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38)
§ 337. 순수 순진 순정 순애
아일라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한 가지 의문이 수면 아래에서 기포가 되어 올라왔다.
“아일라.”
“네. 울프람.”
“내 하나 묻고 싶은것이 있는데, 혹여 레지나 시엘라가 불편한가?”
“으음. 글쎄요?”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편하지 않다면, 어째서 그렇게 레지나 시엘라와 적대했지?”
“···아, 그걸 묻고 싶었던거군요?”
“음. 미웠던게 아닌가 해서 말이다. 만약 네가 레지나가 밉고, 우리 파티에 들어온게 조금이나마 신경쓰인다면···.”
“아뇨. 미운건 미운건데, 밉기 때문에 즐거운것도 있어요.”
“······음?”
“뭐라 설명하기 어렵네요. 음 그러니까요.”
아일라는 잠시 말을 고르다 으음.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레지나 시엘라와 서로 목숨을 걸고, 서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싸우기 때문에 더욱 즐겁다.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음. 그런건가.”
“네. 미워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서로 진심이 되는 그런···.”
무슨 전투민족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지만, 아일라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번 대련의 내용. 즉 전투 로그를 해석해보면, 그 근간에 투쟁심과 끔찍한 수준의 승부욕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온화한 분위기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
즉.
레지나 시엘라를 아일라 근처에 둔 뒤. 두 사람을 서로 싸우게 해서 아일라의 전력을 증강시킨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엇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기에, 승리에 집착하고 노력한다. 라는 건가.
이것 참.
피곤하게 됐군.
“아무튼 앞으로 2주간은 레지나의 얼굴을 안 봐도 되니까 홀가분하긴 하네요.”
“그러고보니 목을 꺾었다고 했나.”
“네. 트라이스타류 체술 비의 목 떨구기.”
“······.”
그런 비의가 있었어?
스피카는 그런거 못 배웠는데?
아니 그것보다.
“······목을 떨궜나?”
“아뇨? 기술명이 그렇다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제압술이에요.”
“······.”
“목이 떨어질 정도로 괴롭긴 하지만요.”
그래서 어느쪽인데.
내 물음에 아일라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폈다.
“아무튼! 다음번 싸움은 언제일지 기대되네요. 빨리 쾌차하길 바라야겠어요.”
“···나도 쾌차를 바라도록 하지.”
아니 바라는 걸 넘어서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긴 하다.
그 녀석도 내 파티원인 이상, 병문안은 가 봐야겠지.
“···파티원?”
나는 지금 그 녀석을 파티원이라고 생각 한 건가?
“레지나 말이에요? 음. 계급은 낮아도 파티원이 맞지 않아요?”
“······아일라 너는 그렇게 생각하나?”
“네. 밉고 짜증나지만, 파티원이죠. 그래서 앞으로 진심으로 미워할 수 있을지 걱정이랍니다.”
아일라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아일라는 이미 답을 내렸구나.
***
레지나 시엘라는 병실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목을 막대로 고정시킨 그녀는 절대 안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완전히 환자 신세.
“이길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길 수 있었어요.”
레지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에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마력의 파장을 하늘 높이 추적했더라면 그랬다면 이겼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 블러프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이겼다. 무조건 이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패배한 건 자신이었다.
그것도, 목꺾기에 당했다.
“어떻게 마법사라는 직군이 관절기를 ···그것도 목을 꺾을 수 있죠?”
레지나는 깊은 한숨으로 자신의 심경을 대변했고, 한숨과 함께 목의 통증이 올려왔다.
“끄앙···.”
이대로 죽는거 아닐까 싶은 수준의 통증이 치고 올라왔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건가 아일라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의사의 소견은 그녀의 억울함과 정 반대였다.
【아무리 검사해도 목에서 이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신경이 놀랐다. 정도밖에 말씀드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걸 보시면 알겠지만, 신경쪽의 마력 흐름이 미묘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재밌는건 그겁니다.】
【목을 꺾는 순간 신경에 침투한 마력이 이 뒤틀림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즉 평소라면 잠을 조금 잘못 잤을 정도의 목의 신경통이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묘한 수준의 마력 침투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강한 마력을 상대로 마법을 쓰는 기교에 능숙한 사람이겠지요.】
【즉 이건 완벽한 제압기입니다. 목의 신경을 놀라게 한 다음, 그 부분에 마력을 침투시킨 극한의 침투술이에요.】
“······.”
즉.
이 통증은 마력으로 증폭시켰을 뿐, 평소라면 그저 잠을 잘못된 자세로 잤을 뿐의 통증이라고 한다.
더욱 까다로운 것은, 이것을 자신의 마력이나 물약. 치료로 회복할 수 없이 자동치료만 기대해야 한다는 점.
왜냐면 신경통을 낫게 해주는 약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끔찍하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그러신가요? 역시 황자님이세요.”
거기까지 말하고, 레지나는 눈을 감았다.
진짜 여기까지 궁지에 몰린걸까.
들려올리가 없는 목소리.
하지만 항상, 언제나 곁에서 듣고 싶었던 그 분의 목소리.
잘못 들은 걸까. 환청이라면 ···납득이 간다.
이렇게 지쳤을 때 그 분이 곁에 계시다면, 마음의 안식을 얻어 편히 잠들 수 있을테니까.
“후후. 저도 이런 환청을 들을 줄이야 울프람 황자님의 환청이라니 후후.”
“환청도 아니고, 환각도 아니다.”
“······네?”
“목은 괜찮나. 레지나 시엘라?”
“화 황자 황···끄앙.”
“가만히 있어라. 통증이 심하지 않나.”
“아···. 네. 네에···.”
힐끗. 하고 울프람을 보니, 그는 느긋한 손길로 과일을 깎고 있었다.
아름답게 미끄러지는 단검을 보며, 레지나는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름다운 손길 매끄러운 칼놀림.
“조금만 있어라, 곧 과일을 깎아주마.”
“···아, 네. 네에···.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내 칼놀림을 걱정하지 마라. 아일라에게도 몇 번이나 깎아줬으니 말이다.”
“······아.”
그 순간, 레지나는 가슴 속에 불길이 지펴 오름을 느꼈다.
그 무뚝뚝한 말투 안에 숨겨져 있는 자상함.
몇 번이나 해주셨나요? 얼마나 많은 말로 그녀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셨나요.
독차지하고싶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저 손으로 내 목을 천천히 조여준다면, 그 달뜬 한숨이 모두 사랑을 뜻하게 될텐데.
이윽고 멎은 숨길은 사랑의 끝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영원의 상징이 될 터.
함께있는 이 순간마저 외롭다 느끼며 레지나는 겨우 웃음을 이어나갔다.
“먹어라.”
“······아, 네. 네에 ···윽.”
“음. 혼자서 못 먹겠나.”
“아, 아뇨. 먹을 수 있습···.”
“쯧. 입을 열어라. 자.”
“······네?”
울프람이 포크로 과일을 찍어 내미는 것을 보며 레지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작게 입을 열었다.
“괜찮나?”
“······아, 네. 네에.”
방금 전 차올랐던 어두운 열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고, 레지나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
나는 솔직히 이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아예 모른 척 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히로인으로 끝까지 대했거나, 서로 갈 길 갔으면 모르겠지만 게스트라고는 하나 파티원으로 받은게 문제였다.
나에게 있어서 파티원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다시금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녀석을 걱정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면, 파티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 걸까.
“레지나 시엘라.”
“네. 황자님.”
“나는 너를 게스트 파티원으로 넣고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맡겼다. 이는 방치와도 같다.”
“네. 알고 있습니다.”
레지나는 산뜻하게 웃었다.
“나를 원망하나?”
“아니오. 하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는 레지나의 눈은 투명하고 맑았다.
이 눈.
이게 문제다.
레지나가 이 눈을 하는 경우는 루트 내에서 단 두가지 밖에 없다.
완전히 맛이 갔을때와 본인 루트가 열렸을 때.
지금의 레지나는 과연, 광기에 물들어버린 빌런이자 악역영애일까.
아니면 깨달음과 마음의 평온을 얻고 각성한 동료로서의 레지나일까.
“······더 먹겠나?”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자님.”
나는 그렇게 레지나에게 몇 번 더 과일을 건넸고, 그녀는 묵묵히 받아 먹었다.
사과 하나를 그렇게 먹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레지나는 입을 열었다.
“전부 알고 있었답니다.”
“뭘 말이지?”
“황자님께서, 저를 파티에 넣으신 이유.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절차탁마해 그녀를 키우기 위한 대련상대.”
아.
진짜.
그렇게 나오면 내가 진짜 완전 나쁜놈 같잖아.
“기분 탓이다.”
“기분 탓인가요? 네. 황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런것이겠죠.”
“······.”
“하지만 황자님. 이거 하나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뭘 말이지.”
“하나의 장기말로 쓰였을지언정 저 레지나 시엘라는 여러분들의 따스함 사이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답니다.”
아.
안돼.
이거 진짜 내가 나쁜놈이다.
“앞으로···.”
“네?”
“앞으로, 비정규 파티원 자리에 배치하도록 하마.”
“···그 말씀은.”
“정규는 안 된다. 슬롯도 나지 않고, 너보다 먼저 들어올 녀석이 있다.”
이브 폰 로엔그린.
짜증나고, 귀찮은 녀석이지만 다음 정규 파티원 자리는 그 녀석을 위해 있다.
실피아가 졸업하면, 순번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 다음으로는 스피카와 ···영입 순서를 따지자면 앨리스 정도가 후보 목록에 오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게스트가 되었던 이 녀석을 ···슬슬 비정규직에 올릴 각오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레지나 시엘라를, 옆에 둔다.
그 두려움을 모르는게 아니지만 ···나는.
“정말 이십니까?”
“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지나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 내린다.
“······그렇게나 서러웠나?”
“아닙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다 괜찮아졌습니다.”
저 눈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거짓말이라고는 없다고.
그냥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을 뿐인 ···모든걸 털어낸 레지나라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이 녀석의 심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야.
“내 말은 여기까지다. 그럼 일어나 보도록 하지. 어서 털고 일어나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자님.”
자리에서 일어서서 병실을 나오기 직전,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이거 주는 걸 깜빡했네.
“식후 30분. 이걸 먹어라.”
“···이건?”
“신경에 잘 듣는 포션이다.”
“의사는 그런 약은 없다고···.”
“그건 고작 의사와, 이 대륙의 의학에 지나지 않는다.”
“······아. 후후. 역시 황자님이세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음.”
약을 꼭 손에 쥐고 웃는 레지나를 보며, 뒷머리를 긁고 병실을 나왔다.
뭐, 큰 문제 없겠지.
눈이 저렇게나 맑은데 말이야.
***
울프람이 떠난 후.
약을 먹고 삼 십분만에 레지나는 목이 한결 편안해졌음을 느꼈다.
“···정말, 엄청 잘 듣는 약이네요. 역시 황자님의 약. 후후.”
그 분께서 직접 빚은 이 약을 넘기는 것 조차 아까웠지만, 실제 먹어보니 어머나, 할 정도로 목이 편안해졌다.
레지나는 목을 가볍게 움직여봤다. 통증 자체는 있었지만, 그래. 정말로 잠을 조금 잘 못 잔 수준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정말 꿈과 같은 날이다.
울프람이 자신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여줬고, 선물도 건네줬으며, 몸의 안부를 물었고, 심지아 과일 ···그래 과일까지 먹여주셨다.
오늘을 평생 기억하자.
그리 생각한 레지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병원을 나섰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대처 없이 쉬기만 하라는 의사보다, 울프람의 이 약이 더욱 효험이 있었으니 충고 따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 그녀가 발을 재빨리 놀려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방.
“···다녀왔습니다. 황자님.”
방에서 하나 더 안으로 들어간, 울프람의 모든것을 전시한 방.
총 아흔 아홉장.
울프람과 자신의 그림이 뺴곡히 들어차 있는 방.
그 가운데에는 두 개의 빈 의자. 그 중 한쪽 의자에 앉은 레지나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빈 자리를 응시했다.
이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 삼계를 통틀어 단 한 분 뿐.
원래라면, 이 마음을 숨기고, 영원한 공석으로 남길 생각이었지만 오늘 그 마음이 바뀌었다.
언젠가 그 분을 이 방에 초대해 이 자리에 앉게 하자.
그 분 께서도 이 아흔 아홉장의 그림과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려주시지 않을까.
그리고 그 때. 오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보답하자.
“그 분께서 남기고 가신 이 과도로, 이번에는 내가 과일을 잘라 그 분께 대접하죠. 최고로 상큼하고, 신선한 과일을 직접 얇게 잘라 드리는 거에요.”
사랑에 빠진 순수한 가득한 소녀처럼.
언젠가 울프람이 앉을 의자에 곱게 닦은 과도를 고정시켜놓고, 레지나는 꺄르륵 웃었다.
“아아, 그 날이 언제쯤 찾아올까요? 그 분을 이 방에 모시고,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 할 날이 과연 저에게 찾아온다면 어떻게 하죠? 맞아요. 우선 하루를 둘로 나누죠. 열 두시간은 제가 사랑을 이야기하고, 남은 열 두시간은 그 분께서 사랑을 속삭여 주시는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답니다. 잠 드는 시간 없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어요. 네. 함께 있음에도 외롭지 않고, 떨어져 있음에도 불안하지 않은 그 날이 찾아오면 저는 ···후후.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투명한 눈 안에 담겨있는 감정.
울프람은 그것의 정체를 두고 고민했다.
광기일까. 순수일까.
“사모하고 있습니다. 황자전하.”
아니면, 애처로울 정도로 순수한 광기일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