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14)
§ 313. 하늘산책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일이 끝난 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마냥 웃을 상황도 아니었고, 얼굴에는 피로만 가득했다.
가볍게 뛰어서 기숙사에 도착. 창문을 열고 그대로 침대에 얼굴을 처박은 루디카는 그대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루디카 돌아왔나요?”
“······응.”
세실의 물음에 루디카는 그저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루디카도, 세실도 알고 있다.
장로 회의 이후. 일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대외적으로 이브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나마 이브를 지지한다는 블러프를 꺼냈기에 가문을 견제하는 경우가 줄었다.
이브는 그 만큼의 우량주였고, 이브에게 투자하는 건 모두가 그러려니 할 정도였다.
허나 가문 내에서 불안해하는 경우가 늘었다.
울프람을 지지하면 지지하는 거고, 이브를 지지하면 지지하는 거지. 속내는 울프람인데 블러프로는 이브라거나, 여타저타 잡음이 끊이질 않던 것이다.
이럴때 가문을 진정시키는 법은 자기 자신이 상징이 되는 것.
루디카는 울프람을 위해 가문을 하나로 모으기로 했고, 그 때문에 오늘도 악인 처리에 몰두한 것이다.
아이들로 끔찍한 실험을 하는 흑마도사나, 아직 정신 못차린 마족계약자 등.
제국에는 어둠이 많고, 그 만큼의 죽음도 많다.
물론 체력이 낮긴 해도 루디카는 쉽게 피곤해지거나 지치지는 않는다.
통각은 남아 있다곤 하지만, 모든 감각을 봉인했을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은 전투지속능력.
막말로 루디카는 죽기 직전까지 냉정하게 싸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봉인되지 않은 것은, 순수한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마음.
그렇기 때문에, 수라장을 몇 번이나 지나쳐온 이 암살자도 마음이 지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못해 먹겠어. 세실.”
“어머. 핫산 은퇴인가요?”
“에잇. 은퇴야 은퇴. 안 해. 못 해. 그만 둘 거야.”
“그럼 다음대 핫산은 루디카를 쓰러트려야 하는군요. 대체 누가 그게 가능하죠?”
“······내년에 들어올 아이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나?”
“예에. 뛰어나죠. 고작 뛰어난 수준이에요. 세 살 때 조각칼을 들고 완벽한 ‘긋기’를 했던 꼬마와는 다르다고요.”
“······.”
“그럼 이제 우리는 세 파벌로 나뉘겠군요. 차대 가주를 인정하는 파벌. 실력만이 전부라며 루디카를 지지하는 파벌. 그 안에서도 울프람 황자님 지지파와 반대파. ···축하해요. 샤도우의 손을 루디카의 손으로 막을 내렸군요.”
“으으으으···.”
모든게 설득력이 넘쳐서 세실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루디카는 침대에 머리를 박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루디카. 진심으로 포기할 생각은 없죠?”
“응.”
“그러면, 내일은 잠깐 쉬다 와요. 울프람 황자 전하 곁에라도 가보는 건 어때요?”
“하지만, 울프람은 단 둘이서 있어도 본인이 하려는 일에 매진하느라 나를 바라봐 주지 않는다.”
“···음. 그야 그런 분이시죠.”
“거기에 우리들은 ···뭐라고 해야할까. 이건 파티 내에서도 가장 감각이 날카로운 이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확신이다만.”
“어머. 그렇게 날카로우면서 가장 늦되잖아요?”
“···아, 무튼! 울프람은 우리 전원을 동생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가요?”
루디카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기 자신의 가면을 벗고 말을 이어나갔다.
“응. ···뭐라고 해야 하나, 지켜줘야 하는 입장에 선 오빠. 동갑이면서 자기 자신을 오빠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긴 한데 아일라를 포함해 전원을 그렇게 보고 있는 거 같아.”
“그렇군요. 그래서요? 그게 루디카가 늦된 거랑 관련이 있나요?”
“······있어.”
“어머, 진짜요?”
“으흠. 나는 서로간의 시선이 대등해졌을 때 ···그 때 처음으로 뭔가 되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아하.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갑자기?”
“아무튼, 아직 울프람을 돌아볼 수 없게 하는 입장에선 같이 있어봐야 내 마음만 편하지, 서로 맞물리는게 없달까.”
“······이것 참.”
핫산은 뛰어나고 빼어나고, 본인 말마따나 연애에 있어서 촉도 날카롭지만 정작 본인이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서 굉장히 이상적인 연애밖에 머릿속에 없나 보다.
그러니 여기서는 연애담 듣기의 일인자. 연애 경험은 없지만 조언계의 마이스터. 세실은 자신의 여동생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맞물리지 않는 퍼즐도 꾸겨서 넣으면 맞물려요.”
“···으, 응?”
“그러니까. 일단 만나러 가라고요. 그러다 뺏기면 또 침대에 처박혀서 울다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때 고백할걸 그랬어. 같은 소리나 할 거에요? 알았죠? 그렇게 힘들면, 당장 내일 만나러 가요. 그리고 잔뜩 어리광 부리고 힐링받고 오세요.”
루디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세실은 대답을 들은 듯 느꼈다.
***
간손미 시스터즈를 학생회에 던져버린 이후. 이브의 호령이 날아왔지만, 사흘 후에는 그럭저럭 인정해줬다.
간손미 얘네들이 좀 스킬셋이 구리고 세팅값이 좀 그래도 AI까지 맛이 가진 않았다.
어떤 세팅이냐면, 간단하게 라모르간만 설명하면 친화력은 높지만 파티 버프가 좋지 않다. 호감도 올리는건 쉬운데 올려봐야 파티에 도움이 안되는 느낌. 마력이 낮지 않지만 캐릭터지만 자체적인 마력 효율이 쓰레기라 쓸 수 있는 마법이 없다.
하지만 AI는 멍청이가 아니고 우직하게 버티는 편이라, 마력방패 스크롤을 쥐어주고 탱으로 쓰자면 또 쓰겠는데, 그러느니 네프티가 있고, 네프티가 갓캐라서 안쓴다고 치면 또 다른 탱이 있고···.
허나 그 우직함에 의해 추천했고, 전체적으로 싹 다 그런 느낌이다. 다들 우직하게 멍청한데 효율이 구린···. 솔직한 바보들.
경비 일을 시키는 데는 또 이만한 특성이 없거든.
아무튼 일할 때 헛짓도 안 한다고 한다.
다른 거보다 메모 필기는 확실하게 한다고 하니, 이브 입장에서도 써먹을만 하겠지.
아무튼 그렇게 학생회실을 향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다.
“루디카. 다른 일은 없나?”
“응. 따라가도 되냐고 물으니까 된다고 한 건 울프람이잖아?”
“음. 그랬지.”
루디카가 평소의 가면을 벗고서 보통 루디카로서 내 바로 옆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아무 일도 없다면서 그냥 착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음. 일단 서고로 가지. 가서 설명하겠다.”
이윽고 서고에 도착한 우리는 간손미중 손. 리리손이 지키는 방을 지나갔다.
“오늘도 무지하게 잘 지키고 있습니다! 최저시급 감사합니다!”
“음. 고생이 많다.”
“악!!”
마지막 그 경례는 뭔데.
아무튼, 방 안으로 들어가 푸른색으로 빛나는 문과 함께, 옆에 있는 종이를 바라봤다.
문의 패턴. 그러니까 문에 적혀있는 문자열을 본따놓은 종이들.
이거 하나하나가 던전의 키워드고, 던전의 요소를 나타낸다.
물론 처음부터 대충 적어서 말해줄 수 있긴 한데, 그거까지 알고 있다고 했다간 이브가 나를 의심스레 바라보는 눈이 더 커질 거 같아서 조금 돌아가는 수를 썼다.
“정말 잘 적어놨군.”
“이건 뭐야. 울프람?”
나는 이 문이 뭔지. 어떤 던전인지. 어떤 보상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전부 설명했다.
루디카는 오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면 지금은 뭐야?”
“흠. 지금은 보자.”
【단층의】 【다수의】 【약점이있는】 【인형의】 【던전】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거기에 이 던전은 조금 투명하게 빛난다.
즉 보상 레벨이 꽤 괜찮다는 것.
“그러면 요약하자면, 1층내로 끝나고 약점이 확실한 인형들이 다수 있는 던전. 이 되겠군. 보상도 나쁘지 않다.”
“오오···. 그러면 어려운가?”
“아니 어렵지는 않다. 다만 느리다고는 하나 숫자가 많아서 조심해야 하지.”
“그러니까, 허수아비가 잔뜩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다.”
“그럼 들어가자. 울프람.”
루디카는 아무렇지 않게 제안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안은 루디카와 상성이 잘 맞는가?
그야 무척이나 잘 맞다.
루디카는 【단검이 통하고】 【느린 적들 상대】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즉 이 안에서 루디카가 다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것이다.
원래라면 탱 딜 버프 서브딜 보조오더 메인오더 전부 싹 다 모아서 레이드를 가는 게 성향에 맞지만, 이 정도 던전은 단 둘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것 보다.
나는 아직. 진짜 루디카의 교수님 모드를 본 적이 없다.
“그럼. 이번 대 핫산의 솜씨를 보도록 할까.”
“음. 좋아. 그러면 조금 화려하게 가볼까!”
루디카는 방긋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
교수님의 지도시간이다.
***
난 이 세계에 와서 참 많은걸 실물로 봤다고 생각했다.
이브 폰 로엔그린의 브라이트 레인.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진실된 미소.
밀푀유의 운명에 대한 역전. 네프티의 성장.
모두가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보여줬지만 딱 한 명.
성장을 실감하지 못한, 혹은 진정한 실력을 보지 못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그게 바로 루디카 핫산 샤도우.
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루디카는 언제나 교수님이셨고, 슥 사라지셨으니까 어쩔 수 없다.
허나 지금.
나는 어째서 켈터스로 단 한 번도 이 루디카 핫산 샤도우를 이길 수 없었는지. 크게 체감하고 있다.
“······.”
움직이고, 벤다. 흘려내고 찌른다.
무척 간단한 이 행위의 연계지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빠르다. 같은 말로는 형언할 수가 없다.
저건 폭풍이다. 단검을 든 폭풍이 움직이고 있었다.
예를들면,
그래 예를 들면 시야 끝에서 달려오는 폭풍을 보고 필사적으로 반대로 도망치면,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 폭풍은 어디까지 폭풍일까. 사람의 몸을 날릴 정도의 풍속이 있어야 폭풍이라 칭하나?
다르게 가정해보자.
피부에 강하게 느껴지는 바람마저 폭풍의 권역이라 생각해보자고.
그러면 대체 누가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지?
루디카의 폭풍은 그런 것이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허벅지에서 뽑은 비수로 인형의 목을 긁는다.
그 뒤에 손목을 털듯 아래로 내던져 다른 인형의 발목을 관통한 후.
튕기는 각도까지 이용해 그 뒤 인형의 허벅지에 명중.
흐르듯 걸어가 뽑아낸 후 그대로 목을 긋는다.
저건 피할 수 없다.
폭풍의 중심지가 문제가 아니다.
애당초 인간을 날리는데 폭풍의 중심정도의 힘이 필요할까?
아니다. 강풍의 영향력 안에 들어간 순간 죽은 것과 매한가지.
나는 최초로, 암살자가 정면에서 수백의 적을 잘라내는 장면을 보았다.
이것이 핫산.
이것이 루디카.
원작에서 내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소녀.
“실로 훌륭하군.”
교수님의 강의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정도로 경이로운 움직임이었다.
***
던전이 끝난 후, 루디카는 기지개를 쭈우우욱 펴며 웃었다.
“아, 잘 놀았다! 울프람이 보고 싶다고 해서 화려하게 해봤는데, 어땠지?”
“감탄했다. 루디카 핫산 샤도우. 너는 틀림없이 우리 파티 내에서, 내가 가장 기대한 만큼 보답해주는 사람이다.”
“그런가. ······그런가!”
루디카는 뭐가 그리 기쁜지 입을 가리고 우후후 웃었다.
보상은 아예 루디카에게 밀어주기로 했다.
나온 것은 꿀잼 아이템 【구름벤치】.
공중에 두둥실 뜬 벤치를 소환해 하늘을 느긋하게 산책할 수 있는 꿀잼 비행템이다.
최대고도는 그리 높지 않고, 일회성에 제한시간도 있지만 가지고 놀기에는 안성맞춤.
완전히 루디카에게 주기로 했지만 그녀는 이걸 나와 공유하겠다고 했다.
“아하하. 이렇게 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음···. 그렇군.”
루디카는 그렇게 두둥실. 하늘 위에 떠서는 벤치에 앉아 이쪽을 향해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울프람. 조금 기대도 되나?”
“상관 없다만.”
“응. 고맙다···. 조금 추워서 말이다.”
“그런가.”
“······음.”
내 옆에 바짝 붙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루디카.
그야 가을의 하늘은 춥겠지. 나야 망토가 있으니 상관 없다만···.
“추우면 내려가도 괜찮다만.”
“아니. 이게 좋다. 이거면 충분하다.”
“그런가.”
“응. 그래서 한 가지만 더 ···이대로 잠깐만 쉬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루디카는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루디카에게서 시선을 돌려 바라본 하늘의 정경은 훌륭했다.
아.
그러고보니.
“···감각이 봉인됐는데 추위는 느끼는 건가?”
“·········!”
분명 잠들었을 루디카가 움찔 떨었다.
음.
떠는 것 보니까 추운게 맞나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