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53)
452. 위험도 : ★★★★★
원작 D/Z SAGA에는 순수한 서약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뭐, 어렵게 말 할 거 없이.
루트가 확정된 히로인의 ‘엔딩’의 등급을 하나 올려주는 시스템이며, 동시에 히로인의 ‘상한 해방’의 기능을 한다.
베이스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광석류 두 개.
즉. 천애의 광석. 상애의 광석.
그리고 중간에 어떤 보석을 꽂아 넣는가. 이걸로 반지의 ‘옵션’이 준 확정된다.
지금 손에 넣은 것은 ‘최초의 루비’ 즉 화염 속성 히로인의 상한 해방이다.
우리 파티에서 ···그나마 우격다짐으로 이걸 끼워서 해방시킨다고 하면 아일라 한 명인가.
그렇다고 아일라에게 이걸 반지로 만들어서 건네주기는 조금 애매하다.
최초의 토파즈 ···즉 대지 속성의 보석은 확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이 있거든.
그렇다고 환금하기도 애매한 것이···. 우선 이 보석으로 다른걸 만들어도 꽤 재미를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선, 선배님 500만 ···500만이래요. 제가 한 번에 이런 돈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옆에서 돈 주머니를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는 소시민 후배 앞에서 ‘하하 저는 한 번에 1티어 보석이 나왔는데 2억 8천만이라고 하네요. 저는 다른 거 바랐는데 이거 좋은 건가요? 옆 친구는 엄청 부러워서 죽으려고 하는데 저는 이거보다 좀 다른 장비류가 나왔으면 했는데, 제가 쓰기는 조금 애매 한 거 같은데 여러분 이거 좋은 거 맞죠?’ 같은 소리를 할 수 없지 않는가.
물론 카페 시절에 그런 말을 하는 놈은 내가 전부 목을 쳐서 공지사항에 걸어놨다. 그런 쓰레기들을 죽여야만 온라인 세계의 평화가 이룩되는 법이니까.
아무튼 정리하자면,
당연히 이 세계에 캐시카드가 있을 리가 없고, 2억 8천만 린은 전부 금 덩어리로 떨어진다. 네프티가 없었더라면 ···글쎄. 환전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아쉽게도 이 1티어 보석은 우선 보관해둔다.
언젠가 빛 볼 날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반지를 제작하고 건네는 것에 횟수 제한은 없으니 말이다.”
“음? ···뭐라고 하셨나요?”
“아니. 아니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 그럼 돌아가도록 할까. 오늘은 괜찮은 부수입도 얻었으니 말이다.”
“···아, 네!”
네프티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금화 주머니를 끌어안고 싱글벙글 웃었다.
돌아오는 길.
문득 네프티가 나를 향해 말했다.
“선배님···.”
“뭐지.”
“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번 거 같은데요. 제, 제가 어떻게 반이라도 드리는 것이···.”
“······아니. 그러지 마라.”
“하, 하지만 이런 단기간, 고작 하루만에 500만 린을 벌었잖아요. 이런 부수입은 나누는 쪽이 제 마음이 편하지 않을지···.”
“······.”
아냐.
제발 그러지 마.
더 이상 내 양심에 칼빵을 놓지 말아줘.
***
네프티가 중간중간 내 양심을 괴롭혔지만, 별 탈 없이 중간에서 헤어지고 편의점에 돌아 왔을 때.
이미 시간은 한참 늦어서 한 밤중이건만 편의점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간에 불을 켤 만한 녀석이라고 하면···.
“안 되겠군. 짐작 가는 녀석이 너무나 많다.”
일단 우리 파티원에게 전부 스페어 키를 건네줬다.
거기에 문을 따고 들어올 권리는 필티아나 파트라슈도 있으니까.
아.
파트라슈는 엘피라네가 나왔다고 해서 딱히 그녀의 경호로 돌아서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술 처먹고 꼬장질이나 부리는 여왕을 돌보는 신하였지만, 아무래도 전쟁광 모드인 엘피라네에게 그 정도의 경호는 필요 없나보다.
그저.
‘···주인. 그대의 노고에 감사하며, 이 적랑. 아니 파트라슈는 앞으로도 영속될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지.’
라는 말을 하고는 평소보다 흑왕호의 운임 숫자를 늘렸다.
아무튼, 지금은 외근 나간 빨간 강아지를 신경 쓸 때가 아니라 ···편의점에 누가 있느냐, 그걸 확인할 때다.
설마 도둑은 아닐 테고 자 누구일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상가를 습격하러 나온 이브라면 그걸 소재 삼아 삼년은 씹고 놀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편의점 안을 들여다봤을 때.
예상외의 인물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웃했다.
“밀푀유?”
“으응···.”
밀푀유 폰 사브레가, 편의점 안에서 모포를 대충 둘둘 말고 자고 있었다.
“음. 과연 어떤 사연일지 궁금하구나.”
깨우는 것도 가능하고, 벌떡 일어나서 ‘죄송해요. 선배님!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드렸죠!’ 같은 소리를 외칠 거 같지만 ···지금은 그냥 재워두도록 하자.
그래야 그 쪽이. 깨어났을 때 좀 더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겠나.
어린 시절 배웠던 고사에는 신하가 야근에 지쳐 잠들어 있으니 어진 임금이 그 위에 곤룡포를 덮어줬다는 설이 있는데, 현대로 치환하면 야간 경계 나가서 졸고 일어나니 중대장이 야상을 덮어주고 간 것 보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아으.”
“녀석. 따듯한가보구나.”
빙정의 망토를 대충 밀푀유에게 덮어주자마자 밀푀유의 표정이 스윽, 하고 풀어졌다.
아직까지는 바닥에서 열기보다 냉기가 올라올 계절. 빙정의 망토가 가져다주는 완전한 냉기 차단 때문이겠지.
숨소리가 곱게 변하고, 찡그렸던 얼굴이 풀어진다.
한 밤 중의 편의점은 보온 장치를 가동하지 않으면 꽤나 춥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향하려는 그 때.
“······으응.”
밀푀유가 살짝 잠꼬대를 했다.
그러고 보면, 나름대로 필드에서 단련했기 때문에, 이 녀석도 밤귀가 밝은 편일 터.
아무래도 사무실까지 가서 보온 장치를 가동하려면 ‘그 움직임’을 취할 수밖에 없겠지만, 나도 오늘은 밖에서 체력을 다 쓴 몸. 이대로 슬라이딩을 하기 에는 남은 체력이 아슬아슬하다.
별 수 없지.
슬쩍 주머니 안에서 ‘최초의 루비’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루비는 빙글 날아가더니 떨어지진 않고 이내 뚝. 하고 나와 밀푀유 사이에서 멈춰섰다.
【최초의 루비가 정화의 온기를 발동합니다.】
【정화의 온기】
【야영스킬】
【정화의 온기가 발동된 영역에서 ‘캠핑’ ‘수면’ ‘식사’ ‘여가’ ‘대화’ 등의 휴식을 취할 경우 최상의 효율을 보입니다.】
【주변의 필드 보스 급 미만의 몬스터들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파티 리더와 파티원의 체력. 마력. 자연 회복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파티 리더와 파티원의 ‘즉사’ 혹은 ‘2T’ 이하의 모든 상태이상이 완전 회복됩니다.】
【지속시간은 8시간이며 사용 후 16시간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가집니다.】
이거지.
이게 진짜 개꿀옵이라니까.
이거 하나 있으면, 진짜 마계의 문 몇 개 정도는 완전히 안전하게 야영할 수 있다.
일반 필드도 뭐 필드보스 근처에서 야영지를 잡는 또라이 짓을 하지 않으면 안전 그 자체고 말이야.
이거 하나만으로 우리 파티의 휴식의 품질이 대폭으로 올라갔다고 봐도 된다.
괜히 1티어 보석이 아니다. ‘가공’ 하지 않아도 그냥 개사기 스킬 한두 개정도는 달고 다니시는 우리의 참된 빛 되실 분 아니신가.
동시에 이 능력 때문에 최초의 루비를 가공하는 게 조금 꺼려지기도 하고 말이야.
무엇보다 이 길고 긴 쿨타임이 살짝 아쉬운 물건이다.
물론 이걸 언제든 설치하고 회수할 수 있으면, 무한 야영 파밍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냥법이 만들어졌겠지.
쿨타임의 부담이 있음에도 지금은 잘 썼다고 생각한다.
본점 바닥에서 멋대로 잠든 지점장이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으면 그야 남는 장사 아니겠나.
어디. 그럼 나도 이 온기에 몸을 맡기고 독서라도 해볼까.
이윽고 편의점에는 정적이 내려앉았고, 한 사람의 고운 숨소리와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외에는 모든 소리가 스스로 사라졌다.
***
그렇게 최근 제프린에서 잘 나간다는 소설책을 반 권 정도 읽었을 때 즈음, 침묵이 깨졌다.
“으으···음.”
“드디어 깼나.”
슬쩍 밀푀유 쪽을 바라보니, 녀석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보다가, 이내 천장을 올려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음. 안녕하다.”
“···꿈에서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잘 지내셨죠?”
“그래. 그렇구나.”
“네헤···. 사실 매일 꿈에서 뵙지만요. 잘 지내셔서 다행이에요.”
“항상 잘 지내고 있다.”
“네 ···그러신 거 같아요···.”
“그래서 언제쯤 잠에서 깰 예정이지?”
“···아하하. 그렇네요. 깨야죠. 정말 잠에서 깨야···.”
“음. 아무리 내 망토가 따듯하다고 해도, 이런 차가운 바닥에서 잠드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렇네요. 선배님의 망토. 망,토 ·········망?”
거기까지 말하고, 밀푀유는 쩌적, 하고 굳었다.
밀푀유는 자신의 몸을 덮은 망토를 보고, 몸에서 떼고, 반 바퀴 돌리고, 그 상태로 얼굴을 묻어 습 ···하. 하고 망토의 냄새를 맡은 후, 다시 이쪽을 보고 ···아무튼 무척이나 바쁜 일련의 행동을 마친 후에.
“···아, 하하. 꿈인데 ···신기하게도 온기랑 기분이 안정되는 향이 나네요. 마치 현실 같아요.”
“음. 마치 현실이다.”
“하하하···. 그러니까, 현실이군요?”
“그래. 슬슬 잠에서 깨야하지 않겠나.”
내 말에 밀푀유는 초점이 죽어버린 눈으로 나를 보고 후후 웃다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선배님 그거 아세요?”
“뭐지?”
“다시 잠들면, 꿈이랍니다?”
“······일어나라.”
“윽, 놔, 놔주세요. 여기서 잠들어서 ···차라리, 차라리 꿈으로 끝나게 해주세요!”
그건 대체 무슨 논리야.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내 망토에 얼굴을 묻고 그대로 꿈나라로 도망치려는 밀푀유와 기 싸움을 해야 했다.
나 참.
***
그렇게 한참을 드잡이질 한 후, 밀푀유는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푹 묻었다.
아무튼.
“잠은 충분히 잤을 테니 이제 피곤하지는 않겠군.”
“······.”
밀푀유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째서 편의점에서 자고 있었지?”
“···으.”
“최근 무슨 어려운 일이 있었나? 기숙사에서 내쫓겼다거나 ···아니면 들어가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선배님. 그저 이 목걸이가···.”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찰그락, 빙정의 목걸이를 한 번 흔들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
“생각보다, 엄청 다루기 힘들어서 ···마력 건틀릿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엄청나게 기력을 잡아먹어서요. 그래서 ···연습을 하다 보니 지쳐서···.”
아, 그렇군.
그 연습의 끝에 지쳐서 퍼졌다는 이야기인가.
“쉬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겠지.”
“네. 하지만, 선배님께서 기대해 주셨으니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서···.”
“그래서 지칠 정도로 연습하고, 결국은 잠든 것인가.”
다시 한 번 밀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재능이 없으니까요. 노력. 또 노력 할 수밖에 없어서 ···잘못하면 세상이 큰일 날 지도 모르는 곳에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녀석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치게 없다.
“너는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자신감 같은 걸, 어떻게 가지겠어요. 기껏 선배님이 주신 보석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는데···.”
“말해두지만 그 보석은 보통 보석이 아니라 얼음 여왕의 보물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보물도 ···선배님께서 가시는 길에는, 거쳐 가는 물건에 불과하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만.”
“그리고 저는 지금 ···그런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고 있는 거죠?”
음.
또 그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네.
거쳐 가는 장비도 맞고, 그걸 못 다루면 ···앞으로의 공략에 지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자신감을 ···가지고 싶어요.”
“한 번 더 물으마, 하여 ···어떻게 하면 네가 자신감이 생길 수 있지?”
“오늘, 선배님께서 조금만 자신감을 주시면 될 거 같아요.”
···
······?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가?”
“네! 오직 선배님만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자신감을 주실 수 있나요?”
“그런가. 그렇다면 ···알겠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밀푀유는 뒤로 돌아서 ‘예스!’ 하고 주먹을 꾹 쥐고 작게 소리쳤다.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는데.
기운 없던 거 아니었나?
“자 그럼 선배님 지금부터···!”
“그래. 지금부터 자세를 잡아라.”
“······네?”
“자신감은 천 번의 정권지르기와 만 번의 발차기에서 나오는 법이지. 자. 밤은 짧다. 자세를 잡아라.”
“······아, 음.”
“극한의 단련 끝에 자신감은 알아서 피어나는 법이다. 이걸 바란 것 아니었나?”
“······.”
밀푀유는 주먹을 꽉 쥐고, 타오르는 불길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음.
실로 좋은 투쟁심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