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3)
032. 병아리 삼총사
그렇게 나는 반짝이는 간판과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놀라울 정도로 체력이 돌아왔기에, 평소처럼 새벽 장사를 나섰다.
“오래간만입니다.”
“졸프인가.”
“네. 지난번에는 큰 민폐를 끼쳤습니다.”
“무얼. 신경쓰지 마라.”
“···감사합니다. 울프람 님.”
“그보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지.”
“그게 말입니다···.”
듣기로 졸프 녀석은 여전히 바벨 그레이스 교수의 랩에서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에게 찍혀서 앞으로의 랩 생활에 지대한 지장이 지리게 올 거 같지만 졸프의 표정은 편안했다.
“안 되면 취직하면 됩니다.”
“······.”
그건 주박이 깨진 건가, 아니면 머리가 깨진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졸프는 웃어 넘겼다.
“농담입니다. 랩 생활은 조금씩 편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지?”
“그게 말입니다.”
졸프의 말은 이랬다.
이브 폰 로엔그린이 대학원생 인권 신장을 황실에 올렸고, 법무부에서 일부 승인이 났으며, 나머지는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어째서 이런 간언이 올라오게 되었는가를 감사해 본 결과.
바벨 그레이스 교수의 이름과 대학원 랩의 현실이 높은 분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로 바벨 교수의 랩은 감사가 들어가고 교수는 몸을 사리는 상황. 답지도 않게 대학원생들을 챙기는 와중. 이 사건의 대표적 피해자인 졸프가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취직을 할 경우 바벨 교수는 외통수에 몰린다는 것.
“하지만 시간 제한이 있군.”
“네. 맞습니다. 감사 기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랩은 원래대로 돌아가겠죠. 하지만 그 사이 만큼은 평온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루 6시간의 수면을 보장받는 삶이죠.”
“그, 그런가.”
“거기에 이미 공론화가 된 이상. 교수님은 체면을 위해서라도 저를 빨리 졸업시키실 듯합니다. 작년에 보냈던 졸업 논문 1차 첨삭을 이번 주 내로 해주신다더군요.”
“······그런가.”
아무래도 제대로 호구 잡히고 살았었나보다.
졸프는 나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울프람 학생회장님 감사합니다.”
“···나는 학생회장이 아니다. 일반 학생이다. 그리고 감사는 이브에게 해라.”
“아뇨. 일반 학생 울프람 님께는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학위기와 졸업반지를 바랐던 그 때. 일반 학생 울프람 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쯧.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랩에 돌아가 보도록.”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졸프는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전 졸프는 한 마디 남겼다.
“울프람 님. 이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조언일 듯합니다.”
“듣도록 하지.”
“내년에 학부를 졸업하시더라도 대학원은 가지 마십시오.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
“인권은 스스로 지키셔야 합니다.”
거 참.
설득력 넘치네.
***
8티어 스킬 매지컬 파티시엘.
사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나는 켈터스로 이 스킬을 얻고 실제로 주력 보조 스킬로 써본 적이 있다.
마법부 히로인인 이브의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은 단 음식을 준비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과자를 만들어서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게임 내에서 이 스킬의 효율은 ···실로 묘하다.
좋은가 나쁜가 하면, 유틸 스킬로는 뭐 쓸 법도 한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인벤토리 제한’이었다.
과자를 만들면 만들수록 인벤은 가득 차지, 중반 가면 쓰지도 않을 식품이지.
다른 요리들이나 재료들까지 섞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인벤이 터지고 과자도 안 만들게 된다.
하지만 기왕 얻은 상위 티어 스킬. 활용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인벤토리가 터져나갈 것 같다면, 처리할 사람을 만나면 된다.
사실 네프티에게 맡길까 했지만, 아무리 네프티라도 개인에게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이브 녀석은 얄미워서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
1학년 공용 기숙사 앞이었다.
“와. 도넛 선배님이다.”
“오늘은 장사하시네요!”
“안녕하세요···.”
내 리어카에 자주 들리는 햇병아리 세 명.
이 햇병아리들의 수다 덕분에 1-1이 언제 시작되는지 감 잡을 수 있던 점도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도넛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받아라.”
“어, 저희 주문 한 적 없는데. 혹시 너무 자주 와서 튀겨놓고 기다리셨어요···?”
“으, 으음. ···그렇게 자주 왔나? 그런가?”
시야 끝에 단골 손님이 잡히면 통모짜 튀겨놓고 기다린다는 핫도그가게 사장을 본 기분인건가.
“감사하지만 복잡해요 선배님!”
“···그치?”
···비슷하긴 하지만.
“아니다. 자주 왔으니 서비스다.”
“와! 역시 선배님!”
“···가,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두 사람은 그대로 식신 들린 아귀처럼 먹기 시작했다. 1학년 식성 무서워.
햇병아리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갸웃 했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 햇병아리들을 알고 있다.
정확히는 게임에서 동료 삼아 플레이 해 본 기억이 있다.
“저는 슈가 도넛 하나 더 주세요!”
“···그렇게 먹어도 돼?”
“조금 있다가 망치질 할 거니까 괜찮아!”
슈가 도넛을 자주 시키는 밝고 활기찬 드워프족 소녀의 이름은 바닐라.
“그럼 저도 스트로베리 하나 더 주세요.”
스트로베리 도넛을 자주 시키는 조용한 엘프족 소녀의 이름은 요거트. 둘이 합쳐 바닐라 요거트 듀오였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바닐라 요거트.
그런데 그게 D/Z SAGA의 퀄리티다.
묘한 곳의 디테일을 챙기면서도 다른 곳에서 이스터 에그. 혹은 기묘한 밈이나 취향을 밀어 넣은 게임.
아무튼 드워프인 바닐라는 전열로 키워도 괜찮고 대장장이로도 괜찮다. 요거트는 나름 궁수나 정령사. 혹은 정령궁수로 키워도 좋다.
미래의 동냥이며 게임 내에서도 괜찮은 1학년생들. 키우면 3티어까지는 충분히 올라간다. 나름 그리운 캐릭터기도 하다.
결코 지금 공짜로 이것저것 먹여놓으면 나중에 울프람이 위험에 처하면 한 번정도 도와주지 않을까. 그런 흑심을 품고 대하는 것이 ···맞긴 한데, 아무튼.
나는 남은 한 명의 햇병아리를 보며 물었다.
굉장히 소심해보이고 저 순딩이에요. 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다.
요상하게 얘는 기억이 애매하네. 직접 키운 기억은 없는데 어디선가 보긴 본 듯한···.
누구더라?
“그쪽은 뭘 먹고 싶지?”
“···아. 저는 그러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도 되겠군.”
“네, 네?”
병아리 3호의 대답을 무시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도넛 하나를 능숙하게 만들어내 짤주머니로 크림을 짜 넣었다. 가장 무난한 건 초코나 화이트 크림인데, 어차피 공짜로 나가는 거겠다. 신 메뉴도 괜찮겠지 뭐.
“받아라.”
“저, 저는 돈이···.”
“신 메뉴의 테스트다. 신경 쓰지 말고 먹도록.”
“네, 네에···!”
병아리 3호는 도넛을 받아들고는 수줍게 웃고는 한 입 먹고 눈을 크게 떴다.
“이 맛은 대체···. 처음 먹어봐요!”
“녹차맛 크림이다. 자세한 평가는 어떻지?”
“···그, 그러니까요. 풍미가 굉장히 깊으면서 산뜻해요. 다만 살짝 쓴 맛이 있어서, 저, 저는 좋지만요.”
꽤 괜찮은 평가다. 네프티면 맛있습니다만? 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같은 소리나 할텐데 말이야.
그런데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기억 해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선배님, 저희도, 저희도 먹을래요!”
“···밀푀유만 먹고 치사해요.”
두 아귀가 녹차 크림 도넛을 보며 침을 줄줄 흘릴 때, 내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밀푀유?”
“네? 네에. 밀푀유 폰 사브레라고 합니다···.”
“저는 바닐라!”
“···저는 요거트.”
너희는 알고 있어.
“그렇군. ···알겠다. 시험 메뉴 시식을 부탁하지.”
“네!”
“···네.”
“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세 사람은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음 식사를 개시했다.
요거트는 신나게, 바닐라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그리고 밀푀유는 평범하게.
“맛있다!”
“···달다.”
“음. 이건 초코맛이네. 입 안에 풍미가 깊게 남아서 좋다.”
이제야 저 아이가 누군지 떠올랐다.
밀피유 폰 사브레.
1-3에서 퇴학당하는 켈터스의 동급생이었다.
***
장사를 마치고 편의점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밀푀유 폰 사브레.
어째서 내가 이 캐릭터를 기억하지 못했냐고 한다면,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애당초 밀푀유는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흔히 있지 않은가.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반드시 퇴장하는 캐릭터.
그게 바로 밀푀유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3은 중간고사 시험 파트다.
크게 잡아 필기. 생존. 대련. 이 세 개로 나뉘어 있으며, 스토리상 켈터스와 대련에서 맞붙는 게 바로 밀푀유.
켈터스는 저 밀푀유를 가볍게 이기고, 성적이 아슬아슬했던 밀푀유는 그대로 퇴학.
다시 한 번 제프린의 냉혹함을 가르쳐주는 캐릭터임과 동시에 주인공의 신념 적 발판이 되기 위한 엑스트라 캐릭터.
그게 바로 밀푀유 폰 사브레다.
“드문 캐릭터를 만났군.”
솔직히 말하자면 감상은 그것뿐이다.
퇴학당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면 된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켈터스는 자연재해를 만난 것과 같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너희는 살수라도 있지 않느냐. 울프람은 퇴학당하면 거기서 끝이다.
“아무튼, 나는 내 할일을 해야겠군.”
우선은 어디보자 매지컬 파티시엘 숙련작.
녹차 크림이나 커스터드 크림. 그 외에 수 없이 많은 크림들을 개량하거나 아이스티를 만들어 보는 등 해야 할 개량 작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자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인가. 손님이 찾아올리는 없으니 오늘은 꽤 바람 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
콩. 콩. 콩.
세 번의 바람 소리가 더 울렸다.
아니 바람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뭐지···. 돈이 부족하다고 달려온 네프티인가. 아니면 에너지 드링크를 달라고 온 아일라인가. 루디카와 이브는 지금 찾아 올 일이 없으니까.
“쯧. 그냥 문을 열고 들어 올 것이지.”
누가 됐던 간에 답지도 않은 예의나 차리고 말이야.
그리 생각하며 가게의 문을 여니, 그 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밀푀유 폰 사브레?”
“···네? 네! 안녕하세요. 울프람 선배님.”
꾸벅 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밀푀유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왜 여기에 왔지? 손님인가?
W.R.의 기념적인 첫 손님인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흐. 무언가 사러 왔나?”
“히이. 아, 아뇨. 그게 아니고요.”
아니면 돌아가라.
“저, 저기 선배님 이거···.”
“뭐지?”
“그, 아까 먹었던 도넛들의 맛을 정리 해 온 건데요. 시험 메뉴라고 하셨고, 시식을 했으니까 제대로 감상평을 남겨드려야 할 거 같아서.”
“······.”
뭔데.
얘 왜 이렇게 착한데.
“···드려도 괜찮을까요? 민폐라면 그냥 도, 돌아가보겠습니다.”
“들어와라. 차 정도는 대접하도록 하지.”
“네!”
***
밀푀유는 편의점 안쪽을 신기하다는 듯 보다가 내가 내온 차를 마시고는 하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향이 정말 좋네요. 이 차 이름이 뭔가요?”
“민트 티다. 시험 메뉴중 하나니 돈은 안 받겠다.”
“와아···. 초코 도넛이랑 어울릴 거 같아요.”
······얘를 괜히 가게 안으로 들였나?
아니다. 물건과 취향에는 잘못이 없다. 그래 민트 티랑 초코 도넛이 어울릴 수도 있지.
손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거지. 안 그래?
“용건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아 맞다. 이거, 제가 쓴 레포트에요. 급조 한 거긴 하지만 최대한 기억해서 솔직하게 적었어요.”
그렇게 밀푀유는 레포트를 내게 넘겼고, 나는 눈으로 그 내용을 훑었다.
동글동글한 글씨. 형광펜으로 적은 부분도 있다.
[초코 도넛 ★★★★☆] [달고 풍미가 깊어서 좋다. 다만 입 안에 끈적하게 남는 느낌이 살짝 있어서 상쾌한 음료와 어울릴 듯?] [녹차 도넛 ★★★★★] [위험할 정도의 풍미가 실제 그윽하다!]“······음.”
“어, 어떤가요?”
“괜찮군. 이 짧은 틈에 적었다고 보기엔 훌륭한 정리다.”
“가,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밀푀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얘가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내 기억으로 1-3이 결정타긴 해도, 이 밀푀유는 그 전에도 켈터스와 한 번 부딪힌다.
신입생들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대련할 때 부딪혀서 처참하게 깨졌고, 쪽지 테스트도 말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음. 그 뒤로 죽을상이다가 1-3의 중간고사에서 결국 필기도 낙제. 생존시험도 낙제. 대련도 켈터스에게 처참하게 깨져서 트리플 F로 퇴학.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냥 물어보면 그것도 이상하니까 나는 내 옛날 명함을 좀 팔기로 했다.
“실로 도움이 되지만, 전 학생회장으로서는 좀 신경 쓰이는군.”
“어, 어떤 게 신경 쓰이시나요? 내용이 미흡한가요?”
“아니 내용은 훌륭하다. 그게 아니라 1학년은 굉장히 바쁜 시기 아닌가. 대련 테스트도 있고, 쪽지 시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이렇게 유유자적 정리할 시간이 있나?”
“저, 그게 저랑 대련하려는 동급생이 켈터스라고 하는데요. 사실 학년 수석이라 엄청 긴장하긴 했는데요···.”
그랬지.
내가 말을 계속하라고 눈짓하자 밀푀유는 에헤. 하고 웃었다.
“입학식때 대단한 3학년 마법사 선배님께 당한 상처로 쉬는 바람에 그래서 초기 대련이 없어졌고 미뤄졌거든요.”
“······.”
“그래서 다시 대련하게 됐는데요. 얼마 전 학생회장님의 봉쇄 명령을 어기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가 회장령 위반으로 2주간 정학을 받았거든요···.”
“······.”
“대련은 그렇게 부전승 처리가 됐어요. 기묘한 우연히 겹쳐서 ···운이 좋았던거 같아요.”
그래.
그렇구나.
정말 기묘한 우연이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