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55)
454. 준종결
내가 이 세계에 꼴아 박히기 전, 현대에서 편의점은 물류와 문명의 상징이었다.
각 제조사에서 제조한 물건들을 한 데 모아서 판매하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프렌차이즈 형 상점.
편의점 하나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료 수급. 생산망. 유통망. 거기에 인력문제부터 시작해 더 타고 올라가면 에너지원까지 해결해야 한다.
허나 이 세계는 어떤가.
개뿔 그런게 있을리가 없지.
물론 마정석이라는···. 고체화에 안정 되어 있고, 술식이 박혀있는 마동석에 부착하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지만, 마정석 광산은 생각보다 무척. 아니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비싸다.
말 그대로 골렘의 원재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마정석의 상위 티어 ···즉 술식을 박아 넣을 수 있는 마동석은 어떻겠나. 미쳐버린 가격이지.
물론 그 광산의 대부분은 서부에 있고, 그 서부의 맹주는 트라이스타다. 마동석, 마정석은 국가 전략 물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공출할 수도 없다. 왜냐면 ···지금의 정국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거든.
아무튼 그 결과, 아일라와 연이 있는 나는 생각보다 그런 마석들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고, 그걸 동력원으로 이러저러한 장난을 치고 있다.
그래.
나 정도나 되어야 겨우 물류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락을 매일 납품한다는 것은 그 정도의 분량으로도 쉽지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농사라는 것이 어디 씨앗 뿌리고 물 주면 알아서 자라던가···. 말 그대로 노동의 극한이며, 동시에 대량으로 행해야 대량으로 거둘 수 있다.
천혜의 고도도 실로 매력적인 곳이지만 그건 사냥터지 목축지나 농장이 아니니 말이다.
하여.
내가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의 보물고에서 얻어낸 팔찌.
그 능력도 단순하다.
이전 슬라임을 형태변화 시켜 루디카의 장난감을 만들었을 때의 하휘 호환.
허나 그것은 이 세계의 형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미쳐버린 보물이기도 하다.
【황후의 보급 팔찌】
【1T】
【해당 물건의 ‘본질’을 바꿔내 ‘식재료’로 갈아 치웁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은 8T 이하의 식재료뿐입니다.】
【횟수 (30,000/30,000)】
【24시간마다 횟수가 초기화됩니다.】
【4T 이상의 재료를 투입할 수 없습니다.】
【만들 수 있는 물건.
1.밀 2.닭다리 3.돼지 안심 4. 시원한 식수 ··· 10. 계란.】
“이걸 손에 넣을 수 있을줄은 몰랐군.”
이것이야 말로 신화의 시대에 만들어낸 제작 도구 중에서도 그 정점에 설만한 물건이다.
물론 너무 위험해서 하르크 또한 전쟁 이후에는 가장 무관한 곳에 보관했다 전해진다.
자 생각해보자.
삼백년 전.
인간의 모든 유통과 물자가 무너져 내리던 그 때. 식량은 어떻게 공급했을 것이며 인간은 어떻게 먹고 싸웠을까.
둔전이 될 턱이 있나, 마족들의 저주에 죄다 식량은 동났을 거고 천족들은 농장은 지켜줄 테니 우리를 숭배하세요. 이러고 있을 텐데.
그 때. 천재 마법사 한 명 ···그러니까 마법적 지능만큼은 하르크를 넘어섰다 전해지는 괴물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초대 황후.
그녀는 놀랍게도 드래곤처럼 ‘모든 속성의 마력’을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설정집에 의하면 드래곤과도 다른 느낌으로 모든 속성을 다뤘으며, 이는 마치 세계의 본질에 접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고 전해진다.
즉. 황제도 그렇지만 황후도 개사기중의 개사기캐. 라는 의미고, 그녀가 관련되었다는 장비들은 하나같이 이 세계의 규격을 파괴하는 느낌이다.
웬만한 DLC 장비들도 황후가 만들었어요. 라는 설정.
어떻게 보면 땜빵용 설정일수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진실인 모양.
즉 이 팔찌는.
“흙을 집어넣어도 밀이 나오는 보급계의 신화 같은 물건이지.”
애당초 8T 이하에, 하루 3만회의 제조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정도가 어디인가.
그 당시 단 하나밖에 만들 수 없었지만 ···그것으로 밀을 잔뜩 만들어서 병사들이 흑빵만큼은 미칠 듯이 먹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귀품.
물론 이런 게 나돌아 다니면 온갖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아예 식사를 안 하는 종족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래서 얼음여왕의 보물고에 처박혔고, 릴리아 스노우도 이 물건을 보고 ‘다른 거 좋은거 많은데 그걸 가져간다고? 꼭 그래야 해?’ 같은 눈으로 본 것이다.
‘아일라. 나다. 와 줄 수 있겠나? 지금부터 ···우리는 제프린에 반역을 일으킨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 반역의 날개를 펼칠 시간이군요!’
자.
그럼 이걸로 한탕 거하게 벌어보자.
***
내 도시락에 대한 설명과, 그로 인해 벌어질 일들을 들은 아일라의 눈은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군요···. 드디어 그 더럽게 맛없는 흑빵을 이 제프린에서 퇴출할 때가 되었어요!”
“너도 먹었나?”
“어머. 가끔 먹는답니다? 가장 저점을 모른다면 위를 향한 반역 따위는 할 수 없는걸요?”
······.
이건 극한의 컨셉충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여기까지 하면 오히려 이해해 줘야 할까.
아무튼 아일라의 머리를 툭 쓰다듬었다.
“왜 그래요. 울프람? 저 뭐 칭찬 받을 일 했나요?”
“아니, 취지는 이해한다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편의점을 하는데, 고작 흑빵으로 배를 채우다니, 좋은 생각은 아니군.”
“그런가요?”
“그렇다. 앞으로는 흑빵을 먹어도 ···내가 만든 걸 먹도록 해라. 시중에 있는 물건들은 영 먹을 게 못 된다.”
“어머나. 후후. 네. 그러도록 할게요. 앞으로 제 몸은···. 울프람이 만들어준 식사로 이루어지는 거군요!”
“레지나가 할 법한 말이구나.”
“···그렇게 심한 말을?!”
아일라는 양 손을 버둥거렸다.
아니 진짜로, 레지나가 할 법한 이야기잖나.
뭐 아무튼.
“그래서 재료 공수는 어떻게 할 건가요?”
“음? ···아. 도시락 쪽 이야기만 했지, 재료 이야기는 안했구나. 나쁘지 않은 물건을 얻었다.”
“팔찌···? 아, 울프람이 쓰겠다고 한 그 보물이군요.”
나는 아일라에게 보물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그래서 무언가를 투입하면 ···이렇게 식재가 나온다. 신선도도 나쁘지 않지. 하루 3만회의 제작 제한이 있다. 정도구나.”
“···이런 물건이 세상에 실존해도 되는 건가요?”
“안 될게 있나?”
“···아, 아뇨. 갑자기 엄청난 물건이 나왔네요. ···광산에서 이런 게 있으면 광산 안에 캠프를 설치할 수 있을걸요? 장담하는데 서부의 모든 광산을 파악하는데 5년도 안 걸릴 거라고 장담하죠.”
눈을 반짝 빛내며 아일라는 팔찌를 바라봤다.
맞는 말이다.
이건 최초의 루비와 함께 우리 파티의 전진 캠핑용으로 쓰일 것이다.
“하나 둘 갖춰가는 것이지.”
“네?”
가장 중요한 탱커의 장비인 네프티의 장비.
그 다음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금의 던전.
캠핑 아이템인 최초의 루비와 보급 팔찌.
루디카에게 넘겨준 빙류곡도와 밀푀유의 목걸이.
모든 것이 엔드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장비들이다.
물론 찐엔드는 아니지만, RPG로 치자면 ‘컷’이라고 해야 할까. 더 쉬운 말로는 ‘준종결’
“초심자의 장갑과 빈즈 하나로 시작해서 ···잘도 여기까지 왔군.”
“울프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만들려고 한다만···. 이 재료로도 충분히 괜찮은 도시락을 납품 가능하다.”
“예에. 하지만 ···대량 조리라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정성. 그리고 체력을 요구하는데 괜찮겠어요?”
“골렘을 쓰는 것은?”
“스피카에게 그 이상 빚을 만들면, 사장이 스피카가 되는 거 아닐까요?”
무척 날카로운 지적이세요.
솔직히 요새 너무 스피카에게 의지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하던 참이다.
“음···. 아예 다른 매점들에게 하청을 주는 건 어때요?”
“호오. 계속 해 보도록.”
“재료비를 받고 재료를 공급해주고···. 간단한 레시피를 주는 식인 거죠. 대신 저희만 계약하고 납품할 수 있고 편의점 마크를 달고···. 그런 식으로 말이죠?”
호오.
굉장히 신식 방식이구나.
그렇다.
최근의 우리는 제프린 중앙구 매점들과의 연줄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자면 또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위생이나 빼돌리기 등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군.”
“어머, 그거야말로 가장 멍청한 짓인걸요.”
“어째서지?”
“그야. 울프람은 황손이잖아요?”
“그렇지.”
“이 제프린에서 상업을 한다는 것은 ···학비가 없는 학생이거나, 아니면 진짜 검과 마법이 아니라 돈으로 이 세계에서 뜻을 펼쳐보겠다는 아이들이랍니다?”
“···그렇군.”
“그런데 황손의 수주에서 벌써부터 장난을 칠 아이들이라면, 후후. 글쎄요. 오히려 보고 싶은걸요. 만약 나온다면···. 제 선에서 충분히 알려주면 되겠죠.”
···그 정도였나?
***
아일라가 모두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을 때. 대다수가 우리 물건을 납품 받기로 했다.
내가 보급 팔찌로 재료를 만들어 놓으면, 매일 새벽에 그들이 식재료를 가지러 오는 방식이다.
물론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편의점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해뒀고, 이들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식재료와 함께, 내 특제 레시피도 건네 줄 것이니 이를 따라 만들면 금방 만들 수 있다. 제군들의 건투를 빌지. 매 달 위생상태를 점검해 하위 2개 점포는 벌점을 상위 2개 점포는 상점을 줄 것이며··· 각각 5점 이상 모았을 때. 계약 해지와···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크, 큰 포상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우리 편의점의 물건 중 두 개를 독점 공급해주지.”
거기까지 말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욕망에 솔직한 녀석들이라니, 편하구만 그래.
허나 공포와 욕망만으로 인간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다.
공포는 쉽게 잊혀진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에 가볍게 쓸려나가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공포와 욕망 안에 정의와 신념을 넣어주는 것이 최고다.
자 그럼.
아일라가 줬던 밑밥을 가지고 어디 한 번 장광하게 썰을 풀어볼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저 더럽게 맛없는 흑빵의 맛. 입으로 씹기도 힘들어 침으로 불려서 겨우겨우 입 안에 쑤셔 넣어야 했고,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아 지저분한 물로 넘겨야 했던 매일을 말이다. 그렇게 먹었고, 그렇게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내 말에 학생들이 흠칫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 보이나? 허튼 소리. 나도 이브에게 옥좌를 빼앗기고, 그렇게 살았어야 했다. 짧은 시기였다 할 수 있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상은 최저선이라는 것이 없다. 그 누구도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인생 격변의 마지막 입장권이라 불리는 제프린에 입학했음에도··· 그 격차는 하늘과 땅이었다. 아니 드높은 천상과 하수구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
내 말에, 학생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러니 반역을 시작하자. 이 썩어빠진 제프린의··· 개 먹이로도 못 쓸 음식만 공급하는 가게에서 평민들도 가난한 학생들도 하루 한 끼는 배불리, 맛있게,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되어보자. 하루 한 번 정도는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가게가 되는 것이다. 그대들이, 그리고 내가 이 손으로 해내보자. 그간 자신의 치세를 치적하기에 바빴던 황손들이 삼 백 년 간 건드리지 못했던 곳을 우리들이 바꿔보자꾸나.”
나는 박수를 짝, 하고 치고 모두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세상을 타고 오르는 반역의 시작이다.”
나의 선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물론.
“···흑. 드디어. 드디어 이 시대가··· 저의, 저의 반역의 시대가···. 여기서부터··· 저는 맨날 원정만 다녀서··· 설마, 제프린 내에서 반역을 잊은 걸까, 걱정도··· 괜한 걱정···.”
내 옆에 서 있던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가장 많이 울면서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격렬하게 박수를 쳤음은 말 할 것도 없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