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298)
297화 조난 일까요
비는 생각보다 길고, 그리고 강하게 내렸다.
솨아아아.
세상 모든 것을 쓸어가버릴 듯 한 소리에 잠긴 채. 나는 아일라가 만들어준 수정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거 편하네.
아무튼 그렇게 하릴없이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무릎을 베개삼아 누워있던 아일라가 말을 걸어왔다.
“…울프람?”
“뭐지.”
“저희……이대로 이렇게 있어도 될까요?”
“무슨 의도인지 이해하기 어렵군. 풀어서 말하도록.”
“그러니까. 이렇게 느긋하게 누워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가끔은 이런 여유도 좋지 않은가.”
“그건 그렇네요. 오래간만의 여유를 즐길까요. 후후.”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잠시 몸을 웅크렸다.
“추운가?”
“조, 조금요?”
생각해보면……완연한 가을에 비까지 맞은 셈.
으슬으슬 몸이 떨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나는 추위와 더위에 대한 큰 내성이 있지만, 아일라는 그렇지 않다.
“아일라 사대속성 기본마법은 쓸 수 있나?”
“……이런 상황에서 불은 못써요.”
“자연저항에 막히는 건가.”
“……네에.”
당연하지만……마법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이런 상황에서는 물 속에서 불을 피울 정도의 마법으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흑수정을 이용해서 바람이라도 막도록.”
“……네에.”
이것 참.
아일라가 감기에 걸리지 않아야 할텐데 말이야.
* * *
영원히 이어지는 밤은 없듯, 그치지 않는 비또한 없다.
다만, 천혜의 고도의[기상현상:비]는 귀찮게도 며칠이나 지속되는 경우가 있어서 조금 걱정 했다만 불행중 다행으로 금방 그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비가 그친게 하필이면 해가 떨어지는 시점이라, 이대로 숲으로 들어갔다간 암습을 당할수도 있다.
더러운 앰부쉬에 당하면 아일라가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밤이 더 깊어지면 추워질 거다.
거기에.
하필이면 파티원이 아일라 트라이스타다.
“……아일라. 지금 대충 몇시지?”
“자……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이렇게 묻지. 앞으로 몇 시간 내로 잠들 거 같지?”
“네 시간이면 잘 거 같아요.”
아일라는 열시 반에 잔다.
그럼 지금 시간은 오후 여섯시 반인가.
시간은……그럭저럭 촉박하다.
즉.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
“아일라. 잠깐만 기다려라.”
“네? ……네. 울프람 어딜 가는 거에요?”
“잠깐 숲에 다녀오겠다.”
“저, 저도 갔다올게요.”
“쯧. 너는 오두막을 만드느라 체력도 마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나. 여긴 나에게 맡겨라.”
“……으. 네. 조심히 다녀오셔야 해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아일라는 위험해 질 수 있지만, 나는 아니거든.
* * *
숲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내가 찾은 것은 일단 ‘붉은색’이라는 개념이었다.
시야를 바닥으로 한정하고, 최대한 붉은 것들을 찾아 걸었다.
“대층 어디에 포진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눈 앞에는 어머나 세상에.
“그어어어어!”
“거 참. 시끄럽구나. 아, 이 열매가 있었군. 이게 있으면 편하지.”
이렇게 몬스터와 조우할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런 녀석들과 놀아줄 때가 아니다.
“……그어? 그? 그어??”
“음. 하지만……여기에는 없나. 그럼 저쪽으로 가봐야겠구나.”
미니 그리즐리는 몸통을 들이밀거나, 나를 향해 달려들거나, 발톱을 휘두르거나 했지만, 그게 맞으면 내가 고인물이겠냐 뉴비응애지. 체력4가 된 저는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당신과 맞다이를 쳐도 이길 자신이 있지만 지금은 단검도 없고, 그럴 때가 아니다.
아무튼, 지금은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크르르!”
“캬아아악!”
그렇게, 몹몰이를 하듯 해안가 근처 숲을 헤집고 다녔다.
물론 몬스터의 모든 공격은 자연스럽게 회피했다. 비에 젖었다고. 발이 미끄럽다고, 고작 그딴 이유로 데미지를 입어 줄 것 같으냐.
이 근방에는 없으니 조금 더 들어가볼까 하던 그때.
“……찾았군. 이거 정도면 되겠어.”
잽싸게 파밍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처음에 주웠던 열매를 손으로 살짝 우그러트려서 몬스터들 사이에 던졌다.
“……크어?”
“크르?”
“캬아악?”
“자. 이 열매는 광분의 열매라고 해서 말이다. 효과는….”
내가 설명을 이어하기 전에, 열매의 향에 취한 몬스터의 눈빛이 풀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무척이나 강한 위압을 걸면 이는 광전사에게는 하나의 암시로 작용한다.
그리고 황실혈통은 엄연한 1 티어 스킬.
나는 몬스터들의 살육을 보며 슬픔을 금치 못했다.
아. 세상에 싸움이란 사라지지 않는가.
“…다 죽은 다음 시체 파밍을 해도 괜찮지만, 지금은 그럴 틈이 없군.”
아무튼, 지금은 아일라가 기다리고 있는 해변가로 가는 것이 급선무다.
* * *
해안가로 돌아왔을 때. 아일라는 창백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프람? 어디 다치진 않았…나요?”
“괜찮다. 쯧. 지금 네가 남 걱정할 때인가.”
“…하하. 저, 저는 괜찮은걸요.”
괜찮기는 개뿔. 얼어 죽을 거 같은 표정을 하고 계신데요.
“일단 불을 붙여야겠군. 잠깐 기다려라.”
“…아, 안 돼요. 장작으로 쓸 나무들이 다 젖어서 불이 안 붙어요…. 체력을 온존해요. 울프람.”
“그래. 보통은 그게 맞다.”
나는 그리 말하고 아일라가 분투한……그러니까 불씨를 일으키고 어떻게든 피우려고 했으나 장작이 죄다 물기를 머금어서 불이 안 붙은……그런 절망과 탄식의 결과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어, 어떻게든 불을 피우려고 했는데요. 잘 안 돼서….”
“아니 잘했다. 저런 장작이라도 지금은 쓸모가 있지. 금방 불을 피우마.”
“네?”
작업에 들어가면서, 아일라에게 어떤 작업인지 천천히 설명했다.
손은 멈추지 않고 잽싸게. 아무튼 1 초라도 빠르게 불을 피우기 위해.
“이 천혜의 고도는 모든 식재료의 축복이 깃든 땅이지. 그것은 즉. 이 곳에서 요리를 할 수도 있게끔 배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요리를 할 수 있는’ 배려 또한되어 있다. 즉.”
나는 손에 중급 열화석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파밍형 맵에는 이것저것 잡템이 많이 쏟아지고, 이렇게 설정에 신경쓰는 게임은 개연성도 충족시키는 법이다.
가장 신선할 때 조리 해서 먹으라는 뜻일까.
하르크 로엔그린의 안배가 지금은 고마웠다.
중급 열화석쯤 되면 비정도에 지지 않고 수분 따위는 가볍게 날려버리며, 젖은 장작으로도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아일라를 앉혔다.
“… 따듯하다.”
“다행이군.”
“네에…. 울프람도 여기 와서 앉아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우선 아일라. 피곤한 와중에 미안하지만 불판을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내 지시에 아일라는 고개를끄덕였고, 이내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 불판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숲에서 열화석과 함께 캐온 나무열매를 굽기 시작했다.
“……열매도 구워서 먹나요?”
“그 또한 새로운 별미지. 그 다음은……보자. 아주 얇고 가벼운 단창과 나이프를 부탁하지. 다만 튼튼했으면 좋겠군. 끝은 갈고리처럼 되어 있는 게 좋다.”
“…아. 네.”
직후. 아일라가 만들어준 단창을 들고 바닷가를 향했다.
원래라면 이런 미친짓이 가능할 리가 없지만, 지금의 나는 진심이다.
불가항력이었다고는 하나, 소중한 파티원을 위험에 처하게 한 것은 내 미학에서 어긋난다.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케어를 해 줄 생각이었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나는 바다 속을 향해 창을 찔러 들어갔다.
“……울프람, 체력 소모만 심할 거 같은데 그냥 돌아오는게……어떨까요? 여긴 따듯해요. 하루 정도 굶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열매도 있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단창의 날 끝에는, 작지만 확실하게 물고기 한 마리가 꽂혀 있었다.
“……어? 어떻게 잡았어요? 바다 속이 보였나요?”
“재주가 높고 일점집중의 투격을 할 수 있으면 그 뒤로는 잡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에 아일라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헤 벌렸다.
뭐.
고인물 처음보니.
조용히 구운 생선이나 먹으렴 응애야.
* * *
아무튼, 그렇게 수분은 과일로 보충했고, 체온도 끌어올렸고, 생선으로 영양도 채웠다.
조금 체력을 회복한 아일라는 모닥불 옆에 누울 수 있는 흑요석 의자 두 개를 만들었다.
대놓고 돌덩이 위에 눕는 거라 좀 딱딱하긴 한데, 이게 최선이다.
한결 나아진 아일라는 의자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보며 방긋 웃었다.
“울프람. 별이 엄청 많아요.”
“그렇군.”
하지만……확연하게 평소보다는 그 기세가 약하다.
“몸 상태는 어떻지.”
“후후. 완벽하게 괜찮답니다? 울프람 덕분에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괜찮나?”
“네. 많이 괜찮답니다. 사실 기운이 없는 게 아니라요.”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리 말하고 다시 아일라는 하늘에 집중했다.
나도 그대로 누워서 별을 올려봤다.
별빛으로 가득 차서 어둡지 않은 진보랏빛 하늘.
들려오는 것은 모닥불이 타는 소리. 규칙적으로 귀를 때리는 파도 소리.
폐부 가득 차는 것은 깊은 바다내음이었다.
꽤 많이 움직인 대가를 치룰 시간.
나는 감겨오는 눈꺼풀을 저항할 수 없었다.
* * *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별이 많이 보인다는 같잖은 이유를 대고, 그 핑계에 울프람이 넘어가준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면 그와 얼굴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가,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생각 이상으로 크게 울려퍼지는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면 가빠오는 숨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옆에 있는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잠든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으면 새빨개진 얼굴을 바로 들켰을 테니까.
“…… 보통은 이런걸 조난이라고 하죠?”
오늘 있었던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난이 맞았다.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전장 한 가운데에서 폭우를 만난 셈이니까.
그 안에서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오두막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그걸 만들라고 재빠르게 지시한 것은 울프람이었다.
기등을 강하게 박아넣어 오두막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 빗물에 고이지 않게끔 배수로를 신경쓰고, 지붕을 사선으로 만들어서 빗물이 흘러내리게 한다. 간단하지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바로 숲으로 달려가서 열화석을 주워오는 신속함. 겸사겸사 돌아오면서 나무 열매를 가지고 오는 넓은 시야. 해가 떨어진 바다에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오는 기교.
본인은 잡기술이라고 했지만, 아일라에게 있어서는 그 냉정 침착한 대응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모험 수준으로 끝났잖아요.”
곱게 잠든 그가 깨어날까봐. 아일라는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었다.
다른 누구와 왔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안도감을 느끼는 조난을 당할 수 있었을까?
그럴리가 없다.
결국 울프람이니까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정말 단 둘이서 조난 당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법 있기에요?”
사실, 울프람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지. 평소 이상으로 무방비하게 잠들었고, 아일라는 검지를 들어 울프람의 볼을 살짝 찔렀다.
“너무 멋져지면 곤란하다구요?”
진심 반 농담 반.
이 이상 멋있어지면……그의 곁을 걷는 게 아니라, 그를 뒤따라서 걷게 된다.
그건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저는 대등한게 좋단 말이죠. 울프람이 힘들 때는 제게 기댈 정도로 강해져야 하는데 말이죠.”
울프람이 약한 소리를 하는 날이 오기나 할지.
“저도 더 단련해야겠네요.”
우선은 이 잘나셨으면서 둔감하시고, 그럼에도 진심으로 자신들을 아껴주는 파티 리더님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내일부터는 다시 반역적인 훈련을 해야겠다.
하지만 그건 내일부터.
지금은 그가 만들어준 보랏빛 별하늘의 요람에서 안식을 취하자.
“잘 자요 울프람.”
정확하게 열 시 반.
그가 만들어준 평화 속에서 아일라는 조용히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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