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74)
473. 라스트 오더
그렇게 손에 손잡고 흑수정 길을 걸어 보스방 앞까지 도착시켰다.
왜 시켰냐, 라고?
나는 맵을 뚫고 가야 하니까.
자. 이 운무의 길에서 ‘좌표값 버그’를 낸 다음 스테이터스를 돌려받고 길을 깔아서 보스방까지 가는 버그는 생각보다 흔한 꼼수다.
애당초 제 2 문 공략쯤 되면 다들 고인물이니까.
하지만 실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개만 꼽자면···.
첫째로 여기까지 오는 놈들은 죄다 고인물이다.
즉 좌표값 버그를 쓰지 않아도 보스방을 뚫고 가는 건, 동료의 운빨만 제외하면 어렵지 않다.
둘째로 퍼즐 던전인 만큼 운무를 뚫고 나가야 공략에 필요한 물건들을 얻을 수 있다.
원래 이런 던전은 가는 길에 키 아이템이 떨어져 있고, 그게 있어야 보스를 때려눕힐 수 있는 기믹형 던전이거든.
그리고 방금.
나는 운무 속에서 고정된 스테이터스로 발록의 모가지를 꺾었다.
***
발록은 좌절하며 포효했다.
처음에는 ‘약한 인간이 여기까지 오다니.’ ‘인간 고기가 맛있다더군’ 같은 소리를 했지만 목을 꺾으면 모두가 조용해지는 건 만국 공통인가봐.
‘내, 내가아아아아아아!!’
내 키의 다섯 배는 될 만한 녀석이지만, 팔을 툭툭 타고 올라 어깨를 밟은 후 싸커킥으로 턱주가리를 걷어차니 So 사일런트. 아주 좋은 고요함이야
역시 시끄러운 녀석을 조용하게 만드는 데에는 싸커킥만한 게 없다.
그리고, 지상으로 툭. 하고 내려오면 어머나 세상에. 발록이 있던 자리에 한 자루의 단검이 떨어져 있어요.
【불운의 부적】
【?T】
【저주의 마족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단검.】
“다음.”
그렇게 홀로 다음 집결지에 도착.
이대로 보스방쪽을 바로 갈 수 있지만 일부러 한 바퀴 더 돌아 운무 속으로 다이브.
왜냐고?
장비를 챙겨야 한다.
여기는 퍼즐 던전이니까, 공략용 장비들도 운무 속 몬스터가 떨어트린다.
그러니 충분히 파밍을 하는 것이 정답.
물론 그렇게 무한 파밍으로 템빨로 밀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지금부터는 나오는 몬스터가 좀 색다르다.
‘보스의 허상’
그것도 원작 기준 각 챕터의 보스의 허상.
그러니까.
【어둠에 물든 타락한 이브 폰 로엔그린의 허상이 침입합니다.】
‘제 앞에 무릎 꿇으세요. 이 하등한 쓰레기’
이렇게 타락한 켈터스 루트에서 완전히 맛이 가버리는 이브도 나오고 한다는 거지.
전신이 세피아톤인 것만 빼면···. 이브 폰 로엔그린과 완전히 똑같다.
“기분 나쁘군.”
그러니까, 공략법도 똑같다.
“때려줘야겠어.”
이브는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지만, 물리쪽에는 지나치게 약하니까.
이렇게···.
‘으긱!? 으붑!? 꺄아아아아아!’
팔을 슥 꺾어서 움직임을 봉쇄해버리고 다른 손으로 입을 막으면 혼자 우물거리다가 체력이 다 돼서 사라진다.
【불운의 단검】
【?T】
【저주의 마족에게 치명적인 단검.】
그렇게 이브를 때려눕히고, 단검을 쥐었다.
【운무 속의 강적을 두 번 물리쳤습니다.】
【지금부터는 운무 속의 강적을 만나도 ‘도주’ 할 수 있습니다.】
【단. 재 조우해도 등장하는 강적은 변화하지 않으니 주의해주세요.】
그래.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보스를 만난다고 도망칠 성 싶으냐.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용서 못 한다!’
‘죽일 거야! 당신만큼은 죽일 거야!’
‘나는, 나는 빛의 영웅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증오해. 저주해! 당신은 용사가 아니야!’
자. 그렇게 다섯 번의 전투를 치뤘다.
부적도 네 개 건졌고, 단검도 하나 더 건졌고 꽤 괜찮은 수확.
이제 부적 몇 개만 더 구하면 된다.
다시 한 번 운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보스는 누구일까요.
‘······.’
“······.”
그녀를 마주하고 몸이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절망에 물든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허상이 등장합니다!】
‘아 아아···. 다 사라져. 사라져버려! 전부···. 죽여드리겠어요!’
“······.”
음.
이것 참.
일부러 이런 식으로 배치 한 건가?
나보고 아일라랑 싸우라 이 말이지?
***
일전을 끝내고 그렇게 보스방 앞 까지 도착했을 때.
밀푀유와 아일라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안색에서 바로 반색해 이쪽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주인 퇴근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미안하군 오래 기다렸나?”
“울프람! 무사해요?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선배님! 괜찮으시죠?”
두 사람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괜찮다. 무사하다. 걱정 말도록.”
강한 척이 아니라 정말로 다친 곳은 없었음을 확인한 아일라와 밀푀유는 그제야 한숨을 내 쉬었다.
아일라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모습으로 볼을 흥 부풀리며 나를 채근했다.
“혼자 위험한 곳에 가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그래서 공략을 위한 도구는 많이 구해 오셨나요? 그걸 위해 혼자 따로 오겠다고 한 거죠?”
“구했다. 구했지. 자. 보도록.”
슬쩍 두 개의 단검과 몇 장의 부적을 내밀자. 두 사람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생각보다 양이 적네요?”
“······.”
그러게나 말이다.
똘망똘망 이쪽을 올려보는 아일라의 머리를 슥, 하고 쓰다듬었다.
“울프람···? 저 혹시 칭찬 받을 일을 했나요? 기억에 남는 건 없는데···.”
아일라가 얼떨떨해 하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 울프람?”
“아무것도 아니다.”
방금 전의 싸움을 반추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싸움이 아니라 선택을 다시금 되새겼다.
【절망에 물든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허상에게서 도주하시겠습니까?】
정말 희한안 일이지.
저기서 아일라를 만나는 건, 개꿀픽으로 인정받는다. 뉴비 절단기라고는 해도 결국 4막 보스에 지나지 않거든.
그래.
이길 수 있었다.
어차피 허상이다. 실로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절망에 물든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허상에게서 도망칩니다.】
【다음번에도 등장 보스는 바뀌지 않으니 주의하세요.】
“하하. 이것 참.”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검을 겨누기 싫다.
그 허상이라도 쓰러트리고 싶지 않았다.
“울프람?”
“자. 들어가자. 시간이 얼마 없다. 밀푀유도 준비가 끝났나?”
“네, 네!”
부족해도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어떻게든 해야지.
***
거대한 문을 열고 보스방 안으로 들어가자, 운무는 어디로 갔는지 말끔히 사라지고 신전과도 같은 순백의 대지가 나타났다.
바닥은 대리석을 썼고, 천장은 없었으며 벽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가 ‘밖’이며 ‘낮’이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무한하게 이어진 대리석의 대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제일 처음 감탄사를 내뱉은 것은 아일라였다.
“여기가 바로···. 두 번째 문의 괴물이 사는 땅.”
“엄청 성스러워 보여요. 이런 곳에 정말 그런 끔찍한 괴물이···.”
“진정으로 끔찍한 괴물은, 언제나 신을 참칭하는 법이지.”
내 말에 두 사람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만큼 끔찍한 괴물이 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발이 잘 움직이지 않는 듯 하다.
“자. 공략은 숙지하고 있겠지?”
“네!”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미안하구나. 원래라면 여기서는 나 혼자 해내는게 속이 편하다만···.”
“맡겨주세요. 울프람! 저희가 해낼게요!”
“네! 선배님.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세 명이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완수해야 보스에게 데미지가 들어가는 방식의 맵.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장 ‘지능이 높고’ ‘신뢰할 수 있는’ 두 사람을 골랐다.
크어어어어어어엉!
대기를 가르며 몸을 떨게 만드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 시작하지.”
“네!”
“가, 가겠습니다!”
두 사람이 황급히 내 옆에서 멀어져 자리를 잡았다.
이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 여우였다.
물론 보통 여우는 아니다.
세상 그 어떤 여우도 저렇게 새하얗지 못할 것이며, 그 어떤 여우도 열두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 을테니까.
【천미호 월령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조심하세요. 격을 한참 넘어선 적입니다.】
【천미호 월령은 보통 공격으로는 쓰러트릴 수 없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비밀을 풀어 월령의 진을 빼놓은 후 공격하세요!】
‘크어어어어어어어엉!’
슬쩍 자세를 잡으니 월령은 나를 내려본다.
“내가 두려운가?”
‘크어어어엉!’
그리고.
놈이 웃었다.
“쯧.”
월령은 대적하던 도중에도 순식간에 타겟을 바꿔버린다.
즉 어그로성 플레이가 전혀 먹히지 않는 셈.
짜증나는 폭스자식. 죽여버리겠어.
그래서 불운의 부적으로 행동을 멈추거나 기민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아일라. 그쪽으로 간다.”
“네···? 아! 네!”
【불운의 부적을 사용합니다】
【천미호 월령의 몸이 잠시 멈춰섭니다!】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와라. 아일라.”
“네, 네!”
그렇게, 한 번 아일라를 무사히 지켜내는데 성공.
“자. 다시 덤벼라.”
‘크어어엉!’
아.
또 웃는다.
뭔데, 1트부터 지랄패턴이야?
“밀푀유! 물러서라!”
그 다음 번에는 밀푀유. 다시 아일라.
마치 나와의 전투를 피하고 다른 파티원만 집요하게 노리는 듯한 그 모양새에 순식간에 부적이 동났다.
물론 그 사이에 단검으로 딜을 넣긴 했지만, 평소 이상으로 지나치게 파티원이 공격받는 모양새.
“부적이 끝났다!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겠나!”
“해, 해 볼게요!”
아니.
사실 알고 있다.
이건 무리한 부탁이다.
기믹을 해제하며 보스의 공격을 피하라는 것은, 고인물인 나도 쉽게 할 수 없는 일.
하물며···.
“아일라! 조심해라.”
“아, 꺄, 아아아아!”
그리고, 월령의 돌격에 날아갔다.
아일라가, 그 충격에 날아갔다.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처박혔다.
정신을 잃었다.
저 정도 충격이면 고정 스테이터스인 이 맵에서는 치명상이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 정렬된 후.
다시 전부 헤집어져 곤죽처럼 흘러내린다.
“······.”
아일라가 쓰러졌다.
“아일라 선배님! 꺄아!”
아일라를 지키러 달려간 밀푀유도 나가 떨어졌다.
아일라 이상의 치명상을 입고 날아간 그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월령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자. 이제 너 혼자 남았다. 라는 듯 비웃음을 띄는 여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계를 꺾었다.
자.
쓰러졌던 모습에서 다시 원상태로.
이 문 앞에 들어선 그 직후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울프람···?”
“선배님···?”
둘은 무사하다.
괜찮다.
그러면 된 거다.
다치는 것은 상수다.
그걸 위해 환혼의 모래시계를 가져왔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두 사람이 크게 다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멈춰 세울 길이 없었다.
나만이 기억하고 있다 한들, 저 둘의 기억에 없다 한들 상관없다.
정말.
화가 났다.
【한계치를 넘어선 분노가 세계의 법칙을 일그러트립니다.】
【제2의 문이 가하는 모든 제어에서 해방됩니다.】
【황실 혈통이 발동합니다.】
【친애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격을 넘어선 숙적에 맞섭니다.】
【황실 혈통이 진정한 힘을 개방합니다.】
【특성 천하패도의 길이 깨어납니다.】
【스테이터스에 +5의 가중치가 붙습니다. 이 가중치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고정치입니다.】
시스템 창이 시끄럽다.
스테이터스가 뭐 어쨌다고?
그딴 건 어찌 되든 상관 없다.
곧이어 월령의 포효소리가 들려오고, 아일라와 밀푀유가 움찔. 몸을 떨었다.
“울프람. 지시를 내려주세요!”
“지, 지금 움직일까요?”
“아니. 거기서 지켜보고 있어라.”
다시 월령이 이쪽을 내려 보고 비웃는다.
그 순간.
욱 하는 심정에 몸을 맡겨 단검 한 자루를 들고 그대로 내달렸다.
대지를 박차고 놈의 앞발을 디딤대 삼아 턱주가리 아래로 뛰어 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꺾어 어금니를 붙잡고 그것을 축으로 몸을 날려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놈이 반응 못할 속도로 보다 빠르게.
그리고 자유로이 낙하해 놈의 미간에 정확하게 단검을 쑤셔 박았다.
‘키에에에에에에엥!’
괴로운 듯 포효하는 월령.
그리고 이쪽을 보며 멍하니 있는 두 사람.
“울프람···?”
“선배님···. 고, 공략의 지시가···.”
지시?
아. 맞다.
지시. 맞아. 그래. 지시 내려야지.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어라.”
이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지시.
“금방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