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62)
461. 이터널 완장
그날따라 새벽 편의점 앞은 무척이나 부산했다.
내일 있을 운동회 판매를 위해 노점상 조합이 모여서 각자의 메뉴를 논하기 시작했다.
재료의 종류가 한정. 하지만 그 숫자까지 딱 정해져있음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대표격으로 제임스가 나서서 물었다.
“그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지.”
“아뇨. 갯수 제한은 예산안 내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어떻게 내일까지 발주한 모든 물품이 도착할 수 있는지, 저희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흠.
생각해보니 그도 그런가.
물건이야 예산 안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그걸 내일까지 정량 배송 해 준다는 것은 이 시대에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다.
가뜩이나 물류가 망해버린 이 세계에서 로켓택배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그것은···.”
“그것은?”
음.
제기랄.
이건 나도 대답이 궁하다.
그렇다고 놈들의 기대 어린 시선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거라 주는대로 받거라 하면 좀 억압하는 분위기잖아.
그러니까.
“황손의 무척이나 특별한 연줄이다.”
“아아···.”
“그런걸로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네, 알겠습니다!”
뭐야.
진짜 이해 한 거야?
황손의 특별한 연줄이라니, 그런 거 있으면 나부터 썼겠다.
“정말 이해한게 맞는가?”
“예. 전부 이해했습니다. 황자님께서 고작 저희들을 위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모두 이해했습니다!”
그리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노점상들.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완전 이해했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는 녀석들도 있었다.
거 참.
단순하게 살아서 좋겠다.
그 점은 부럽네.
아무튼, 우리의 장사 계획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선 발주 들어온 도시락만 삼천여 개. 그 외에 이건 반드시 팔린다 싶은 양념 바베큐 닭다리나 팝콘. 구운 옥수수에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팔기로 한 병 음료. 거기에 그걸 끌고 다닐 트라이스타제 흑수정 카트까지.
돈이다. 돈. 떼돈!
이 모은 돈으로 이제 환금의 성역에 가서 나는 한 번 더 뽑기깡을 돌릴 것이다.
뽑기는 좋은 문명. 그 척추를 타고 오르는 짜릿한 감각을 잊을수가 없다.
그렇게, 다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울프람. 잠깐 얼굴좀 보죠.”
“여기서 보면 안 되나?”
“따라오기나 해요.”
모두가 땀흘려 일하는 이 편의점 앞에.
공권력의 철퇴.
즉. 이브 폰 로엔그린이 찾아왔다.
***
배알 꼴리지만, 지금 시기에는 이브를 건드리면 안 된다.
이 녀석이 안 되겠네요. 판매 허가는 취소하도록 하죠. 라고 한 마디 하는 순간 저는 이브 님 앞에 무릎 꿇고 조아린 채 오직 그녀의 윤허만을 구해야 하는 비천한 울프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브가 내 뒤통수를 신발로 밟으면서 그랑펠리시에 마냥 ‘허접’ ‘허접’ ‘위임장 없으면 까불지도 못하는 삼류 황자’ 같은 소리를 해도 으그극···. 하면서 머리를 흙탕물에 처박아야 하는 신세다.
그만큼, 지금 저 노점상들은 중요하다.
나중에 그저 재료만 납품하면, 알아서 물건을 팔아줄 녀석들이며.
저 녀석들이 마이더스의 손에서 더욱 위로 올라갈수록 내 입지 또한 커진다.
그러니, 위임장의 취소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일단 용건을 듣고, 빠르게 집에 되돌려 보내자. 특별히 사탕 세 봉지를 주도록 하지. 가져가서 맛있게 냠냠하렴.
“용건은 뭐지?”
“아뇨. 별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서도 대단한 건 아니죠. 당신에게 있어서는···. 듣기에 따라 다르겠네요.”
“제대로 정확하게 한 줄로 요약해줬으면 한다만.”
“무제한 3,000m 마라톤에 나가세요. 이미 접수는 해놨어요.”
“제대로 정확하게 전부 다 이야기해봐라!”
【황실 혈통이 작동합니다.】
【황손의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야. 지금 그거 따질 때냐? 어? 쟤가 지금 나를 대놓고 어? 암살하겠다는데, 지금 그걸 따질 때냐고!
“좋아요. 설명하도록 하죠.”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저는 지난 3년간의 당신 행보를 적은 기록 문건을 봤어요. 그 안에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공식 행사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없더군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예에. 어련하시겠어요. 하지만···. 황손이라면, 거기에 이 제프린의 학생회장이라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하나도 안 했잖아요?”
“······.”
그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 몸의 원래 성격상 그런 짓을 했을리가 만무하거든.
그리고···. 공식 설정상. 황손은 제프린에 입학했을 때. 타의 모범이 되며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하는 의무가 있다.
이브가 귀찮아하면서도 여기저기 연설하러 다니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내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학생회장의 자리에서 쫓겨난 것 아니었나?”
“하지만···. 아직 제프린에는 있죠. 학생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황손으로서의 의무도 한 번도 안 했잖아요?”
또 그렇게 나오시면 제가 할 말이 없구요.
“그래서 무제한 3,000m 마라톤인가?”
“예에. 원래 운동회는 대부분 황손이 나가서 그 무대를 빛내기 마련이죠. 저도 작년에 나갔답니다?”
“그랬지. 마법학부 단거리 질주.”
“귀여운 다과회 수준의 질주였지만요.”
네 입장에서는 그렇겠지.
“그렇게 쉬웠다면 올해도 네가 나가면 될 일 아닌가.”
“제가 나가면···. 꼭 그렇게 마법 학부생들의 기를 죽여놔야하냐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요.”
“그것도 그런가.”
즉. 이 녀석은 학생회장이 아니라 황손으로서 그 의무를 다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보상은?”
“보상? 당신이 다하지 않은 의무를 찾아내서, 황손의 책임을 다하라고 하는 건데, 그런 저에게 보상을 바라나요? 오히려 찾아준 제게 감사해야죠?”
“이런 식으로 나올 생각인가?”
“이런 식으로 안 나온다면요? 내일 장사하고 싶잖아요?”
윽.
으윽···.
명분도, 힘도 저쪽에 있다.
평소라면 하하. 개소리 집어 치우시지 같은 식으로 끝냈겠지만···.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다.
“알겠다. 그래서 몇 시 경기지?”
“내일 오후 두 시 랍니다. 뭐. 여러모로 준비를 갖춰서 참전하길 바랄게요.”
젠장.
해 주면 되잖나. 해 주면.
***
그 날 저녁.
파티원들에게 단톡으로 ‘무제한 3,000m 마라톤’ 참전을 알렸다.
‘진짜요. 울프람? 괜찮겠어요? 어렵다면 제가 울프람으로 변신해서 달릴까요?’
‘으, 으음. 이 로열가드 네프티. 어찌 해야···.’
‘아하하! 울프람! 루디카는 기대하고 있겠다!’
‘서, 선배님···.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으셔도···.’
‘울프람. 괜찮겠나. 죽으면 매년 성묘는 가 주겠다만···.’
‘황자님···. 아, 저 전날 참전자 모두를 처리해두면 황자님께서 위험에 처할 일은···.’
아일라부터 시작해 레지나까지 전원이 내 출전을 걱정하는 모습.
그래 뭐. 내 체력을 생각하면 죽을까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야.
그 와중에 이브 혼자 걱정하지 않는 거 실화냐. 확 씨.
나중에 생크림빵에 특별히 지방을 더 넣어서 선물해주도록 해야겠다. 엄청나게 좋아하겠지.
아무튼.
‘그래서 너희들에게 나누어줬던 물품 중 몇 가지를 회수하거나, 도움을 좀 얻고 싶다.’
내가 몇 가지 물품을 지목하자, 파티원들은 선뜻 그 물건을 가지고 내일 아침까지 오겠다고 대답했다.
더럽다고?
아니다.
원래 리더 혼자 깨야하는 맵에서는 파티원 장비중 좋은 거 리더에게 덕지덕지 바르고 하는거 모르나.
응? 내가 언제 가진다고 했어? 한 번만 쓰고 곱게 돌려준다고 했잖아. 내가 너희들 물건 슈킹···. 아니 긴빠이···. 가 아니고 가져다 쓰겠냐고, 어?
‘울프람···. 이길 생각이에요?’
느긋하게 몸을 풀다가, 이내 올라온 단톡 메세지에 어깨를 으쓱했다.
‘출전한 이상 이길 각오로 임한다.’
‘후후···. 네. 그럼 제가 빌려 드릴만한 게 있을까요?’
음.
솔직히 아일라에게서 빌릴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상처 받겠지.
‘응원 부탁하마.’
‘네! 울프람!’
자.
오래간만에 몸을 쓸 시간이다.
***
그리고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힘내라! 힘내라! 울프람!】
아일라가 발주한게 분명한 특제 응원용 애드벌룬은 그 폭과 길이만 각각 십 미터가 넘어가는 종이를 물고 날아올랐고, 그 종이에는 저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저 필체가 아일라의 것이라는 점.
즉. 저 녀석은 ‘응원해달라’ 라는 말에 저런 것을 만들어 낸 것인가···.
“거 참. 어쩔 수 없는 녀석이로군.”
느긋하게 어깨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솔직히 오늘은 노점상으로 물건 팔아먹고 돈 좀 벌면서 우하하 할 생각이었다만, 그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셈.
즉 어울리지 않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완장 차고 출발선에 선 지금. 내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무제한 3,000m 마라톤 출전 선수들은 입장해주세요.”
그 말에 단체로 이동해 공터 앞에 섰다.
이 3,000m 무제한 마라톤은 실내가 아니라 실외 경기.
전원 동시에 출발해 3,000m 앞에 있는 결승점을 처음으로 통과하면 끝.
“자, 전원 죽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러면 이상하지 않나.
왜 3,000m인데 무제한인가.
그리고.
“하하. 이것 참. 다 쓰레기들밖에 없잖아.”
“응. 완장을 전부 빼앗아서 승리하면 그만.”
“어이, 황자님이 계시다고.”
“운동회는 스포츠맨십. 설령 불운한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셈.”
왜 모두가, 혈기가 아니라 살기를 띄고 있는가.
“다들 숙지하셨다시피 무제한 3,000m 마라톤은 본인의 완장을 빼앗기지 않은 상태로, 상대의 완장 5개를 빼앗고 골에 도착하면 됩니다. 우애를 다지고, 결승점을 목표합시다.”
간단하다.
이건, 그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마라톤이 아니라.
완장을 뺏기 위해 무슨 짓을 하던 ‘무제한’ 인 ‘마라톤’인 셈.
명실상부 제프린 운동회의 가장 화려하고 멋진 ‘배틀 레이스’
어째서 이브 녀석이 이리 나약한 나를 마라톤에 넣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팔뚝에 질끈 맨 주황색 완장이 아름답게 빛난다.
아아. 오래간만이구나 이 서늘한 완장의 촉감.
이걸 찬 이상, 나도 쉽게 패배할 수 없는 노릇.
“【멋대로 지껄이는 구나 쓰레기들아】”
“오, 오오···.”
“윽. 무슨 압박이···.”
이 쓰레기들을 전부 정리하고 승리하면 그만인 셈이다.
“시작!”
심판의 출발 선언이 들린 직후. 다섯 명의 학생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선언하마.
“【이 세상에서 완장은 오직 하나. 바로 나다】”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
학생회 운영 본부는 본디 바빠야 정상이지만, 이브 폰 로엔그린은 그 모든 것이 ‘자동화 실패’에서 나온 오류라고 생각하고 팸플릿에 제프린에 대한 찬사를 지우고 ‘자주 묻는 질문’란을 대폭 늘림으로서 ‘모르면 찾아보세요.’ 라는 식으로 대처했다.
결과적으로 민원 때문에 바빠야 할 운동회 본부는 생각보다 느긋한 상황.
어느 정도냐면.
이미 졸업한 심복을 불러서, 차라도 한 잔 타달라고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차는 마음에 드시나요? 이브 님.”
“예에. 마음에 들어요. 오래간만이네요. 실피아가 끓여준 차를 마시다니.”
“원래 차는 제가 당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랬죠. 후후. 그냥 의미만 파악해서 들어주세요.”
“예에. 그런데 이브 님.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실피아의 진지한 표정에 이브는 차를 마시고,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울프람을 왜 그런 위험한 곳에 출전시켰냐. 인가요?”
“네.”
“설명했잖아요. 황손으로서 의무를 다 하라.”
“이브 님···.”
“정말. 실피아. 언제부터 그렇게 농담이 안 통하는 성격이 되었나요? 후후. 일단 실피아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 남자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오히려 위험한 건 울프람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에요.”
“그야 단기 결전에서는 그렇겠지요. 하지만 마라톤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정말 다를까요? 저는 적어도···. 현 제프린에서 그 남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출전시키신 겁니까?”
“예에. 황손으로서 의무를 다 하라고 말이죠. 차나 한 잔 더 타주시겠어요?”
그런 이브의 말에 실피아는 느긋하게 찻잎을 우려내며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후후. 거짓말이 많이 능숙해지셨네요.”
“뭐라고 했나요?”
“황손의 의무···. 그게 전부는 아니시죠?”
“······.”
“지금의 울프람은 음지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상태. 기사학부나 마법학부보단 상인들이나 일부 교수, 귀족들 사이에서만 그 소문이 도는 존재. 그런 그에게 제프린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운동회에서 좋은 성적···. 아니 압도적인 성적을 내서, 양지에서도 빛날 기회를 한 번 만들어 준다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걸요?”
“어머, 그게 아니라면···. 울프람에게 운동이라도 할 기회를 마련해줬다던가···. 후후. 그의 건강이 걱정이셨나요?”
“실피아···. 재미없는 농담은 그 정도로 해요.”
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찻잔을 집어 드는 손을 떨었다.
“라피스라줄리는 현재 대여 상태기 때문에, 차를 흘리셔도 도와드릴 수 없답니다.”
“안 흘려요!”
이브의 포효에, 실피아는 키득키득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솔직하지 못한 남매 관계.
그럼에도···.
이렇게 행동으로 나설 정도라면···. 어느 정도는 친해졌나보네.
뚱한 얼굴의 이브를 보며 실피아는 숨죽여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