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83)
§ 382. 공주님 안기
레지나 시엘라는 갈등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울프람은 어울린다.
학년 초 까지만 해도 어딘가 날카로우면서 세상에 무관심했던 아일라는 둥글어졌고, 무능하다 생각한 울프람은 사실 엄청난 재능의 보유자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증오하고, 한 사람은 친애하는 레지나의 입장 상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목표가 부족했다.
말로만 반역이라고 하고, 언젠가 시엘라 가문을 뛰어넘어 트라이스타를 대륙 최고의 명문가로 만든다. 그리고 그 개인 또한 평생 쫓을 목표를 찾고 싶어한다.
허나 그 목표도, 수단도 애매했다. 가문으로서는 시엘라가 가진 카르텔을 꺾기 힘들고 마력은 자신과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밀린다.
그렇기에 정체된 삶. 그 안에서 절망을 느끼고 썩어가는 것이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목표와 비전. 그리고 야심과 능력이 일치하는 완벽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파트너.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어떤가.
지금까지의 망나니짓이 전부 무언가를 위한 계략이었다고 한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다.
애당초 황실 혈통인 이상 돈에 굶주릴 일은 없고, 설령 돈이 없다 해도 저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자본을 끌어 모으는것은 일도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파트너다.
자신의 꿈을 믿고 지지해주고 함께 걸어줄 사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위를 포기하고 더욱 큰 꿈을 그리기에 언제 파멸할지 모르는 길을 걷는 남자의 곁을 걸어줄,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둘은 어울린다.
꿈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여자와
꿈을 꾸기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남자
둘은 약혼자며, 황자와 명문가의 딸이다.
사이도 좋으며, 서로를 항상 믿고 의지하며 함께 모험하고 웃고 떠들고 행복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어울리는 조합인가.
그래. 정말 어울린다.
그래서.
화가난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믿어드릴 수 있는데, 나도 함께할 수 있는데, 나도 당신의 대신이 될 수 있는데, 곁에 있고 함께 놀고 함께 지쳐 잠들고 같은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다 함께 잠들고 그러다 깨서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부끄럽지만 자는 얼굴을 보여주고, 행복하게도 잠든 얼굴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하고, 손을 잡고 도심을 거닐고, 서로의 작은 투정을 신경써서 배려해주고,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왜 내가 아니지? 왜 당신이지? 처음은 나였는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고 절망하고 비관하고 오열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감정이 증오로 바뀌었다.
그래요. 증오합시다. 미워합시다. 그 끝에 빼앗아버립시다.
없던 것으로 만들고 백지로 되돌려줍시다.
그 순간, 마음이 깨지며 얻어낸 것이 바로
증오의 영역.
“【헤이트 에이리어】”
“하. 멋진 기술이네요. 노력 좀 했는걸요. 차석?”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저 웃는 얼굴.
화가 난다. 당장이라도 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당신 곁에 있는 그 분을 자기 곁으로 모셔오고 싶다.
“예. 당신을 묻어드릴 기술이죠. 당신이 수석인게 너무 화가 나서요.”
“할 수 있으면 해 보세요.”
“지금부터 해 보도록 하죠.”
***
레지나의 영역 【헤이트 에이리어】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기술이다.
우선 저 스킬을 연마하면 할 수록 효과가 눈에 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헤이트 에이리어】
【1차 승급용 각성기】
【레지나 시엘라 전용】
【공간 전체를 늪으로 감싸 완전하게 지배합니다. 영역 내 모든 물리적 마력적 효과에 간섭합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습니다.】
【영역 내에 들어오는 모든 【물리】 【마법】 【상태이상】의 명중률. 위력. 속도. 지속시간이 저하합니다.】
말 그대로 영역을 지배하는 능력.
생각보다 꽤 재밌고 유용한 능력이다. 저걸 깔고 브라이트 레인을 막는 것으로 대 이브전이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여 나로서는 이 승부가 무척이나 흥미가 인다.
아일라가 불리하다.
그렇기에.
“자. 아일라. 너는 어떤 반역을 보여 줄 거지?”
“약혼녀인데 걱정하지 않는 건가?”
“걱정?”
파트라슈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레지나 시엘라의 각성기는 강하지만, 그만큼 명확한 단점도 존재한다.
그걸 아일라가 읽고 파훼했다면 아일라가 이기겠지.
“아일라는 가끔 멍한 구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천재다. 그러니 나는 지켜보고, 믿을 뿐이다.”
“좋은 관계로군.”
***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레지나 시엘라가 어떤 분노를 가지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세상에 버려진 듯 한 저 눈은, 매일 아침 단장하면서 거울을 볼 때의 자신과 똑같았다.
몬스터에 의해 부진해지는 광산업.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약혼자.
넘을 수 없는 수석의 벽.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
그 모든것이 자신을 좀먹어 갈 때의 눈과 같다.
그러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때려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공간 자체가 번거롭네요.’
저 끈적한 늪 자체가 자신의 마법에 얽혀 들어온다. 무속성이라 딱히 견제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체술을 쓰려고 해도 평소보다 조금 느리다.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 보다야 빠르지만 이래서야 제대로 된 체술이 써질리가 없다.
메테오 같은 마법은 즉시 막힌다. 애당초 자신의 마력은 레지나 시엘라보다 적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니실 거죠? 저를 죽이려는 거 아니었나요?”
“크윽. 두고보세요!”
레지나의 도발.
하지만 전투 모드에 들어간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겉으로는 분해해도 속으로는 냉정, 침착하기 그지 없다.
다른 것 보다 울프람이 보고 있다. 꼴사나운 전투는 펼칠 수 없다.
“왜 그러죠? 【늪:파워피스트】”
“…읏. 큭!”
“어머, 그 잘난 체술도 지금은 쓸 수 없나보네요?”
“예에. 아무래도, 이런 저열한 마법은 상대해 보는게 처음이라.”
“…여전히 잘나셨군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입으로는 도발했지만, 방금 전의 일격으로 아일라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로는 레지나 시엘라의 ‘부가 스펠’이 무척이나 부족해졌다.
어째서 저 영역을 전개한 채로 다른 부가스펠을 하나밖에 섞지 못했는가.
‘어마어마하게 마력을 잡아먹는군요. 그럴만도 해요. 거기다가.’
【헤이트 에이리어】가 지금까지의 늪과 다른점은 마력에 간섭해 온다는 거다.
즉. ‘상대의 마력을 읽고’ ‘정확하게 해석해서’ ‘파고들어가 어깃장을 놓는다.’
효과는 확실하나 그만큼 번거롭기 그지없다.
하나의 마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영역 내 모든 것이 된다면?
어마어마한 마력은 물론 연산능력도 잡아먹을 것이다.
당연히 레지나 시엘라의 공격 패턴이 단순해지고 부가 스펠이 적을만도 하다.
즉.
여기서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해야 할 전술은 극히 간단하다.
“【흑수정:스펠 캔슬】”
우선, 모든 흑수정을 마력으로 되돌린다.
“어머. 모든 흑수정을 되돌렸나요? 미티어 같은 큰 마술을 쓸 생각이죠? 써 보세요. 기다려 드리죠.”
그런 멍청한 짓을 할리가 없다.
미티어는 아직 부가 스펠을 넣을 정도로 연마하지 못했다.
즉 아일라가 해야 하는건 정 반대.
“【신체 강화 : 완력 : 각력 : 민첩】”
“…아?”
“【트라이스타류 체술 : 오의 : 극쇄】”
자기 자신을 강화해.
“뒈져요.”
퍼억.
“으극?!”
오직 근접. 또 근접. 초 근접전으로 레지나 시엘라를 짓이겨 놓는 것 뿐이다.
***
아일라의 파이팅 폼이 바뀌었다.
“주인. 저건….”
“그래. 깨달았군.”
헤이트 에이리어는 얼핏 완벽해보이나 너무나도 많은 마력 소모량과 더불어 ‘영창 속도가 빠르며 많은 부가 스펠을 가진 마법’을 캔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마력을 해석하고 짓이기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복잡해도 어렵고 빨라도 어렵다.
그러니 아일라가 선택한 초 근접전이야말로 정답.
말 그대로 저 영역을 상대하는 정공법이다.
“멋지군.”
여기서 근접전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도 멋지지만, 아일라의 저 전투 방식은 나조차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저 체술만이 아니다.
그래서야 지금까지 싸웠던 내용의 재림 아닌가.
아일라는 스스로 연구하고 연구해서, 자신의 근접투술을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흑수정의 병장기 소환이다.
대단한 건 아니다. 주먹을 뻗는 지점에, 발을 후려치는 지점에 회수하는 지점에, 항상 흑수정의 무기를 소환해두는 것이다.
주먹을 뒤로 당기면 그 곳에는 창이 있고, 앞으로 내지르면 너클이 생기며, 발로 걷어차는 곳에 비수가 있다.
“창. 망치. 검. 단검. 투창. 비도. 철퇴. 권 …저 아가씨는 무투가였나? 아니지. 저건 만병의 투사(weapon master)인가? 삼 백년 전에 보고 오랜만에 보는군.”
“…소질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군.”
그래. 그 말 그대로 아일라는 레지나와 싸우면서, 손이 닿는 장소에 무기를 만들어내 그대로 후려치고 있다.
오른 주먹을 내질러 빗나가면, 그 자리에 창을 만들어 꼬나쥐고 사거리를 을린다.
왼 주먹을 후려쳐서 엇나가면 너클을 장착해 그대로 한 번 더 후려친다.
그 투로는 단순하지만 어떤 무기가 나올지 모르고, 너무나 빠른 영창속도 때문에 헤이트 에이리어가 개입할 여지조차 없다.
지금이야 아일라의 민첩성이 낮아져 레지나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저 헤이트 에이리어가 먹는 마력량을 레지나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 순간이 끝이겠군.”
“동의한다.”
아일라도 여유가 없는지 모든 투로가 살수(殺手)다.
설마 친구들끼리 서로 한바탕 대련하는데 죽일 생각은 없을거고, 본능 같은건가.
저건 조금 아쉽네.
“나중에 루디카에게 직접 투술을 배우는 것도 좋겠군.”
“…약혼녀가 그런걸 배워도 괜찮은 건가?”
“호신술 비슷한거다.”
“…위협하는 모든 적을 죽이면 그야 호신이 맞긴 하다만.”
***
그리고 얼마 안가 싸움은 결판이 났다.
당연히 서있는 것은 아일라고 주저 앉은 것은 레지나.
누군가가 그랬지.
마지막에 머리가 높은 곳에 서있는 사람이 승자라고.
즉. 이 승부는 누가 봐도 아일라의 승리.
허나 나는 두 사람에 대한 칭찬을 멈출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훌륭한 싸움이었다.”
나와 파트라슈는 무대 위로 올라왔고, 두 사람을 향해 힘껏 박수를 쳤다.
“울프람! 어땠나요? 오늘의 전투는 반역의 투사였어요!”
“그 굵은 땀방울이 만들어낸 투로겠지. 훌륭하다. 칭찬이 아깝지 않은 전투였다.”
“그렇죠. 그럼요!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굵은 땀….”
땀범벅이 된 아일라는 웃으며 내게 달려오다가, 그대로 뚝 멈춰섰다.
“왜 그러지 아일라? 묘하게 거리감이 있는 거리다만.”
“아, 아하하. 아뇨. 아무튼 울프람의 칭찬을 받았으니 저는 만족이에요! 자! 어서 레지나에게 가주세요! 같은 굵은 땀을 흘린 레지나에게요! 엄청 땀을 흘렸으니까요!”
“……?”
뭐 그럴 생각이었다만.
주저앉은 레지나에게 다가가자, 미동조차 없다.
그냥 시체인가.
“레지나 시엘라.”
“…황자, 님.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면 …이런 모습으로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패배하는 것이 더 보기 좋으셨나요? 마음에 드셨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그럼. 마음에 들고 말고.”
“……그러, 십니까.”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벽을 깨 다음 단계로 올라선 너의 그 투혼은 실로 흡족했다.”
“……아?”
나는 쪼그려 앉아 레지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일라 말마따나 땀을 잔뜩 흘리고, 몸에는 먼지로 가득하다.
“미운 모습입니다. 꼴보기 싫은 모습입니다. 부디, 거리를 벌려주세요.”
“그렇지 않다.”
허나 이 녀석은 나에게 보여줬다.
이 모습이 어찌 미울까.
노력하는 녀석이. 스스로 바뀌려고 하는 녀석이.
그리고 그 결과를 이루어낸 녀석이 어떻게 밉겠냐.
“내가 지도하지 않았음에도, 너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영역에 들어섰다. 그 피나는 노력을 내가 어찌 미워하겠나.”
“……황자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1차 각성기까지 도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노력으로 보면 이브에 준하는 수준이다.
레지나 시엘라의 마음은, 그 정신상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이 녀석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칭찬해 주고 싶다.
“손을 내밀어다오. 일어설 수 있겠나?”
“…후후. 죄송합니다. 허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런가.”
“…후후. 그렇게 칭찬해주셨으니 한 번 정도 어리광을 부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안타깝게도 저는 움직일 수 없는 몸. 황자님께서 안아들듯 일으켜 세워 주신다면….”
음?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나?”
“네, 네?! …아.”
“가만히 있도록. 움직이기 힘들다.”
“·········네.”
뭐, 한 번 정도는 어렵지 않다.
체력 4와 근력 4를 무시하지 마라.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 으랏차차!
그렇게 레지나를 안아들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닫았다.
묘하게 몸을 의지해 와서 들기 쉽긴 하네.
“울프람?! 레지나한테 가라고 했지만 거기까지 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그러게.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