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64)
463. 완장의 무게
루디카 핫산 샤도우.
빙류곡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주위는 말 그대로 시산혈해.
세상 모든 것이 그녀 발아래에 깔려 암살자는 고아한 웃음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그런가.
네 녀석···.
“다 죽인건가? 모든 학생을···.”
“으, 응? 아니. 안 죽였어. 전부 의식만 잃은 상태.”
아. 그런가.
“설마, 결국 저질러 버린 줄 알고 고심했잖나.”
“무슨 고심?”
“이렇게 백주대낮에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무마할지 말이다.”
“정말, 사람을 대체 뭘로 보는 거야 울프람.”
···암살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루디카는 풋 하고 웃고는 끈에 주렁주렁 묶어놓은 다발을 흔들었다.
당연히 돈다발이나, PK의 상징인 귀꿰미는 아니고, 완장 다발이었다.
“호오. 전부 다 정리 한 건가?”
“물론이야. 울프람이 출전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우승을 노린다고 하니까 다른 녀석들이 방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싹 정리하고, 우리 둘 만의 무대로 만든거지.”
“그런가···. 그래서.”
결승선 바로 앞에 서 있는 루디카와, 그 결승선을 넘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시체들은 하나같이 반응이 없다.
죽이지 않았다면 【핫산류 : 공수암인】에 당한 것이겠지.
【치명타로 적중시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며 강제적으로 기절의 상태이상을 부여한다. 상대의 체력은 1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설명문구를 가진 완전무결한 제압기.
이 녀석의 모든 공격은 치명타기 때문에 즉 모든 공격이 기절이다.
그리고 루디카가 아니라 다른 암살자들이 【핫산류 : 공수암인】을 배우는 것은 공통적으로 1차 이후.
즉 이 녀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벽을 부쉈다는 이야기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런 짓을 했지? 심지어···. 저 녀석도 쓰러트려야만 했나?”
저기 슬쩍 보니 익숙한 톤의 갈색 머리도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세상에, 네프티잖아.
파티원끼리의 내분은 금지사항이라는 것을 잊었나?
“아하하, 네프티는 오히려 내가 봐주려고 했다만···. 저쪽에서 대련을 신청했다. 정당한 대련이니 잘못 될 것은 없지.”
“······.”
그것도 그런가.
“그래서, 이유를 못 들었다만.”
“최근···.”
“최근?”
“울프람이, 나랑 안 놀아주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빨개진 얼굴로 루디카는 시선만 옆으로 돌렸다.
뭐야.
그러니까.
안 놀아주니까 삐졌다는 건가.
“그 때문에 전원을 정리했다?”
“뭐, 그런 것도 있고···. 우리들이 진심으로 놀 기회는 얼마 없잖아?”
“논다. 라.”
“설마 거기서 하늘로 날아오를 줄은 몰랐다니까?”
작년의 대련을 이야기 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때는 꽤 재밌었지.
“그래서, 나와 놀기 위해 다들 정리하고, 둘만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런 셈. 어때. 놀아 줄 거야?”
“그야 물론.”
루디카 핫산 샤도우.
전설의 암살자와 합을 겨룬다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이벤트가 아니다.
“역시. 울프람. 그렇게 말해 줄 줄 알았어. 아 맞다. 울프람. 그거 알아?”
“뭐지?”
“우리 가문에서 울프람은 참 유명하거든? 내가 많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네가 얼마나 강한지 다들 궁금한가봐. 그래서 오늘 많이들 이 곳을 보러 왔어.”
“그런가. 즉···.”
“응. 샤도우 가문의 장로들이 여기저기서 우리 둘의 놀이를 구경하고 있는 셈.”
과연.
그런가.
“별 상관 없는 이야기군.”
“그래···?”
“그래. 노는 건 우리 둘이지 다른 관객이 누가 보던 무슨 상관이겠나. 자 들어와라 루디카.”
어디 신나게 놀아보자꾸나.
그렇게 말하자, 루디카는 행복한듯 웃고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거 참.
놀아주지 않는다고 삐진 파티원을 달래주기도 해야하고 말이야.
리더란 쉽지 않구만 그래.
***
루디카와 울프람은 중앙에서 단검을 한 번 마주한 이후 가볍게 튕겨냈다.
그것이 싸움 시작 신호라는 것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첫 공세에 나서기 직전. 루디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움직임이 아주 조금 더딘걸.’
여기에 오기 전. 분명 누군가와 싸우고, 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
울프람의 최대 약점이 체력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점을 공략하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루디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승리가 아니었다.
방금 전 울프람에게 했던 말.
‘샤도우의 원로들이 보고 있다.’ 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핫산의 학창시절을 보겠다며, 몇 명의 장로들이 이 제프린에 참석했고 ···당연히 루디카가 그렇게 홍보했던 핫산의 반려 또한 구경하러 온 것이다.
과연 울프람은 핫산의 곁에 있기에 합당한가, 핫산의 피를 이어나가기에 적합한가.
물론 루디카는 그런 식으로 조건을 보면서 연애를 할 생각일랑 추호도 없지만, 가문의 노친네들은 또 다르다.
다들 엄격하게 울프람을 분석하러 왔다.
즉 여기서 울프람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울프람과 루디카의 웨딩 로드에 불필요한 지적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울프람이 훌륭한 일전을 보여준다면···. 가문 전체의 자발적 지원을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울프람은 그 기이한 전략으로 한 번 루디카를 꺾었던 몸.
이 자리에서 그가 조금이라도 능력을 보여준다면 가문의 장로들의 지지는 어려워도 그럭저럭 납득은 시킬 수 있을 거다···. 라고 루디카는 생각했지만.
울프람의 상태가 안 좋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일부러 봐주거나 져주자니 장로들의 눈을 속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당착에 빠진 루디카가 살짝 손속에 여유를 두려던 그 때.
“거 참. 놀자는 거냐. 아니면 장난을 치자는거냐.”
“응?”
“조금 지쳤다고 봐줘야 할 정도로 내가 나약해 보였나?”
“···그게.”
“자. 덤벼라 루디카 핫산 샤도우. 아니면 내 쪽에서 가도록 하지.”
직후 울프람이 움직였다.
오른 손을 흔들자 오른 발이 나갔다. 오른발이 땅을 밟는가 싶었더니 상체가 꺾인다, 그대로 넘어지나 싶었더니 마치 기어가듯 바닥을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거다.
이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스스로 ‘캔슬’이라 말했던 움직임이다.
순식간에 전신에 혐오감이 든다. 사랑하는 울프람이지만 이 움직임을 취할 때는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인간을 넘어선 속도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움직임을 취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것 아닐까.
꾸물거리다가도 곧게 서고 곧게 서다가 넘어지며, 넘어지면서 미끄러지고, 다시 꾸물거리며 오른손에 있던 단검이 왼손으로 옮겨가고 이내 오른손으로 돌아가 공중에 떠서 공격한다.
루디카도, 알고 있다.
아니 루디카이기에 알 수 있다.
인간의 한계는 옛 저녁에 넘어서 신화의 영역에 도달했다 자부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울프람의 저 움직임을 어느정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저건.
세상의 근본 그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방법도 없는 괴이한 움직임.
“읏?!”
“호. 막아냈는가.”
상대의 움직임이 인간을 넘어섰다고 한다면 당연히 인간을 상정해 싸우는 루디카로서는 완전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아까 전보다 창백해진 얼굴로 울프람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이지만, 아마 저 기술을 쓰는 것으로 울프람의 체력이 깎여 나갈 터.
방어하면 그만이지만, 그 방어가 완벽히 먹힌다는 자신이 없다.
즉. 서로 살수를 펼칠 수 없는 이상. 이 순간만큼은 울프람과 루디카는 동일한 눈높이에 서있는 셈.
능력치는 자신이 압도적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교로 자신과 대등하게 서 있는 남자를 보며, 루디카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정말. 어디서 저런 기술을 배워 온 건지.
이보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지만, 끝나지 않는 놀이는 없다.
무엇보다 이 이상 질질 끌었다간 울프람도 기절할지도 모를 노릇.
장로들도 눈이 있다면 울프람의 이 움직임을 봤을 터.
보여주기식 놀이를 끝내고, 루디카는 처음으로 자세를 잡으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고했다.
“울프람. 다음 일 격으로 끝내자. 상대에게 한 방 먹인 쪽이 승리. 어때?”
“그거 좋군.”
곧 죽어가면서도 저 허세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이번 일격으로 놀이가 끝나는 건 아쉽지만, 만약 이 놀이에서 울프람이 자신을 이긴다면.
그렇다면.
더욱 더 사랑스러워질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지.
루디카는 그리 생각하면서, 울프람을 향해 돌진했다.
***
운이 좋았다.
마지막에 루디카가 자세를 잡지 않았더라면, 나는 녀석의 공격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격을 선행 모션 없이 해낼 수 있는 녀석이 어째서 자세를 잡았을까.
그건. 쓰러져 있는 녀석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녀석. 웃고 있기는.”
“······.”
양 손을 가지런히 배꼽 앞에 모은 채로, 하늘을 보며 정자세로 누워 웃는 루디카.
저는 졌어요. 쓰러졌어요. 패배했어요.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기절한 척 할 생각인가.”
“······.”
그리고 왜 쓰러져 기절 했는데 웃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아무튼, 녀석이 떨어트린 완장을 주워들고 어깨에 걸쳤다.
루디카가 만들어 놓은 시체의 산을 건너 앞으로 걸었다.
아니, 아무도 죽지 않긴 했지만, 아무튼 이 레이스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의 완장을 짊어진 셈이다.
무겁다.
정말 무겁다.
샤이나 다르크도 쓰러트렸고, 앨리스 마이스터도 물리쳤으며, 그 괴물 루디카 핫산 샤도우에게도 판정승을 거뒀다.
그런 내가.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구나.”
고작 삼천 미터를 걷는데, 골을 앞에 두고 쓰러질 것 같다.
라피스 라줄리는 옛저녁에 주인에게 돌아가서, 오직 홀로 이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완장의 무게인가.
평생 완장을 짊어지겠다고 한 남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인가.
버티기 힘들구나, 마음이 꺾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발을 떼고, 다른 발을 질질 끌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붕 뜨지만, 오직 본능만으로 앞을 향해 걸었다.
사람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완장의 무게를 짊어지겠다고 각오했단 말이다.”
걷고, 또 걸었다.
멈출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각오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
기우뚱. 하고 하늘보다 지면에 가까워지려는 그 찰나.
툭.
하고 그것이 나를 멈춰 세웠다.
손을 내밀어 더듬어 보면, 느껴지는 촉감은 없다.
즉.
그 사람은, 마력으로 쓰러지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쪽이에요.”
직후. 들려온 목소리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끌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군.
어디서 부르는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걸.
그저 지금은 쉬고 싶다.
그리 생각하며 주저앉으려는 찰나.
정체 모를 이의 마력이 천천히 내게 간섭해 왔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마력은 내 보잘것없는 마력량이 다치지 않게끔 천천히 이끌어줬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척이나 능숙하게, 마력에 간섭하면서 동시에 체력으로 전환시켜주고 있었다.
막히던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을 정도로, 멈추려던 다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소울 체인지】계열의 마법은 그 효율이 무척이나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능수능란하게 마력을 체력으로 전환시켜 내 몸을 이끌어 주고 있었다.
“걸어가요. 멈추지 말고. 앞으로.”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기 시작했다.
마력이 이끄는 길을 믿고 천천히.
그렇게 한참이었을까. 아니면 잠시였을까.
이끄는 마력이 사그라들고 흐릿했던 시야에 빛이 들어온다.
사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이명만이 들리던 귀가 소음을 목소리로 인지했다.
“무제한 3,000m 마라톤 승자! 울프람 폰 로엔그린!”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해 골문을 넘어 우승했음을 알 수 있었고···.
나를 이끌어주던 마력은.
이내 잔향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