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5)
034. 핑크 병아리
D/Z SAGA.
팩트만 체크해도 그 게임을 정말 죽기 전까지 했던 나는 켈터스의 모험기를 거의 다 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전개를 머릿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복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최대한 개입을 거르려고 해도 몇 에피소드는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되니까.
이브가 사건의 중심에 서든, 아일라가 중심에 서든, 그도 아니면 아카데미 전체가 휘말리든 제 8 마법부가 터져나가든 간에 말이다.
그러니 그 처절한 재난을 회피하기 위해 전신 회피기동을 오지게 박으면서 동시에 빨 수 있는 꿀은 다 빨아야 내년 이 맘 졸업식때 졸업장 받아들고 전문 기술 배우고 졸업을 하거나 그 뒤에도 제프린에 남아서 편의점 사장님을 천년만년 하던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주역 캐릭터, 빌런, 그리고 히로인들의 정보는 벌써 꿰고 있다. 다행히 울프람의 머리는 좋은 편이라 한 번 본것은 웬만해서는 잊지 않는다. 다행이구나, 뇌라도 건강해서.
미래에 대한 대응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제프린 학생 경진 대회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대회는 크게 잡아 다섯 가지 부문에서 상을 준다.
기사학부끼리 치고받는 무신제. 마법학부끼리 싸우는 마신제.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마에스트로와 위그드라실도 각각 무기랑 옷을 만들어서 심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이질적인 부문이 바로 매직 크래프트.
즉 마법적 기운이 서린 악세서리나 아티펙트를 만들어서 심사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2등 까지는 쉽다.
원체 매직 크래프트가 고등 기술이기도 한데 1위가 너무 압도적이라 대부분 입후보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게 바로 대 마도 상인(大 魔道 商人) 레지나 시엘라. 3학년 수석이다.
가진바 마력치는 21. 아일라보다 높으며 이브보다 아래. 천재중의 천재.
거기에 양대 루트라고 불리는 기사학부 이졸데, 마법학부 이브가 아니라 사이
드 루트. 즉 서브 히로인이다.
그녀와 맺어지고 졸업하면 마법학부 대상인 엔딩.
내가 지금부터 상대해야 하는것은 천재면서 동시에 마녀.
하지만 승산은 있다.
“이 게임이 제프린의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한다면, 일발 역전의 찬스는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 일발 역전의 찬스를,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울프람 혼자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정이 있다면 노력할 수 있고, 그 두개가 합쳐진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우정을 나눈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하늘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울프람은 혼자가 아니다.
***
“싫은데요.”
이브가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는 현재 의뢰를 나가셨습니다.”
루디카는 사라졌다.
“당연히 도와야죠! 일당은···.”
“어이 네 씨 아가리 닫고 일이나 해!”
네프티는 바빴다.
“···저도 마신제에 나갈 거라. 그럼 이만.”
아일라는 도망쳤다.
“······.”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혼자 남았다.
***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하늘을 올려봤다.
뭐가 우정이냐, 뭐가 신념이냐.
세상은 나를 홀로 내버려두었다.
밤하늘의 별은 지구에서 보기엔 서로 붙어 있는 듯 보여도 그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년 단위로 재어야 한다 했다.
“이것이 고독인가···.”
외로움이 사무쳤다.
***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는 법.
사람 스스로 살겠다 마음먹으면 죽을 일 없는 법.
공사판에서 H빔 옮기다 디스크가 터지는 바람에 원룸에서 삼박 사일 누워 있다가 물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은 나다.
“길은 있다. 분명 있다. 반드시 해내고 말리라.”
그렇게 도넛을 구우며 생각에 잠겼고, 점심시간에는 식충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브 녀석의 배려를 통해 일반 학생들도 이 리어카를 많이 찾아주게 된 건 좋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부담이 더 크다.
하지만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 아니 이영진이 누구인가. 막노동부터 시작해 성수기에는 놀이공원 알바도 해봤고, 온갖 긴급 지원 알바에도 몸을 던져 일당을 두둑이 타낸 몸.
이럴 때는 확실하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우선 도넛은 정확하게 정량만 판다. 아침에 튀겨놓은 게 전부. 그 이상은 팔지 않는다.
“어 선배님. 크림 떨어졌나요?”
“떨어졌다. 없다.”
“으음. 그럼 스트로베리 주세요!”
“그래.”
성수기 식당 알바. 강남에서 일매출 3억 나오는 설렁탕집 서빙도 해본 나다. 거기서 알바 3년 선배의 이야기는 이랬다.
[없는 건 없다고 해야지. 그리고 있는 건 결코 품질을 떨어트리지 마.] [무슨 말씀입니까?] [손님이 너무 많아서 깍두기가 떨어질 수도 있지? 대신 그 날은 그냥 김치가 나가는데, 김치 플레이팅 할 때 바쁘다는 티를 내지 말라는 거야. 그리고 손님은 깍두기 없는 걸 기억하니까 나가실 때 주차권 무료로 30분이라도 더 끊어드리라고.]물론 그 선배는 다음 달 손님이랑 시비 붙어서 주먹질하다가 잘렸지만, 그 가르침은 가슴속에 살아남아있다.
그러니까 도넛은 정량만 튀긴다. 크림이 모자라다고 허나 다른 맛이 나갈 때 결코 그 품질을 떨어트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듬뿍 담아준다.
“평소보다 스트로베리 크림이 많네요?”
“그냥 크림이 떨어졌으니까. 덤이다. 미안하게 됐군.”
“아아···. 네에.”
“맛있게 먹도록.”
“네에!”
1학년 후배 한명이 물러났다.
묘하게 볼이 붉다. 추운가?
“다음 주문은 뭐지.”
“저, 저는 치즈 크림 하나 주세요.”
“알겠다. 잠시만 기다리도록.”
“네!”
그 다음 주문을 받고 있는데 옆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저희 주문도 받아주세요! 치즈 크림이랑 스트로베리요! 대충 주셔도 되니까요!”
“마음이 급한 건 알지만 그럴 수 없다.”
“···네.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실수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네?”
“하나를 먹어도 맛있는 걸 먹어야지. 미안하게 됐다.”
“네, 네에.”
그리고 두 번 째. 아무리 회전율이 좋아도 감당할 수 있는 양의 주문만 받는다.
홍대에서 진짜 잘 나가는 라면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일본에서 넘어온 사장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이 상. 라멘집은 회전율이 생명. 하지만 내외의 공기에는 확실한 온도차가 있어야한다데스] [무슨 의미입니까?] [바깥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손님들이 있지만 그 때문에 내부 직원들이 회전율을 올리기 위해 허둥지둥하면 안된다데스. 그 추위를 견디고 라멘을 받았을 때 손님들은 직원들의 친절하고 여유로운 대우와 아늑한 라멘 가게의 그 온도 차이까지 맛으로 느낀다데스.]물론 그렇게 말한 사장은 앞 뒤 안 가리고 장사하다가 기습 위생 점검에서 불량 받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허나 그 가르침은 내 혼이 되어 살아있다.
그래. 바깥손님들은 급할지도 모르지만, 우선해야 하는 것은 먼저 주문을 받은 손님들이다. 미안하지만 그 온도차이까지 느끼게 해야 한다.
그렇게 도넛은 깔끔하게 전부 팔렸다.
자 그럼 오늘 장사도 끝났으니, 저녁 이후에 어떻게 경진 대회를 준비할지를 생각 해 봐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장사를 정리하려던 순간.
“선배님, 선수에요?”
“황실 출신. 좌절. 허나 다시 일어서는 야심가. 1학년들을 구한 영웅. 그런데 나쁜 남자···. 무서운 선배님.”
“저, 안녕하세요. 선배님···.”
컬러풀 병아리 셋이 찾아왔다.
***
바닐라 요거트 밀푀유.
컬러풀 병아리 3인방 중 노란색. 바닐라는 나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선배님. 선배님.”
“뭐냐.”
“오늘도 시식 해드릴 수도 있는데. 어떠세요?”
해드릴 수도 있는데는 뭐냐. 빚졌냐.
“다 팔았다. 돌아가.”
“저희에게도 나쁜 남자 흉내를 내시는건가요?”
직후 요거트가 끼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시치미 떼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도 입학 전에 선배님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부정부패를 저지른 학생회장이라고 말이죠.”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1학년들이 입학하고 나서 본 선배님은 어떤 모습일 거 같아요? 신입생 환영회 때 부터 디저트를 팔고 1학년 공용 기숙사 앞에서 장사하시고, 얼마 전에는 기숙사 유령 사태를 제압했다는 소문에, 오늘은 은근슬쩍 따듯한 모습까지 보여주시다니···.”
“맞아. 완전 나쁜 남자 느낌 난다니까? 거기에 하거라. 그렇군. 같은 황족 특유의 고풍스러운 말투까지. 그래서 도넛 있어요? 시식해드려도 되는데.”
바닐라 요거트가 통째로 상했나. 어질 거리네.
“너무 선배님께 그러지 말자. 선배님이 곤란해 하시잖아. 응?”
“아! 밀푀유가 나쁜 남자한테 빠졌다!”
“밀푀유. 조심해. 남자는 늑대라고 장로님이 그랬어.”
“아, 아니 나는 그런 게 아니라···.”
병아리들이 재잘재잘 떠든다.
원래 이런 애들 입을 막게 하려면 모이를 주는 게 최고지.
그렇다고 해서 뭔가 바로 주기에는···.
아. 그게 있었다.
“컬러풀 병아리들. 시끄럽다. 이거나 받도록.”
“병아리라니! 와 뭐에요?”
“1학년입니다. 존중해주세요. 과자? 처음 보는 과자인데?”
정말 대화의 주제가 왔다 갔다. 바쁜 병아리 녀석들이다.
“밀가루를 여러 겹 접어서 구운 과자다. 시제품이고 신상품이다. 굉장히 공을
들였고···.”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설명은 끝까지 들어라.”
병아리들은 내 ‘신상품’을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와 엄청 바삭거려! 맛있어!”
“하지만 수업시간에 몰래 먹으면 바닥에 다 흘러내릴지도 몰라.”
“···으, 응 맛있어”
그야 뭐, 맛있게 만들었으니까.
으흠.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먹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없나?”
“으, 음? 아 있어요!”
“뭐지.”
“더 주세요!”
노란색은 탈락.
“딱히 없네요. 더 먹어보면 알 거 같은데···.”
녹색도 탈락.
나는 신작 과자를 먹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마지막 분홍색 병아리를 바라봤다.
“어떻지?”
“···서, 선배님. 이거. 음. 제가 잘못 느낀 걸 수도 있는데요.”
“가감없이 말해봐라.”
“시야가 선명해지고, 집중력이 올라간 거 같아요.”
그리고 밀푀유는 이어서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렸고, 내 귀에 정확하게 잡혔다.
“마법적 효과? 아니···. 강화?”
“······하.”
눈이 번쩍 뜨이고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 녀석.
내가 시제품으로 만든 ‘매지컬 파티시엘’의 효과를 한 번 받자마자 완벽하게 분석해냈다.
“노란 병아리. 녹색 병아리. 너희는 돌아가도 좋다. 분홍 병아리 시간 좀 있나? 그리 길게 잡아먹지는 않을 거다.”
“네에···?”
“윽 선배님의 마수가 밀푀유에게···. 우리가 지켜야 돼!”
“안 돼요. 밀푀유는 저희의 친구입니다.”
“내일 이 시간에 도넛 두 세트씩 주도록 하지.”
“밀푀유! 행복해야해!”
“선배님은 야심 있는 황실 사람. 밀푀유에게도 이득일 거야.”
두 사람은 그리 말하고 자리를 떴다. 덧없는 우정이다.
밀푀유는 나라 잃은 독립투사 표정으로 떠나간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분홍 병아리. 아니 밀푀유 폰 사브레. 그리 시간을 길게 잡아먹지는 않을 거다.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한다.”
“네, 네?!”
“이건 내가 만든 과자고, 네 말 대로 나의 스킬로 만들어진 버프형 간식이다.”
“버프형 간식. 매지컬 스위트?”
“편할 대로 불러라. 내가 묻고 싶은 건 시제품이다보니 걸려도 무척이나 미약한 버프가 걸릴 텐데, 어떻게 한 번에 알았지?”
내 물음에 밀푀유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겨우 입을 열었다.
“···으, 저 그게. 부끄러운 이야기인데요.”
“말해라.”
“제가 천성적으로 마력에 엄청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마법 영향을 엄청 쉽게 받아요.”
“쉽게 받는다?”
“네에. 그래서 공격 마법에 맞으면 엄청 아프기도 하고···. 기사부를 목표하고 있는데 체력도 낮고···.”
순식간에 우울해지는 밀푀유.
생각해보면 얘는 태생부터. 즉 ‘캐릭터 제작 의도’부터 켈터스에게 한 번에 당해서 퇴학 당하는 캐릭터 아닌가.
결코 강하게 세팅 될 리가 없는 재능을 받은 자.
이 무슨 아이러니함인가.
레지나 시엘라를 잡을 수 있는 매직 크래프트.
전장에서 입에 넣자마자 온갖 버프를 포함. 체력 회복까지 가져다주는 버프형 간식.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먹으면서 버프를 시험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시제품을 먹어보자마자 버프를 추측한 밀푀유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자 그럼 어떻게 이 병아리를 꼬드긴다.
“교수님이 그래도 1학년 수석에게 기회를 다시 줘야 한다고, 2주 후에 정학 풀리면 켈터스 군이랑 대련하라고 하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끝없이 중얼거리는 밀푀유의 말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다.
“밀푀유 폰 사브레.”
“네, 네?”
“그 켈터스라는 녀석을 이기고 싶나?”
“네에···?”
“말했다시피 이 버프형 간식.”
“매지컬 스위트요?”
“그래. 이 매지컬 스위트는 시제품이다. 앞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지.”
“······네.”
“그래서 이게 강화된 상태에서 네가 먹고 시험을 본다면 가능성 있지 않겠나?”
“하, 하지만 그건 시험 규정 위반 아닌가요?”
“다들 아티펙트 하나 두개쯤은 쓰지 않나?”
“···네. 쓰긴 해요. 가문의 위상 따라서요. 하지만 저희 가문은 지방 남작가라···. 특산품은 우유뿐이고···.”
제프린의 불합리 만세다.
“그렇다면 너도 쓰도록 해라.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
“매일 이 버프형 간식.”
“매지컬 스위트.”
“그래. 매지컬 스위트를 먹으면서 어떤 버프가 걸리는지, 중첩은 가능한지 보고할 것. 어때. 해볼 만하지 않나?”
“하,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수석에게 패배하고, 체질을 저주하며 살고 싶은 거냐. 밀푀유?”
“······네. 해 볼게요. 저도 이기고 싶어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밀푀유.
좋아.
낚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