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03)
402. 소악마의 거래
어깨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지고, 당황한 목소리가 울렸다.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생동감이 넘치는것이 현실이었고, 조용히 눈을 떴을때는, 새빨개진 얼굴로 아일라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조금 가까이 다가오고 있나?
잠이 덜 깼는지 눈이 흐려서 이것 참.
“깼나. 아일라.”
“네헥?! 아, 으. 아 ···네에.”
“그런가. 일찍 일어났군.”
“저도 모르게 눈이 떠져서요.”
아일라는 꽤 오래 잘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눈을 떴다.
“몇 시간 정도 잤지?”
“대충 두 시간 정도 인 것 같아요.”
그런가.
끊어서 자기에는 또 적절한 시간이다.
하나의 담요. 옆에서 느껴지는 아일라의 체온은 애도 아니고 꽤 높은 편이라 아늑하게 잠들었나보다.
“그래서, 슬슬 일어 날 건가?”
“네? 아 ···음. 그래야···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어느쪽이지?”
“···잠시, 이렇게 있고 싶은쪽인데요···.”
그런가.
그러면 뭐 상관없지.
살짝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다시 앉아 벽에 몸을 기댔다.
“울프람은 일이 바쁜거 아닌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나도 조금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많이 지쳤나요?”
“음···.”
슬쩍, 손을 감췄다.
이 녀석은 눈치가 빠르니까 들키면···.
허나 직후, 휙 하고 아일라가 내 손을 낚아챘다.
“울프람 ···소, 손이···.”
아.
들켰나.
“별거 아니다. 헛디뎌서 신경이 살짝 놀란 것 뿐이다.”
“그런 헛디딜 일이 대체 어디 ···설마. 스피카···.”
아.
진짜 눈치가 빠르다니까.
맞다.
아무리 나라고해도 그 상태에서 포메이션 체인지 이후, 전력으로 날아드는 골렘의 주먹에 단검을 박아넣는건 급작스러웠다.
물론 패링이 실패한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확했다.
너무 정확했기에, 내 재주보정으로는 골렘의 근력보정을 넘어설 수 없었다.
차라리 엇박 패링이었으면 안 다쳤을것을 정확했기에 다쳐버린 것이다.
그 결과 손목의 통증. 염좌다.
당장은 괜찮았는데, 한 숨 자고 나니까 붓기 시작했다. 짜증나네 이거.
“미안해요···. 제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무리 안 했더라면···.”
아일라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고, 그 다음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아일라.”
“미안해요. 죄송해요. 제 탓에···. 뭐, 뭐든 할게요. 울프람이 나을 때 까지 뭐든···.”
“음. 뭐든 하겠다고 했나.”
“네? ······네!”
나는 슬쩍 아일라쪽으로 손을 내밀었고 녀석은 움찔 떨다가 이내 후우, 하고 각오한 듯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아일라 녀석의 얼굴 바로 앞까지 간 내 손은 이내 가볍게 흔들렸고.
“【퀵 크리에이트】”
“아?”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포션을 만들어냈다.
촤아악. 허공에서 물줄기가 되어 붉어진 손목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손목에 닿자마자 흡수된다.
손목을 돌려보니 이게 웬걸 정말 만족스럽게 잘 돌아가는것이 아니겠어요?
“뭐든 하겠다고 했지. 이제 안 해도 된다.”
“···아, 지금 ···어라?”
“왜 회복포션을 생각하지 못한거지. 이 정도의 염좌는 포션 부으면 낫는다.”
“그, 그건 그렇네요. 아하하···. 왜, 왜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내 손목을 빤히 바라봤다.
“정말 다 나은거죠?”
“음.”
“그럼 아무것도 안 시키나요?”
“음.”
“···그렇군요.”
그리 말하고는 다시 내 옆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뭐지.
지금까지 봐 온 아일라의 모습으로 생각해보면 저건 ‘불만의 태세’다.
뭐가 불만인거지?
***
아일라는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살짝 기대왔다. 그리고는 방실방실 웃었다.
이건 화가 풀렸다는 건가.
뭐에 화났는지, 왜 풀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나이대 여자애들은 한참 복잡할 나이다.
새벽 두시에 낮에 먹었던 짜장면이 맛없다고 나를 깨워서 투정부리는 희망의 집 동생들을 생각하면, 아일라 정도면 양반이지.
“괜찮나.”
“네. 다 괜찮아요. 예에. 다 이해해야죠.”
“······.”
갑자기 이해의 자세에 들어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제멋대로 슬퍼했다가, 화났다가 웃었다가 이해했다가. 정말이지 바쁘게 사는 녀석이다.
생각해보면, 내 기억속 아일라는 이런 녀석이 아니었다.
【평민 주제에 누구에게 말을 거는거죠?】
【고작 일격. 그 천 배. 지금부터 당신의 미간에 꽂아드리죠.】
【예. 이건 반역이에요. 당신도, 그 역겨운 레지나 시엘라도, 당신을 감싸고 도는 이브 폰 로엔그린도 전부 다 쓸어버리겠어요.】
음.
으음···.
그때는 진짜 무서운 보스였다. 괜히 뉴비 절단기라고 불린게 아니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아일라는 내가 알던 그 녀석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신입생 환영회.
“신입생 환영회 말이다만 작년에는 아일라와 켈터스가 싸웠었지.”
“네. 그랬었죠. 울프람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아마 일격을 허용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정도로 고평가 하는 건가?”
“당시의 저를 저평가 하는 거랍니다.”
원래라면 켈터스의 기본 공세인 돌파를 막지 못해 일 격을 맞은 아일라의 자존심에 금이 가고, 거기서부터 많은게 꼬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일격을 맞았을수도 있었음을’ 인정했다.
많이 성장했네.
“처음에는 무척이나 날카롭고 주변 모든걸 거절하는 녀석이었는데 말이다.”
“아···.”
“나에게도 월세를 꼬박꼬박 받고 말이다. 지금이야 여유롭지 그때는 월세 맞추는것도 큰 문제였다.”
“아하하. 농담도 참.”
아니.
농담 아닌데요.
“많이 변했구나.”
“네. 많이 변했죠. 그때는 좀 많이 여유가 없었어요. 집안 광산에는 몬스터가 나오지, 레지나 시엘라에게는 이길 방법도 안보이지 몇 년 만에 만난 울프람은 실각했지 ···저 자신은 재능이 부족하니까요.”
“그런가?”
아일라는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야 마법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재능 ‘마력’은 저 둘보다 부족하긴 하다.
하지만 아일라의 재능은 체술과 섞었을 때 나온다.
마력 20으로 22를 잡는건 죽어도 불가능하고, 지금도 이브가 전력을 해방하면 아일라는 그 자리에서 나가 떨어지겠지만, 최상의 타이밍에 급습하면 이브와도 잠깐 비벼볼만 할 거다.
즉.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능을 연마할 수단이 없던 것이지.”
“네. 그리고 울프람이 연마해줬죠. 원석이었던 저를요.”
“······.”
“알고 있나요. 울프람? 원석을 연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보석으로 만들어갈지를 확신하는 거에요. 어떻게 커팅하고 다듬을지. 돌 안에 있는 보석이 어떤 형태일지 강하게 믿는 마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어야 그 끝이 흔들리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울프람은 확신이 있었죠. 제가 이렇게 될 거라는 확신.”
“그랬지.”
“그래서 바뀔 수 있었어요. 바로 옆에서 제가 어떻게 변할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안 바뀌겠어요? 힘들고 괴롭고 ···내 길이 이게 맞나 두려워도 바로 옆에서 본인 이상의 확신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죠.”
거기까지 말하고 아일라는 좀 더 내쪽에 기댔다.
“그랬나.”
“네. 그랬어요. 울프람은 더 낮은 체력. 근력으로도 제가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해냈죠. 스스로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고 반역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그러고보니.
“반역이란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 것. 이라고 했었나.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비춰지지 않았다만? 그저 세상에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던건 내 착각인가?”
“그야···. 그때는 여러모로 심란했다니까요? 반역을 제대로 정의 한 뒤로는 그런 일이 없어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멋지게 해내 보이는 것.
스스로가 해낼 수 있음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것.
거기까지 말한 아일라는 앉은 채로 기지개를 쭉 폈다.
거 참.
언제 봐도 멋지게 살아가는 녀석이다.
게임으로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
그 산증인이 바로 이 녀석이다.
“이렇게 변한 너를 보니 좋구나. 앞으로도 옆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얼마든지요. 그리고 언제든지요!”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구김 하나 없는 환한 미소였다.
***
스피카 트라이스타.
대의(大儀). 왕도(王道)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에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소녀.
가진 바 재능은 언니보다 모자란 마력. 그리고 압도적인 재주. 이 두개지만 마법사에게 마력이 적음은 치명적이고, 재주가 높음은 과연 이점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녀는 순식간에 골렘을 짜올리고 조종하는, 컨트롤에 기반한 전술을 스스로의 길로 삼았다.
그녀의 똑똑한 지능과 마력량. 그리고 재주는 삼위일체를 이루어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골렘 마스터. 울프람 칭하길 워 메이지의 길이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모든것은 얕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브가 골렘이 필요 없는 것은, 빛의 마법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지나가 골렘을 쓰지 않는 것은, 마력으로 조잡하게 만드느니 주먹으로 모두 때려부수는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피카의 길은 누가 뭐라 한들 사도.
그리고 사도는 결국 어느 순간 그 벽에 막힐 수 밖에 없다.
스피카 트라이스타는 벽을 느꼈다.
마력 21.
다음번 자신의 상대. 그 이름도 역겨운 레지나 시엘라.
언니는 어떻게든 마력을 끌어올려 레지나와 싸웠다고 하지만, 자신은 태생이 언니보다 마력이 낮으니 더욱 위험할 수 밖에 없다.
한다면 기습인데 대련에 기습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거기까지 생각하니 스피카는 절로 한숨이 늘어남을 느꼈다.
하지만 걸려있는게 너무 크다.
레지나 시엘라를 밀어내고 정식 파티원에 들어간다.
그 뒤로 원정에서 오라버니와 단 둘이 조를 짠다.
스피카는 현명한 아이다.
파티의 분위기를 살펴보건데 모두가 오라버니에게 마음이 있지만, 가장 위에 있을 언니가 확답을 내리지 못해서 모두가 대시에 꼬인 상황.
결과적으로 서로간에 눈치를 보느라 누구 한 명 진행되지 않은 상태.
소설에서 읽기를 ‘이 관계가 무너지는게 두려워’ 같은 느낌이겠지.
허나 자신은 뉴 페이스. 그 수렁에 들어가면 가뜩이나 경쟁력이 없다.
그러니 공세.
더더욱 큰 공세만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그걸 위해선 우선 오라버니께 유능한 여자라고 인정받아야겠죠.”
하지만 레지나 시엘라의 벽은 크다.
거기에 파티원들은 엄밀히 말하면 전원이 라이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번외 세력의 힘을 빌리면 된다.
“그래서. 스피카 ···양?”
“편하게 불러주세요. 필티아 교수님.”
“으, 응. 그래서 나는 왜 찾은 걸까? 혹시 내 수업을 듣고 싶니? 스피카는 명예 파티원이니까 얼마든지 가능하단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고, 반드시 수업을 들을 생각입니다. 허나 오늘은 그런 이유로 교수님을 찾아뵌게 아니에요.”
“그럼?”
“교수님께서 언니의 마력을 1 올려주셨죠?”
“아일라가 그렇게 말했니?”
“아뇨. 추론이랍니다. 언니는 결코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어머. 어떤 추론을 했니?”
“필티아 블루브리즈 교수님께선 어떤 분인가에 대해 추론했죠. 교수님들의 정보는 생각보다 얻기 쉽거든요. 그 결과 교수님께서는 정말 그 위대한 용왕 란그리스 블루브리즈님의 따님이시며, 초대 황제님의 수양딸이시고, 또한 신화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어머. 그렇구나. 좋은 추리력이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역사서를 탐독한 결과 신화의 종족분들께서는 ···계약자의 마력을 1 올려주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어요.”
“······극히 적게 기록되어있을텐데. 그걸 잘 찾아냈네?”
“가진바 마력은 적고, 머리는 나쁘지 않으니 마력보다 머리가 더 고생해야죠.”
“후후. 그래서? 스피카도 그 시련을 받고 싶은거니?”
“네! 물론이죠!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곧 레지나 시엘라와의 싸움도 있고 그렇게 많은 힘을 쏟을 수 없답니다.”
“어머. 그러면 포기하는 거니?”
“아뇨. 그래서 한 가지 거래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드래곤 상대로 거래는 쉽지 않단다? 우리들이 어떤 종족인지 알잖니?”
그야 욕망의 종족이지.
하지만 스피카는 더 큰 것을 위해 당장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아이.
“단 하루 레지나 시엘라와 싸울때만 마력을 증강시켜주시면 돼요.”
“그래서 뭘 줄거니? 평소라면 아예 말도 안 되지만, 그 추리력에 감탄해서 이야기는 들어줄게.”
“···편의점 앞에 제가 기숙사를 지은거 아시죠?”
“그래. 알고 있지. 설마 거기 방을 주겠다는 거니? 나쁘진 않지만, 조금 부족한걸?”
“보통방이 아니죠. 이걸 봐주세요.”
“······이건? 그림? 아냐, 엄청 정밀한데 대체 뭐니?”
“시야정보를 종이에 투사하는 기술이에요. 즉 이건 전부 ···제가 본 것들이랍니다.”
“············뭐?”
필티아는 스피카가 내민 종이를 몇 번이고 바라봤다.
그림은 울프람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
즉 이걸 직접 봤다는 것은···.
“제가 넘겨드리는 방은, 풍경에서 편의점이 보여요.”
“······즉.”
“네. 그것도 그냥 보이는게 아니라 오라버님의 사무실이 보인답니다. 가끔 창문을 열고 주무실 때는 볼 수 있어요. 오라버니의 자는 모습!”
범죄에 가까운 행위다.
정의를 수호했던 이들의 친딸. 정의의 이름 아래에 세상을 지켰던 분의 수양딸로서 이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됐다.
하지만, 필티아는 이보다 달콤한 제안을 들어본 적 없다.
“하루. 단 하루면 ···넘겨드릴게요. 어떠신가요?”
용왕의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