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77)
476. 최고의 간호
원장님은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나를 강하게 키우신 편이었다.
나중에 사회 나가서 써먹을 일 있을 거라며 전기 배선 보는 법. 미장 치는 법.
희망의 집은 무척이나 낡았고, 리모델링을 할 돈도 없었기에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희망의 집에 뭔가 사고가 터지면 나와 원장님이 죄다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혼자 전등 갈아 끼우는 법부터, 간단한 가구 수리법이나 중고 물건 싸게 구입하는 법. 부동산에서 호구 안 당하는 법. 이자율 잘 살펴보는 법. 계약서 읽는 법까지!
그런 가르침을 받으며 유년, 그리고 청소년기를 벗어나 희망의 집을 떠날 때가 찾아왔다.
나는 입양이 되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나 자신이 입양을 거부하고 희망의 집에 있기를 바랐기에 홀로 사회에 나서야 했다.
고2때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기에 가지고 있는 돈 조금.
거기에 국가에서 주는 쥐꼬리만한 돈. 원장님이 따로 챙겨주신 돈 까지.
어떻게든 원룸 하나 보증금 마련할 정도는 되었고 월세 3개월치도 선납부 가능한 돈이었다.
허나 딱 그 정도. 나머지는 개털.
지금부터 이 정도의 돈을 들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다 생각하면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떠나는 날, 원장님께서는 내 어깨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영진아. 너는 강하게 살아야한다.’
‘울지 말고, 운다고 해서 너를 지켜줄 부모님은 없어’
‘알겠니.’
‘웃어라. 힘들어도 웃으면서 살아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이구나’
누구나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누가 해준 말 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고졸이라는 학력으로는 사회에 나가봐야 번듯한 직업을 얻기는 하늘에 별따기.
그렇다고 손 놓고 죽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원장님은 필사적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톱밥을 먹어도, 배에 타 원양어선에서 일을 해도, 세상의 밑바닥에 깔려도 혼자 걸어올라올 수 있는 가르침.
현장에서 살아가는 법. 호구 안 당하는 법. 부동산 계약 하는 법.
그 모든 가르침의 의도를 깨닫고, 나는 세상에 홀로 섰다.
그리고 열심히 웃었다.
반지하 원룸에 물이 차도, 현장에서 꼰대들의 갈굼이 있어도, 숙소 제공 현장에 다니다보니 원룸이 필요 없어 계약 해지를 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월세를 더 뜯어내려고 했을 때도, 타일 까는 일을 어깨 넘어로 배우다가 크게 인정받아 일당이 크게 올랐을 때도, 하지만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타일을 까는 거보다 허리 수리비가 더 나올 거 같아 현장을 떠났을 때도,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을 때도, 좋은 사장님 옆에서 일을 배우고 그 끝에 납품 트럭에 치여 날아갔을 때도.
항상 웃었다.
웃음은 내 곁에 있었으며, 나는 언제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비웃음이던 코웃음이던 행복해서 짓는 웃음이던 상관없이, 항상 웃었다.
이영진. 정말 열심히 살고, 웃으며 살았다.
그래. 그렇게 살았을 텐데.
“아주 빌어먹을 일이군.”
지금 내 몸 상태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도저히 웃을 수 없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역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이 정도의 고통을 수반했나.
“후우.”
정말 웃기 힘들다.
진짜.
***
이브 폰 로엔그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째서인지 자신도 울프람 간호인단에 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최상단.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다음 날 울프람을 간호해야 한다는 사실.
다른 누군가와 바꾸려고 했지만, 그건 결국 오늘 맞을 매를 내일 맞을 뿐.
심지어 다른 파티원들도 역시 이브 님이 최상단에 서셔야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온갖 대응을 해보려 했지만 결국 오늘 울프람의 간병인은 자신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이 울프람의 간병이랜다.
일년 전 자신에게 들려줬으면, 아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읊는 것을 요새는 간호라고 하나요?같은 대답이 돌아왔겠지.
아무튼, 미친개한테 물렸다는 셈 치고 이브는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들어갈게요.”
병실로 개조된 8구역 빌딩의 한 방에 들어가자. 방구석에 있는 침대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음. 이브? 무슨 일이지.”
“당신이 다쳤다는 소식에 이렇게 왔거든요? 간병을 하러 왔다고요!”
이브는 일부러 간병을 끊어서 말 했다.
환자 상대로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울프람의 간병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가. 하지 않아도 된다.”
“네?”
“크게 신경 쓰지 말아라. 어차피 한 달 후면 나을 것이다. 너에게는 민폐를 끼쳤구나,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말···. 아니. 내가 메세지로 이야기 해두마. 돌아가도 좋다.”
“잠깐, 잠깐만요.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울프람의 사과.
문제는 평소처럼 비아냥이 섞여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나, 그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었다.
이 남자.
진짜로 간호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파티원 전원의 간호는 필요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혼자서 알아서 다 할 수 있다고요?”
“음?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돌아가도 좋다. 시간을 뺏었구나.”
“당신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요?”
“알고 있다마다···. 오늘따라 끈질기구나, 사탕이라면 매대에 있으니 세 봉 까지 가져가도 좋다. 발걸음 한 비용은 줘야겠지.”
“앗 그건 괜찮은···.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진짜. 진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어떤 간호도 필요 없으시다? 혼자 버틸 수 있다?”
“몇 번을 말하게 만드나.”
이브는 주먹을 꽉 쥐었다.
웃기지 마라.
사탕은 고맙게 받겠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고 지껄이는 건가?
복숭아 맛. 딸기 맛. 거기에 마지막 하나를 뭘 가지고 갈까 고민이지만, 그딴 상태를 알면서도 하는 말이라고?
이브는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사탕의 맛과,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건방진 태도에서 두 개의 생각을 번갈아하다, 이내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밀었다.
“【성광창 : 쾌속치유 : 최강화 : 이중사출】”
흔치 않은 회복 마법사 중에서도 성광창의 회복은 최악의 효율을 달리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있다면 성광창은 그럭저럭 괜찮은 회복 마법으로 탈바꿈된다.
이브의 성광창은 현 시점 최강급 부가 스펠을 덕지덕지 달고 울프람에게 사출되었고, 이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혈통은 자신에게 풍부한 마력을 주었지만, 그만큼의 체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조금 원망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뭐 하는 짓이지.”
“뭐 하는 짓이긴요. 그래서. 조금 나아졌나요?”
“아니. 그럴리가 없지 않나.”
“예. 그렇겠죠. 당신은 지금 다친 게 아니라, 모종의 술법으로 인해 그게 최고의 상태가 된거니까요!”
“맞다. 나는 지금 최대치가 1이다. 아무리 회복 마법을 써봐야 최대치에서 올라가진 않지. 흡혈귀나 투귀의 흡혈, 혹은 강흡을 쓰지 않는 이상.”
“배웠어요. 그거?”
“그럴리가 있나.”
그 태연한 말에, 이브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런데! 길가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전신의 뼈가 부스러지면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왜 간호가 필요 없다고 하는 거죠!?”
“그야, 정말 필요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육체적으로 최약이 되었다 한들 내가 정말 약해졌을 거라 보이나?”
그야 보이고말고요!
방금 전 울프람은 실제로 성광창에 대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 살기로 자신의 성광창을 언제든 흘릴 생각을 했을 텐데!
“실제로 성광창에도 반응 못 했잖아요!”
“네가 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 그렇게 저를 믿으셨다? 당신이?”
“그럼. 믿고말고.”
뚝.
그 말에 이브가 멈춰섰다.
울프람이 방금 뭐라고 했지?
믿어?
누구를?
나를?
누가?
“진심이에요?”
“그럼. 네가 나를 미워하는 것과 관계없이. 이브 폰 로엔그린은 약자를 사살하지 않는다. 나는 네 긍지를 믿었다.”
“윽, 으윽···. 으으윽!”
말이나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이브는 테이블에 쾅! 하고 손을 쳤다.
“그러니까 돌아···.”
“아 그래요. 제 긍지. 네. 그걸 믿는다면 알겠네요. 저는 절대로 환자를 앞에 두고 버리고 가지 않아요. 그게 제 긍지에요!”
“음···.”
“그러니까, 제 긍지를 걸고 당신을 간호하겠어요!”
“그런가···. 뭐.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도록.”
“예에! 마음대로 하도록 하죠! 최고의 간호를 보여주겠어요!”
“그래. 우선 세면장에 가서 얼굴을 씻고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금 떠올리고 오도록. 환자에게는 청결이 생명이니 세수하고 오라는 명을 거부하지 않겠지?”
“하. 그러죠!”
그리 말하고 이브는 울프람의 말을 따라 세수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뭐라고 했다는 거야? 고작 해봐야.”
무슨 일이 있어도 울프람의 간호를 하겠다.
최고의 간호를 보여주겠다.
자신의 긍지에 걸고!
“······.”
반추가 끝나고 그제야, 살짝 창백한 얼굴로, 이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마치, 반드시 간호시켜 달라고 비는 모양새 아닌가!
“으, 으으···. 으아.”
양 손을 확 펼쳐서 얼굴을 가리고, 천장을 올려보며 이를 악 물고 이브는 소리없이 포효했다.
그리고 세면장을 나왔을 때.
“그래서, 아직도 간호하고 싶다는 생각인가?”
“그, 그럼요!”
“큭큭. 그래. 그럼 믿고 맡겨보겠다. 이브 폰 로엔그린.”
“예에! 맡기시죠! 예!”
갑자기 확. 모든 것이 짜증났다.
저 남자도.
그리고 그런 남자의 비웃음에 묘하게 안도하고 있는 자신도!
***
이브의 간호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빛의 마법으로 주위를 청결하게 만들고, 불돌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요리 실력은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레시피가 적힌 책을 최대한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서 사과를 깎는 소리가 들린다.
다만 그 몸놀림은 실로 절망적인건지, 스스로 단검 적성이 있음에도 사과는 껍질과 살이 같이 잘려나가, 껍질을 깎아 심에 붙은 살보다 그냥 껍질에 붙은 살이 더 많아 보일 지경이다.
“이리 줘라. 내가 하도록 하지.”
“하! 당신 같은 환자가 사과를 깎을 수 있겠어요? 제게 맡기시죠!”
“······.”
더 끔찍한 것은 원래 사과는 껍질을 짚으며 돌려 깎는데, 이브의 신기한 단검술로 인하여 사과 속살을 짚으며 깎는 바람에, 손을 탄 몇 부분이 짓물려서 갈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진짜.
손 다쳐서 환자가 늘어나지 않은 게 어디야 싶을 정도다.
“자요! 다 깎았어요!”
“그런가. 그건 네가 들도록.”
“어째서죠? 제 사과를 못 먹겠다는 건가요?”
“······.”
그리 뚱 하고 내밀지 마라.
그런가.
이게 네가 말한 최고의 간호인가.
나중에 두고 보자.
울프람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밀키트 맛 식사를 마치고, 손길 가득 정성담긴 사과를 먹고 잠시 한가한 시간이 왔다.
옷이야 아침에 갈아입었기 때문에 환복의 필요는 못 느꼈고, 이브 또한 할 것이 없어 대충 내 옆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봄 햇살과 책 넘어가는 소리. 바람 소리와 마법이 안겨주는 따듯한 온기.
그 모든 것을 감미하고 있자니, 침묵을 깨고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울프람.”
“뭐지.”
“두 번째 문의 적은 강했나요.”
“강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전력을 다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뿐이지.”
“당신이 쓰러트리기 힘들 정도의 적은 아니었다? 그럼 어째서 그런 싸움을 했죠?”
“정신적으로 아직 미숙한 듯하구나.”
“당신이요?”
탁.
책을 덮고 이브는 멀뚱 이쪽을 바라봤다.
“그래. 내가 모래시계를 가지고 간 건 알고 있겠지.”
“그야 그렇죠. 그래서 부상은 안 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쳤잖아요?”
“음. 아일라와 밀푀유가 놈의 공격을 맞고 날아가서 말이다. 모래시계를 꺾고 극히 분노해서 평소 이상의 힘을 쓰게 되었다.”
“대체 힘을 어떻게 쓰면 이런 식으로 다치는지 모르겠지만요.”
“어떤 식으로 쓰냐니 그야,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쓴 거 아니겠나.”
이브는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을 뻔뻔하게 하네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옳은 일을 했다. 신념을 어기지 않았다. 내 행동에 당당하면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무어 있나.”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하는 파티원에 저도 있는 거 알긴 해요? 그런 뻔뻔한 말의 대상에 저도 들어가는 거예요. 조금 부끄러움을 아시죠?”
“이상한 이야기를 또 하는구나. 이브 폰 로엔그린.”
“뭐가요?”
“당연히, 내가 지켜야 할 사람 안에는 너도 들어가 있다.”
파티 리더가 파티원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
장담하건데, 그 자리에서 날아간 것이 이브나 레지나라도 나는 같은 분노를 일으키고 같은 방식으로 싸웠을 거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하나의 후회도 품지 않았겠지.
“진짜···. 진짜 안 부끄러워요?!”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나. 내 행동에 하나의 후회도 없다.”
이브는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귀까지 새빨개지고는 나를 쏘아봤다.
“당신이.”
“음?”
“당신이 지켜주지 않아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거든요!”
그리 말하며 이브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게 최선이겠군.”
“으, 으으으으!!”
양 팔까지 작게 버둥거리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마도
오늘 처음으로 웃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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