스와 아론다이트에게만 들릴 정도로 내뱉은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그게 궁금하다면, 진정성 있는 안내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거 참.
그런 공공연한 비밀은 말이야.
설정집에 다 적혀있다고?
***
그 뒤로 세실을 동반하고, 나는 앨리스와 함께 저택을 거닐었다.
앨리스는 완전한 무표정 …그러니까 세실 샤도우를 넘어설 정도의 무표정으로 나를 안내했다.
“하여. 여기가 저희 가문이 자랑하는 중앙 정원입니다.”
“그런가.”
“네. 총 30종의 꽃이 가지각색으로 피어올라 있습니다.”
“그렇군. 다음은?”
“분수대입니다. 따라오시지요.”
“음.”
정말 완벽한 무표정의 인형. 앨리스 마이스터.
보통 인형에게 자주 붙이는 이름답게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너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한가?”
“황가의 비전이겠지요. 말씀해주시기 전까지 여쭈는 것 또한 결례입니다.”
“그렇군.”
완전한 무표정. 사견이 섞이지 않은 깔끔한 정보전달.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역시 이쪽이 익숙하다.
루디카가 졸업한 이후.
교수님의 뒤를 이어서 같은 포지션에 위치해 한손장검을 사용하는 무표정의 암살기계.
그렇다.
얘의 진짜 검술은 양검 바이스 플뤼겔이 아니라 음검. 즉 암살검에 가깝고, 정통파보다는 기교. 혹은 암습. 상대의 공세를 칼로 읽어서 순간적으로 킬캐치를 하는 ‘대인전’용 살인머신에 가깝다.
암살팟 짜서 인간형 보스 따고 다닐때는 참 잘 썼더랐지.
나도 그럭저럭 좋아했다. 레지나의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는 다르게 이 녀석의 광기는 인간미가 있었거든.
아무튼 그렇게, 완전 무표정한 AI의 정보를 듣는 수준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저택 안내를 하는 앨리스와, 내 뒤를 따라오는 세실.
결과적으로 안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보다 짧지 않나?”
“원래라면 가면을 쓴 채로, 밝은 척을 하며 안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앨리스는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아니 그 또한 내 착각이다.
진짜 정말 진심으로 그리 생각해 그리 말했다.
“목적은 뭐였지.”
“그건 가문의 의도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황실에 대한 무례라 하여도 말인가?”
“네. 제 목숨이 떨어져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 시녀님이라면 제가 전력으로 저항한들 간단히 죽이실 수 있으실겁니다. 가문에서도 불문으로 부치겠지요.”
뭐. 그럴 줄 알았다.
얘는 차라리 진짜 죽이라고 하는 애니까.
음. 그럼 가문의 의도를 떠보는건 그만두자.
“좋다. 그럼 저택 안내는 끝났고 어디 앉을 곳은 없나.”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윽고 안내된 테이블에 앉아, 나는 앨리스와 얼굴을 마주하고 작은 다과회를 가졌다.
박수를 두어번 치자 가지고 온 것은 고급 과자와 홍차.
나는 내 몫의 과자를 이 녀석에게 양보했다.
“단 것을 선호하지 않으시는지요? 가문의 조사가 부족했습니다.”
“아니. 네가 단 것만은 좋아하는것으로 알고 있다.”
“좋아한다? 자주 먹긴 합니다. 단 맛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행동원료가 됩니다.”
“흠.”
내가 읽은 설정집에서는 …아니. 아니다.
뭐. 우선은 그런걸로 치자.
“자. 그럼 이야기하도록 하지. 내가 너를 왜, 어떻게 알고 있느냐. 그 근간을 알려줄수는 없다.”
“궁금하지 않습니다. 말씀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대화를 파하도록 하지. 궁금하지 않은 인물에게 굳이 이야기 할 것 없지 않나.”
“………그러도록 하시지요.”
그리 말하는 앨리스의 눈가가 아주 조금 씰룩거렸다.
그러니까, 좀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심통이 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 녀석의 정보에 대해 떠올렸다.
【감정 잃은 소녀 앨리스의 가면】
【앨리스 마이스터 공략집】
“농담이다. 그리 심통내지 마라. 앨리스 마이스터. 그래. 근간은 말해줄 수 없지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말해줄 수 있지.”
“…….”
“앨리스 마이스터. 마이스터 가문의 후계자로서 항상 밝은 자신을 연기하지만 …모든게 거짓말이지. 사실은 전부 가면일 뿐. 진정한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 생각하고 있지.”
“…잘 알고 계십니다. 네.”
“그 이유는 바로 앨리스 마이스터의 태생 때문인데 …그리 살기를 피워 올리지 마라. 그 부분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도록 하지.”
“살기를 피워 올린 적은 없습니다.”
에이. 무슨 구라를.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기세였는데.
“내년 제프린에 입학 예정. 목표는 학생회에 들어가 1학년 내에서 파벌을 만들어 이브 폰 로엔그린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마이스터가 이브의 깃발 아래에 들어가는게 옳은지 결론을 내는 것.”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다만 손녀를 지나치게 사랑한 조부의 배려가 겹친 것이기도 하지.”
“네?”
처음으로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세한 것은 네 조부에게 가서 묻도록 해라.”
“…….”
“그리고 크게 걱정하지 마라. 네 소원은 이루기 싫어도 이루어진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를 이해해 줄 사람은 반드시 나타난다. 첫 인상은 최악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을 믿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렇다.
내년 제프린에 입학해, 화사한 꽃이 되어 1학년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앨리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감정이라고는 없는 인형이었다.
반대로 본디 천성이 밝았던 스피카 트라이스타는 가문이 망함으로서 처음에는 음울하고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정을 믿게 된다.
즉 앨리스와 스피카는 서로가 거울같은 존재.
결국 앨리스는 본인 루트에서 스피카와의 우정과 대립을 통해 감정을 되찾는단 말이지.
앨리스는 공략 가능인데, 스피카가 공략 불가능인 점에서 제작진이 얼마나 악랄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필요 이상의 완벽함으로 저와 가문에 대한 정보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허나 제가 스스로 속내를 밝힌 적 없는 이상. 황자님의 추론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망나니 황자의 허언으로 치부하도록.”
“정말 그런 분이 나타난다고 하셨습니까.”
“물론이다. 내 근처에 있는 사람이지. 걱정하지 말도록.”
“……그렇습니까. 근처에 계신 분입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그런 분이 나타난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일어서도록 하지.”
“네.”
그리 말하고 다과회를 파하기 전.
앨리스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물음을 던졌다.
“황자님. 첫 인상은 최악이나 …그를 믿고 따르면 답을 얻을거라 하셨습니까.”
“그랬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스피카의 어깨가 무겁다.
힘내라 스피카.
***
앨리스가 돌아온 이후. 아론다이트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평소에 쓰던 가면 중 하나인 차분한 손녀의 가면을 쓰고는 웃으며 할아버님의 말씀에 답했다.
“…앨리스야. 정녕 황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더냐?”
“네. 그래서 그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첫 인상은 최악이지만 그 사람을 믿고 따르면 제가 갈구하던 답을 찾을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제프린에 입학하는 것에, 손녀를 지나치게 사랑한 할아버지의 배려라고 하셨더냐?”
“네.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요.”
“허허…. 그렇구나. 어린 시절의 총기는 거짓이 아니었던건가.”
“네?”
“아니다. 흐음. 그래. 하여 앨리스. 진짜 네가 가진 그분의 인상은 무엇이지?”
“…….”
아론다이트의 그 말에 앨리스는 가면을 벗고 무표정하게 답했다.
“첫 인상은 최악이지만 믿고 따르라고 한 분의 정체는 틀림없는 울프람 폰 로엔그린 당신 자신이시겠지요.”
“그렇겠지. 즉 앨리스 마이스터가 울프람을 따르면 네가 갈구하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것과 진배없다.”
“…네. 그 분 말씀대로 첫 인상은 최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가면이 뜯어진 기분은 가문의 입장에서는 위험했습니다.”
“나는 네 기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앨리스.”
앨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자신이 추구하는 대답.
정말 그 사람이 그것을 찾아줄 수 있다면 자신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지?”
“앨리스 마이스터 생에 최초로, 진짜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께는 약혼녀가 있으신데도 말이냐? 그게 지금 기세가 등등한 트라이스타인데도 말이냐?”
앨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