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36)
435. 개목줄
술.
사실 현장에서 톱밥먹고 사는 사람들 중 술 안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마음 속 깊이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딱히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악착같이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살면서 현장일을 다녔고 이 악물고 돈을 모아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 55만원짜리 월세로 갈아탈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뒤에도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기에 술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마시고 싶지.
나름 현장 아저씨들하고 친하게 지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액티비티 한 번 한다고 뭔 큰 문제가 있겠냐.
하지만.
술과 담배 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술에빠지는 순간, 나 자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무서워서 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없고, 희망의 집에 돌아갈수도 없으며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내게 마지막 자산은 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술을 꺼렸던 거 같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봐야 찾아오는건 허리디스크라는 사실에 현의점 알바로 갈아탄 이후로는 뭐, 반주 정도로 마시긴 했다. 열심히 살아봐야 별거 없더라고.
하지만.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어떤가.
잘 나간다. 잘 산다. 잘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술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타락?
아니 이것은 여유라는 것이다.
하여.
나는 이 편의점 알콜 사업을 대 환영했다.
“역시. 울프람은 알아줄 거라 생각했답니다.”
“음. 나쁘지 않구나. 아니 실로 좋아. 이 제프린에서 오직 내 편의점만이 주류를 취급할 수 있다니. 이보다 큰 특권도 얼마 없지.”
“후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애시당초 노리고 있기는 했나봐요?”
엘피라네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술을 취급하려고 노력했냐고?
그야 당연히 했지.
하지만, 신성한 배움의 터에서 술은 금기에 가까웠고 그 누구도 마시지 않았다.
물론 고위 귀족 자제분들이나, 성적을 포기해서 걸리면 뭐 어쩔건데 맞짱깔련아를 박던 기사학부의 평민 아이들은 몰래몰래 한 모금 마시긴 했다.
하지만 단언컨데, 그건 전부 음지의 이야기.
그 누구도 술을 양지로 가지고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즉.
오직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만이 할 수 있으며,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니.
“이브가 잘도 허락했군. 엘피라네, 그 허가증은 어떻게 가지고 온 거지?”
“어머. 허가라뇨.”
엘피라네는 실로 우습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뭐지?”
“이브는 한 번도 허락한 적 없답니다. 제가 멋대로 허가증을 쓰게 한 거죠.”
···.
······.
뭐라고?
“마지막에는 울면서 제발, 엘피라네님 이것만큼은 안 됩니다. 하면서 몸을 떨었지만, 패배자가 말이 참 많네요. 하고 허가증을 쓰게 했죠. 후후.결과적으로 본인 손으로 쓴 거니 아무런 문제 없지 않겠어요?”
“흠.”
실로 합당하다. 자 어서 양조장을 차리자. 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우선 이브를 만나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겠군.”
“어머. 어째서죠? 아 ···부지 선정에 도움을 달라고 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다. 우선 ···여기서 기다려주겠나.”
“예에. 뭐 어렵지 않죠. 하지만 술이 없으니 조금 아쉬운걸요?”
“흠. 그렇군. 당장 취급하고 있는것은 아니니 말이다. 대신 이걸 주도록 하지.”
“어머?”
나는 퀵 크리에이트로 포션을 한 병 만들었다.
포도와 벌꿀을 곁들여 혼란의 상태이상을 부여하는 ···실로 와인에 가까운 논 알콜 음료.
엘피라네는 한 모금 마시고는 어머, 하고는 웃었다.
“발칙한 음료네요. 스스로를 술이라 믿고 있는 굉장히 뒤틀린 음료. 혼신의 블러프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블러프에 몸을 맡겨보고 싶네요. 예에. 사기꾼의 맛이에요. 마음에 들어요. 저는 그럼 울프람이 돌아올 때 까지 이 녀석이나 홀짝이고 있도록 하죠.”
엘피라네는 키득키득 웃고는 그대로 내 포션을 슬쩍 마시기 시작했다.
보통 녀석들이라면 ···뭐에요 울프람 포션이 아니라 술도 만들 수 있었어요?! 하고 놀랐겠지만 저 녀석은 진짜 썩어도 초월종이라고 이게 술인지 포션인지 한 눈에 알아본 듯 하다.
거 참.
정말 보통 녀석이 아닐세.
***
학생회실에 찾아갔을 때.
나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집무실에 쳐박혀서 무언가를 한참 중얼거리고 있는 이브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끼리라.
“이브.”
“···나는 끝이야. 3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제프린에 술을 유통한 학생회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거야.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찬탈한 전 학생회장과 결탁해 제프린을 알콜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쓰레기 취급까지 받을거야.”
무슨 정서불안이 온 녀석 마냥 이브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을 그리 중얼거렸다.
거 참.
“정신 차려라. 이브 폰 로엔그린.”
“···아?”
검지로 이브의 이마를 툭 밀고는 바로 손을 뺐다.
그리고 슬쩍. 이브의 안색을 살폈고, 이브는 고개만을 갸웃할 뿐이었다.
“음? 으음? 이마에 ···어라?”
흠.
재주 17이었을 때는 백 퍼센트 들켰겠지만, 18이 되니 확실히 인간을 넘어섰군.
이 녀석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인간미가 넘쳐 흐르다 못해 허접하기 때문에 내 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과연.
인간을 뛰어넘은 능력이라는 건 이런 기분인가.
이브 정도의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내 재주의 발동은 따라잡을 수 없다.
좋은 걸 배웠다.
아무튼, 이마에 위화감을 느낀 이브는 이쪽을 빤히 바라봤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가 눈치채진 못했다.
“뭘 그렇게 땅을 파고 있지. 이브 폰 로엔그린.”
“···어라, 울프람? 뭐에요. 언제 온거죠.”
“온지 얼마 안 됐다. 회장실 안에서 저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무슨일인가 했다만 ···무슨 일 있었나?”
“무슨 일은 ···아, 예 있었죠. 아주 큰 일이.”
“호오. 무슨 일이지?”
“알면서 묻는 건가요?”
“글쎄다. 혹시 엘피라네가 대련 끝에 네가 약하다고 비웃었나? 그리고는 네 지갑의 안위를 걱정해 준다면서 내수용으로 술을 만들어 내놓으라고 협박했나?”
“······다 알면서 온 거잖아요!”
“그야 그렇지.”
“누구 놀려요?!”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그리 말하고 어깨를 으쓱하자 이브의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나에게 삿대질했다.
“하, 그, 그래서, 그 판권을 얻은 당신이 저를 놀리러 온 건가요? 이제 술 팔 수 있으니까 제프린의 학생 전원을 가지고 술도 안주도 파시겠다?”
“그렇지. ···라고 말하면 너무 뻔하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도 그렇게까지 돈에 미치진 않았다.”
“···네?”
뭐야.
안 미쳤다니까 왜 그렇게 놀라.
사람 상처받게.
“사람을 학생에게 술 팔아서 돈벌려는 미친 놈으로 보지 말도록.”
“그, 그럼 ···그 허가증 돌려줘요. 어서.”
“아니. 그건 또 안 될 말이지. 상인이 이렇게 큰 건수를 잡고서 그냥 돌려준다면 장사 접어야 할 일 아니겠나.”
“···으, 으으.”
“자. ‘그 허가증’이 있는것도 사실이지. 네가 서명하고 교수들이 승인한 사업 허가증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상담(商談)을 하러 왔다.”
“저랑 장사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래. 너도 들으면 꽤나 솔깃할 이야기라 장담하지.”
“······좋아요. 원래라면 시간이 없지만, 특별히 들어드리도록 하죠.”
이브는 그렇게 다과를 꺼내왔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오래간만에 진지한 담화를 시작했다.
“자. 우선 이쪽의 의향과 패부터 까보도록 할까. 잘 들어라. 우리 편의점은 본디 주류를 취급할 예정이긴 했다. 아, 오해하진 말도록. 제프린 밖에 나가서 주류를 취급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요? 그걸 좀 앞당기자. 뭐 그런 건 아니죠?”
“아니다. 이야기 하려니 복잡하군. 자. 우선 이걸 마셔봐라.”
나는 그렇게 퀵 크리에이트로 만든 엘 피라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괘씸한 사기꾼 포션을 넘겨줬다.
이브는 이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확 가렸다.
“머, 에 ···이거 수, 술?! 당신 지금 저한테 술 머겻서요?!”
“술 아니니까 혀 짧은 소리를 내지 말도록. 역겹다.”
“···놀랐으니까 그러죠!”
“아무튼, 그건 ···지나치게 술에 가까운 포션이다. 내가 만든 것이지. 당연히 취하지도 않는다, 마셨을 때는 살짝 혼란스럽지만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걸 술 대용으로 팔자는 건가요? 으음. 술이 아니니까 취급해도 된다는 방침은···.”
“아니. 나는 그걸 아예 제프린에서 공식적으로 다뤘으면 한다. 십 만 명이 모두 마실 수 있게 말이다. 공통 강의에 써보지 않겠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셨군요. 이 쓰레기! 수, 술 비슷한걸 팔다 못해 아예 수업에서 먹이자고요?”
“그렇다.”
“······진심. 이에요?”
평소라면 여기서 내가 비웃거나 혹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지만, 나는 한 없이 진지했고 그 결과 이브 또한 내 말이 그저 비아냥이나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 잘 들어라. 네 로열 가드인 실피아도 그렇지만 제프린을 졸업해 장차 사회에 나갈 지도층 학생들이 제프린 내에서 살롱 흉내를 내는 것은 알고 있지?”
“···알고 있죠. 정말 어른이 되고 싶은 꼬마들이라 귀찮은걸요.”
그렇게 말하는 너도 ···내가 봤을 때는 충분히 꼬마지만.
뭐 아무튼, 지금은 우리 울프람 파티의 꼬꼬마들 이야기를 할 떄가 아니다.
“그러니 그걸 아예 강의로 끌어올려서 상위 귀족들의 사교회나 나오는 음식. 혹은 휴일에 무슨 취미를 즐기는지에 대한 ···사회 실습 강의를 만드는게 어떻겠나?”
내 말에 이브는 눈을 크게 떴다.
뭔데. 왜 그렇게 놀라는데.
“울프람 주제에 제대로 된 의견을···.”
“하. 나는 언제나 제대로 된 의견을 냈다. 너도 알겠지만 ···제프린은 말 그대로 새장이고 온실이다. 졸업해서 귀가한 귀족가 도련님 아가씨들은 제일 먼저 사교회와 술부터 배울텐데 ···우리가 먼저 가르쳐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하나?”
“···아뇨. 가능하죠. 사교회야 말로 정치의 장. 공식 강의를 만든다면 ···어느 정도 사상적으로 나를 지지하게끔 만들수도 있겠고요.”
“그렇다.”
이런 점에서 이브는 멍청하지 않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4학년 졸업생들부터 ···2학기에는 충분히 시범삼아 해볼 만 하겠어요.”
“졸업생 숫자는?”
“당신 깃수에는 당신 눈 밖에 나서 잘린 선배님들이 많으니까 대충 만 명 조금 넘겠네요.”
“그런가. 만 명.”
“예에. 이 술···. 아니 이 포션은 당신만이 만들 수 있는거죠? 교보재 제작. 잘 부탁할게요.”
이브는 씩 웃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뭐죠? 최대한 수용하도록 하죠.”
이브의 말에 나는 내 조건을 입에 담았고, 이내 그녀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리고.
나는 엘피라네처럼 강압적이지 않고, 자발해서 이브의 사인을 얻어낼 수 있었다.
사인을 받고 집무실을 나올 떄. 이브는 슬쩍 이쪽을 보고는 흘리듯 말했다.
“울프람.”
“?”
“지난번 마계의 문 원정. 결과적으로 ···다 잘됐으니 군말 안 할게요. 그리고···.”
겨우.
겨우 내 귀에 닿을 크기로 이브가 중얼거렸다.
잘못 들을리 없었다.
작긴 했지만, 내 귀에 확실히 닿았으니까.
당신이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라는 말은, 아무런 여과 없이 내 귀에 와서 내려앉았다.
***
편의점에 돌아와 오늘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엘피라네의 표정이 조금 뾰로통해졌다.
“그래서, 술 대신 저 발칙한 사기꾼을 팔겠다는 건가요? 기껏 따왔더니···.”
“엘피라네. 서로 솔직해짐이 어떤가?”
“···뭘 말인가요?”
“너는 술의 사업보다는 너 자신이 마실 술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나?”
“······.”
“걱정하지 마라. 제프린 내에서 ···성인들에게만 유통한다는 전제 하에 작게 양조장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양조장 안에서 철저하게 보고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만들고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다. 최상의 재료를 공급해주지.”
“아, 아···?”
“거기에 마계의 문이 열리면, 그 소풍의 최전선에 참전하면 된다. 대신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적당히 적당히 온순하게 지내주면 된다.”
내 말에 엘피라네는 복음을 받은 신자처럼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드러누웠다.
그리고 팔로 얼굴을 가리며.
“···최고지 않나요.”
그리 한 마디하고 들뜬 한숨을 내쉬었다.
술이 그렇게나 좋을까.
이걸로 일타 쌍피다.
나는 만 명에게 포션을 지급하는 반 년 짜리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그리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양조장은 폐쇄니. 상호 협력적으로 가면 좋겠군.”
“물론이에요. 울프람. 저의 최고의 동지.”
저 미쳐 날뛰는 여왕에게 개목줄을 채우는 데에도 성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