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19)
418.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며칠 후.
시에스타가 보고를 하러 찾아왔다.
편의점으로 찾아오는것은 생각보다 눈에 너무 띈다.
특히 아일라도 그렇고, 바로 앞에 기숙사가 생겨서 필티아도 날아다닌다.
필티아가 시에스타를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면 또 많이 곤란하다. 시에스타의 사지가 전기분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마녀.
그리고 마녀는 ···보통 마족이랑 계약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시에스타의 사지를 보호할 겸 우리는 블랙 마켓에서 서로의 모습을 감추고 만나기로 했다.
골목의 모서리에서 서로 모르는 척 대화를 나누고, 몰래 용지를 건네준다.
이거 좀 스파이 물같아서 멋있긴 하네.
“이게 검은 깃발의 간부 목록인가.”
“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 전부랍니다.”
“잠시 확인하도록 하지.”
“네.”
음. 그렇구나.
시에스타는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적어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검은 깃발의 간부들 정보.
당연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간부들도 있었다.
“한 가지 묻지. 이 문서에 거짓말은 없겠지?”
“후후. 감히 누구 앞에서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나요? 상호 신뢰는 필수에요. 당신은 ···제 목을 언제든지 꺾어버릴 수 있는 남자니까.”
“그런가.”
살짝 경직된 목소리로, 더할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누가 봐도 겁먹은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믿도록 하지.”
“네. 믿으세요. 애당초 나는 그 룰의 강제성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당신을 배반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씩 웃었고, 그녀 또한 나에게서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로 일관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너의 영혼을 강제하겠다】”
“아? 자, 잠깐만요. 대체 왜···.”
뭐라는거야 이 거짓말쟁이야.
“【만약 이 안에 나를 기만한 정보가 있다면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구토해라. 아니면 내가 대신 구토하도록 하지.】”
“윽. 자 잠깐···.”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시에스타는 등을 올렸다.
그리고.
별빛이 폭포가 되었다.
“구으웨에에에에엑.”
“······.”
“···아, 아뇨. 이 우, 으윽 그으으으에엑.”
“진실된 정보. 신뢰만이 필요한 우리 사이에 거짓말이 들어가는 것은 나도 심히 염려되며 슬픈 일이구나.”
“아뇨 그 으 게 에에에에엑···.”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 녀석은 싸이코패스다.
초면인 사람에게 세뇌를 걸어서 죽으라고 명령할 정도의 인간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함정을 팠다.
내가 걸었던 조항 중 하나.
【또한 정기적으로 너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할 수 있다】는 결코 강제가 아니며 이 여자는 얼마든지 정보를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름 똑똑한 여자니까 그렇게 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우회 루트를 타기 전에 알기 쉬운 함정을 파고 시험해 본 거다.
아니면 말고.
어차피 아무것도 안 먹고 나와서 토 할 염려도 없다.
하지만 우리 시에스타양은 아주 든든하게 드셨나봐요.
“속이 뒤집히는 기분은 어떻지?”
“으그···다, 다 설명···할 ···할게요. 할 테니까 ···이, 이것좀 그 우, 우으으에···.”
그나저나.
뒤로 돌고 하라고 하긴 했지만···.
기분 나쁘다.
“다음부터는 다른 징벌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이 좋을지···. 이런 추잡하고 끔직한 건 하면 안 되겠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긍심도 없어 보이지 않나.”
“그, 그럼 제발 지, 지금이라도 멈춰어어으에···.”
“그건 안 될 말이다. 좀 더 반성하도록.”
“이 이래선 반성도···우그, 으, 극···. 그에에에엑”
서류를 다시 눈으로 훑으며 귓가로는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더럽기 그지 없다.
어쩜 이런 곳에서 저런 저열한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수치심도 없나?”
“누구 때문으에에에엑”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구라치다 걸린 네가 잘못이지.
***
물론 아예 소득이 없진 않았다.
결국엔 시에스타가 빌었기에 살려줬고, 그 결과 진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시에스타의 루트에 들어갈 수 있는건 3학년 말기.
즉 켈터스 기준으로도 아직 2년여가 남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지금은 세대 교체 직전.
시에스타가 다른 검은 깃발 간부들을 사살하면서 세력을 합병하기 직전이라는 의미.
그 자리를 내가 꿀꺽하면 내가 어둠의 대부가 된다는 거 아니겠냐고.
검은 깃발 간부들 중에는 제대로 된 사람새끼가 없다.
일진도 이런 일진이 없고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어요.
그나마 에르헬 정도가 방구석 찐따라 음습하게 노는 것 뿐 나머지는 온갖 범죄에 손을 댔다.
그러니까 내가 한 명의 지도 교사가 되어서 정신봉을 들고 줄빠따를 칠 수 밖에 없잖아?
개새끼는 개새끼여도, 내가 키우는 개새끼면 된다는 느낌으로 가자고.
처음으로 누구의 멱을 따야 깔끔해질까. 우선 블랙 마켓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새끼들부터 싹 다 잡아 조져놓을까.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편의점 문이 열리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밝은 인사로구나 밀푀유. 좋은 일이 있었나?”
내 물음에 밀푀유는 에헤! 하고서 가슴을 쫙 폈다.
“자 보세요! 짜잔!”
평소보다 조금 들뜬 목소리.
그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가슴께에 달려 있는 ···우리 편의점 파티원을 상징하는 늑대문양 배지 옆.
교차된 검 위에 포효하는 사자 문양의 엠블램.
“학생회 정규 멤버의 앰블램이로구나.”
“네! 오늘부터 저는 제프린 학생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밀푀유는 후후 웃으며 경례를 올렸다.
저 엠블램도 그립네 이브 빼고는 다 하고 다녔지.
이브 녀석은 ‘천하에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저 자신을 증명해야 하죠.’ 라는 말로 앰블렘을 달지 않았지만, 휘하 학생회 멤버들에게는 자신의 증명 수단이자 꽤 중요한 상징이다.
“축하한다. 밀푀유.”
“네!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걱정된다.
이 녀석은 올곧고 ···그만큼 요령을 피우지 않는다.
우직하게 돌진하는 성격이다보니 무리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학생회와 편의점을 양립 하려면 어렵지 않을까 싶다만 할 수 있겠나?”
“노력해서 해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 이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녀석이다.
밀푀유에게 학생회도 편의점도 힘내라고 한 것은 나다.
지금은 순수하게 축하해주자.
그러고보니.
“그래서 이브는 너에게 어떤 직책을 맡겼지?”
“음. 일단은 올해는 일을 배우고, 내년에는 프로젝트를 직접 지휘해보고 그 다음 해에는 분기별 업무를 전부 해보라고 하셨어요. 아, 그리고 앰블렘도 직접 달아주셨어요.”
“······그런가.”
이거.
원작에서 이브 루트에 돌입해 학생회에 들어간 켈터스에게 직접 해준 말이다.
그리고 켈터스가 정확하게 저렇게 일을 해낸다.
“그런가. 그렇게 되었나.”
정말 이브 안에서는 ···켈터스가 아니라 밀푀유가 더 소중한 후배가 되었나.
그리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선배님···?”
“아니다. 이브는 너를 실로 중히 쓸 생각인가 보구나. 좋은 일이야.”
“감사합니다!”
물론.
학생회가 은근슬쩍 밀푀유를 가로채려고 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밀푀유는 편의점에도 필수불가결한 인물이니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도록.】
이브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나는 파티창을 껐다.
***
갑작스럽게 울프람이 던진 메세지를 보고 학생회실에 혼자 있던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는 거야 진짜. 감사하지는 못 할 망정. 이 쓰레기가.”
정말 쓰레기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감사 인사 한 마디와 최고급 사탕을 두 박스 정도 보내지 않고 불평만 말할 수 있는가.
사과맛 사탕을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이브는 투덜거렸다.
“누구 잘 되라고 하는건데 진짜.”
놀랍게도.
이브는 울프람을 ‘배려’ 했다.
낮에 있었던 밀푀유의 임명식. 그 이후 단 둘이서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축하해요. 밀푀유. 이걸로 당신은 이 제프린의 학생회 멤버 중 한 명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 앞으로 제프린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에요. 그게 당신에게도 큰 기회가 될 테니까요. 제 입으로 말하기도 그렇지만 이 학생회 멤버가 된다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제프린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학생회 멤버였다는 이유만으로 대접받죠.’
‘네, 네에.’
‘현실감이 없나요? 좀 더 실리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실리적인 ···이야기요?’
‘잘 들어요. 이건 울프람과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에요.’
‘잘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브는 학생회 멤버가 어떤건지에 대해 설명했다.
학생회의 일원이 된다는 건 동 깃수. 동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만 모아놓은 이 제프린에서도 한 줌 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
학년 수석. 학생회 멤버. 훌륭한 성적.
그 모든것이 조화되면···.
‘당신은 이 제프린을 졸업해도, 당당하게 울프람을 보좌할 수 있어요. 그걸 바라고 있죠?’
‘······네, 네헤?!’
‘그걸 위해 학생회 멤버가 되어서 큰 프로젝트를 맡고, 나중에 최소 부 학생회장까지 올라가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못할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브레 가문은 계급이 높지 않아요. 저는 개인의 재능을 계급으로 평가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이 세상은 가문부터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멍청이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학생회에요. 여기서 무언가를 역임했다는 것은 ···장차 당신에게 큰 무기가 된답니다.’
‘···아.’
‘울프람. 그 남자는 지금까지 제국에 없던 사업을 할거에요. 험난한 길이죠. 기존의 귀족들은 반발할 거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으로 울프람을 깎아 내릴 거에요. 울프람은 신경쓰지 않겠지만 ···당신도 신경 쓰지 않고 버틸 자신이 있나요?’
‘······그래서, 부회장을 하라고 하신 거군요. 제 계급을 위해.’
‘예. 대학원을 보세요. 개미지옥인 걸 알면서도 학부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평민으로는 계급의 벽을 깨트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대학원생이 되어서 교수위를 받으면 자동으로 당대 한정 하급 귀족위가 주어지니까요. ···제국은 그런 곳이에요. 아주 쓰레기 같죠?’
‘······.’
‘결과에 따라서는 졸업 이후 무난하게만 간다면 중앙의 준백작까지는 받을 수 있을거에요. 음. 네프티와 비슷한 계급이죠. 당신은 태생이 귀족이니까 결격 사유도 없어요. 편애한다는 인식은 살 수 있겠지만 그건 실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랍니다.’
‘······.’
‘좋은 눈빛이네요. 목표를 위해 권력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야심가의 눈이에요.’
‘감사합니다.’
‘울프람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그의 곁에 있고 싶다면 반드시 실적을 쌓아서 부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목표하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꼭 해내겠습니다!’
그리 말하고 밀푀유는 본심이 들켜서 새빨개진 얼굴로도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호간의 합의가 끝나고 밀푀유가 나간 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회장. 이라고 말했던가.
높은 곳이다.
허나 정점은 아니다.
기왕 할 거라면···.
“제 다음으로 황가에 피를 이은 아이는 올해로 다섯 살. 제프린의 학생회장을 맡기에는 너무나 이르죠. 그러면 제가 추천장을 쓸 기회가 오겠죠.”
즉.
전대 학생회장의 권한에 의한 임시 학생회장 임명서.
“부회장에서 끝나기엔 아쉬운 인재니까요.”
원래라면 여기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부회장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리 생각했다.
허나.
얼마 전 울프람이 한가득 쌓아 가지고 온 뇌물에,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 버린 감이 없잖아 있었다.
‘받아라. 제작하며 남은 물약들이다. 체력과 마력을 고정치가 아니라 비율로 회복해주지. 전부 회복하려면 서른 병은 마셔야겠지만 ···말해두는데 그 정도로 마시면 물약중독에 걸린다. 하루 두 병 까지 마시도록.’
그리 말하며, 울프람이 건네준 포션.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실로 그 효과가 굉장했다.
밤을 새서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다니!
그런 은혜를 울프람에게 받다니!
“그 남자에게 빚을 지고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죠.”
울프람은 눈 앞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브는 혀를 빼꼼 내밀었다.
“아무는. 이걸로 빚은 다 갚은거니까 나중에 따지면 죽여버릴거에요.”
띵.
검지로 책상 위 빈 병을 한 번 튕기곤 소리 내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