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34)
§ 333. 아기여우
며칠 후.
개무소의 이들은 퀭해진 얼굴로, 다른 한 장의 설계도를 가져왔다.
아일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검수하는건 나 혼자.
이들은 덜덜 떨면서도 설계도를 내밀었다.
【투사의 단검】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냅다 집어 던진다는 의미.
그러니까 루디카가 자주 쓰는 투척단검이냐고?
아니다. 완전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까 ···다시 설명해봐라.”
“우선, 인정하겠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이 만든 설계도의 발상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잡소리는 치워라. 나는 지금 너의 칭송을 묻지 않았다.”
“···진심입니다만,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영향을 받아 나온 것이 바로 이 투사의 단검입니다.”
“그래서. 기능을 다시 설명해봐라. 내가 읽은것이 맞나?”
“네. 거기 적혀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렇구나.
“싸우는 도중. 단검의 칼날을 ‘투사’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체리의 그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느꼈다.
간단하게 말해서 단검의 폼멜에 마정석을 박아넣은 후. 마력을 흘리면 단검의 칼날이 퓽! 하고 날아간다는 거다.
옛날에, 바닐라 콘 아이스크림 모형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아이스크림 부분을 발사해서 노는 장난감이었다.
딱 그것의 단검 버전.
즉.
“이건 혹시 장난감인가?”
“아닙니다. 실전지향형 무구입니다.”
대체 어디가?
체리는 그 이후로 한참을 사용 용도를 설명했다.
이게 어떻게 쩌는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요컨데, 단검의 가장 큰 단점인 거리를 투사로 보완한다는 미쳐버린 발상.
“그냥 던지면 안 되나? 손잡이만 남은 단검과 던진 단검의 차이는 무엇이지?”
“······손잡이가 남습니다. 단검의 날만 다시 꽂으면 발사합니다.”
“싸우던 도중 단검의 날만 교체하라는 건가?”
“······싸움이 끝나고 교체하면 됩니다.”
“싸움 도중에 발사하면?”
“······.”
“그 다음은, 이 설계도 대로라면 낮은 확률로 폭발한다만.”
“·········.”
체리는 무언가 설명하려다가, 허공에 손만 허우적거리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재밌는 옵션을 부여해주는 녀석들이긴 했지만, 그게 실전이 되면 웃기 어렵다.
아무튼.
“이 설계도는 치명적인 실수다 있다. 새로 만들어와라.”
“······네.”
체리 피스타치오 소르베는 그렇게 돌아갔다.
저 녀석들이 히든 옵션을 꺼낼 확률은 0.3%.
“기적이 일어나면,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그 기적을 믿고 있긴 하다.
“저기!”
“뭐지.”
“···투척용 롱소드는 어떻습니까? 더 기니까···?”
“지금 당장 해산 명령서에 도장을 찍어줄 수 있다.”
“······죄송합니다.”
···믿고 있긴 하다.
***
스피카 트라이스타.
태생부터 남다르고, 노력도 남다르고, 성격도 좋고, 그저 완벽한 소녀.
전에는 언니보다 조금 체구가 많이 작아 이미지가 겹쳤지만, 최근에는 양갈래머리라는 핀포인트를 줘서 자신만의 매력을 구축했다.
허나. 그렇게나 완벽한 소녀가 지금 방에 홀로 앉아 고민을 하고 있다.
“으음. 으으음. 제프린에 역시 눌러 앉는게 맞을까요.”
그녀의 정식 입학은 내년.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제프린에 눌러앉아 있다.
어차피 내년 입학 확정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날, 야외에서 오라버니와 나눴던 대화···.”
그 때.
자신의 속도로 제프린에 들어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겠다고 모닥불 앞에서 말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그때는 분명. 내년에 입학해 다른 사람들을 추월해서, 오라버니를 두근거리게 만들겠어요. 같은 소리를 했지만···.
“제 혁명 센스를 생각하면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는 밥 말아먹은 언니와 오라버니다.
황족의 약혼이라는게 애당초 그렇다.
쓸모있는 교환패가 있으면 교환할 수도 있고, 그건 이제 사교계에서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교환을 성사시킨 쪽이 좀 더 높은 취급을 받는다.
“귀족간의 약혼을 깨면 서로간의 정치역학을 신경써야 하지만, 황족은 아니죠.”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
황족은 선택하는 입장이지, 선택받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게 바로, 이브 폰 로엔그린의 약혼대란.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대체 누가 그 이브 폰 로엔그린과 약혼할것인가는 한 번 크게 황실에서 토의된 적이 있다.
【싫다고 했잖아요? 더 이상 말하게 하면, 저도 화 낼거에요?】
그 때. 제프린에 입학하지도 못할 나이에 성광창 8소절을 해내 황실 벽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이브의 압도적 무력.
저게 화를 안 낸거라는 사실에 모두들 등에 소름이 돋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나온 마력 수치.
초대 황제님과 같은 그 숫자.
이브와 약혼할 수 있다면 가문의 저울추가 크게 기우는게 문제가 아니라, 제국 전체가 기울어버린다.
그렇게 전원이 접근하려다가 전원 유찰(流札).
그 누구도 이브 폰 로엔그린의 곁에 서는걸 허락받지 못했다.
“뭐, 그건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죠.”
이브 폰 로엔그린이 평생 혼자 살든 말든, 그건 그녀의 이야기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약혼 안 하고 배를 째버린 황손’이 지금 시대에 나왔다는것이고 그것 때문에 더더욱 ‘황손은 약혼하고 싶으면 하고 아님 말고 갈아 치우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같은 풍조가 조금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즉.
“울프람 오라버니를 제가 가져가도, 딱히 제국 사교계든, 귀족계든 큰 문제 삼지 않을거란 말이죠.”
언니에게 미안하게 됐지만, 자신의 혁명 센스로 봤을 때 언니와 오라버니의 혁명 수치는 그리 높지 않다.
서로간에 엄청난 신뢰도는 있지만, 그게 연애로 발전할 여지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혁명 점수가 다들 높긴 하지만, 오라버니 본인의 혁명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아요.”
네프티. 루디카. 밀푀유. 그 외에 수 많은 사람들.
다들 오라버니에게 혁명하고 싶어하지만, 오라버니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내년에 자신이 초 공격적으로 풀어나가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랬을 텐데.
“오라버니의 혁명 점수가, 아주 조금씩 오르고 있단 말이죠.”
그게 문제다.
만약 혁명이 완수된 그 때. 오라버니 곁에 자신이 없다면?
“아뇨. 그럴 수는 없죠.”
그래. 그럴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언니보다 재능 없고, 노력도 부족하고, 자신감도 모자란 스피카 트라이스타가 아일라 트라이스타보다 아주 조금 나은점은 단 하나.
“압도적 공세.”
그래.
오직 공격만이 있을 뿐이다.
***
개무소의 다음 번 설계도보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편의점에 틀어박혀 작업을 진행하고 있자니,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오라버니. 계세요?”
“스피카인가. 들어와라.”
“아, 네···.”
그러고보니 아직 귀가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내년부터 이 학교에 갇혀 살 텐데, 집이 그립지 않은걸까.
스피카는 편의점 객석에 앉아 이쪽을 빤히 보다가, 종종걸음으로 내 바로 앞에 섰다.
“뭐 하세요?”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어머, 무슨 설계도인가요?”
“설계도가 아니라 낙서에 가깝긴 하다.”
“꽤 정밀하게 그리셨는데요? 제가 알아볼 수는 없지만···. 뭐 하는 무구인가요?”
“아니 낙서가 맞다.”
“그런가요?”
【설계도 【블러디 로즈】를 제작하려 했으나, 지금의 재주와 티어가 너무 낮아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블러디 로즈】의 제작을 위해선 【3T】스킬 【마도 무구 제작】과 높은 재주 수치 【19】가 필요합니다.】
【제작이 무효로 돌아갑니다.】
“아니. 정말 낙서가 맞다.”
“그, 그렇군요.”
아무튼, 낙서는 이쯤 하고.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지?”
“아···. 오라버니.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어서요.”
“말해보도록.”
“저, 저기 ···제가 내년 제프린 입학 전까지 제프린 안내나 구입해야 할 물건들을 사러 다니고 싶은데요.”
“그런데?”
“오, 오라버니께서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피카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게 물어왔다.
뭔 일생일대의 부탁을 하는 것 처럼 절절하네.
그러니까.
요컨데.
“물건을 구하고, 제프린의 안내를 해주면 되는 것아닌가? 그리 어렵지 않지.”
“아, ···그, 그렇죠?”
“헌데 이 제프린의 전부를 꿰고 있을텐데, 아일라에게 부탁해도 되지 않겠나.”
“···언니가 그런걸 잘 알고 있나요?”
“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면, 반역조차 이뤄내지 못한다면서 말이다. 최소한 양대학부와 거주구는 전부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만···.”
“아, 아뇨. 언니에게 부탁하는것 보다, 오라버니께서 직접 해주시는게 좋아요!”
“그런가.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니 십분 공감한다.”
“······비슷하다니요? 오, 오라버니 설마.”
뭐, 남매나 자매끼리친하기 어렵긴 하다.
“나도 이브에게 부탁하느니 안 돌아다니고 말겠다는 의미다.”
“아. 그런 의미셨군요.”
갑자기 덜덜 떨던 스피카의 목소리가 냉정하고 침착해졌다.
뭐지?
뭐 아무튼.
“그럼 지금 당장 준비하면 되겠나?”
“아, 으, 음. 내일. 내일 해요. 오라버니. 저, 저도 준비하고 싶은게 많아서요.”
“그럼 그러도록 하지.”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스피카는 그렇게 물러갔다.
내일은 스피카와의 약속이 있다.
뭐.
그건 그거고
【설계도 【블러디 로즈】를 제작하려 했으나···.】
【【3T】스킬 【마도 무구 제작】과 높은 재주 수치 【19】가···.】
낙서를 계속하자.
【재주에 미미한 영향이 갑니다.】
【무구 제작 스킬에 미미한 영향이 갑니다.】
하다보면, 언젠가 되겠지 뭐.
***
그리고 다음날.
스피카와의 약속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그 때.
편의점 문이 열리면서, 스피카가 걸어 들어왔다.
“오, 오라버니. 안녕하세요.”
“음. 안녕하다만 ···스피카 너는 괜찮나?”
“네? 네에? 괜찮아요. 엄청 괜찮답니다.”
“······.”
그럴리가.
눈 아래가 푹 패이고, 안색이 창백하다.
“어제 잠은 잤나?”
“물론 잤답니다! 삼 십 분이나 잤어요!”
“······.”
거기에 분이나, 라고 붙이면 월화수목 야근. 금요일 저녁은 술상무. 토요일은 숙취. 일요일은 출근준비를 하는 불쌍한 직장인이 되어버린단다.
“뭔가 일이 있었나?”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다만.”
“다만?”
“오라버니와 오늘 데···데이 으, 두, 두리서 제프린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와서···.”
혀가 꼬일 정도로 지친걸까.
다음날 소풍이 너무 기대돼서 잠들지 못한 초등학생도 아니고 말이다.
거 참.
“이 상태라면 제프린 안내는 무리다.”
“네? 어, 어째서인가요?
“사무실 안쪽에 들어가서 조금 자고 오도록. 오라버니 명령이다.”
“······.”
스피카는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 되는건 안 되는거다.
음.
어차피 잘 거라면 머리가 흐트러지겠지?
스피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희망의집에서도 다음날 소풍이 기대돼서 잠 못자는 동생들이 그렇게 많았지.
내가 한 말은, 그리고 내가 할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는 살짝 무릎을 굽혀 스피카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라버니···?”
“스피카 트라이스타. 소풍은 다음에도, 그 다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네가 아프면 즐거운 소풍이 될 수 없지 않나.”
“제, 제가 아프면 다들 힘드신가요?”
“물론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일라도, 이브도, 너를 신경쓰는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오라버니도 힘드신가요?”
“왜 아니겠나.”
“······.”
그 말에 스피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을 수정해야겠어요.”
“음?”
“아뇨. 그럼 오라버니 뜻에 따를게요. 사무실 안에서 자면 되는거죠?”
“음.”
“때,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뭐지?”
“잠들 때 까지 옆에 있어주시면 ···감사할 거 같아요.”
그야 어렵지 않지.
“알겠다.”
“아핫. 계획대로.”
“······음?”
“아, 아뇨! 아아, 정말 피곤하네요.”
그리 말하며 스피카는 살짝 내 몸에 기대왔다.
“많이 피곤한가보군.”
“네. 후후. 아주 조금요···.”
뭐지?
방금전의 그 미소.
피곤한 사람이 보통, 저렇게 웃던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