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60)
459. 만마전의 주인
그렇게 파티원들이 돌아갔고, 이브의 절망을 즐겁게 지켜본 나는 편의점 카운터석에 앉았다.
문득 매장을 보니, 그 곳에는 내 모습을 한 채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인형이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밀푀유의 말로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기능은 갖추지 않은 행동패턴을 보인다.’ 라고 하는데, 즉 저것도 어떻게 보면 내 욕망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건 울프람의 욕망일까. 아니면 이영진의 욕망일까.
생각보다 흥미로운 주제라 나는 놈을 가만히 바라봤다.
놈은 이쪽을 힐끗 보더니 대충 손짓했다. 뭐지. 나를 부르는 건가.
“네가 오는 게 아니라. 나보고 오라는 것인가?”
놈은 끄덕였다.
허. 세상천지가 복잡기괴하구나, 분신이 본신을 부르는 세상이 올 줄이야. 조상님 얼굴을 어찌 뵐꼬···.
아무튼 그렇게 인형 옆에 서니, 놈은 그 자리에서 벌러덩 누워서 양 팔을 귀 옆에 눕히고 다리를 붙여 반 정도 접었다.
어떻게 봐도, 어디서 봐도 윗몸 일으키기를 하려는 모습.
“다리를 잡아 달라는 것인가?”
놈은 나를 빤히 바라봤고, 그것을 긍정이라 파악해 양 다리를 붙잡아주니, 이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묘하게 내 복근이 당기는 것이 ···놈의 윗몸일으키기가 정말 먹혀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운동하는 것인가?”
놈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고, 나 또한 동의했다.
그래.
네가 누구의 욕망으로 움직이던 뭔 상관이겠냐.
서로간에 체력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면 그저 운동 할 뿐이지.
【정자세로 올바른 운동을 했습니다. 체력에 미미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세 시간을 운동한 후. 우리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 보고.
끄덕.
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 이별을 고했다.
작은 우정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
앨리스 마이스터는 최근 세상의 풍파라는 것을 한창 느끼고 있었다.
“앨리스 양. 그럼 내일 뵐게요!”
“네, 들어가세요.”
강의가 끝나고 다들 기숙사로 귀가하는 길.
혼자 공용학부 제 6 강의실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봤다.
원래라면, 자신의 유능함을 자랑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파티에 한 자리 얻을 생각이었다.
그럴만한 능력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입학한지 벌써 두 달.
허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안 줬다.
자신의 ‘정체’나 ‘병’을 알고 있는 듯 한 뉘앙스였지만, 그것을 빌미로 그 어떤 접촉도 해오지 않았다.
“정말로 알고 있다면, 나를 아니 마이스터 가문을 이용해 먹기에 무척이나 편리했을 텐데 말이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할아버지는 자신을 아끼고, 자신의 병은 극도로 희귀한 병이다.
그걸 고칠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 어떤 사기꾼에게도 가산을 가져다 바칠 분이 자신의 조부 아닌가.
특히 풍문에 의하면 이브 폰 로엔그린은 현재 장로 가문과 접촉해 그 세를 불리고 있다고 하지 않나.
중립을 택한 ‘검’은 울프람 – 이브 연합의 좋은 손패가 되어 줄 거라 확신하지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그 어떤 접촉도 해오지 않고 있다.
“몸이 달아서 내가 찾아가길 바라는 걸까.”
필시 그럴 것이다.
스스로 찾아와 협상하거나 협박하는 모양새보다, 앨리스가 찾아가 안달복달 하는것이 교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즉, 앨리스 앞에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놓여 있는 것이고, 함정임을 알아도 스스로 몸을 바쳐야 하는 상황.
비열하고 더러운 황손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해야···.”
앨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강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면 안 되는데, 그 치욕에 자기도 모르게 이성이 흔들릴 뻔 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설마 이것까지 노린 것인가.
앨리스의 그런 상념은 곧 주변을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의 잡담에 의해 깨졌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편의점표 도시락! 점심에 안 먹고 내버려 뒀어!”
“나도!”
주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돌아가는 그 모습에 앨리스는 다시 한 번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신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단정 짓자니, 저 행동이 납득이 안 갔다.
도시락이라는 새로운 먹거리 유행이나 여기저기 금지 구역을 쏘다닌다는 소문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뚱하니 기다리고 있는 악당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스피카 양과 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피카 양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자신에게 그 어떤 시그널도 오지 않는다는 것은···.
“설마. 저를 잊은 걸까요.”
그리 생각하니 무척이나 복잡한 기분이었다.
분노는 이미 잊었지만, 그 안에 작은 허탈함과 자조가 섞여 있었다.
이런 감정은 또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울프람 황자님은 요새 뭐 하고 계실까?”
“못 들었어? 8 마법학구에서 자신만의 하렘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진짜···? 제프린에서 그래도 돼?”
“황손이시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다른 학생들의 재잘거림에 앨리스는 다시 한 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찾아가봐야겠네요.”
결국 완벽한 항복 선언.
자리에서 일어선 앨리스는 터덜터덜, 그 울프람이 만들었다는 하렘구를 향해 걸었다.
***
그렇게 내 인형이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나는 옆에서 아령을 조지고 서로 그렇게 조지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싶을 때 쯤 운동이 끝나는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체력에 미미한 영향이 왔으니, 언젠가 체력을 하나 올려 사람 꼴을 보고 말겠다는 길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날은,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온 날이었다.
은발 청안의 천재 소녀 검사.
마치 얼음과 미스릴로 빚은 인형같은 캐릭터.
이 게임 내에서 순수하게 외모만으로 치면, 그 누구도 예쁘다 소리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외모천재.
“앨리스 마이스터.”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황자님.”
“호오.”
웬일이래?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오래간만이에요! 황자님!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던 ···‘진짜’ 앨리스의 모습이다.
“그렇구나. 오래간만이로군. 잘 지냈나?”
“예에. 황자님께서도 강녕하셨는지요.”
“뭐. 나쁠 게 무어 있겠나. 차라도 한 잔 내오도록 하지. 앉아라.”
“황자님께서 직접 타주시는 차라니··· 영광입니다.”
내 말에 앨리스는 자리에 앉았다.
어디보자.
본모습이 드러났다는 건 환자가 왔다는 거고, 환자가 왔으면 요양식을 내줘야지.
모름지기 장염 수준의 병이라 해도, 올바른 편의점 주인이라면 불닭뻐끔면이 아니라 포카리스웩을 내놓는 법.
하물며 이런 중병을 앓고 있는 어린애가 왔으니···.
꽤 귀한 차를 내놔야겠군 그래.
“마셔라.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향을 가진 차다.”
그렇게 앨리스는 한 모금 차를 마시고 조심스레 나를 올려봤다.
“정말 좋은 차군요.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합니다.”
“음. 너에게 딱 어울리는 차로 골라봤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저에게 어울리는 차···. 하면, 제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시다는 의미시군요.”
“어찌 모르겠나.”
“그렇다면···. 역시 그런 것입니까?”
“역시라니?”
숨을 가다듬고 앨리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 약점을 아시고도, 거래를 제안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저에게서 더 얻어갈 것이 있다 확신하셨기 때문입니까? 이 비루한 몸. 혹은 몸과 마음 전부. 아니면 가문?”
네?
지금 뭐라고요?
예……?
***
앨리스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지로 잡아 눌렀다.
애당초 자신의 특수한 병 때문에 찾아 왔으나, 이렇게 남자와 서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살면서 처음인 상황.
가족 외에 직접적으로 대면한 남자는 처음.
특히 평소 밝은 척 하는 가면을 쓰고 무도회에 나갔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본심을 드러낸 상태로 가족 외 누군가와 다과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첫 경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내놓은 차가 정말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작용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잔 더 들겠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하고 한 잔의 차를 더 입에 머금었다.
이건 꽃향기일까? 아니다.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신비로운 향기였다.
처음 혀끝에 닿았을 때는 장미의 향이. 찻물을 입 전체에 머금었을 때는 백합의 향이. 그리고 목울대를 넘어갔을 때는 해바라기의 잔향이 났다.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 총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잔의 차에, 앨리스의 표정이 풀어졌다.
“차가 마음에 드나 보구나.”
“예에. 부디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네요. 감사합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앨리스는 슬쩍 입을 가렸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 했던 말이지? 사람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을 가진 게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미안하지만 구매할 수는 없겠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굉장히 귀한 찻잎이라서 말이다.”
“향기를 비료로 키운 듯한 찻잎입니다. 귀할 만도 하죠. 이렇게 몇 잔이나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들고 싶다면, 언제든지 이 편의점에 찾아오도록 해라.”
“그래도 되겠습니까?”
앨리스는 반색하며 되물었고 울프람은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른 파티원들도 환영하지 않겠나.”
“파티원 ···아. 울프람 황자님의 다른 동료분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다들 이 편의점에 자주 들리는 편이지. 하나같이 좋은 녀석들이니 너도 함께 하는 게 어떻겠나?”
“네 부디···.”
거기까지 말하고, 앨리스는 스스로의 입을 가렸다.
지금 뭐라고 했지? 부디 일행에 넣어 주세요?
꽈악.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행히. 일행에 넣어 달라는 말 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
잘 생각해봐라. 앨리스 마이스터.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자신의 병명을 안다.’ ‘어중간하게 아는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 내놓은 이 차의 효능을 보면 완전히 알고 있다고 추론해도 무방.’ ‘허나 세력을 모으는 중임에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찾아오길 바랐다.’ ‘실제로 찾아가니 누가 봐도 이렇게나 귀한 차를 몇 잔이나 내놨다.’ ‘즉 이건 의도적인 함정’ ‘풀어진 분위기 속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자신을 이 편의점에 자주 오라고 권유했다.’ ‘이 마법 8학부는 울프람의 영지. 그리고 ···그가 다른 여성들과 하렘을 꾸렸다고 하는 만마전’ ‘그런 곳에 맨몸으로 찾아 와 처음부터 경계했을 텐데’ ‘그의 달콤한 꾀어냄에 마음이 느슨하게 풀리고 말았다’
‘즉. 저 말은···.’
결론이 나왔다.
앨리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제 마음이 아니라 교복의 후크마저 느슨하게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뭐라?”
“장담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알고 있다.
‘처음 느끼는 감정’ 이기에, 얼굴이 새빨개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자신은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애당초 상대는 약혼녀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를 자신의 가게에 무한정 들이는 난봉꾼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다.
***
방금 전까지 차를 잘 마시고 있던 앨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양 팔로 가슴께를 가리저니 새빨개진 얼굴로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저, 저는 뜻대로 하실 수 없을 겁니다! 절대로!”
음.
방금 전부터 몸이 마음이 어쩌니 집안이 어쩌니 하는 거 보니.
감수성 풍부한 소녀심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희망의집 시절에도 오빠랑 속옷 같은 세탁기에 돌리지 말라고!! 하며서 오열하던 동생들이 있었다.
내가 녀석들 기저귀 갈아주고 그랬는데 말이야.
하여간 동생놈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니까.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있을 무렵. 앨리스의 말이 이어졌다.
“아, 아무튼,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앨리스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찻잎을 좀 달라고 했던가.
찻잎 자체는 요정향에서 나온 일품 중의 일품이라 쉽게 내어줄 수 없었다.
엘피라네도 술이랑 교환하긴 했지만 외부 반출 금지에요. 라고 말했으니 어쩔 수 없거든.
이게 진짜 보통 차가 아니라··· 모든 속성의 정령력이 충만한 상태에서 키워내 3년간 달빛을 머금은 찻잎이라···.
뭐. 사실 귀해 보이지만 대충 따져도 297년간 뜯을 수 있는 약초다.
하여간 엘피라네 녀석. 쪼잔해가지고는.
뭐. 찻잎은 안 된다고 했지만.
“앨리스.”
“뭐, 뭔가요. 황자님.”
“찻잎은 안 되지만, 찻물은 따로 담아줄 수 있다. 가져가겠나?”
앨리스는 잠시 나를 보고, 티포트를 보고 분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받아···. 가겠습니다.”
하고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대체 뭐가 저렇게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걸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