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44)
443. 마음이 돌아갈 장소
길고 긴 고민의 결과, 하나의 대답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 세계를 ‘시스템’ 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 …인듯 하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지.
육체의 움직임이라면 루디카가 이해하고, 머리로 깨쳐야 한다면 밀푀유가 해냈을 것이다.
허나 둘 다 못했다는 것은 …시스템이나 혹은 게임 내에서 쓸 수 있는 개념들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고뇌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영진으로 살아갈 때도, 울프람이 된 지금도 …그리 깊은 고뇌를 한 적은 없다.
행동하다보면 답은 찾아오는 법 그러니 그리 신경 쓸 필요 없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
나는 지금 이 게임의 스토리가 아니라 ‘히든 컨텐츠’ 즉 모든 이야기의 가장 중점이 되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
켈터스가 주인공으로 펼치는 이야기? 떽! 그건 켈붕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자.
그럼 마계 8문을 다 뚫었을 때. 내 앞에 무슨 일이 펼쳐질까요.
그야 모른다.
어떻게 알겠어. 확실한 것은, 그 결과 어떤 결말이 펼쳐진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무언가 진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되는 거고, 모르면 또 모르는 대로 상관없다.
나는 울프람으로서 살기로 했다.
거기에 이영진으로서 정했던 목표도 이루는 셈.
확실한 건 8문을 전부 뽀갬으로서 내가 제프린에 미련을 남길 일은 없다는 거다.
그거면 된 거지 뭐.
진실은 겸사겸사 알던가, 몰라도 되고.
느긋하게 사탕을 하나 물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그것보다.
밖에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을 대충 안으로 집어넣을 생각이다.
“뭐 하는 거지 이브.”
“아…. 벼, 별거 아니에요. 그냥 와 본 것 뿐이에요.”
“그런가. 안으로 들어와라. 차 한 잔 정도는 내주도록 하지.”
“…사탕도 있나요?”
아무렴.
있고말고.
***
이브는 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탕 하나로 지나치게 기뻐하는군.”
“누가 사탕 하나에 칠칠맞지 못한 천박한 표정을 지었다는 거죠?”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지만 …아니 틀린 표현도 아닌가.”
“…으.”
이브는 사탕 하나를 물고는 그대로 기지개를 쭉 폈다.
“어지간히도 지쳐보이는군.”
“그야 뭐. 학생회장 일이 바빠서요.”
“일이 그리 많은 시기는 아니지 않나?”
“예산안쪽 문제도 있고 …제 개인적인 예산 문제도 있고요.”
“네 개인적인 예산 …그러고 보니 최근 돈 들어갈 일이 꽤 많았군.”
“거기에 많은 용돈을 받고 지내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거기까지 말하고 이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족이 얼마나 썩었는지 알기 때문에 정의와 공정한 황제를 목표하는 이브는 어지간하면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고 지낸다.
그렇기에 본인의 용돈도 최소화하고, 아무튼 끔찍하게 사치를 싫어한다.
이 녀석의 태생과 살아온 과정을 보면 뭐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용돈도 다 탕진해서 사탕하나 살 돈이 없다. 이건가.”
“……윽.”
“그럼 내가 선의로 몇 통을 준다고 하면.”
“뭘 요구할 생각이죠? 필요 없어요.”
이런 호의조차 거부한다.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공짜로 준다고 했지.”
“뭐라고요?”
“신상품 맛으로 열 다섯통이다. 크림소다. 체리. 블루레몬. 그린티. 핑크라임. …아무튼 이번에 새롭게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만 맛을 평가내릴 사람이 부족해서 말이다. 공짜로 넘겨줄 테니 맛을 평가해서 보고서를 가지고 오도록.”
“하. 이 이브 로엔그린을 부려먹으시겠다?”
“싫은가?”
“싫다고는 안 했어요. 예에. 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해드리죠. 가지고 와 봐요.”
그리 말하며 이브는 툴툴거리면서도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내리치고 있었다. 이건 꽤나 기대된다는 의미다.
정말이지. 전부 귀찮은 녀석이다.
그렇게 새로운 맛 사탕을 한 통씩 가지고 오자, 이브는 그 자리에서 크림 소다 맛을 꺼내서 입에 물고는 행복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정말 귀찮은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돈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일해서 버는 건 어떤가?”
“돈을 벌거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겠죠.”
“너무 돈을 멀리하면, 나중에 옥좌에 앉았을 때 풀어야 할 돈을 풀지 못하게 된다.”
“당신이 그렇게 내버려 둘리가 없잖아요?”
무슨 의미냐고 눈짓하자 이브는 까득 하고 사탕을 깨먹고는 한숨 쉬었다.
“당신 때문에 제 황위가 반석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이상. 저도 당신에게 먹이를 내줘야 한다는 거죠.”
“호오. 계속 해 보도록.”
“간단해요. 필티아 언니. 엘피라네 님. 당신이 말하는 각성. 온갖 보물. 위대하신 선조님의 안배. 서부 영지와 단검의 루디카. 시엘라 가문의 협조. 나아가 철도라는 국책사업까지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패들 중 대부분의 원 소유는 울프람. 당신이라는 이야기에요. 예에. 인정해야죠. 인정 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국책사업 부문 정도는 통 크게 당신에게 떼어줘도 되겠다. 한 거고요.”
이브는 무언가 주절주절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군.
“드디어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대자대비한 안배에 가슴이 복받쳐 눈물과 함께 이 제국의 유통 전부를 바치겠다 선언했느냐.”
“죽어.”
이런.
성광창을 사람 미간에 쏘면 안 된답니다.
재주 18은 탄환처럼 쏘아진 성광창을 섬광처럼 잡아채 흘렸다.
완벽한 ‘매직 패링’ 아직 실력 안 죽었네.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지?”
“뭐…. 그냥 그렇다고요. 이번 마계의 문을 공략한 것도 당신의 공이니까요.”
“…….”
뭐지.
이브가 굉장히 …우물쭈물하고 있다.
이렇게 남을 칭찬하는 녀석이 아닌데, 이러고 있다는 것은….
아 그거다.
얘는 지금 엄청 귀찮은 상태인 거다.
빙 둘러서 …뭐라고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무능했음을 탓하는 건가?”
“…윽!”
정곡이었나.
요컨대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자기 자신이 무능했음을 탓하고 있는 거다.
그걸 나를 올려 침으로서 표현하고 있는 거고.
즉. 여기서 사실 맞다. 내가 잘났다. 라고 하면 이브는 더 소침해져서 쭈그러들 것이다.
저 뱃살을 가지고 쭈그러드는 순간 숨막혀서 죽을지도 모르니, 여기선 자화자찬은 안 하는 게 낫다.
세상에.
내가 이 녀석 멘탈도 챙겨야 하다니.
그건 있을 수 없지.
그러니까 조금 담백하게 가자.
“무언가 크게 착각하는 게 있군. 이브 폰 로엔그린.”
“뭘 …말이죠?”
“필티아 블루브리즈. 엘피라네. 그리고 서부 에덴. 트라이스타와 시엘라. 거기에 철도 사업. 그래. 내가 너에게 활용할 수 있게끔 해준 …내가 만든 손패인 것은 맞다. 네가 그것으로 선택지가 풍족해졌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예. 뭐. 그래요. 대단하네요. 정말 고마….”
“하지만 그 모든 패를 가져와도,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 미치지 못한다.”
“…아?”
“인간은 어째서 세를 이루는가 간단하다. 그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전투 기술을 고안하고 무투술을 배우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자는 홀로 살아남을 수 있으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모든 것을 찢어버릴 수 있다.”
세력은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것.
기술은 약자가 살아가기 위한 것.
진정한 강자는 그저 홀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세력도, 기술도 필요 없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한 몇 명중 하나가, 바로 눈 앞의 이브 폰 로엔그린이다.
“즉. 너라는 녀석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건.
실로 냉정한 이야기다.
이브의 최종각성과 그 스킬은 인지의 영역을 아득하게 뛰어넘어버린다.
이 세상 모든걸 으깨버릴 수 있는 마력.
그 손길로 맺어진 폭력은 세계를 개편하고 재편해버린다.
“…뭐에요. 그게. 혹시 칭찬할 셈이에요? 세상에 그런 칭찬이 어디 있어요.”
내 말에 이브는 하, 하고 헛웃음을 짓다가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폭소했다.
결국은 배를 붙잡고 상에 얼굴을 박고 숨을 겨우 참으며 웃었다.
흠. 실로 냉정한 평가다.
내가 이브를 칭찬할 위인은 아닌데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기운 없이 …남을 칭찬하는 것으로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라. 나쁜 버릇이다.”
“…알아요. 저도 이상한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
그래.
설정집에서 읽은 이 녀석의 유년 시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울보에 겁쟁이에 누군가 옷깃만 잡고 따라다녔던 시절.
그리고 그 누군가를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 규정한 이후. 세상 모든 것을 깔보며 자랐던 시절.
그리고 그 끝에 이런 저런 사건이 있어서. 지금의 멍청할 정도로 결백한 이브가 되었다.
“…옛날에는 정말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네요.”
“…….”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 씩 웃고는 사탕 통 전부를 허공에 둥실 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덕분에 기운이 좀 났어요.”
“그런가.”
“예에. 그러니까. 이건 그 보답으로 드리죠.”
그리 말하고 이브는 마력으로 퐁, 하고 사탕 통 하나를 열어서, 그 안에서 한 알을 둥실 꺼내 내 앞으로 슬쩍 날렸다.
마력을 타고 날아온 사탕은 내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뭐 하는 짓이냐.
“그건 팔아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럼 이만.”
그리 말하며 이브는 흥얼거리며 편의점 밖을 나갔다.
입 안, 크림 소다맛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 이브가 사탕을 나눠주다니 말이야.
눈물이 다 나네.
***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시스 폰 로엔그린과의 대화는 그 뒤로도 쭉 이어졌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당연하다.
저쪽도 저쪽대로 황위 쟁탈전에 목숨 걸고 참여하거나, 아니면 1위, 혹은 2위 세력에 붙을 생각일테니까.
갑작스러운 다크호스.
재능만큼은 이 세상에서 겨룰 자 없다는 이브 폰 로엔그린의 발호에 의해 자신을 떠보러 온 것이다.
정보는 줄 리 없고, 반대로 이쪽의 정보를 염탐하려는 속셈이 보인다.
“그나저나, 진짜였나보네요.”
이시스 폰 로엔그린의 ‘자애’는 사람의 마음을 침투한다.
즉. 그녀의 마력에 저항하지 못하면, 완전 아기처럼 발가벗겨져서 응애응애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모든 판단을 그녀에게 맡기고, 생각하지 않는 도구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향해 아주 조금이나마 그 마력을 썼다.
물론 지금의 아일라의 마력과 대등하기 때문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만, 정말 지치는 타입이다.
물론 얻어낸 것도 있었다.
‘울프람. 있나요? 대화 가능해요?’
‘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몸은 좀 괜찮나. 나쁜 일은 없었나.’
‘파트너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울프람이 황급하게 대답해왔다.
평소처럼 냉정 침착한 목소리지만, 조금 빠르다. 거기에 그 내용을 들으면 …푸훗. 하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 속 빈 공간이 가득 차 올라 행복해졌다.
‘별 일 …아니 별 일 있었어요. 이시스 황녀를 만났답니다.’
‘…이시스 폰 로엔그린. 지배의 마녀인가.’
‘네? 그게 뭔가요?’
‘아니. 아니다. …그래서?’
‘저한테 이브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했어요. 겸사겸사 울프람도요. 물론 아무 말도 안 했지만요.’
‘…그런가. 그 외에 다른 짓은 안 했나? 가령 …그 역겨운 눈을 떴다던가.’
‘아뇨? …그 분이 눈을 뜨시기도 하나요?’
‘아니. 됐다. 아무튼 그쪽에서도 탐색하러 왔나보군.’
‘…네. 그래서 조금 지쳤어요. 우우. 돌아가고 싶어요.’
‘그럼 돌아와라.’
그 말에 저 너머에 있는 울프람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리 말했다.
‘아…. 그래도 될까요?’
‘뭘 사양하고 있나. 이 제프린에, 이 편의점에 네가 돌아오는데 허락을 구할 이유가 있나?’
‘……그렇네요.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죠.’
울프람의 그 말에 아일라는 새삼 깨달았다.
저 제프린.
저 편의점.
그리고 울프람의 곁이 자신이 돌아갈 곳.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곳.
이 화려한 제국 수도가 아니더라도.
귀족가의 디저트가 아니더라도.
황녀와의 디너가 아니더라도.
‘그럼 돌아갈게요. 아. 제국의 수도에서 뭐가 잘 팔리는지 적어왔으니까 같이 이야기 나눠요.’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자.
잠시간의 외출은 끝.
저 조금 좁고, 인적이라고는 드문 편의점으로 돌아가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