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30)
429. 황혼에 물든 시간
마계의 문.
엔드 컨텐츠 중 하나이자, 일종의 챌린지 컨텐츠. 혹은 퍼즐 던전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맵은 고인물들도 도전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여덟개의 문. 여덟개의 시련. 여덟개의 기믹.
하여간 쉬운 거라고는 하나도 없고, 고인물들도 치를 떨 정도로 귀찮고 짜증나는 던전.
마계의문을 순수하게 파티 플레이로 클리어한 유저를 보통 고인물의 진입이라고 칭한다. 뉴비가 ‘마계의 문 퍼클(퍼스트 클리어)했어요.’ 라고 하면 댓글에 ‘썩었네’ ‘고였네’ ‘뉴비 ㅇㄷ’ 써주는게 국룰이었으니까 말이야.
허나 퍼클은 어디까지나 퍼클일뿐이고, 고이기 시작하면 그것도 이제 어선으로 변한다.
마계의 문도 제 집 앞마당 드나들듯 돌아다니며 놀기 시작하는 썩은물들은 바퀴. 횟수. 혹은 릴이나 어선이라고 부르며 하루 몇 바퀴 마계의문을 돌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물론 강제 기믹 파훼. 여러 버그 플레이 등 재미있는 잡기술이 많았지만, 마계의 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상상’이다.
예를 들면, 첫 번째 문은 ‘방어’의 문.
시간 내로 누적딜이 일정량을 넘어서야만 봉인이 파괴된다.
그렇다면, 이 곳에 보석 폭탄을 던지면 어떨까.
반입할 수 있는 아이템에는 제한이 없지만, 그게 없다는 가정 하에 보석 폭탄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면 어떨까.
아 진짜 폭탄만 있으면 한 방 컷인데 ···같은 소리를 하게 된다.
그래. 맞다.
내 공략은 정공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딜량으로 뚫을 수가 없는걸.
이브도 아직 1차고 ···다른 애들도 전체적으로 1차 선에서 멈춰있다.
그나마 2차에 근접한게 루디카인데 암살자가 폭딜용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폭탄이다.
더욱 크고, 아름다운 폭탄이 필요하다.
“준비 됐나요?”
“물론이다.”
“자. 기폭!”
우리는 폭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폭탄을 터트렸다.
폭발음이 너무나 크면, 쾅 소리로 끝나지 않는다.
구우우우우우우웅!!
대기가 울부짖고, 대지가 떨린다. 폭음이 퍼져 하늘로 피어오른다.
말 그대로 두 다리로 서있기 힘들 정도의 충격.
“나쁘지 않군.”
“좀 더 위력을 키워볼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라가 갸웃했다.
“여기서 더요? ···제프린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학생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그것도 그렇네요.”
단호한 말에 아일라는 픽 웃었다.
자. 폭탄의 제조는 아일라에게 맡긴다.
다음은, 네프티인가.
***
포메이션 체인지 타이밍은 전적으로 내가 잡는다.
즉 네프티는 돌입해서 버튼만 누르면, 그때부터 기폭까지 타이밍이 전부 나에게 전송되고 내가 이동해서 끝마친다. 라는 개념이다.
네프티가 위험할 일은 없다. 폭탄과 포메이션 체인지는 마계의 문에서만 써본 적 없을 뿐이지 수 만 번 이상 해왔다. 거기에 백대캔은 오죽 많이했나, 이 게임의 모든 꼼수는 내 손 안에 있다.
하지만.
“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괜찮다.”
“하지만 폭탄 보셨죠?! 가, 가는 길에 폭발이라도 하면 저는···.”
“그럴 일 없다. 걱정하지 말도록.”
“선배니임···.”
우리 탱커는 생각보다 많이 무서운 듯 하다.
“두렵나.”
“죽는건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면···.”
음.
그런가.
하지만 동시에 이해도 한다.
나 정도의 썩은물 ···이 아니라 이 게임을 꿰고 있는 테크니션이 아니라면 당연히 두렵겠지.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없앨 수단을 강구해야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두렵지 않게 해주마.”
“네, 네?”
“무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네프티의 머리를 살짝 세게 쓰다듬자 아우.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약한 척 하기는. 육체 자체는 나보다 몇 배는 강하면서.
애당초 탱커들의 생명력은 같은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어도 가중치가 훨씬 크게 붙는다.
아일라는 시중에 풀리는 중갑옷을 입을 수 없고, 방패도 들 수 없다. 그건 근력이 아무리 높아도 마법사인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선배님 어디 가시나요?”
“잠깐 만날 사람이 있다. 조금만 기다리도록.”
어디.
이 공략은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공략이 끝나면 가장 큰 보상을 받는 것은 그녀석이니까.
당사자에게도 책임을 좀 지라고 할까.
***
그 뒤로 발걸음을 옮겨 찾아간 곳은, 필티아의 집무실이었다.
“필티아 있나?”
“응···. 있는데.”
집무실에서 필티아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봄을 지나, 봄이 한창때의 제프린은 생각보다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건만, 해는 바다를 건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무슨 일 있나?”
“응? 아니? 아무 일 없는데.”
“그런가.”
“응···.”
나는 필티아 옆에 착, 하고 앉아서 같이 창 밖을 바라봤다.
그러고 싶을 때가 있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을 타고 싶을때가.
그 마음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동생.”
“뭐지?”
“이제 진짜, 마계의 문 공략에 나서는거지?”
“몇 번이나 그렇다고 말하지 않나.”
“···그렇구나. 그러면, 정말로 누나는 풀려나는 거구나.”
“싫은가?”
“아니 좋아. 좋은데 ···잘 실감이 안 나네. 여기서 벗어날 수 있구나···. 그렇구나. 파파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삼 백년 전 분이다. 그 분의 무용을 생각하면 살아는 계실수는 있지만, 어디 계신지는 아무도모르지 않나?”
“파파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던가···. 휘잉. 날아서 말이야.”
진심이냐.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대륙이 얼마나 큰데 여행을 가겠다고?
“아무리 누나가 드래곤이라도 대륙 전체를 여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텐데?”
“그래도 ···오래 걸려서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무리다.”
“그런가아.”
이상하다.
무리해서 누나인 척 하지도 않고, 교수인 척 하지도 않는다.
마치. 일주일 전부터 소풍을 기다렸지만, 전날이 되니 아예 실감이 나지 않아 그냥 멍하니 있는 어린아이 같다.
“좀 더 기뻐하지 않는 건가?”
“실감이 안 나네···. 기쁘긴 한데, 이 제프린 생활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니까.”
“그런가?”
“응···. 이런 저런 애들이 있구나, 파파의 아이들도 이렇게 자랐구나. 하면서 지켜보는건 꽤 즐거웠단다. 다만 ···4년을 채우고 졸업하면 두 번 다시 안 돌아오는게 싫었던 것 뿐이야.”
그리 말하며 필티아는 석양을 느긋하게 바라보다, 턱을 괴고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 어린아이 같은 몸짓에 웃어버렸다.
맞다.
이 녀석은 어린아이다.
삼 백년을 기다려온 어린 아이다.
너무나 가혹한 기다림을 드디어 보답받을 때가 온 거다.
그러고보니 ···여행이라고 했던가?
“위대한 선조님을 찾는 여행은 ···아무래도 단신으로는 힘들겠지.”
“······뿌.”
뿌가 뭐냐 뿌가.
애도 아니고, 그렇게 볼 부풀리지 마라.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나.”
“어떤 방법?”
“예를 들면 대륙 전체의 철도를 연결해 그걸 타고 돌아다니는 거다. 기차여행이다. 지치지도 않고 즐겁지 않겠나.”
“그건 ···엄청 즐겁겠다.”
“그렇지? 내 생애동안 반드시 이뤄낼거다. 대륙 전체에 역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편의점을 세워서, 대륙 유통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는 거지.”
내 말에 필티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이쪽을 바라보고는 웃었다.
“그렇구나. 그러면 동생이 만든 열차를 타고 대륙을 여행하는 건가···.”
“음.”
“그 때는 동생도 같이 옆에 있어 줄 거야?”
“그건 모르겠군.”
“그런가···. 그렇구나. 다들 바쁠테니까.”
그리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린다.
거 참. 튜토리얼 끝나서 세계에 혼자 던져진 플레이어도 아니고 말이야.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필티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두려워 하지 마라. 고작 거리는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다.”
“······누나한테 건방진 거 아니니?”
“싫은가?”
“싫다고는 안 했단다?”
어느쪽인지 원.
필티아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웃음까지 지었다.
그만두지 말라는 묘한 압박감에 해가 다 질 때 까지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누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만.”
“응. 말하렴?”
“이 마계의 문 자체가 누나 때문에 공략하는 것이니 본인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내 말에 필티아는 잠시 눈을 감더니, 그 기세를 바꿨다.
단호하고 멈춤 없는 신념이 담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책임을 질 생각이란다. 누나가 지불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떤 희생을 해서도 말이야.”
“아주 좋은 대답이다. 거짓은 없겠지?”
“누나도 드래곤이란다, 한 번 말 한 건 전부 지키는 드래곤이에요.”
아주 좋은 대답이다.
***
그 뒤.
나는 필티아에게 작은 실험을 거친 후.
그대로 바로 중앙구로 끌고갔다.
“동생? 동생?”
“음. 이 정도인가. 자 필티아 누나. 그럼 준비는 됐겠지.”
“저기···. 동생이 하는 일은 항상 급진적이라 누나가 많이 놀라는데, 이번 건 ···농담이 맞지?”
“농담으로 보이나? 자. 필티아. 한 꺼풀 벗을 시간이다.”
“동생?!”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필티아.
옷 한장 걸치지 않고 자리에 누운 필티아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채, 팔을 들어올렸다.
“자. 어서.”
“으, 으으···. 진짜. 해야 하는거지?”
“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나중에, 반드시 책임 소재를 물을 거니까?”
“음. 그러도록 해라.”
“···알았어. 하면 되잖니. 하면.”
필티아는 이내 팔을 슥 내려서, 다른 쪽 팔에 가져다 대고는···.
그대로 뽁, 하고 비늘 하나를 뜯어냈다.
거체가 살짝 흔들린다. 생 비늘을 뜯어내는 고통에 드래곤의 눈에 눈물이 찔끔 맺힌다.
“아얏.”
“아픈가?”
“아니, 괜찮아···.”
“자. 포션이다.”
“아···. 고마워 동생.”
체력이 퍼센티지 단위로 회복하는 포션 덕분에, 필티아의 표정이 급속도로 편해졌다.
“미안하게 됐군.”
“아냐. 동생이 소중하게 아끼는 로열 가드를 위한 거잖아?”
“···음. 맞다.”
드래곤의 비늘은 최상급 갑주 재료다.
당연하지만 흑수정이 비할 바가 아니며 필티아의 비늘은 폭발에도 그 어떤 상처조차 없었다.
그렇게 두 세트를 만들 거다.
하나는 네프티.
다른 하나는 ···라니안.
전신을 감싸는 풀 플레이트와 헬멧으로 두 세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늘의 갯수가 조금 필요한 편이다.
내 거?
나는 애당초 장착 제한에 걸려서 입지도 못한다. 쓰레기의 체력과 근력을 얕보지 마라 애송이.
“말해두지만 누나의 비늘은 가공하기 어렵단다?”
“그야 알고 있다. 하지만···. 또 막상 불가능한건 아니라서 말이다.”
비늘을 뜯던 필티아는 걱정을 담아 말했다.
맞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건 또 아니거든.
아일라가 고도로 압축된 흑수정으로 대장장이 망치를 만들고, 그 위에 순수한 물리력의 마력인 늪의 마력이 더해지면, 비늘을 제련할 수 있다.
그 뒤 갑옷 제작은 내가 직접 하기 보다 바닐라에게 외주를 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또 말하는데···. 누나는 이 비늘을 회수해야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알고 있다. 네프티는 누나에게 인정받지 못했지 나중에 장비 전부를 회수해도 좋으니, 이번만 협력해줬으면 한다.”
“······응.”
드래곤의 율법 상.
그 신체 조직은 인정받은 자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필티아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큰 ···율법 위반인 셈이다.
“미안하군.”
“아냐. 다 누나를 위한 거잖아?”
“그래. 언젠가 ···함께 여행을 다니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면, 누나도 불평이나 불만은 말 할 수 없잖니.”
처음부터 불평불만은 말하지도 않을 셈이었으면서.
“고맙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군.”
“···대신 나중에 같이 여행 다녀 줄 거지? 누나랑 약속.”
“물론이다.”
아직 공략조차 하지 않았기에 덧없는 약속이 될지도 모르지만, 필티아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렸는지 헤실헤실 웃었다.
아파하는 필티아의 거대한 팔을 살짝 쓰다듬고, 쓰게 웃었다.
드래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어도 필티아는 필티아다.
착하고, 다정하다.
그러니까. 다정함에 조금만 더 기대자.
”누나.“
”응?“
”돌격용 랜스도 필요한데 ···한 장 더 부탁할 수 있겠나?“
”너무해 정말!“
아니.
그.
너무한 건 아는데요 기왕 쓰는거 한 장만 더 씁시다.
결국 필티아는 뽁 소리와 함께 비늘을 한 장 더 건네줬다.
착하다.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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