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7)
요정의 땅. 요정의 성지. 그렇게 불리는 이 땅은 황실 루트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브의 호감도를 일정 이상 올리고, 방학이 끝난 뒤 이브가 찾아낸 단서로 켈터스와 함께 작은 모험을 하자고 할 때만 열리는 루트 한정 맵이다.
말 그대로 히든이고 엑스트라 맵이다. 이브 호감도가 없으면 얄짤 없어요.
“와아···.”
“음.”
하지만 이 맵에 들어가는 순간, 세상이 뒤바뀐다.
정말 말 그대로 뒤바뀐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이거 현실로 보니까 박력이 장난이 아니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늘에 떠 있는 숲이다. 구름을 대지 삼아 꽃들이 뿌리를 내리고, 시야를 살짝 밖으로 던져보면 하늘 위에 떠 있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태양 바로 아래에서, 구름의 대지 위에 무성한 나무들이 자라고,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으면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할 것 같은 환상.
당연하지만 인간을 위한 길은 없다. 날지 않으면 걸어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환상적인 공간.
“여, 여기를 어떻게 가요? 아, 맞다 부유 마법···.”
“쓰지 마라.”
“왜. 왜요?”
“마법을 써서 좋을 것이 없는 곳이다.”
이브가 부유 마법을 쓰려는 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그 말에 옆을 슥 지나가던 늑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정답. 능력치는 볼 품 없는데 꽤 똑똑하군 그래?”
“지능은 읽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 좋아. 마음에 들어. 그 놈의 후예답군. 따라 들어와라.”
늑대가 천천히 앞을 걸어가고, 나는 전혀 긴장된 모습 없이 한 걸음 발을 옮겼다. 구름을 밟으려는 그 순간 옆에서 “앗.” 이라는 이브의 당황 섞인 작은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정말 환상적인 곳.
‘환상’적인 곳이니까.
슥. 하고 발을 옮겨 구름을 밟아도, 발아래에 느껴지는 것은 굳건한 대지.
“어···?”
옆에 있던 이브도 이내 발을 내딛어 보고, 평평한 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늘을 밟는 것을 두려워 않는가? 하. 정말 장난 아닌 놈이군. 정말 하늘이었으면 어쩌려고.”
“어서 안내나 하지. 길잡이 늑대.”
“쯧.”
우리는 묵묵히 늑대를 따라 걸어갔고, 이내 여왕이 있는 성에 도착했다.
하늘에 닿을 만 한 거대한 나무의 몸을 파내서 만든 이 성은 말 그대로 요정여왕의 권위의 상징.
“이 안에 여왕이 있는가.”
“말을 조심해라. 후예.”
“무얼, 그리 성내지 마라. 여왕에게 어울리는 선물도 들고 왔으니.”
나는 픽 웃고는 옥좌의 문을 열어 재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테이블에 앉아 이쪽을 보는 여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연하늘색 생머리. 그와 맞춘 푸르디 푸른 눈. 전신을 감싼 꽃잎을 연상 시키는 드레스.
아름답다. 라는 말 외에 모든 수식어를 거부하는 그 자태.
말 그대로 환상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존재. 요정 여왕.
요정답게 인간 반 만 한 사이즈지만, 작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결하고 고귀한 그 자태.
“와아···.”
옆에 있는 이브마저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고, 솔직히 현실에서 보게 된 나도 조금 놀랐다.
하지만, 마음 어디에서도 연심은커녕, 그보다 호감조차 피어오르지 않았다.
“히끅. 모오야아? 너 진짜 인간처럼 생겼다아. 인간이래, 흐흐. 어디 사는 요정이야아? 진짜, 진짜아 인간같다아. 와 인간! 저희 요정계에도 인간 손님이 차자와써욤!”
솔직히 한 손에 양주병 꼬나쥐고 이쪽을 바라보는데 연심은 개뿔.
“와하! 진짜 인간인가아? 인간인 척 하는 요정인가아? 몰루겟네에!”
얘는 그냥 삼백 년 묵은 알콜 중독자다.
***
자. 곰곰히 생각해보자.
D/Z SAGA는 여러 지역이 공존한다. 동부 숲지대나 잠든 산맥의 생태계나 그에 따른 몬스터, 동 식물의 분포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 중간 지대라는게 존재하지 않고, 생태계가 공존하는 구역이 존재하지 않고 깔끔하게 나눠떨어진다?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자연적이 아니란 말이지.
이 학원섬 제프린은 위대한 초대 황제님이 직접 세우신 인공섬이다. 당연히 여기저기 결계가 깔려있고, 그에 따른 생태계가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 혼자서 했다기엔, 아니 주변의 마도신관들과 함께 이룩 했다기에도 말도 안 되는 거대한 설정이지만, 제프린은 각 맵이 나뉘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을 해 뒀다.
“인간 닮은 요정···! 요정 닮은 인가아안! 와, 얼굴도 그 사람이랑 비슷 하네에···.”
그리고 그게, 이 요정 여왕을 알콜 중독자로 만드는데 한 건 했다.
“여, 여왕이시여.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분의 후예···.”
“또, 또오! 그런 장난을 에헤이. 이 엘피라네는 속지 않아요. 속지, 안씀미다아!”
늑대가 뭐라 간언했지만 요정 여왕은 술병으로 늑대의 머리를 콩콩 때리며 옥좌에 드러누웠다. 이후 푸우. 푸우. 하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그대로 곯아 떨어졌나보다.
···엘피라네는 여전하네.
우리는 잠시 생각을 멈췄고, 이내 양주병으로 정수리가 찍혔던 늑대는 깊은 한 숨을 내쉬고는 우리를 밖으로 끌어냈다.
“잠깐 나가지.”
“음.”
나오자마자 늑대는 처량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되물었다.
“···담배 있나?”
“있겠냐.”
그리고 있으면 뭐 어떻게 피우게.
***
여왕이 술주정을 부리는 것을 보자마자 굳어버린 이브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오자 늑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생이 많군.”
“하. 고생이라···. 함부로 아는 척하는 구만, 그래.”
늑대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그는 나를 빤히 올려보다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이군.”
“뭐, 어느 정도는.”
“이 요정계에 300년 만에 찾아온 손님인데 뭘 알고 있다는 건지 참.”
“······.”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니 ···그렇게 읽힌다. 입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감정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
“요정 앞에서 거짓이 통할리가 없지 않나.”
“···하. 삼 백 년 만에 만난 인간은 별종이구만 그래.”
칵칵. 놈이 그렇게 웃었다. 늑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요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전승. 나머지는 추론. 대부분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들어 볼 수 있겠나? 그쪽에서 말하는 걸 내가 정정하는 게 빠르겠군.”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가 아는 설정들을 읊어갔다.
“삼백 년 전. 위대한 선조님께서는 제프린이 대륙 전체의 환경을 압축한 이상적인 장소가 되길 바라셨다.”
생태계를 표방한다는 것은, 그 안에 살고 있는 것들도 함께 풀어 놓는다는 이야기다. 초원에는 슬라임과 고블린을, 사막에는 샌드웜과 블루 드래곤을 ···그리고, 숲 가장 깊은 곳에는 요정의 땅을.
“전승에 따르면 요정 여왕과 그녀를 따르는 요정들은 이것을 즐거운 장난이라 생각하고 선조 폐하와 내기를 했지. 그리고 그 내기에서 패배했다. 이후 대륙에서 요정은 자취를 감추고 제프린에 갇혔다.”
“그래. 맞다. 그리고 우리 요정들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지.”
“나갈 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게 요정의 문제다.
자연에서 태어나다보니까 순수하고 올곧고 장난꾸러기에 영향을 받기 쉽다.
거기에 자유분방하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가장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던 여왕님께서는 이 땅을 환상적인 곳으로 만드셨지.”
“모든 게 환상. 요정들이 가장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이상향.”
나는 이 숲의 풍경 중. 숲이 아닌 모든 부분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맞다. 그렇게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달래고, 환상을 유지하시던 여왕님께서는 이 좁은 땅을 요정들이 꿈꾸는 환상적인 곳으로 만드신 뒤 가장 먼저 꺾이셨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지만, 내가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
그야 뭐 이런데 갇혀서 마법이나 쓰다가 애들 칭얼거리는 거 돌보고, 밖에 나가고 싶은데도 못 나가면 술 마렵지. 그런데 너무 마시고 습관이 되고, 그러다 결국.
“요정 여왕. 엘피라네 오웬은 술 주정뱅이가 되었다. 라는 거지.”
“······쯧. 말을 막 하는데,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군. 허나 그 분께서 만든 이 땅은 정말 환상적인 곳이니 너무 멸시하지는 말아줘.”
“알고 있다.”
이곳은 무려 요정 여왕이 삼백 년에 걸쳐서 만든 거대한 마법결계다. 마력치 22의 이브라도 잘못 쓰면 카운터 매직을 맞고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그 때문에 마법을 쓰지 말라고 한 것도 있고 말이야.
“그, 그러면···.”
“음? 뭔가, 마력량이 많은 후예.”
“요정 여왕님은,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는 건가요?”
“······.”
“······.”
우리 둘은 입을 다물었다. 뭐 없지는 않은데, 또 쉽지도 않다.
요정 여왕과 그녀가 이끄는 무수히 많은 요정. 그들과 ‘전력으로 싸워서 이길 것.’
그러면 요정 여왕과의 내기가 재성립되고, 요정족은 해방될 수 있다.
“지금 너에게는 무리다. 마력량이 많은 후예. 눈치 빠른 후예는 아예 무리고.”
“알고 있다.”
이브는 언젠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여기에 찾아온 건 너와 정답 맞추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그럼 뭐 때문이지?”
“거래를 하러 왔지. 가서 여왕을 깨워라. 그리고 사전 설명을 끝내고 우리를 불러라.”
“···진짜 막 부려 먹는군.”
“아니면 안 할 건가?”
“······쯧. 조금만 기다려라.”
그리 말하며 늑대는 알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이내 내부가 잠시 소란스러워 졌다.
“···울프람. 당신은 어떻게 이걸 다 알고 있었죠?”
“황실 고사기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설명하기 싫다 이거군요. 알았어요. 그래도 조금 다시 봤어요,”
“···뭘 말이냐.”
“당신이 학생회장 시절에, 아예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는 것.”
“···?”
“편의점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요정에 대해 조사한다. 버프형 간식을 만든다. 그 모든 건, 단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네요.”
“······??”
“모두에게,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책에서만 읽었던 바깥을 보여주고 싶다. 당신은 진심으로, 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
“당신의 임기에 마법서와 검을 비싸더라도 모았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죠. 조금, 다시 봤습니다.”
“어, 음. 어···.”
“됐어요. 제가 한 말은 잊으세요. 서로 간에 칭찬이니 인정이니, 낯부끄러울 뿐이니까요.”
“······.”
이브는 픽 웃었다.
그래 뭐.
그렇구나···.
나도 모르는 새에 그런 일을 했었구나. 대단하네, 울프람 폰 로엔그린.
“?”
그래서 그 울프람이 대체 누구냐고.
***
그 모두를 해방시켜줄 혁명군주 울프람의 정체에 대해 잠시 고민하길 십 분. 알현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오라는 여왕님의 명이시다.”
늑대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전과는 좀 다르게 깨끗해진 알현실이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안주는 치우고, 술병도 어딘가 밀어 넣었다. 알현실 뒤쪽 커튼이 불룩한 거 보니 저 아래에 짱박았나보군.
이브도 그걸 눈치 챘는지 시선을 황급히 돌렸고, 옥좌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렸다.
“하르크의 후예뜰이여, 요정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함미다. 흐끅”
술기운을 최대한 감추고 있으나 발음이 새는것과 입을 열면 숨결에 알콜이 섞여 나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모습.
“위대한 선조님으로부터 삼백 년의 맹약을 지키고 있는 요정 여왕을 뵙소.”
“그래요. 당씬의 눈매는 하르크를 똑 닮았군요.”
“영광입니다.”
“···진짜 완전 달마서 조 패버리고 심네요. 팍 씨.”
“······.”
삼백 년의 원한은 이리도 깊은가.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가 몬가요? 막 가둬놓고 이제는 놀리기까지 하려구요? 하. 잼겟네 그거. 나두 해보고 십다 팍 패버릴라.”
“맹약 때문에 우리는 내기를 하지 않는 이상 싸울 수 없소.”
“알고잇거든요?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거든요?”
아 진짜 이 꽐라, 현실로 보니까 엄청 귀찮다.
“오늘은 선물과 함께 부탁을 하나 드리고자 찾아왔소.”
“선물? 몬데요? 내가 또 선물 조아하는데,”
“우선은 부탁이오. 제프린을 향한 귀찮은 장난질을 멈춰주시오.”
“···기차는 장난지일? 무슨 소리일까요?”
“꽃가루를 바람 정령을 통해 일부러 제프린 쪽으로 뿌리는 것 말이오.”
“···진짜요?”
이브가 휘둥그레져서 나와 여왕을 번갈아 본다.
“······들켯서요?”
“지나칠 정도로 제프린으로 날아오지 않소. 그냥 평범하게 흩날리게 하면 될 것을.”
“······히. 조아요. 여기를 찾아낸 후예는 또 첨니이가안. 공물을 보고 정하게요.”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간식이오. 요정은 단것을 좋아한다지?”
“아닌데에? 맞긴 한데 요새 트랜드는 그게 아닌데에?”
그야 알고 있지.
“과자 안에 술이 담겨 있소.”
“···어머, 잘 아시네에. 그럼 조바요.”
나는 요정에게 초콜릿 봉봉을 넘겼다. 요정 여왕은 손으로 그 봉봉을 툭툭 흔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씹으면 안에서 술이 퐁 하는 구조오? 참신 하네에.”
“그렇지.”
“하지만, 안에 잇는 술이 마시 엄스면 저는 안 먹는 데에.”
“먹는 순간 그대로 쓰러질 정도로 끝내주는 술이라고 장담하오.”
“제가 들어 본 술인가요?”
“아니.”
“그럼 가르쳐 줄래요? 이거 먼 술이에요?”
나는 씩 웃었다.
나중에 이 요정향에 오려면 항상 입장비 대신 술을 준비해야 하지만, 술은 구하기도 힘든 아이템이다.
허나 울프람의 부정 창고를 털면 그 안에 있는 술을 입장권 대신 쓸 수 있다.
그래서 이스터 에그.
쓸모없는 울프람이 남긴 마지막 재화. 게임사가 적어놓은 장난. 요정향의 입장권.
한 병 마시면 전봇대와 싸우다 보도블럭에게 뺨따구 맞고 유치장서에서 이틀 후에 깨어난다는 전설이 기록된 술.
나는 슬며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캪틴 뀨.”
“캪틴 뀨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