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20)
419. 살찐 기미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의 정신상태를 수치로 표기할 수 있다면, 주군에 대한 충의가 대충 3할쯤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도 완화된 편으로 이전에는 틀림없이 5할 이상을 이브 생각을 하며 살았다.
밥은 잘 먹고 있을지, 친구들과 싸우진 않았을지. 어디서 해코지는 당하지 않았을지.
충신이라기 보단 터울이 많은 여동생을 아끼는 언니의 입장 같았지만, 기실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이브의 특이한 태생과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외톨이 둘이 만나 서로 친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브는 ···냉정한 외견 대비 굉장히 여리고 나이 또래에 맞는 부분도 가지고 있기에 실피아는 그런 이브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자신이 졸업하면 제프린에서 그나마 이브를 챙겨줄 수 있는건 울프람 밖에 없기 때문에, 이브와의 화해를 주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었다.
허나 결과적으로 자신이 제프린을 졸업 했음에도 다른 파티원과 자리를 교대해 이브와 직접 만날 수 있는 【포메이션 체인지】 덕분에 이브와 직접 대면할 수 있었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3할.
최근 이브 외에도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한 녀석 때문에 5할에서 3할 정도로 줄었다. 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묘하게 객관화가 잘 되어 있구나, 하고 스스로 어깨를 으쓱해버릴 정도다.
그래서 오늘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멋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그 허약한 남자 말고, 주군. 이브 폰 로엔그린과 대면을 하는 날.
포메이션 체인지는 그 뒤로 지속시간이 늘어 하루 삼십 분 정도 교대할 수 있다.
원래라면 착한 후배인 밀푀유 네프티. 재미있으니 상관 없다는 루디카와 종종 교대했지만 오늘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원 일이 바쁜 모양.
결국 울프람과 교대하는 것으로 실피아는 오늘도 이브를 만날 수 있었다.
다만 교대하는 장소가 ···자신의 방이라는게 곤란하다. 자신이 학생회실로 날아가면 울프람은 자신의 방으로 날아온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눈치채기라도 하면 무척이나 피곤해진다. 특히 자신의 입장상 ···이브 폰 로엔그린의 수하는 공간이동을 쓸 수 있는 대 마도사였습니다. 혹은 이브는 수하를 공간이동 시킬 수 있더군요. 라면서 상대 황족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해봐라.
차라리 울프람을 자기 방으로 부르고 말지.
그리 생각한 실피아는 힐끗, 방 내부를 바라봤다.
깔끔한 청소. 아마 ···그 남자 성격상 다른 곳은 건드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만 ···그럼에도 자기 방에 남자를 부른다는 사실에, 심지어 거기에 자신은 없다는 기묘한 현상에 결국 한숨으로 응수할 수 밖에 없었다.
【준비 됐다. 울프람. 언제든지 옮겨다오.】
남자 ···울프람은 메세지를 보고 아마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애당초 그런 남자다. 무미 무취하고 건조하지만 그럼에도 파티원을 신경쓰는···.
“아니. 아니지. 아무튼. 아무트은···!”
마지막으로 속옷을 넣어뒀던 서랍장을 힐끗 보고, 실피아는 울프람과 그 위치를 교대했다.
***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의 방은 본인의 성정을 나타내듯 깔끔하기 그지 없었다.
모든 것에 ‘각’이 맞춰져 있다고 해야 하나. 본인의 성격이 아주 잘 드러나는 방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방에 들어와 헤집어 놓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테이블 위에 쪽지가 하나 놓여 있다. ‘어지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있다 가도록. 다과세트는 준비해 뒀다.’
고마운 배려다. 의자를 꺼내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저쪽은 저쪽대로 주종간에 즐거운 대화를 보내고 있겠지.
“아니. 아니지.”
주종이라기보단 실로 남매같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고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편의점에 있으면 아무래도 연구나 공부를 하게 되는 법.
이렇게 완전히 정리된 남의 방에서 독서를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것 참.”
놀랍게도 실피아의 방은 남의 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온했다.
***
이브는 오래간만에 만난 자신의 로열가드를 앞에 두고서 꽤나 풀어진 표정을 지었다.
실피아 또한 이 시간을 기다려 왔는지 꽤나 자상한 얼굴로 주인을 마주했다.
“그래서 실피아. 밖은 어떤가요?”
“그리 대단할 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브 님께서 졸업하신 이후 천명하시기 전까지는 다들 관망할 듯 합니다.”
“저라는 패를 손에 넣으면 훌륭한 조커가 되지만, 조커가 스스로 날뛰기 시작하면 우선 진의부터 파악해보겠다. 겁쟁이들이네요.”
그리 말하고 이브는 어깨를 으쓱했고, 실피아도 그에 맞춰 웃어버렸다.
“그럼 남은 제프린 2년을 즐기도록 할까요. 고작 2년으로 어떻게 될 레이스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포션을 한 잔 들이켰고, 그 모습을 본 실피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약입니까? 평소 안 드시던 걸 드시는 듯 합니다.”
“그 남자가 만들어줬어요. 인정하긴 싫지만 ···꽤 괜찮은 효능이 있더군요.”
“허나 시판되는 물약은 어떤 것도 이브 님의 마력에 도움이 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울프람의 말로는 ···비율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해요. 시중에 시판되는 물약은 최상위라도 1만이라고 친다면, 제가 이걸 마시면 대충 30만정도 회복된다고 하네요.”
“······그건 즉.”
“예에.”
실피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즉.
울프람은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마력량의 수치화를 해낸 것이다.
마력을 단계별로 분류한다. 이브가 22단계다. 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납득이 가는 분석법이다.
하지만 그걸 정확한 양으로 비교하는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이브 님의 마력량이 몇이라고 했죠?”
“지금 시점에서는 삼백만 조금 넘는다고 하는군요.”
“삼백 만.”
“네. 레지나가 백이십만이라고 하고요.”
그리 말하니 또 납득이 간다.
그 남자는 여유롭게 살지 대충 말하지는 않는 타입이기 때문에, 저 또한 근거가 있어 한 말이겠지.
즉.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마력의 완전 수치화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군요.”
대체 어디서 그런 능력을 손에 넣었는지. 실피아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나중에 붙잡아서 지하실에 가둬놓고 일만 시켜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전부 뜯어내던가 해야겠어요.”
“후후.”
이브의 투덜거림에 실피아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서 웃어버렸고, 결국 가늘게 눈을 떠 이쪽을 보는 주군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뭐. 그 남자의 망할 세력이 너무 강해서 어려운 이야기긴 하지만요.”
“예에.”
“뭔가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군.”
쿡쿡. 입을 가리고 웃은 실피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가둔다.
뭐, 이브라면 불가능하진 않을거다.
지금 울프람의 세력 내 인물들은 다들 비범하기 그지 없지만, 단순 화력으로 이브를 이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티아 블루브리즈와 엘피라네는 제프린 밖으로 빠져나가면 따라올 수 없고,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가진 바 세력이 강한 것이지 본인의 실력은 이브에게 못 미친다.
그나마 이브와 대등해 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하면 루디카 핫산 샤도우 정도인데···. 그거야 서로 정면에서 치고받으면 이브도 충분히 할 말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브가 울프람을 때려 눕힐 수 있냐 없냐. 라고 물으면 ···상황 여하에 따라 불가능하지는 않다. 라고 대답하리라.
물론 울프람은 지나치게 강하긴 하지만 그게 완전한 공간 단위 마법을 막을 정도의 실력이냐고 물으면 ···그게 가능한 건 루디카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브는 지금 울프람을 적대할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심술부려 보는 것이다.
“주군.”
“뭔가요?”
“얼굴이 참 좋아보입니다. 다행이네요.”
“······네? 그게 무슨 의미죠?”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슬슬 울프람과 교대할 시간이군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잠깐만요. 잠깐. 실피아? 잠깐만요?”
남매의 관계는 우호.
이걸 안 것 만으로도, 한동안 제프린쪽에 신경쓰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실피아는 그리 생각하며 울프람과 다시 교대했다.
***
실피아 – 이브가 울프람의 스킬로 제프린 밖과 안을 왔다갔다 한다고 치면 그런 짓을 하지 않고도 꽤나 자주 만나는 또 다른 주종 – 자매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루디카. 듣고 있어요?”
“응. 듣고 있는데?”
손목을 가볍게 털며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언니의 잔소리에 어깨를 으쓱했다.
“최근 루디카의 표정이 풀어진 건 좋아요. 언니로서 엄청 기뻐요. 하지만 문제가 있는거 알고 있나요?”
“문제? 내가 암살 일을 대충 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 말하며 루디카의 눈이 가라앉았다.
핫산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그건 삼백년 가계(家系)의 명예가 걸린 일.
아무리 세실이 루디카의 언니라고 하고, 루디카도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 한들 핫산의 업무에 지시를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루디카 스스로가 자신이 녹슬었다 생각하지 않은 이상. 그 어떤 조언도 핫산에게는 무의미하다.
루디카는 단검을 빙글 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족 소환 의식을 펼치려고 하는 흑마술사 열 다섯을 처리하고 제물로 쓰일 뻔 한 사람들 삼백을 구했어. 이 이상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데?”
루디카의 자신만만한 그 말에 세실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응?”
암살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어둠에서 세계를 지키고 사람을 구하고. 좋아요. 그건 우리 단검의 일이고 삼 백년간 이어진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 루디카 핫산 샤도우라는 인간의 행복은 어디로 갔죠?”
“······그, 그건 음.”
“잘 들어요. 루디카. 이제 우리는 황실의 도구가 아니에요. 이브 님이 황제가 되고 울프람님이 그 곁을 지킨다면 대등한 십이장로가 아니라 단검 휘하 열 한 가문이 될 걸요? 지팡이는 시엘라에서 트라이스타로 옮겨가고요.”
“그야 그렇겠지?”
“그럼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그냥 단검 가문의 핫산으로 끝나는 거에요? 평생 독신으로 살 건가요?”
“으.”
그제야 루디카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단검을 축 늘어트렸다.
“잘 들어요. 사랑은 전쟁이고 승자는 한 명이에요. 울프람 님 곁에 아일라 트라이스타님이 계신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두 분은 잘 어울린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죠. 그렇죠?”
세실의 날카로운 비수에 루디카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래. 그렇다.
울프람과 아일라는 잘 어울린다. 잘 어울리지만···.
그리 생각하는 루디카 앞에, 세실이 단언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루디카는 그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 할 건 가요?”
“······아?”
“잘 어울리는건 잘 어울리는 것. 하지만 루디카는 안 어울리나요? 어둠에서는 이 제국을 지탱하고, 겉으로는 행복한 부부. 그게 안 어울려요? 잘 생각해봐요. 루디카.”
“······으, 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생각이 멈춘다.
“그러니까. 지금은 암살 일은 저에게 맡겨두고 울프람 황자님께 잘 보일 궁리부터 하세요.”
“잘 보일 궁리라면 ···뭘 하라는 거야?”
“사실 그 분은 눈치라고는 없고 연심 대신 연구심을 뇌에 박아넣으셔서 여성으로 보이기 보다는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보이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으, 응.”
“그러니까 제프린 내에서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이름이 드높아지만, 그 분께서도 역시 루디카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아.”
그 말에 루디카는 크게 깨달아 고개를 끄덕였고, 세실은 미소로 답했다.
“힘 내요. 루디카. 루디카가 행복해 져야 해요.”
“응···. 고마워 세실.”
“뭘요. 루디카가 잘 되어야 저도 한 입 크게···.”
“응?”
“아뇨. 자. 힘내죠. 루디카!”
“으, 응.”
세실 샤도우의 미소에,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리고.
마신제 접수장.
“···세실이 제가 보기 좋아졌다고 한 건 ···그러니까. 살이 쪘다는 말을 돌려서 한 거죠? 후우. 그래. 여기서 노력하면 살이 빠지지 않을까?”
역사에 다시 없을 초대 황제의 마력을 이은 소녀. 이브 폰 로엔그린과.
“···이 제프린에서 명성을 쉽게 얻는 것은, 역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최강임을 증명하는 거겠지? 응. 울프람이 다시 보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같은, 초대 핫산에 준한다고 알려진 재주의 보유자. 루디카 핫산 샤도우.
각기 다른 시간이었기에 둘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신제에 접수 하시겠습니까?”
“예. 하겠어요.”
“응. 부탁한다.”
현 제프린 최강자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이 둘이.
적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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