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18)
417. 하나의 선택
황실 혈통은 말 그대로 하르크의 유전.
삼 백년 전 혼자 수 만의 마족의 모가지를 쳐버린 그의 인자는 단언컨데 이 세상 그 어떤 혈통보다 위대하다.
그러니까 동티어에도 급이 있고, 상하관계가 명백하기 때문에, 윗치 워드가 아무리 1티어라 한들 황실혈통은 이길 수 없다.
저게 나쁜 능력은 아니다. 범용성 면에서는 황실 혈통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다만, 출력에서 황실 혈통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째서? 윽···. 으윽···.”
“【어째서 저항하지? 순응하고 조아려라.】”
“싫어···.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마···. ‘그런 식으로 말 걸지 마!’”
“【두려워 할 거 없다. 자. 받아들여라.】”
시에스타는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아 귀를 막고 오들오들 떤다.
원작에서는 ···이브가 이 꼴이 났었지.
난리도 아니었지. 켈터스가 이브를 찌르질 않나, 이졸데를 폐인으로 만들지않나 하여간 온갖 민폐는 다 끼쳤다.
얘가 왜 어둠루트 히로인인지 문의글도 참 많이 올라왔다. 그걸 저에게 물으시면 어쩌라고요.
뭐 검은깃발 루트는 그만큼 꿈도 희망도 없었다.
어둠으로 떨어진 흑발의 켈터스가 붉은 머플러를 둘러쓰고 얼굴을 가린 채, 세상 모든것을 저주해 비뚤어져 가는 이야기.
엔딩에서는 세계가 멸망한다. 농담이 아니고 마족의 문을 강제로 해방시키고 현 황손중 최강이라는 이브는 이미 켈터스 손에 죽었으며, 필티아 또한 기습적인 정신지배에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 결과 제프린을 기점으로 마족들이 창궐 ···인류는 깔끔하게 멸망했습니다. 엔딩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처분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갈 길이 편해진다.
“뭐에요. 그 눈. 잠깐만요. 우리 아는 사이에요? 우리가 서로 죽이고 죽일 필요가 있을까요?”
“【······】”
조용히 녀석을 내려본다.
여기서 처분한다. 어렵지 않은 결단이다. 죽이면 끝.
이 녀석은 이졸데를 건드렸다.
그리고 타고 올라, 나와 내 주위를 건드릴지도 모른다.
원작 기준으로···.
그래 원작 기준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악녀다.
그러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힉.”
내가 슬쩍 앞으로 다가가자 시에스타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펴보다 이내 에르헬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당신 뭐 하고 있어요. 어서 저를 도우세요!’”
“어머. 저는 마스터의 명령만 듣는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마스터에요. 어서 이 남자를 처리해요!’”
“마스터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죽어라 이 비열한 녀석!”
그리 말하며 에르헬은 즉각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내가 죽으라 명령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가만히 있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이후 그 자리에 기립해서 입으로 ‘응애’ 같은 소리를 내는 에르헬.
자. 이렇게 간단하게 윗치 워드를 풀어냈다. 참 쉽죠?
시에스타는 에르헬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러면 그 세뇌가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 확인시켜드려야지.
“【정말 나를 공격할 생각이었나?】”
“아, 아닙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마스터를 죽이겠어요?”
“【하지만 아까 저 여자를 마스터라 부르지 않았나?】”
“제가요? 저 여자를요? 하하 마스터도 참.”
“【시치미 뗄 생각인가?】”
에르헬은 잠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주저앉아 있는 시에스타를 내려봤다.
“시에스타. 본명은 시에스타 윗치 크래프트 ···마스터를 사칭하는 괘씸한 녀석. 죽어라.”
“······.”
짐짓 진지하게 말하는 에르헬. 그리고 힐끗. 이쪽 눈치를 살핀다.
······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녀석.
처음부터 세뇌에 안 걸렸던거 아닐까?
기회만 보고 배신하려고 했던 거 아닐까?
이런 녀석을 거둬도 될까?
***
잠시 시에스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 시에스타가 바스락거렸다.
“【뭐 하는 짓이지.】”
“불편해서요.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앉아야 하지 않겠어요?”
“【호오. 꽤 건방진 말 아닌가. 내가 그런 자유를 허락했던가?】”
“······죽이실 거라면 방금 저 아이를 이용해 죽였을 테니까, 지금 저화는 대화의 여지가 있다 받아들여도 되겠죠? 제게서 정보를 얻어내든, 협상을 하든 제 앉는 자세와는 별 관계 없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똑똑한 녀석이다.
그래 뭐. 고쳐 앉는것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
“【불허하마. 고개가 높다. 감히 누구와 눈을 마주치려 하는것이냐. 고개를 조아려라】”
“으큭?!”
하지만 그건 제가 허락하고 싶을 때 이야기 아닐까요?
그럼에도 ···아까 시에스타가 한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죽일까. 말까.
사실 이 세상이 게임이었다면, 만악의 근원인 이 녀석은 죽여두는게 맞다.
“【다 귀찮아졌다. 죽···.】”
“히 ···히익.”
하지만.
‘아하하 울프람! 오늘도 반역적인 아침이에요!’
‘이번 물건은 뭔가요? 또 반역적인 거겠죠?’
‘가요. 울프람. 반역이 기다리고 있어요!’
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장차 이브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제프린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놀고 있는 우리들이다.
언젠가 눈치채서 당장에 정리하려 들지도 모른다.
이 세계를 게임으로만 보고 있는 이영진은 이 쓰레기의 목을 이 자리에서 비틀라고 말한다.
쉬운 일이다.
황실 혈통을 켜서, 죽어라. 세 글자만 읊으면 된다.
자. 이 세계는 죽음이 넘쳐난다. 검은 깃발의 인간 하나 죽었다고 누가 눈치 챌 것도 없다.
하지만.
‘저는 이 세상 누구보다 울프람을 믿어요.’
‘저는 빛나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반역의 제1좌!’
‘울프람이 웃었어요?’
‘선배님이 환하게 웃었다고?’
‘울프람?!’
이 자리에서 이 녀석의 목을 치면···.
그 환한 미소들이 함께하는 나날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
후우.
생각을 마쳤다.
대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황실 혈통이 최대로 강화됩니다.】
【험난하지만 드높은 패도의 길을 걷는 당신에게 영광이 함께 할 것입니다.】
“【나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후예.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이름으로 명한다. 중간계를 지키는 이 핏줄 아래에서 평화는 영속될 것이고 위협하는 적은 사그라들 것이다.】”
“···우, 울프람···? 화, 황자······. 아. 아아. 윽······.”
시에스타는 스스로의 운명을 깨달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인간이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깨달은 거겠지.
그래. 그렇다.
나는 그저 내가 믿는 길을 행할 뿐.
협상 또한 내가 손을 내밀어야 처음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시에스타 윗치 크래프트에게 명령한다.】”
“······!”
그러니, 이건 결론이고 결단이며 집행이다.
***
집행이 끝나고 【황실 혈통】의 지속시간 또한 끝났다.
“지치는 군.”
“괜찮으신가요. 마스터?”
“괜찮다. 잠시 나를 지키고 서 있도록, 조금만 있으면 회복할 수 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직 한 단어 정도는 더 말 할 수 있으니 허튼 짓 하지 마라.”
“정말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 말하며 에르헬을 힐끗 봤다. 이 녀석, 또 배신하려는 속셈이었나.
아무튼 황실 혈통에 의한 탈진은 조금만 쉬면 회복되는 편이다. 체력보다야 낫지.
터오르는 동을 보며, 나를 지키고 서있던 에르헬이 물었다.
“마스터께서는 그걸로 만족하십니까?”
“만족한다. 최선의 결론이었다.”
“으음. ···그렇다면 저도 여러 말 안 하겠습니다.”
그래.
만족한다.
【시에스타 윗치 크래프트에게 명령한다.】
【그 어디서도 나의 정체를 입에 담거나 추론하게끔 만드는 행위는 불허한다.】
【지금부터 너의 윗치 워드는 철저하게 내 관리하게 놓일 것이다.】
【네가 윗치 워드를 써야할 대상은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시 형을 집행한다.】
【너의 모든 기술. 마법. 저주는 모두 나의 명령 아래에서만 쓰일 것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너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위 모든 조항에 대한 반역은 금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어길경우 ···지금까지 걸어왔던 저주의 대상들이 했던 짓을 너는 처음부터 반복하게 된다.】
시에스타는 ···처음에는 살려준다는 말에 기뻐하다가 이내 창백해졌다.
그래.
“차, 차라리 죽여요! 죽이란 말이에요!”
“【거절한다. 승자에게는 패자를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
“···으, 으으. 제, 제가 거부하거나하면···.”
“그래.”
“알몸으로 교실에서 만월 도끼춤을 추거나···. 울면서 대학원 싫다.라고 바닥에서 구르거나 ···해야 하잖아요!”
“그렇다만?”
“아, 그래도 대학원생이 되기 싫다고 오열하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해도···.”
“그럴리가 없지 않나.”
“······?”
나는 시에스타를 내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대학원이 싫다고 오열할거면 대학원에 가야지. 1학년부터 입학해서 대학원을 목표로 4년간 공부하고 이후 진학해 오열하면 그때 끝난다.”
“······아, 악마···.”
그렇게. 시에스타는 탈진했고, 제프린은 지켜졌다.
이졸데, 보고있나.
복수는 끝났어···. 전부 ···끝난거야.
아무튼.
그렇게 시에스타는 터덜거리며 지팡이를 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끝으로 에르헬이 굽실거렸다.
“에헤헤. 마스터. 나중에 잘 되시면 저에게도 한 자리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멸사봉공하여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그건.”
“···아, 많은거 바라는 거 아닙니다. 블랙 마켓 내에서 이권 조금만 맡겨주시면 제가 철저하게 관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 이 말이다.”
“······어. 음. 마스터. 그러니까 ···블랙 마켓을 전부 손아귀에 거머쥐겠다, 그런 야심이 있으신게 아니었나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 그야 저야 검은 깃발 내에서도 고독한 늑대였지만 시에스타는 세력도 크잖아요? 쟤는 웬만해서 건드리기 싫은데요.”
“······그래서 내가 시에스타를 휘하에 둔 것이 블랙 마켓의 정복의 첫 걸음이다. 그리 생각한건가?”
“예에···.”
아닌가요? 하며 에르헬은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픽 웃었다.
그런가.
그렇게 보일수도 있구나.
하긴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 그렇다면···.”
“하지만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하면 권한을 나눠줄 수 없다. 알겠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검은 깃발의 간부를 전원 손에 넣는다.
모두가 아일라처럼 알아서 갱생될리는 없지만, 황실 혈통과 함께하는 최면 갱생 엔딩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갱생이 별거야? 최면걸고 세뇌하고 사회에 도움되면 갱생이지.
안 그래?
***
그렇게 겨우 몸을 추스릴 정도가 되자 잽싸게 편의점으로 향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나 오라 하여도 집이 최고라는 노래 구절마냥 그냥 편의점에서 한 잠 자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편의점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온 그 느낌.
“······.”
시에스타를 죽이지 않은 선택.
솔직히 잘 모르겠다.
최대한 금제를 걸긴 했고, 쉽게 풀릴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모종의 방법으로 금제를 풀어내면 어쩌지.
그런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후우.
아직도 머리가 피곤하다. 일단 쉬어야···.
그리 생각하며 사무실 쪽을 향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프라암. 돌아왔나요?”
“아일라? 왜 여기에 있지?”
아일라가 사무실 안쪽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아하하···. 어제 밤에 문득 떠오른 아일랜드 설계도를 상담하려고 왔는데 말이죠오···. 와보니까 울프람은 없고, 밤은 깊어져서 저도 모르게···.”
“그런가.”
“네에. 울프람은요?”
“용무가 있어서 잠시 외부에 나갔다 왔다. 미안하군. 연락이 늦었다.”
내가 나가서 밤을 새고 왔다는 말에, 아일라는 정신을 차리고 내 앞에 바짝 붙었다.
“다친 곳은 없나요? 피곤해 보여요. 괜찮은거죠?”
“괜찮다. 다친 곳도 없고 멀쩡하다.”
“···그래요. 후후. 다행이네요. 그럼 밤을 샌 건가요?”
“그렇게 되겠지. 조금 졸리구나.”
“···아하하. 사실 저도 울프람이 없어서 어제 조금 늦게 잤더니 졸리네요.”
“그런가.”
“네에.”
······.
그리 말하면서, 졸린 눈으로도 환하게 웃는 아일라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래 뭐.
이 웃음을 보니 다 별 상관 없어졌다.
이 녀석의 환한 미소 앞에서, 나도 거리낌 없이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나.
그리 단정짓고, 아일라를 바라봤다.
잠시 마주보고 웃다가 이내 녀석이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잘 자요. 울프람.”
“읏. 이것 참···. 밤 새고 온 나보다 네가 먼저 잠들면 ···아일라? ···벌써 잠들었나.”
“···헤.”
거 참.
사람 속도 모르고 말이야. 편하게 잠들기나 하고.
“이거 ···나도 쉽지 않군.”
창 머너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 속에 옆에 어떻게든 아일라를 앉히고, 나도 그 옆에 앉아 벽에 기댔다.
【황실 혈통을 발동할 기력이 없습니다.】
【수면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래.
말 안해도 알고 있어,
“잘 자요. 울프람···.”
“···음. 잘 자라.”
잠꼬대에 적당히 대답해 준 뒤
그렇게 우리는 어깨를 마주한 뒤 잠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