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01)
400. 인수인계
그 뒤로 몇 개의 ‘샘플’이 세피라의 손을 통해 나갔다.
그 안에는 파티원 후보로 손색이 없는 녀석도 있었고. 이런 애도 있었지 라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퍼주면서 든 생각은 ···이게 생각보다 편하고, 생각보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마.
아니 거의 확실하게 나는 이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 갈 것이다.
애당초 게임도 아니고 졸업했으니 현실로 되돌려드릴게요. 같은 소리를 할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납품 트럭에 치여서 한 번 죽었던 몸.
허리병신도 고쳐주고 체력 좀 모자란 거 빼면 전체적으로 이영진보다 나으니 불평 불만따위 있겠는가.
그럼 이제 울프람으로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그 너머에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해야 할 시점이다.
대륙 유통망을 손에 쥐고 어디서나 편의점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유통망을 위해 아일라와 합작하여 전 세계에 철도를 까는 것.
그리고 나와 내 파티원 전부가 행복해지는 것.
크게 요약하면 그 정도가 되겠다.
아무튼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진리에 따라 그 길을 따라가는 것 아닌가.
아무튼.
그럼 제일 처음에 있는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안전과 행복의 보장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일단 조져버린 인맥을 살려 ‘울프람이 겉 보기에 재수는 없어도 속이 진국인 사람이야’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고로.
일단 나를 잘 모르는 애들 중 나중에 크게 될 놈들에게는 이것저것 빚을 만들어 둘 생각이다.
게임에서도 초반에 템 퍼주는 NPC들을 ‘선생님’ ‘혜자’ ‘따흐흑 템 퍼주는것은너무나좋아 사장님’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 길을 걸을 생각이다.
마지막 거 말고.
아무튼 퍼준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상환 받을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퍼 줘서 손해 볼 거 없는 녀석들에게 퍼주는거다.
원래 사파리존에서도 고급 푸키먼을 잡을때는 먹이를 던지고 사파리볼을 던지는 것이 국룰.
울프람 폰 로엔그린 장학생 나가신다. 핫하!
아무튼.
그 시작이 바로 울프람 초심자 세트가 되시겠다.
어차피 몇몇 재료는 넘쳐날 정도로 남고, 내 스킬 숙련도도 겸사겸사 올릴 겸 이것저것 풀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처음에는 배은망덕하면 어쩌지.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지 않는 법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울프람 선배님께서 주신 초심자 세트는 공식 지급품보다 무척이나 마감의 품질이 높습니다. 이런 물건을 대여해주셔서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내 앞으로 온 보고서는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이었다.
뭐.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고, 그 따위 보급품보다 무조건 좋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찬사를 받으면 거 참.
“하···.”
카페에서도 이렇게까지 빨아주면 친목라인이라고 바로 칼같이 고로시가 들어올 정도의 보고서를 받아들고는 쓰게 웃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계급의 세계고 순수한 세계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와중. 심경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나는 얼마나 행복한 녀석인지.
그러고보니.
“올해는 그 녀석도 오겠군.”
이 게임의 타이틀 메인히로인 4인방.
마법학부의 이브. 레지나.
기사학부의 이졸데.
그리고 ···그 녀석.
“만나는 날이 기대되는군.”
정말이지.
이 세계는 흥미로 가득차있다니까.
***
곧 3월이 찾아온다.
내가 이브의 손에 의해 쫓겨났던 날로부터 1주년이 지난다는 이야기.
오래간만에 이브를 찾아갔을 때. 녀석은 책상에 얼굴을 박고는 후엥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가.”
“죽을···거 같거든요···. 아, 차라리 죽을까요. 죽으면 일 안해도 되는데···.”
마치 마감이 겹친 작가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고생이 많군.”
“누구···때문이라고···생각하는데요.”
“그게 왜 나 때문이지?”
“당신이 ···신입생 입학 시 인수인계를 ···안해서······.”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것 참 안타깝게 되셨네요.
이렇게 비웃고 가는 건 쉽지만···.
음.
으음.
“도와줄 부분이 있나.”
“뭐라고요···?”
“내가 도와줄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없어요.”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일을 방해하는 것도 좋지는 않으니 말이다.”
내 말에 이브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있어요. 그러니까 앉아서 좀 도와요.”
도와주세요. 도와줘요도 아니고, 도와요.
정말 이브다운 말투로군.
“그래서 어느 부분을 확인하면 되지?”
“이 부분이에요. 작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이렇게 서류가 통과가 됐는데 여기 부분이 미흡하거든요? 이게 제프린의 시련으로서 의도된 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리 말하며 이브는 내 앞에 앉아서 서류의 산 중 몇개를 툭하고 넘겼고, 나는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 오리엔테이션 관련 서류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해가 짧은 초봄답게 창밖에 석양이 질 무렵. 한차례 서류의 폭풍과 싸움을 끝내고 다과를 들었다.
홍차를 한 모금. 쿠키를 한 입.
대화 없는 다과시간에 학생회실이 석양빛으로 물든 그 때. 문득 이브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곧 1년이네요.”
“그렇군.”
“뭐가 1년인지 알고 하는 말이죠?”
“네가 내 자리를 빼앗고 이 제프린의 정점에 오른지 일년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어떻게 알았어요?”
글쎄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정점에 올라본 소감은?”
“보람차요. 즐겁죠. 할 만 해요. 가끔 죽을 거 같긴 한데 죽진 않았으니까요.”
“그런가.”
“당신은 어때요. 즐거운가요?”
“즐겁고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나.”
“······그렇군요.”
“너는 파티 활동이 즐겁지 않았나?”
내 말에 이브는 눈을 감았다.
윽 하는 소리도 안 나고 발끈하지도 않았다, 그냥 눈을 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즐거워요.”
“그거 다행이군.”
“그래요. 뭐. 서로 즐거우면 된 거 아니겠어요? 당신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저는 옥좌에서 제국을 바꿔가면서 말이죠.”
그리 말하고 이브는 다시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창 밖을 바라봤다.
음.
이 녀석이 이럴 때는, 아직 하지 못 한 말이 있다는 의미.
“대체 또 뭘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는거지.”
“···아뇨. 그냥 이렇게 즐거운 것도 올 한해가 끝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올해까지만 하고 임기를 끝낼 생각인가?”
“미쳤어요? 내년까지는 할 거에요. 4학년때는 ···모르겠네요. 입학하는 친인척이 있던가?”
“그럼 뭐가 올해까지라는거지?”
“······티요.”
뭐?
잘 안들리는데?
“파,티요.”
“파티?”
“······네.”
기어가는 목소리로 이브는 석양빛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파티가 즐거워서, 그게 올해로 끝나는게 아쉽다는 건가.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뭐, ···즐거운 건 사실이니까요. 제프린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와 싸우거나 야영을 하거나, 신비를 탐색하거나 위대하신 선조님의 발자국을 추적하거나···. 그것도 올해로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뭐, 뭐 많이 아쉬운 건 아니고? 조금 그냥? 제 일상에 소소한 재미가 줄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 뿐이고? 그냥 그런거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죠?”
뭐 죄다 의문형이야.
“그런가. 그럼 바빠지겠구나.”
“뭐가요?”
“올 한해 원정지 선정부터 너희들의 성장까지 말이다.”
“하. 제가 당신 때문에 성장한 것 마냥 말하시는데, 저 혼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
이브는 입을 다물고 쿠키를 먹었다.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요.
“뭐, 거기에 인수인계도 생각해둬야 하지 않겠나.”
“인수인계?”
“그래. 내가 올해 졸업하면 뒤를 이을 이가 필요하니 말이다.”
“아, 편의점 이야기군요? 밀푀유에게 지금부터 해두면 늦지 않겠네요.”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편의점의 인수인계가 왜 필요하지? 지금 밀푀유에게 전권을 맡겨놔도 돌아가는데에는 전혀 문제 없을 것이다. 장담하지.”
“그럼 당신은 필요 없는거 아니에요?”
어허. 나쁜말 금지.
내가 노려보자 이브는 풋 하고 웃고는 어깨를 으쓱한 뒤 물음을 이어나갔다.
“그럼 무슨 인수인계요?”
“원정과 파티의 인수인계다.”
“······네?”
“애시당초. 왜 내 대에서 끝날거라 생각하지. 내년에는 제프린에 인재가 없나? 아니면 원정지가 올해로 전부 소멸하나? 끝낼 이유도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 하지만 그럼 누가 뒤를 잇는다는 거죠?”
누구긴 누구야.
“너다. 내년 파티 리더는 네가 되어서, 네 인재로 풀을 꾸려서 제프린 원정에 나서면 되지 않겠나?”
“······.”
“파티는 끝나지 않는다. 끝날 이유도 없다. 사라지는게 아쉽다면 스스로의 손으로 이어나가라. 이브 폰 로엔그린.”
“하하···. 쉽게 말하네요. 말처럼 쉬운게 아니잖아요? 다른 언니나 오라버니들의 움직임도 신경쓰고, 성적에 제 인맥에 엘피라네님을 넘어서야 하는 일도 해야하고, 학생회장 업무도 넘쳐날텐데 거기서 파티까지···.”
“하기 싫은가? 하고 싶은가?”
“······흥. 뭐 못 할 건 없겠네요. 예에. 노력하면 할 수 있긴 하겠어요! 가끔 죽을 거 같긴 하겠지만 죽진 않을테니까요!”
거 참.
진짜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로세.
그렇게 흥흥거릴거면 다리는 왜 떨고 눈은 왜 빛나냐.
“그렇게 해 준다면, 나와 아일라. 루디카가 떠나도 너의 시대로 이어지고, 그 뒤에는 밀푀유가 이어 받겠지. 그리고 제프린을 전원 다 졸업했을 때는 다시 모여서 세상을 여행하는거다.”
생각만 해도 실로 즐겁기 그지 없는 일이다.
내 말에 이브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는 황실에 갇혀 있을 텐데요?”
“필티아 누나에게서 공간이동의 마법을 배워라. 스피카에게서 골렘 제조술을 배워서 대타를 세워놓고 돌아다니면 그만 아닌가.”
“···이때는 당신의 그 간악한 지혜가 성현의 속삭임으로 들려요.”
이브는 손가락을 세며,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익. 하고 서류를 치웠다.
그리고는 툭 하고 책상을 치며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는 웃었다.
“자 시작하죠.”
“뭘 말이지?”
“뭐긴 뭐에요. 진짜 인수인계죠. 자. 어서 떠들어 봐요. 특별히 들어드릴수도 있어요.”
“성격 참 급하군.”
“어서요. 저는 바쁜 몸이라는 거 몰라요?”
“어쩔 수 없군. 그럼 일단 파티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도록 할까.”
그렇게 파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지금까지 헤쳐나온 원정지에 대해 짚어가기 시작했다.
이브는 한 번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왜 말하냐는 듯 시큰둥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 집중해서 듣고, 필기하며 맥락을 모를 때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하군.”
“뭐가요?”
“학생회실에서, 전 학생회장과 현 학생회장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그렇네요. 학생회랑 전혀 연관 없는거지만요.”
이브는 기지개를 쭉 펴고는 후우. 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이나 서류 업무. 그리고 인수인계를 받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창 밖의 석양은 간 곳 없이 밤이 찾아왔고, 학생회장실 안은 마석등이 빛나고 있지만, 장시간의 서류 업무에도 이브의 눈은 침침해지는 일 없이 서류를 향하고 있었다.
파티 인수인계의 서류를 뚫어지듯 보는 그 모습에 웃음이 지어졌다.
평소 학생회 서류만 보고 있을 때는 썩은 동태도 이건 좀 하고 피할 정도의 눈을 하더니 말이야.
“꽤 즐겁나보구나.”
“······.”
대답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건지.
그도 아니면 너무 집중해서 내 말도 들리지 않는 건지.
아무튼 이브는 정말 생기 넘치고 있다.
평소라면 놀리거나 비웃었을 나조차도 감탄하고 묘하게 미소가 지어질 정도.
어째서일까.
어떤 심경의 변화일까.
“아. 그렇군.”
생각보다 대답이 바로 나왔다.
이래저래 귀찮고 짜증나고 얼굴만 봐도 중지를 치켜들게 되지만.
뭘 어쩌랴.
내 목표중 하나는 파티원 전원이 행복해 지는 것.
이브 또한 내 파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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