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64)
§ 363. 작열
백작 부인은 고상한 분이셨다.
아일라 선배의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올 정도의 단발이라고 해야 할까.
단정하게 잘 정돈된 머리. 입술 아래에 작은 점이 매력적인 분.
단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품격이 쏟아져 나왔고, 실로 고귀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네프티는 내심 기대했다.
이런 귀부인과 다과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제프린 학생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
이 또한 무척이나 큰 기회가 되리라.
허나.
“그래서, 울프람 황자님의 첩이 될 생각은 있니?”
“······?”
네프티는 백작부인의 말에 툭, 하고 먹던 쿠키를 입에서 떨어트렸다.
맛있는 쿠키였다.
다만 울프람 선배님의 쿠키가 좀 더 맛있을 뿐.
하지만 놀라운 것은 재료의 차이일 뿐.
구워낸 퀄리티는 선배님의 쿠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일급품이다.
아무튼, 이전의 네프티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맛있는 과자였기 때문에, 풀만 뜯어먹고 살던 그 때와 비교하면 천상의 맛이었으나 그걸 툭 하고 떨어트릴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어머,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프티는 다음 말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나는 네프티가 황자님의 두 번째가 된다고 해도, 상관 없다고 했단다?”
“······아, 으.”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리고 시선을 보니 ···황자님을 사랑하고 있지?”
으아.
완전히 간파당했다.
하지만 이 네프테리안. 솔직함을 근거로 울프람 선배님께 인정받은 몸.
네프티는 부끄러움에 죽을 거 같으면서도, 아주 작게. 정말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러니까. 우리 아일라 다음이라면 얼마든지 괜찮단다.”
“······.”
그러니까 즉.
자신이 울프람 선배님의 첩이 되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네프티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봤다.
진심이실까?
아니면 농담? 혹은 자신을 향한 견제?
우선 견제라는 선택지는 치웠다. 자신을 견제할 이유는 없다.
아일라 선배님의 라이벌이라고 인식하시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약한 입장에 있다.
오직 울프람 선배님의 인정을 받아 로열가드가 된 몸. 그 어떤 뒷배경도 없기 때문에 ···제국 2위 가문의 부인께서 하실 일은 아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단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서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정말 진심이신걸까.
부인께서 인정해서, 울프람 선배님의 두 번째로?
네프티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부인의 의중에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면,
자신의 지위는 확실히 보장 될 것이다.
생각해보자.
로열 가드의 위치. 백작 부인의 지원.
거기에 아일라 선배님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아. 그래.
자신은 모든걸 가질 수 있다.
오직 하나 빼고.
“백작 부인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프티는 투명하고 올곧은 눈으로 백작 부인을 바라봤다.
“어머, 그러니?”
“네.”
누군가의 곁에서 누군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꿈을 포기하고, 두 번째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아일라를 제치고 첫 번째가 되겠다고 하는 거니? 이 제국의 명문가, 트라이스타를 제치고서? 그걸 ···지금 그 아이의 엄마인 내 앞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네. 알고 있습니다.”
두렵다.
무섭다.
솔직히 말해, 어떤 보복이 들어올지 생각도 하기 싫고 상상도 하기 어렵다.
다만,
그런 두려움보다, 선배님을 좋아한다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먹구름이 끼는 것이.
몇 배. 몇 십 배나 무섭다.
그저 시선을 교환한다. 대화는 없다.
당연하다.
예비 장모님 앞에서 사위를 뺏겠다고 단언하는 도둑 고양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그래. 물릴 생각은 없나보구나.”
“···네.”
압도적 투기 앞에서 네프티는 몸을 떨었다.
그대로 일어선 백작 부인은 네프티 앞에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붙었고 결국 질끈,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법으로 공격을 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허나.
“미안. 아줌마가 농담이 과했지?”
“네?”
돌아온 것은 마법이나 따귀가 아니라, 부드러운 포옹.
잠시 등을 토닥여준 백작 부인은 자리로 돌아와 포근하게 웃었다.
“역시 아일라가 편지에 적을 정도로 멋진 아이구나.”
“아, 아?”
“어머, 차가 식었구나. 잠시만 기다리렴?”
“네? ···아, 네.”
아직 상황판단이 안 된 네프티를 앞에 두고 백작 부인은 찻잔에 손을 가져다댔다.
화륵, 하고 열기와 함께 차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이후 네프티의 찻잔도 동시에 따듯해졌다.
오싹. 하고 네프티는 소름이 돋았다.
찻잔 전체를 대상으로 지정한게 아니라, 동시에 복수의 마법을 쓴 것이다.
“이중 스펠···.”
“어머, 잘 알고 있구나?”
“아일라 선배님께서 ···쓰셨습니다. 무척이나 고도의 기술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당연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란다?”
생각해보면, 트라이스타는 ‘광석’을 중심으로 ‘흑수정’의 마법을 쓴다.
그렇다면, 아일라의 ‘이중영창’과 스피카의 ‘다중골렘사역’은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그리고, 최근 아일라 선배가 익히신 ‘불꽃’의 마력은 어디서 기원 한 걸까.
눈 앞에 있는 이 트라이스타 가문의 여주인이야 말로, 그 불꽃과 다중 영창의 근원일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장비도 없는 상태로 감히 마주해서 될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백작 부인은 픽 웃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 ···아, 네.”
“그리고 아줌마는 네프티의 대답이 꼭 마음에 들었단다?”
“······예?”
마음에 들었다?
아일라 선배님을 뛰어넘어 울프람 선배님 곁에 서겠다는 대답이 말인가?
그건 대체···.
“역시 사랑은 경쟁하고 불타올라야 재밌는 법 아니겠니?”
“······아?”
“후후. 아줌마도 어렸을 때는 말이지?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많이 포기하고 했단다.”
“포기 ···라고 하시면.”
“당대 황손분께서 조금 귀찮아서 말이지. 나름 수석이니 소질도 괜찮고, 집안도 무난하고 그럭저럭 얼굴은 봐줄만 하니 하면서 로열 가드로 끌어들이려고 했단다, 당연히 아줌마도 ···당시의 네프티처럼 둘 째 부인은 되고 싶지 않았거든.”
“······로열 가드를, 거절하셨군요.”
“그럼. 결국 4학년 1학기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전부 따놓고 황손 분을 피해서, 몰래 출석만 하고 겨울방학때 완전히 트라이스타 가문에 시집을 왔단다.”
“······아.”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역전의 수석. 후후. 멋지지?”
그 순간 떠올랐다.
히아신스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네프티 드물게도, 황손을 거절하는 분이 있답니다.’
‘후후.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당대 마법학부의 수석을 차지하고 있던 아이였죠.’
‘재미있는 것이 성적이 중상위권인 귀족가 남성분에게 완전히 빠지셔서, 황손의 끝없는 구애도 거절하고 졸업하자마자 귀족분과 결혼하셨답니다.’
‘예. 제 제자였죠. 그러니까 이름이···’
네프티는, 교수가 해준 말 속의 사람을 떠올렸다.
“【작열】의 스텔라리아”
“어머, 알고 있니? 그래. 당시 이름은 스텔라리아 이그너스. 지금은 이름도 개명하고 성도 남편 성으로 바꿨지만 후후. 그립구나.”
“예. 예에···.”
들은 적 있다.
무패의 괴물. 당대 최강의 마법사. 수 십 개의 불꽃을 조종하여 상대를 찢어발기고, 홀로 원정을 나서 괴수의 사체를 가지고 왔다던가.
네프티가 힐끔 보자 스텔라리아는 다시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아줌마는 사랑이란 격렬하고 불타고, 포기하지 않고, 눈물과 행복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아, 네. 그, 그러니까.”
“아일라가 저렇게 시시하게 굴면, 확 빼앗아 버리는 것도 상관 없단다?”
푸웁.
네프티는 마시던 차를 뿜어버렸고, 그 모든것이 스텔라에게 닿기 전에 증발되었다.
“케, 케헤···으우.”
“어머. 괜찮니?”
“아, 그. 그러니까요···. 그게 무슨 의미신지.”
정말, 아일라를 대신해 결혼해도 된다는 건가?
그런 의미였나? 진짜?
“물론 결혼식 자체는 아일라와 치뤄주는 게 아줌마 입장에서는 편하단다?”
“······.”
“하지만, 사랑하는 남성의 마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다면, 그 결혼의 끝이 행복할 거 같지는 않아. 내 딸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아줌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그, 그렇군요.”
“황자님 좋아좋아 상태인 건 아줌마도 좋지만 우리 딸은 좀 늦된 면이 있지 않니. 그러니까 ···네프티가 앞으로도 친구로서, 좋은 라이벌로서 곁에 있어줬으면 한단다.”
그리 말하는 스텔라베리의 눈은 포근하게, 허나 그 안에는 차갑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혹시 부인.”
“의모님.”
“네···. 의모님. 혹시 말인데요.”
“혹시는 물어보면 대답 여하에 따라 진실이 되는 법이란다.”
“아일라 선배님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신건가요?”
그 말에 스텔라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그럼. 그렇게 나약하게 키운 아이가 아니란다. 무려 나는 황손을 피했으니, 그 아이는 황손 정도는 낚아챌 수 있지 않겠니?”
“······.”
즉.
아일라에게서 울프람을 빼앗으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딸이 빼앗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 한 말이었던 건가.
그만큼 딸 아이를 믿는다는 신뢰가 근거된 말이었다.
정말 이래저래 따라잡기 어려운 분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잘 해주렴.”
“······.”
그리 말하며 스텔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네프티는 막 떠오른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혹시 ···이런 질문은 실례인 줄 알지만요. 의모님. 트라이스타 가문에 두 번째 부인 분은···.”
“없단다?”
“······처음부터 안 계셨나요? 아니면 경쟁자가 있었는데···.”
“후후. 글쎄. 어느쪽일까?”
그리 말하며 스텔라리아는 검지 손가락만을 치켜들어, 가볍게 불꽃을 붙이고는, 속 모를 미소를 짓고 떠나갔다.
과연.
그렇게 된 것인가.
“······흑수정 대비책을 세워야겠네요.”
꽤 진심으로, 네프티는 그리 말했다.
***
글래스 백작의 집무실에서 몇 시간동안 담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과연. 대화를 진행하고, 사업을 진행할수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형이었다.
편의점 사장 형.
물론 모든 점에서 그런건 아니다. 그 사람은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고 때로는 농담이 과했지만 그걸 누구나 웃으며 받아들일 정도로 인싸 그 자체니까.
홍대와 신촌 명동과 압구정 강남의 모든 정기를 모아 만들어낸 인싸의 정령 같은거라서 말이다.
다만, 배려심이라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그 형이 떠올랐다.
선로를 만들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인부들의 급여. 안전과 식사와 숙소의 조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좋은 집이로군.”
나는 애당초 가족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가족의 따듯함은 나쁘지 않다.
내게 배정된 방에 누워 천장을 올려봤다.
수면용으로 아주 적절하게 빛나는 마법등.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
물론. 불청객만 아니라면.
문 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실로 조용하게 걷고 있지만 못 들을리가 없다.
그만큼 내 감각은 날카롭다.
아니 애당초 루디카랑 그렇게 대련하고 놀았으면 이 정도의 기척감지는 해야지.
그러니까.
똑똑.
내 잠을 방해하려고 온 사람의 정체 정도는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시간은 열 한시를 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일라는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 녀석이 버틸 수 있을리가 없지.
네프티···는 아마 백작 부인이 잡아갔다고 했다. 다과회를 즐기고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내 방문을 도둑고양이마냥 두드릴 녀석은 한 녀석 뿐.
“무슨 일이지.”
“후후. 눈치 채셨군요?”
문을 열어주자 마자, 녀석은 샤샥 하고 방 안에 들어와서는 웃었다.
“혁명은 낮에 타오를지언정 그 전까지는 가장 깊은 밤에 모의되는 법이니까요!”
불청객.
스피카 트라이스타는 그리 말하며 고양이마냥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