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2)
031. 의좋은 남매 (2)
제프린 중앙은행.
바깥 모든 화폐를 린으로 바꿔주는 황금의 성.
환차익이나 환전 수수료만 해도 제국의 세금 일 할은 제프린에서 나온다고 칭해지는 이곳은 무려 칠중의 대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초대 황제가 직접 건 1티어의 대마법 일곱개는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를 부수면 다른 여섯이 동시에 발동하여 순식간에 보완하는 방식으로 동시에 일곱을 파괴하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은행에 한 명의 소녀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브 폰 로엔그린입니다.”
“황녀님. 중앙은행에 오심을 마음 속 깊이 환영합니다. 어인 용무로 방문하셨는지요?”
이브 폰 로엔그린.
제프린에서 유일하게 계급을 가지고 있는 황족.
그녀의 권한은 대교수에 준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고, 제프린을 떠나 황실의 일원으로 전세계에 그 위명을 떨칠 미래를 생각하자면, 어찌 보면 고작 배움의 터에 지나지 않는 제프린의 그 누구도 그녀를 적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원 역시 이브 전담 베테랑이 맞이한다.
제프린 유일의 성공 보장 수표. 어리숙한 관리는 용납되지 않는다.
허나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이브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있고, 어딘가 어두워 보인다.
“깨러 ···왔습니다.”
“네?”
“적금 들은 거, 깨러 왔어요.”
이브가 적금을?
왜?
제프린의 예산이 위험한가?
상담원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훌륭한 근무태도로 되묻지 않았다.
“네, 네에···. 그 그럼 황녀님의 적금 계좌를 확인해드리겠습니다.”
계좌를 확인한 다음에는 상담원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네. 이브님 계좌 확인 되셨습니다. 그런데···.”
“네?”
“다음 달이 만기신데, 괜찮겠어요?”
그 말에 이브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나는 시종일관 양 손에 달린 장갑을 빤히 바라봤다.
질서와 균형의 장갑. 즉 초심자 세트다.
“그나저나 초심자 세트라고 하니 입에 안 붙는군.”
원래는 더 굴욕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던 장갑 세트였다.
공식 명칭 [좀더 많이많이 화이팅 세트].
유저들이 줄이길 ‘존만이 화이팅 세트’
귀엽고 좋은 이름인데 2막을 겨우 깬 뉴비들이 클리어 인증샷 올렸을 때 댓글로 ‘존만이 입갤’ ‘존만추’ 이런 게 달리니까 그 어원을 알게 된 뉴비들이 자존심상해서 꼬접하는 바람에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던가.
작명한 놈은 아마 연봉 삭감됐겠지만, 나는 존만이 화이팅 세트가 더 마음에 든다.
아무튼 이 존만이 화이팅 세트. 아니 초심자 세트.
이게 진짜 생각보다 꿀 옵션으로 둘둘 말고 있다.
나는 입수 순서가 반대지만 우선 1-1을 깨면 먼저 얻는 질서의 장갑.
자체 옵션이 경험치 10% 추가.
그 다음 2막의 모스맨에게서 얻는 균형의 장갑은 말할 것도 없이 모자란 스테이터스를 +3 보완해준다.
그리고 세트옵션이 총 세 개가 붙는다.
첫째로는 모든 내성 저항.
이게 가뭄의 단비다.
2막 잠든 산맥에서 세트를 맞추면 세트옵션으로 모든 상태이상 저항이 생기는거니 잠든산맥 필수품이지.
그리고 히든 옵션 하나랑 바로 【8T】 스킬 랜덤 습득.
근데 이게 또 막 무작위 랜덤은 아니다. 경향성이 있다.
유저들은 어떤 경향인지 대충 알고 있는 수준이지만, 나는 그 경향을 확실히 알고 있다.
우선 가장 높은 스탯의 경향을 받는다.
즉 근력을 올리고 검 숙련도가 높다면 【이단베기】 【돌격】 【무명참】 같은 스킬을 얻는다.
마력이 높으면서 회복 중심이라면 【리스토레이션】 【소울 체인지】 【생명력 전환】등의 스킬을 얻는다.
운이 좋으면 가진 바 스킬의 상위 스킬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럼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특성은 뭘까.
우선 내가 습캔을 써서 얻은 스킬은 【요리】 【포션제작】 【악세사리 제작】의 세 개.
나는 손재주가 베이스니까 내가 얻을 스킬이 무엇인지는 대충 눈치 챌 수 있다.
【요리:정찬】 【매직 크래프트】 【포션효과 상승】 【약초학 중급】 이런 것들이겠지.
뭐가 나와도 분명 개이득이다. 그런 테크트리를 짰으며 계산에 빈틈은 없다!
그렇게 내가 얻은 스킬은 다음과 같았다.
【매지컬 파티시엘】
【8T】
【간식을 제작할 때 미량-소량 사이의 마법이 부여됩니다.
이는 들어간 재료가 특수할수록 강한 효과가 부여됩니다.
부여 확률은 사용자의 손재주에 따릅니다.】
“빈틈은 없긴 한데.”
가장 자주 쓴 스킬이 요리.
가장 높은 스탯이 손재주.
가장 많이 만든 게 간식.
“그야 이 스킬이 생길수도 있지. 있긴 한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쓸모 있는 스킬이다. 간식의 회복 아이템으로서의 특징은 ‘소모품’ ‘효과 빠름’ ‘회복’.
그런데 여기에 매지컬 파티시에 스킬로 마법 효과나 마법적 버프를 추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무척 쓸모 있는 스킬이 맞다.
맞긴 한데.
나는 스킬 툴 팁 마지막 줄을 읽었다.
[모두의 간식이 꿈빛으로 물드는 마법!]“꿈빛 파티시엘이라도 되라는 것인가.”
짜증나게 반죽이 별빛으로 반짝이는 듯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
내 간식이 꿈빛으로 가득 찬 다음 날.
편의점에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울프람. 오래간만이다!”
“루디카인가. 급작스럽군. 용무가 있나?”
작은 몸체. 회백빛 머리. 푸른 눈.
매운 맛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암살자.
민첩 22의 1티어 암살자 루디카 핫산 샤도우.
그녀는 대뜸 말했다.
“홍초가 다 떨어졌다. 혹시 받을 수 있나?”
“어렵다. 여유분이 적다.”
“그런가···.”
루디카는 대놓고 시무룩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번쩍 들고는 방실 웃었다.
“그럼 같이 캐러 가면 되는 일 아닌가!”
“둘이서는 위험하다.”
“···우.”
전에는 네프티를 껴서 안전했지, 지금은 아니다. 얌전히 돌아가라.
“정말 안 되는 건가. 아쉽다.”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는 홍초만 캐고 나왔지만, 잠든 산맥의 매력은 그게 끝이 아니니까.
아니.
잠깐 기다려봐.
“아니 가도 되겠군.”
“진짜인가?!”
“대신 네 의뢰로 내가 가는 거다. 수당은 받겠다.”
“좋다!”
“백만 린은 받겠다.”
“하하. 고작 그 정도인가! 루디카 돈 많다. 임무 두 개나 해결하고 왔다.”
무슨 임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묻지 말자.
그렇게 루디카와 잠든 산맥을 향했다. 수레는 루디카가 끌었고, 그녀는 나를 방치해 둔 채 슬리피와 모스맨의 무리 안으로 쳐들어갔다.
“끼에에엑!”
“꺄아아아아악!”
넘쳐나는 슬리피와 모스맨. 루디카는 정확하게 뒤잡기와 목긋기로 한 번에 한마리씩 깔끔하게 죽이는 모습에 절로 감격했다. 정말 나를 신경도 안 쓰는구나.
그 결과 모스맨 한 마리가 나를 우선적으로 바라봤다.
와 무서워. 정말 무서워.
나는 양 손의 장갑을 꾹 쥔 채. 히든 세트 옵션을 발동시켰다.
【액티브:죽은척】이 발동됩니다!
이게 존만이 화이팅 세트의 진정한 세트 옵션. 숨겨진 스킬.
그 자리에 누워서 발동시키면, 죽은 척 효과가 발동되어서 몬스터의 어그로가 해제된다.
모스맨은 이윽고 내가 죽었다 판단했는지 그냥 물러갔다.
나는 누워서 하늘을 올려봤다.
푸른 것이 참 예쁘다.
***
우리는 그렇게 홍초를 따왔고, 루디카는 나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줘서 다른 약초들도 충분히 건질 수 있었다.
“홍염초. 작약초를 필두로 청령초에 진성초까지. 풀밭이로군.”
화염내성을 필두로 온갖 내성을 올려주는 약초들의 총집합.
평소라면 다루기 까다로운 약초들이지만, 【요리】 【포션 제작】 【매지컬 파티시엘】 등의 스킬을 둘둘 말면 어떻게든 요리를 할 수 있는 법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말은 그렇게 했어도, 경험치 보너스. 재주 10. 8티어 스킬. 온갖 약초들까지. 맨땅에서 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 성장을 자랑한다.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살아가자.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튼 자랑할 물건도 생기지 않았는가.”
도넛이나 다른 간식들은 레시피를 뜯기면 위험하지만, 매지컬 간식···. 아 빌어먹을.
아무튼 마법적 효과가 있는 간식들은 나만의 아이덴티티. 편의점을 찾아야 할 좋은 이유가 될 것이다.
이제 이브가 약속했던 간판만 가지고 오면, 내 편의점은 이 제프린에 내노라 하는 상점들 사이에서도 우뚝 서리라.
그리고 그 이브가 오늘 신령목 엘 우드를 낙찰받아 편의점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나의 천하는, 이제 시작이다.
“그나저나 늦는군. 간판은 언제 만들 셈이지.”
그렇게 이브의 뒷담화하기를 잠시. 저 멀리서 무언가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등 뒤에는 나무라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것을 메고, 그것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브인가.”
“예에. 울프람. 이브 폰 로엔그린이 왔어요. 준비한 물건도 여기에 있고요!”
쿵. 하고 바닥에 엘 우드가 떨어져 내린다.
“훌륭한 신령목이군.”
“그래요. 이게 얼마가 들었는지 알아요?!”
알 바야?
“얼마 들었는지 묻지는 않으마.”
“뭐,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저 혈육이 선물해 준 마음의 선물로 받겠다. 이제 너는 나에게 마음의 빚이 없는것과 마찬가지다.”
“···당신 언젠가 제 광창이 그 배를 꿰뚫고 나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브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니까 누가 돈으로 해결한다는 멍청한 소리를 하라고 했니?
“그럼 작업을 시작하마. 이미 도안은 짜 뒀다.”
“······간판 작업.”
“그래. 너는 그만 가도 좋다.”
“아뇨. 저도 도울게요.”
“뭐라?”
“제가 산 물건이고, 어떻게 완성되는지는 봐야죠. 간판을 만든다고 쳐도 긁어내기나 도색. 마지막에 설치하는 것 까지 당신 근력으로 되겠어요?”
“그런 그렇군. 네프티에게 부탁 할 생각이었다만.”
“기사학부의 자랑인 후배님의 숭고한 신념에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그녀에게 보수는 잘 지급하고 있나요?”
“······하고 있다.”
“너무 싼 값에 부려먹지는 마세요. 남의 호의를 이용하지 말라는 이야기에요.”
뭔 참신한 개소리야 그건.
하지만 그걸 부탁했다가 네프티가 백만 단위의 린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나는 순수하게 이브의 호의에 기대기로 했다.
“···그럼 부탁하도록 하지. 도안은 지금부터 그려나가겠다.”
그리 말하며, 나는 연필을 들고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회귀 전.
내가 가지고 싶었던 점포를 흉내 내서.
하지만 표절로는 걸리지 않게끔.
누가 봐도 편의점이지만, 울프람의 마음을 담은 글자를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사실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이름으로 할지.
자 보자.
울프람의 편의점 이라고 하면 Wolfram’s Convenience가 된다.
약칭은 W.C가 되네?
8구역 W.C는 안으로 80m 들어가면 있어요.
미쳤냐고.
그래서 정한 게 울프람의 휴게소. 약칭 W.R.
나에게 편의점은 참 편한 곳이었다.
새벽에 나와도 열려있고, 가볍게 밥을 먹을 수 있고, 음료수도 잔뜩.
치킨을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도시락이 매력적인 곳이 있고, 빵을 오븐에 직접 굽는 곳이 있다.
장난감 코너가 생각보다 큰 곳도 있고, 일에 치여서 시간의 흐름을 모를 때. 편의점을 보면 계절상품이나. 빼빼로데이 한정 상품. 발렌타인, 화이트데이 한정 상품 같은 계절과 세상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이 가게에 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쉬어 갈 수 있게끔.
이영진의 만들고 싶었던 편의점 마지막 남은 소원은 그것이었다.
【반복 작업중 가장 어려운 작업을 최고의 집중력으로 대성공했습니다.】
【횟수와 조건. 난이도를 전부 충족했습니다.】
【재주가 1 오릅니다. 의지가 1 오릅니다.】
시스템 메세지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갑자기 히죽거리지 말아요. 기분 나쁘게.”
이브가 이죽거렸지만, 이내 내가 쓴 글씨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울프람이 쓴 것 치고는 좋은 글씨네요.”
저 천재 이브가 봐도 좋은 글씨인가보다.
“울프람. 하나 물어도 될까요?”
“묻도록.”
“이 편의점이라는 게 정확히 뭘 바라는 가게에요?”
“말하지 않았나, 모든 학생의 편의를 위한 가게다.”
“좋아요. 그 말을 믿고 그럼 지금부터는 제가 서비스 해 드리죠.”
“뭐?”
그리 말하며 이브는 마법으로 간판을 번쩍 들어올렸다.
“당신이 엘 우드를 선택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내 깨달았죠. 엘 우드가 간판이 된다면, 생각보다 엄청나게 효율이 좋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렇다.
엘 우드는 대기 중의 마력을 흡수하고 에너지원으로도 쓸 수 있다.
마동석만큼 출력이 좋지는 않으나, 자가수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채색해드리죠. 바라는 색감이 있나요?”
“채색? 잉크가 없다만.”
“저는 빛 마법의 사용자에요. 프리즘을 고정화 하는 것은 별거 아니죠. 칠색 광중에서 골라 봐요.”
아하 그렇군.
간단하게 빨주노초파남보의 칠색중 하나를 뚝 떼어다가 그 상태로 고정화 할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친 거 아냐? 그게 어떻게 되는데?
“그럼 여기는 ···이런 색으로, 저기는 보라색에다가. 음. 그래.”
그렇게 이브의 손을 빌려 완성된 편의점 간판이 식료품점. 아니 울프람의 편의점 최상단에 걸렸고, 이브는 손을 털고는 나를 바라봤다.
“엘 우드 스스로 빛을 내게끔 했고, 자가수복 마법도 걸었어요. 보호 마법도 걸었으니까 웬만하면 부서질 일도 없고 동력도 따로 필요 없어요.”
“···그렇군.”
솔직히 아티펙트에 가까운 아이템이다. 본질은 그저 빛나는 간판이지만, 고장 나지도 않고 자체 청결 기능도 붙였다고 한다.
“울프람.”
“뭐지.”
“작년 당신이 보였던 악행. 그 결과로 당신의 죄가 용서받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솔직히 이 이상 나쁜 짓을 안 할 거라고 믿기도 힘들어요.”
“믿어달라고 한 적 없다.”
“···하지만 이 이상 나쁜 짓을 안 하고 정말 열심히. 이 편의점이라는 걸 해낸다면.”
“······?”
이브는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털어냈다.
“아뇨. 이만 가 볼게요.”
“···그래.”
이브는 뒤로 돌아섰고, 문득 할 말이 생각이 나 이브를 불러 세웠다.
“이브.”
“뭐죠?”
“고맙다.”
“······흥.”
하여간 새침데기 녀석.
그렇게 이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갔고, 나는 빛나는 간판을 올려봤다.
한참. 그렇게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둑한 저녁이었다.
파직. 파직.
잡벌레들이 간판 근처에 붙었다가 터져 나가고 자동 세척 마법이 발동된다.
아무튼 이 번쩍이는 광원에 눈이 아플 무렵.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편의점 안까지 들어오는 불빛.
작은 미소와 함께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저거, 어떻게 끄는 거지?”
아니 진짜.
어떻게 끄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