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54)
453. Pink Apocalypse
밀푀유 폰 사브레.
그럭저럭 오래 알고 지냈다 생각하지만,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많은 아이다.
조용하고 상냥하다. 뭐 이런 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고, 그 파이팅 스타일은 부족한 전투 센스를 지략으로 메꾸는 타입.
마법에는 특출한 재능이 없기 때문에 인파이팅을 지향하며, 정확히 말하자면 근접 딜러다.
본편 기준으로는 중반에 놀이팟으로 쓰기 좋은 파티원. 후반 가면 자연스레 잊히는 비운의 스테이터스를 타고 났지만···. 딱 하나, 그런 잡캐들과 다른 점은 그녀의 전직이 ‘노블레스’ 라는 점이다.
귀족 중에서도 단 한 줌. 고결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만 개화할 수 있는 이 직업군의 가장 큰 장점은 ‘템빨’을 기적적으로 잘 받는다는 점이다.
착용 아이템의 티어가 높으면 높을수록 착용시 스테이터스 버프를 받으며, 착용 제한도 충분히 완화된다.
즉.
기본치가 낮고 템빨을 크게 받는다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면, 세팅값에 따라 어떤 원정에서든 1인분은 할 수 있는 인물로 거듭난다는 점.
그것 말고도 번뜩이는 재치와 높은 지능은, 그녀에게 참모를 맡겨도 된다. 라는 확신을 내게 안겨준다.
다만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진짜. 선배님은 가끔 너무하신 부분이 있는 거 아세요?”
“음. 그런가.”
“모르고 계시네요. 아뇨. ···죄송해요. 모르고 계신 것을 알면서도, 제가 책임감 없는 말을 입에 담았네요.”
정말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쪽을 흘겨보거나, 웃고 있는데 정신 공격을 무효로 되돌렸다는 시스템 보이스가 뜬다.
어째서일까 몇 번을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이제는 그저 없었어야 할 캐릭터가 아직도 있으니, 세계가 버그가 난 것이 분명하구나 ···하고 추론 할 뿐이다.
물론.
최근에는 그 가설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 세계를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게 오직 나 하나라면···.
이 밀푀유의 분노도, 시스템 탓이 아니라 ···무언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선배님?”
“음? 아, 미안하군. 한 눈을 팔았다. 용서해라.”
“용서라니요···. 후후. 많이 피곤하시면 주무시겠어요?”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너와 훈련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은 없는데.”
“아니. 하지 않았나. 아무튼, 자세를 잡아라. 내 고유 능력을 따라할 수 없다 한들, 나의 전투 방식은 너를 가르치기에 알맞다.”
“···아, 네. 네!”
백스텝-캔슬-슬라이딩이나, 패링-슬라이딩. 혹은 사전 입력 조작으로 벌이는 ‘버그성 기술’은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는 나만 쓸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힘을 흘려내는 법이나 상대의 공격이나 흐름을 읽고 흘려내는 것은 루디카나 아일라와 대등한 수준으로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자. 그럼 들어와라. 밀푀유.”
“네, 네! 갑니다!”
한 밤 중의 봄.
꽃잎조차 흩날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나와 밀푀유는 그렇게 몇 시간이고 겨루었다.
그러던 와중 지쳐 쓰러져 ···그 뒤의 기억은 딱히 없다.
***
밀푀유 폰 사브레는 눈앞에서 기절해 쓰러진 울프람의 자는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정말.”
사람 속도 모르고.
누가 봐도 한숨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매력이 없는 걸까. 라고 자문해봤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
아예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범주의 취향을 가지고 계셨더라면 모르겠지만 ···밀푀유 스스로도 조사해보고, 울프람 주위의 여성진들을 분석해 본 결과 그건 아닐 거라 거의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연상. 동갑. 연하. 선배. 동급생. 후배. 수 백살 차이가 나는 피가 안 통한 누이가 있는가 하면···.
“정말 위험한 쪽으로 생각을 해도 ···대부분 계시니까요.”
그래. 그렇다.
반 인어가 있는가 하면, 몸 절반 사이즈의 요정도 있고, 눈의 요정에 얼음 여왕. 드래곤까지 ···인외종도 갖출만큼 갖추지 않았나.
굳이 따지자면 이제 천족이나 마족이 남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황실 혈통이 그 둘과 맺어진다는 것은 세기의 로맨스를 넘어서서 불경한 이야기다.
물론 경쟁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제일 많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일라 선배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서로간의 달콤한 향기가 풍겨나오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소꿉놀이를 즐기는 동네 어린아이들을 보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울프람 선배님의 연애 인자는 전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거기에.
“정말. 오늘은 네프티 선배님을 돕다 오셨죠? 분명 지치셨을 텐데 또 저를 돕고. 결국 이렇게 기절하시고···.”
밀푀유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덮고 있던 망토를 울프람의 몸 위에 덮어주며, 새근새근 잠든 그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이렇게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 아닐까.
밀푀유는 울프람의 얼굴로 손을 내밀려다가, 이내 움찔 하고 멈췄다.
“···아무도 없고, 누구도 안 보고 있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손을 내밀기 직전.
결국 쓴 웃음으로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눈을 보고 서로가 사랑하는 상태에서. 정정당당하게.”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바보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밀푀유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택하지 않은 쪽에 조금이라도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그것이 밀푀유 나름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뭐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바닥에 앉아 잠든 울프람 옆 벽에 기대 밀푀유는 살짝 눈을 감았다.
편의점 내부는 전혀 춥지 않았다.
선배님께서 가지고 오신 저 돌의 힘일까.
정말 신기한 것들을 차례차례 주워 오시는구나.
“안녕히 주무세요.”
옆 사람의 체온과 숨소리에 맞춰, 밀푀유 또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적막이 내려앉은 편의점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곱게 울릴 뿐이었다.
***
지난 밤.
스피카 트라이스타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사무실에 불이 꺼져 있는데 ···가게 쪽에는 불이 켜져 있네요.”
그녀의 방은 지난번 양보한 필티아 블루브리즈의 한 층 위.
그 한 층의 미묘한 시야각 때문에 사무실 내부는 보이지 않으나 편의점에 불이 어디가 켜져 있는지 정도는 당연히 파악이 가능하다.
허나 어제 편의점은 매장 내부의 조명은 밤새 켜져 있었지만, 사무실 쪽은 한 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즉.
“사무실이 아니라 매장 쪽에서 무슨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네요. ···혹여나 내부 장식 리모델링에 악전고투하시면서 철야작업을 하셨을 지도 몰라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스피카는 방긋 웃었다.
이건 기회다.
둘도 없을 기회.
여기서 점수를 따면 오라버니도 자신을 다시 보게 되리라.
그리 생각하며, 타올과 물을 가지고 새벽 일찍 편의점을 향했다.
그리고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스피카가 내부에서 본 것은···.
“아······?”
고운 얼굴로 잠들어 계신 울프람 선배님.
그 존안을 뵌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자신이 있었으나.
그 옆에, 상상도 못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옆에서, 미소 지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분홍 머리의 선배.
밀푀유 폰 사브레.
“···서, 설마. 아냐. 그럴 리가.”
그 자리에서 스피카는 스스로의 【인간을 초월한 재능】을 극한으로 발동했다.
선천적인 높은 마력을 이용해 【마력동화】로 마법의 자물쇠를 속여 넘겼다.
그 다음에는 흑수정에 명령을 내려 【모형 제조】로 물리적인 열쇠를 만들었다.
여기까지 실로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울프람이 봐도 그 행보에 감탄하여 박수를 칠 정도의 민첩성과 운용의 완전성.
그렇게 문을 열고 편의점 안에 들어갔을 때. 스피카는 우선 두 사람의 복식을 살폈다.
단정하게 입고 있는 교복.
이후 숨을 크게 들이켜 한 번 내뱉음으로서 사태를 추론. 결론을 확정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서로 주무시고 계실 뿐이네요. 다행이에요.”
그래. 다행이다.
······아니.
어떻게 그게 다행이지?
정말 서로 아무런 관계가 아닌 남녀가 손만 잡고 잠들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이건 신호다.
멸망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으나, 그 전조증상이라고 봐도 틀림없을 터.
언제 일선을 넘어버릴지 모르는 두렵기 그지없는 복선.
스피카는 눈앞에 있는, 저 사람 좋은 분홍머리 선배님이 자신의 메모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 잊어버리지 않았다.
위험도. 별 다섯.
태생이 끈적거리는 사람일 거 같다. 라고 생각했고, 판단했고, 메모했다.
저렇게 청순한 얼굴을 한 사람일수록 욕망에 패배할 심산이 크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메모가 적중했다.
이대로 깨울 수는 없다.
왜 이 시간에 스피카가 여기에 있냐는 반문을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거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온전히 두 사람의 것.
링 위에 올라가지도 않은 자신이 입을 놀릴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스피카는 뒤로 돌아서서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가 메모를 꺼내. 밀푀유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별 하나를 더 추가했고, 설명을 바꿨다.
위험도 : ★★★★★★
【핑크 아포칼립스】
실로 적확한 평가라 할 수 있겠다.
***
잠에서 깼을 때는 혼자였다.
어째서인지 편의점 문은 열려 있었고 바닥에는 최초의 루비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아무래도 밀푀유는 그대로 돌아간 모양.
평소 자던 담요도 아니고 편의점 매장 바닥에서 대충 잤는데도 완벽한 숙면이었다.
아무래도 최초의 루비가 ···내 수면시간동안 발동했고 발동 시간이 다 된 후 자연스레 눈을 뜬 모양이었다.
“후우. 좋군.”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가볍게 목을 축이고 씻고 나온 후.
기지개를 몇 번 펴고 아침 업무를 보려던 그 때. 편의점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누구지.”
“아, 울프람 님 안녕하십니까.”
“···트라이스타쪽 사람이로군 이번 달 납품은 크게 문제가 없을 텐데?”
“아, 네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전 의뢰하신 물건이 거의 완성되어 평가를 부탁드리려 왔습니다.”
“미안하군. 내가 한 부탁이 한두 대가 아니라 ···무엇이 완성되었는지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겠나?”
“아. 그렇다면 직접 보여드리는 쪽이 빠르겠군요. 이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남자는 내 앞에 스윽 하고 하나의 통을 내밀었다.
네모난 통이었다.
한 손에 올리기에는 조금 벅차고, 양 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의 크기.
통은 몇 가지 구획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가벼우며 매끈했다.
즉.
“울프람 님께서 기차 여행에는 반드시 이것이 함께 해야 한다며 부탁하신···.”
“도시락 통이로군.”
“네. 맞습니다! 이전 말씀하신대로 이중 구조로 만들어 내부의 열기가 쉽게 꺼지지 않으며 녹슬지도 않습니다.”
“······내부의 부식도 테스트는?”
“신선한 고기를 넣었을 때. 약 사흘간 상하지 않고 유지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결국 해내버린 것인가.
트라이스타 가문에서 나온 여 비서는 더 듣기 좋은 말을 내 귓가에 때려 박았다.
“시제품이지만, 곧 양산 체재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가. 가장 중요한 단가는 어떻게 되지?”
“통 하나당 1,000린까지 납품가를 맞출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제작비와 인건비를 빼도 저희쪽이 약 10 퍼센트 이득을 가져갑니다만···. 더 줄인다면 900린까지 가능합니다.”
“···그런가. 그런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이전부터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술력의 한계로 만들 수 없었다.
편의점 하면 무엇인가.
역시 먹을 것 아닌가.
삼각김밥. 햄버거. 샐러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선 천 개. 발주하도록 하지.”
“······네? 너무 많은 것 아닐지.”
“아니. 만 개 까지 양산 체제를 갖춰다오. 선금은 치르지.”
도시락.
그래.
젊음이 한창인 아이들에게 흑빵이나 쳐먹이던 이 제프린의 역사를 다시 쓸 때가 왔다.
그리고.
겸사겸사 내 지갑 잔고도 새로 써보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