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392)
§ 391. 너 나가면 망해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1월이 훌쩍 지나고 겨울이 더더욱 스며드는 지금.
신기하게도 파티 전원이 이 제프린에 있었기에 평소처럼 누군가가 편의점에 오고, 떠들고 즐기는 하루가 이어졌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는 건, 결말에 아무렇지 않게 하루 다가간다는 것.
1월이 흐르고, 2월이 다가왔다.
겨울은 여전해 아직까지 편의점에서 온기를 느끼고 싶지만, 교복을 입고 일어서서 등교해야 할 날이 왔다.
“울프람. 오래간만이에요. 날씨가 많이 춥죠? 교복 위에 망토 하나로 괜찮겠어요?”
“음. 내 경우에는 망토가 있으니 말이다. 큰 걱정은 없다.”
“아, 그거 따듯하죠. 저도 참 좋아한답니다. ···여벌을 구할 수 없을까요?”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의 보물중 하나라서 말이다. 비슷한 효과가 있는 망토를 가진 그랑펠리시에를 때려눕히고 뺏어올수도 있겠다만···.”
“으음. 홍염여제···. 라고 했던가요? 그 분은 강하죠?”
“이브보다 강하다. 우리 파티라면 7할의 확률로 전멸한다.”
“그 정도···인가요?”
“음.”
“아쉽네요. 망토는 다음번에 구하도록 하죠.”
그렇게 잡담을 하면서도, 우리의 표정은 평소만큼 밝지 못했다.
아니 밝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일찍 도착했네요.”
진지한, 그리고 어딘가 피곤한 얼굴의 이브가 우리 곁을 슥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
“···아침잠은 없는 편이라서 말이다.”
“저도 똑같답니다?”
······.
아일라 네 경우에는 밤잠이 심각하게 많지 않나.
“그래요. 좋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
“이브.”
평소라면 몇 마디라도 더 주고받거나 틱틱거렸을 이브는 우리를 슥 스쳐지나갔다.
여유라고는 없는 표정.
우리도 이브를 배려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많이 힘든가보네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2월 초순의 오늘은
이 제프린 최고 상급생이 바뀌는 날이다.
즉.
졸업식이다.
***
학창시절.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졸업식 리허설이었다.
왜 선배들이 졸업하는데 리허설을 해야 하는가, 그냥 졸업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뭐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졸업식이란 결국 학부형에게 보여준다는 이유도 크고, 본 식 진행중에 사고가 나면 더 피곤해지니까.
허나 그 당시 내가 졸업식의 리허설에 속으로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졸업식 자체에 별 감흥이 없었던 것 아닐까.
왜 그걸 느끼냐면.
【우리들 졸업생은 이제 대륙 각지에서 제프린의 교육에 부끄럽지 않은 품위와 행실을 갖춰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저 앞에서 열심히 졸업식 송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내 친구일 때 느끼는 묘한 감정은, 이 제프린에 와서 처음이기 때문이다.
앞길을 축복하며 동시에 이제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느껴지는 아쉬움.
그 두개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 한 채. 나는 실피아의 송사에 그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브의 재학생 답사.
【존경하는 선배님들을 사회로 떠나보내며】
이브는 어떤 감정일까.
자신의 로열 가드이자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신하를 홀로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마음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원래 저건 내가 해야 되는 송사였지.”
“예. 그렇죠.”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학생회장은 참 귀찮은 위치군 그래. 오히려 반역을 당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일라는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나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는 물음.
그야 진심이다.
대체 왜 학생회장 같은걸 하는거지.
귀찮지도 않나?
저걸 뺏어서 할 정도의 가치가 있나?
***
졸업식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당연하지만, 제작사가 제작사인지라 어느정도 한국의 졸업식이 모티브였고,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식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우선 졸업 증명서를 원형 통에 넣은 것 부터 시작이다.
졸업식은 점심시간 언저리에 끝나서 그대로 식사하러 가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점도 같다.
그런 고로, 우리 파티는 그렇게 편의점에 모였다.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전원이 말이다.
“이제 진짜 졸업이군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가문으로 돌아가나?”
“글쎄. 우선은 엠펠리움에서 수속을 마치고 잠깐은 시간이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여유롭구나.”
“내 상황을 알고 있다면 이게 여유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추론할 수 있지 않나?”
실피아는 쓰게 웃었고, 나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야 알고 있지. 지금의 네가 에버그린 그로브에 돌아가면, 무척이나 상황이 복잡해지니 말이다.”
“음. 가문 쪽에서도 내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하더군.”
“······.”
실피아는 혼자 이브를 지지하니까 가문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다.
심지어 이브는 이제 누군가의 파벌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스스로 깃발을 세운 몸.
이대로 가문에 쫄래쫄래 돌아가면 진짜 칼부림이 날지도 모른다.
식사 도중.
나와 실피아는 잠시 빠져나와 그렇게 둘이서 잡담을 시작했다.
겨울이지만 오늘 낮의 햇살은 따스한 편이라 다행이다.
“괜찮겠나?”
“마냥 괜찮다고는 못하겠군. 하지만 네가 준 검과 갑옷. 그리고 라피스 라줄리를 통한 각성까지 홀로 헤쳐나갈만하다고는 생각하다.”
“그런가.”
“정말, 감사하고 있다.”
실피아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브가 졸업하기까진 앞으로 2년이나 남은 상황.
그 사이에 실피아는 로열가드 내정자로서 홀로 세상에 나가야 한다.
“물론 내년에 내가 졸업하면 우선 내 비호 아래에서 행동할 수 있다만···.”
“고마운 이야기지만 결국 일 년 후 아닌가?”
실피아는 쓰게 웃었다.
내가 지켜주는 것 자체는 받아들여 주는건가.
“혼자서 잘 할 수 있다. 뭘 그리 걱정하는거지.”
“······.”
그리 말하며 검을 툭툭 치는 실피아.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하다.
음.
으음.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준비하지.”
“뭘 말인가?”
“그야 하나밖에 없지 않는가.”
레이드다.
***
파티원 전원이 이 겨울에 레이드에 가겠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뒷풀이로 원정을 나가겠다니 ···울프람 답네요! 저는 찬성!”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오오, 이번에는 내 단검이 들어가는 녀석을 잡고 싶다!”
“다, 다들 신중하게 하죠.”
기존의 파티원들은다들 수긍했다.
“당신은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후후. 이런 무도회에 초대받다니, 영광입니다.”
이브와 레지나 또한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리고.
“정말, 졸업식 날 원정을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만.”
“싫은가?”
“싫을리가 있나, 조금 놀란 것 뿐이다.”
그리 말하며, 졸업장을 담은 통으로 내 팔을 툭 하고 두 번 두드린 실피아는 짓궃게 웃었다.
“누가 뭐라 해도, 제프린에서 마지막 원정이다. 후회 없이 가도록 하지.”
“···어, 음. 그래야지.”
내 말에 실피아는 우물쭈물하다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지?
***
우리가 가려는 곳은, 잠든 산맥 깊은 곳.
춥고 눈덮힌 산을 등산하는 건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지만, 어쩌겠나. 이 곳이 효율적인데.
중간쯤 와서 아일라의 마력으로 불을 지핀 채, 나는 흑수정으로 만든 테이블에서 짧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잠든 산맥은, 말 그대로 대부분의 몬스터가 혼란 혹은 수면 계열 상태이상을 쓴다. 이건 알고 있겠지?”
“음. 알고 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프티와 루디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얘네들은 예전에도 와 본 적이 있지.
나머지 녀석들은 멀뚱멀뚱 듣고 있지만, 그래도 이해를 못 한 것은 아니다.
“그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이 산의 몬스터들은 ···겨울이 되면 무척이나 굼떠진다. 말 그대로 놈들도 잠을 자는 것이지. 그러니 알겠나? 지금부터 느긋하게 자고 있는 놈들을 발견하면 ···전부 죽여버려라.”
“······네?”
이브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해하지 못 한 건가.
“정신 못차리고 잠든 녀석들을 전부, 한 마리도 남김 없이. 싸그리. 몬스터들을 죽여버려라. 도축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알겠나?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버리는 것이다.”
“······어, 음. 울프람?”
“그게 지시의 전부다. 2인 1조로 움직이며 지금부터 내가 조를 정해주겠다. 우선 아일라와 이브가 한 조. 네프티와 레지나가 한 조. 밀푀유와 루디카가 한 조. 그리고 실피아와 내가 한 조를 맡겠다.”
다들 기묘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밸런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열과 후열. 혹은 중열과 후열을 적당히 섞어 배치한 것이다.
자 그럼
렛 더 킬링 비긴.
***
파티원들이 전원 각지로 흩어진 이후, 나와 실피아도 몬스터들을 하나 둘 처리했다.
내 경우에는 퀵 크리에이트로 독약을 만들어서 머리에 뿌리는 것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정말 끔찍하게 죽는군.”
내 전투 방식을 보고 실피아는 살짝 몸을 떨었다.
“네가 바람으로 깔끔하게 저격하는것과 내가 독약을 던지는 건, 방법이 다를 뿐 결과는 같지 않나?”
“그야 그렇다만···. 너는 몬스터를 그렇게 죽이고 아무렇지 않나?”
“몬스터를 죽이는 것 정도로 흔들리면 누군가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없다.”
“······그도 그런가. 너는 항상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구나.”
내 말에 실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이브를 지키면서 살아간다고 했으니, 몬스터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되지.
아무튼. 그렇게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럼 어째서 이렇게 죽이느냐.
그건 간단하다.
【같은 파티로 잡은 몬스터의 수치가 일정 이상이 되었습니다.】
【파티의 결속력이 올라갑니다.】
【파티 랭크가 올라갑니다.】
【파티원을 한 명 추가 영입 가능합니다.】
【파티 버프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바로 이거다.
어째서인지, 대부분의 게임에서 파티 랭크나 결속력 시스템은 파티원과 대화를 하거나 선물을 하거나 ···혹은 몬스터를 잡는 것으로 올라간다.
그걸로 결속력이 올라가면 그건 그냥 단순한 살인자 집단인 것 아닐까요? 범죄 이력을 공유하는 범죄자들 모임 아닐까요?
그렇게 따지고 싶지만 이 시스템은 시간적인 측면만 보자면 실로 효율적이다.
“겨우 자리가 났구나.”
“···자리가 났다?”
“그래. 지금 파티의 기량이 올라가 공석이 생겼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이제 됐다. 파티에 들어오도록.”
“······잠깐, 잠깐 기다려라 울프람. 알고 있나? 나는 ‘졸업 예정자’가 아니라 오늘 졸업한 ‘졸업생’이다. 그런 내가 왜 파티에 들어가야 하나, 그건 다른 사람에게 줘라.”
“그래서, 싫은가?”
“······좋고 싫고를 따지는게 아니다. 효율을 이야기 하는거다.”
“효율?”
“그래. 잘 생각해봐라.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 졸업할 ···아니 졸업 한 녀석을 다시 파티에 포함할 이유가 어디 있지?”
“내 마음이 편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뭐?”
“나 뿐만이 아니다. 네가 파티를 나가는것으로 실시간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해 할 이브 녀석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네가 위험하면 ···하루 한 번이라고는 하나 얼마든지 연락을 취할 수 있다.”
“······.”
“그래서 다시 묻겠다. ···싫은가? 좋은가.”
“그야 ···그런 건 묻지 마라.”
실피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가 파티에 재합류 했습니다.】
【높은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추가 속성을 계산합니다.】
【파티 보너스에 ‘바람’ ‘요정’ ‘검사’가 붙습니다.】
【파티 전체의 이동속도가 빨라집니다.】
【파티 전체의 체력 회복이 빨라집니다.】
【파티 전체의 바람 속성 저항력이 강해집니다.】
······.
“오래 걸렸지만 ···돌아온 걸 환영한다. 실피아.”
“멍청한 녀석 나중에 자리가 모자란다고 후회하지나 마라. 이렇게 된 이상 절대로 ···절대로 안 나갈거니까 말이다.”
그리 말하며 실피아는 내 어깨에 얼굴을 툭. 하고 기댔다.
【파티원 전원의 호감도가 일정치를 넘었습니다.】
【결속력에 의한 추가 파티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속력이 일정 이하가 되면 사라지는 스킬입니다. 유의해주세요.】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나가라고 할 일 없을거다. 맹세하지. 놓아 줄 성 싶으냐.”
“···멍청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