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51)
§ 350. 기어오는 혼돈
D/Z SAGA에는 온라인 플레이 시스템이 없는건 또 아니었다.
정확히는 여러 방법을 통해 강제로 유저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세이브 데이터에서 켈터스를 추출해서 더미 시스템으로 있는 대련장에 웬지 모르게 있는 넷 플레이 시스템을 이용해 ···뭐 아무튼, 몇 가지 넷 배틀 시스템을 이용하면 서로의 켈터스를 겨뤄볼 수 있다.
물론 밸런스는 개판이다.
이게 어떻게 밸런스가 맞겠냐고.
생각해봐라, 애당초 PVP를 상정하고 만든 게임이 아닌데 이게 밸런스가 맞을리가 있나.
온갖 꼼수로 엔딩 스펙을 본 녀석들이 엔드 스펙의 캐릭터를 들고와서 즉사 치트를 쓰니 다른 녀석들이 상대가 안 됩니다만 하는 곳이다.
그러니 그 안에도 룰이 있었고, 룰을 어기면 밴을 때렸다.
허나 한국인은 역시 서로 찢고 죽이고 머리를 부수는 게임을 해야 적성이 풀리는 법.
엔딩을 보고서도 써먹을 만한 곳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통칭 ‘D/Z 전장’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오죽하면 이 전장용으로 엔딩을 보고, 캐릭터를 키우는 놈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이걸 우리는 전장작 캐릭이라고 명명했다.
전장컷에 딱 맞춰서 키우는 캐릭터라는 의미다.
한 때 ‘전장’은 나의 주 무대기도 했다.
그러니까 플탐 3천시간부터 5천시간 사이의 내가 캐릭터를 주로 굴리던 곳이 전장이다.
그리고, 전장작을 끝내고 이렇게 만난 플레이어들이 제일 처음 하는 것은 역시 인사다.
내가 주먹을 들어서 녀석을 가리키자, 녀석은 두 번 앉았다 일어났다.
과연.
저건 내가 자주 쓰던 인사가 맞다.
서로 인사하고, 기수식을 잡는다.
오래간만에, 진짜 대인전을 하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
즐겁고 즐거운 배틀의 시간이다.
***
이 전장은 온갖 변수가 난무하고, 각종 꼼수들로 상대를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마음이라고는 없는 악당들의 전쟁터다.
물론 청정수 뉴비들끼리 붙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에는 고인물의 난입을 철저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일정 이상.
그러니까 천 시간 넘어선 ···썩어가기 시작하는 녀석들에게는 자비가 없다.
“【!!!!】”
어허.
누구 앞이라고 괴성을 지르나.
녀석이 황실혈통을 켜자마자, 나는 달려가 당수로 목 울대를 후려쳤다.
놈의 입이 막히고,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1티어 스킬이 있으면 우선 깔고 보는게 기본이지.
나도 그랬단다. 응애야.
음.
오래간만에 나도 해볼까.
그 자리에서 내가 두어 번 앉았다 일어나니 녀석의 눈빛이 바뀐다.
그리고는.
“호오. 그렇게 오는가.”
나의 망령 ···정확히는 되다 만 망령은 우선 백스탭을 평타로 캔슬하면서 앞대쉬를 깔았다.
그리고 날아오는 평타.
깔끔할 정도의 엇박
하지만, 지나치게 깔끔하기 때문에, 오히려 알기 쉽다.
모든게 엇박이면, 반대로 모든게 정박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눈치채지 못한 시절의 나와 같다.
두웅.
묵직한 패링음이 들린다.
내 정수리를 가격하러 들어오는 평타를 정확하게 패링했고, 놈의 자세가 크게 무너졌다.
“울프람 지금이에요! 놈을 죽여요!”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저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지만, 아쉽게도 이건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다.
왜냐하면.
응애를 괴롭힌 쓰레기는 고통속에서 오열하면서 죽어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죽이냐고요?
딱!
정확하게 이마 중앙에 딱밤을 후려 갈기니, 놈의 몸이 휘청, 하고 흔들린다.
그야. 스펙 자체는 울프람이니까, 딱밤으로 충분하지.
어디, 뒈질 때 까지 딱밤만 맞아봐라.
***
이후 펼쳐진 전투는 사실 온갖 잡기술의 향연이였다.
평캔씹기, 앉았다 일어났다로 판정 피하기, 뒤구르기 무적타임에 발차기 섞어보기 뒤돌아 백스탭으로 접근한 이후 앉아 평타치기 등등.
“우욱···.”
“으와아···.”
“아, 아하하.”
미스트의 전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물론 그게 지금까지 보여줬던, 신비하고 두려운 초월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함괴 기괴함으로 점철된 초월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울프람을 너무나 사랑해 마지 않는 세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려버릴 정도의 전투.
아일라는 눈을 질끈 감았고, 네프티는 고개를 돌렸으며, 밀푀유는 오들오들 떠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인가?
아니 인간이 저런 움직임을 해도 되나?
미스트는 사지 관절을 전부 따로 쓰는 듯 한 움직임으로 울프람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것이 끔찍했다. 두려울 정도였다.
무표정인 울프람의 미스트가 사지 관절을 자유자재로 비틀면서 공격해 들어가는 그 모습은, 눈을 돌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울프람은 봐주면서 딱밤을 때리고, 미스트는 울프람에게 결코 다가갈 수 없었다.
그만큼 울프람이 강하다는 실감에 가슴에 평온함이 차올랐지만, 그 안도감을 빼앗는 말을 네프티가 툭 하고 던졌다.
“앞으로 저희는 저 미스트를 꺾어야 하는 거겠죠. 저런 움직임을 하는 미스트를···.”
“윽.”
아일라는 소스라치게 놀란 속을 억지로 진정시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젠가 꺾어야 한다.
저 기괴한 움직임 덩어리를, 인간의 형상을 본딴 끔찍한 무언가를 말이다.
“하, 할 수 있을 거에요.”
“······네. 할 수 있겠죠.”
대체 어떤 전술을 쓰는 것일까.
저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스트는 이제 와서는 바닥을 네 발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처럼.
주방을 기어다니던 검은 몸체를 가진···. 아니 여기까지만 하자.
아무튼. 울프람은 좀 더 우아하게 싸우고 있었으니 망정이다.
“울프람의 미스트···.”
“히이이···.”
“삐약이!? 괜찮나요?”
“저, 저건 안 돼요. 저건···.”
이제는 배를 까고 림보 자세로 바닥을 착 기어가는 그 미스트를 보며, 아일라는 덜덜 떨었다.
언젠가 저걸 꺾을 수 있을까.
그 전에 마음이 꺾일 것 만 같았다.
***
미스트는 결국 그 이름에 걸맞게 증발했다.
“흠.”
마지막까지 딱 4,000 시간대 언저리의 내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그 때의 나는 신출귀몰하고 신묘한 움직임을 특기로 삼는, 테크니컬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야.
물론 테크닉의 극한은 결국 크게 움직이지 않고서도 제압하는 것이라고 깨닫고 난 이후로는 취하지 않는 움직임이다.
뭐.
지금 봐도 나쁘지 않다.
아니, 생각보다 꽤 멋질지도 모르겠다.
“울프람, 울프람?”
“음. 아일라. 무슨 일이지?”
“···식사라도 하러 가죠. 오늘은 꽤 늦었으니까요. 네?”
“······.”
묘하게 서두른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나?
식사라···. 나쁘지 않지.
“다른 녀석들도 동의하나?”
“네!”
“빠, 빨리 나가고 싶어요. 여기서.”
······.
밥을 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마치 여기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 한 느낌이다.
왜지?
“울프람. 가죠?”
“좋다. 나가도록 하지.”
야호! 만세!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녀석들은 이 몽경에서 잽싸게 빠져나왔다.
오직 나만이, 등 뒤에 있는 나의 미스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숙련따윈 하나도 되지 않았지만, 과거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무척이나 감명 깊은 일이었다.
응애들을 괴롭혀서 조금 꼴받기도 했지만, 싸워보니 플레이도 적당하고 괜찮은 중수였다.
좋은 고인물이 될 수 있겠어.
“언젠가, 다시 만나도록 하지.”
그래.
언젠가 다시.
***
식사는 내가 만든 요리가 베이스였다.
최근 요리스킬도 다시금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치킨 샐러드와 샌드위치. 그리고 크림 스튜 정도가 메인 메뉴였다.
“자. 들도록.”
“네!”
다들 한마음 한 뜻으로 식사를 들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문득 떠오른게 있어 파티원들에게 전했다.
“너희들은 충분히 신뢰하고 있고, 편의점 열쇠도 맡겨놓을 테니 언제든 와서 몽경에서 기술 숙련을 해도 된다.”
“······.”
“왜 그러지? 갑자기 손이 멈췄는데.”
“우, 울프람. 기술 숙련이라고 하면 ···저 거울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말하는거죠?”
“그렇다만.”
“서, 선배님 그러면 ···그 기술 숙련에, 선배님의 그 ···미스트도 나오나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 말을 멈춘게 별 대단한게 아니고, 내 눈 앞에 있는 파티원들의 상태창에 【상태이상 : 이성 혼란】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게 그러니까, 이전 다른 게임에서 했던 녀석의 말로는, 【이성 붕괴】가 될 경우 SAN수치···.
“선배님?”
“음? 아, 내 미스트는 나오지 않는다. 미스트는 입장자 본인이 지정할 수 있다.”
“그렇군요!”
내 말에 세 사람 옆에 있는 이성 혼란 마크가 사라졌다.
뭐지?
“그런데, 내 미스트와는 싸우고 싶지 않은건가?”
“네.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 그 기괴한 움직임은 ···솔직히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두려워요.”
“그런가. 하지만 그 모든 움직임에는 의도가 있음을 잊지 말아라.”
“······의도가, 있다고요?”
“음. 예를 들면 말이다. 그 네 발로 기어다니는 그 움직임은 상단의 모든 공격을 흘려내고···.”
거기까지 말하자, 다시 파티원들의 상태창에 혼란이 걸렸다.
······이유가 뭐지.
“우, 울프람? 식사를 마치죠. 네프티도 그만 물어보는게 어떨까요?”
“네, 네에···.”
“삐약이는 괜찮은가요?”
“······흑.”
뭔데.
밀푀유는 왜 갑자기 울고 있는데.
그렇게 내 미스트와 상대하는게 싫은가?
“꽤 괜찮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특히 그 스탭은···”
“···자! 울프람! 아! 해요! 제가 먹여줄게요!”
“애도 아니고, 알아서 먹겠다.”
“자요! 아!”
“······.”
어쩔 수 없이 아일라가 건네는 샌드위치 반 쪽을 입에 넣었다.
***
기말고사가 전부 끝났다.
겨울방학을 코앞에 둔 지금, 우리는 각자의 강화와 성장을 도모했다.
몽경을써서 기술 숙련을 올리거나, 자기 자신의 강점을 강화하거나 약점을 보완하는 등. 연마에 필사적이었다.
루디카는 자신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따라오는 몽경을 보고 무척이나 즐거워 했다.
이브는 이브대로 몽경 속 자신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빠른 것을 보고 좌절했다.
“이거 사기 아니에요?! 제 열화 카피라면서요!”
“네 그 몸뚱아리의 민첩합이 더 열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죽어.”
진짜 죽을 뻔 했다.
폭력 반대.
아무튼.
반상의 몽경은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저기는 꿈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현실에 남는다.
그럼 그냥 몽경이라는 말을 치워도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 작명은 게임사에 따져야 할 문제고, 이미 고인물들의 심도있는 토론을 거쳤다.
아일라와 네프티. 그리고 밀푀유는 몽경에 들어갈 때 마다 가끔 몸을 흠칫 떨었지만, 상세한 이유는 불명이다.
기술을 연마하고 강해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훈련장.
그곳을 가장 잘 활용하며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은 한 명의 엘프 소녀였다.
그녀는 반상의 몽경을 쓰거나 때로는 혼자 검술을 연마하며, 또 때로는 파트라슈에게 정령술을 배웠다.
언제 쉬는지 궁금할 정도의 훈련량.
타인에게 엄격한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것은 저런 거겠지.
오늘도 편의점 앞마당에서 검을 휘두르는 실피아에게 다가갔다.
“춥지 않은가?”
“······조금 춥다.”
“그런가. 마셔라.”
“음.”
그녀는 내가 건넨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방긋 웃었다.
“좋은 차구나.”
“그렇지. 재배하는데 조금 걸렸다.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고맙다.”
“무얼. 지금 많이 마셔둬야 하지 않겠나.”
“하하. 그렇지.”
“이제 두 달 남짓인가”
“그러면 졸업. 진짜 이별이다.”
졸업식은 2월 초. 지금은 11월의 말.
실피아와 얼굴을 맞댈 일도 이제 없다.
졸업과 이별의 인사를 했지만 아니 했기에 여전히 아쉽다.
그런 암울한 분위기를 씻어내듯 실피아가 말했다.
“내가 이렇게 연습하는 이유를 아나?”
“졸업 이후의 이브의 호위 때문 아닌가?”
“그게 가장 중요하지. 하지만 ···네가 말하지 않았나. 내 졸업 레이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해주겠다고 말이다.”
“했었지.”
“기대하고 있다. 울프람.”
“크게 기대하는 모양이군?”
“음. 그렇지.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지 않나. ···내 친구가 나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큰 선물 아닌가.”
“······.”
엘프 검사는 다 마신 컵을 옆에놓고, 생긋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툭 올려놓은 후. 기대하고 있어. 친구. 라는 말과 함께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친구.
그래. 나와 실피아는 친구지.
이 아저씨가 친구가 얼마 없어봐서 감동이 다 몰려오네.
“좋다. 나의 친구. 최고의 보스를 준비하도록 하지.”
저 정도로 레이드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
음.
뭣 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라도 달아줄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