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86)
485. 선인. 때때로 쓰레기
앨리스 마이스터는 최근 피폐해져 있었다.
식사도 깨작거리고 입맛도 없다.
얼굴은 초췌해져 가며, 주변 모두가 조금씩 걱정할 정도.
평소라면 상냥하게 웃었을 가면도 점차 깨져가는 것이 느껴질 때 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붙잡지만,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
얼마전 운동회에서 있었던 전투.
울프람 폰 로엔그린과의 싸움에서 압도적으로 깨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울프람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고 갔지만, 그 뒤 해설역의 선배가 했던 말이 앨리스의 마음 속에 남았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아아아! 앨리스 마이스터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넝마짝으로 만든 후 상처를 안겨주고 떠나갔다!’
그래.
빼앗길 수 있었다.
소중한 많은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빼앗지 않은 걸까.
설마. 언제든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 생각하니 오싹. 몸에 소름이 돋는다.
거기에 하필이면 자신의 크나큰 약점을 아는 남자가, 자신을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앞으로 어떤 약점을 쥐러 올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들어도 잔 것 같지가 않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당장이라도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가 자신을 급습하러 온다면.
그 악랄한 손길로, 자고 있을때 자신의 방에 숨어든다면
저항할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약점을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무너트릴 수 있을 터.
처음에는 그저 의문으로, 호기심으로 다가갔으나 울프람은 맹수였다.
가뜩이나 위험한 남자와 적대해 밉보였으니, 언젠가 보복하러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아으···.”
“어머. 앨리스 양. 괜찮나요?”
스피카의 그 말에 앨리스는 책상에 드러누워 팔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앨리스 양은···. 아무래도 심한가 보네요. 으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심하다니요?”
“예에. 다 알고 있답니다. 그러면 역시 진통제가 있어야겠네요. 식사는 잘 하고 있나요?”
“······.”
스피카는 아무래도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를 교정하기도 귀찮아 앨리스는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식욕도 없고, 통증은 심하고···. 아으.”
스피카는 앨리스를 보며 자기도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으응···?”
그 때 마다 스피카가 무언가의 오해를 거듭하고 있다고 깨달은 앨리스지만, 이내 무언가 설명하려다가 번거로워 질 것 같아 결국 설명을 포기.
그 고통에 공감하며 연민의 눈길을 보내던 스피카는 이윽고 작은 결심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피카의 눈은 친구에 대한 우정과 열의로 가득 찼다.
“앨리스 양.”
“네. 스피카 양.”
“지금 앨리스 양의 고통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어요.”
“아, 예···.”
“하지만, 믿고 기다려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
뭘 어떻게 한다는 걸까.
하지만 해명하는것도 귀찮아졌기에, 앨리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
아일라의 행동도 있고 하여, 우리들은 잽싸게 해독 주스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작 논의에 들어갔다.
“우선은 제프린에서 꽃가루에 경증이라도 느끼는 학생들의 숫자는 매 년 만 명 이상이라고 해요.”
“그러면 최소 일 년에 만 병 정도의 최대 수요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
“그렇다고 해서 만 개를 만들면 무조건 여분이 남는다.”
“일단 천 개 정도 만들고, 판매량을 볼까요?”
“음. 나쁘지 않은 안이다.”
【물약 제조(신화)】는 중급 이상의 물약까지는 스테이터스 소모 없이 제작할 수 있게 해주니 말이야. 잘만 쓴다면 이 이상의 돈벌이 수단도 없다.
그렇게 아일라와 잠시 앞으로의 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조심스레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계신가요?”
“스피카인가.”
“네, 네에. 아 언니도 있었네요.”
“어머, 스피카. 오늘은 무슨 일이니?”
스피카는 나와 아일라는 번갈아서 쳐다보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아일라의 소매를 잡았다.
“어, 언니. 잠시 이야기를···.”
“그래? 후후. 울프람 잠깐 다녀올게요.”
“음.”
그렇게 말하고 스피카는 아일라를 끌고 편의점 구석을 향했고, 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서로 속닥거렸다.
이내 아일라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스피카를 다독이듯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두드려준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울프람. 이유는 묻지 말고, 혹시 진통에 효과가 있는 포션이 있을까요?”
“음. 혹시 아픈가? 상비약이라면 있다만···.”
아일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다쳤나?
“금방 준비하도록 하지.”
“네, 네에. 부탁드릴게요.”
거기까지 말하고 포션을 제조하려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분위기를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일라와 스피카를, 희망의 집 동생들과 대조했을 때.
그렇군. 완벽하게 알았다.
【오빠는 정말 다 잘 챙겨주는데 인간이 쓰레기같아.】
【최악. 좀 모른 척 하면 안 돼? 진짜 다 좋은데 어떻게 인간이 눈치가 그따위야?】
【죽어】
【나가 죽어】
동생들의 멸시와 모욕을 견디며, 1등급 넌씨눈 이영진 소리를 들으면서 깨친 눈치.
어쩔 수 없군.
여기서는 아주 조금의 상냥함과 다정함을 섞어서 포션을 만들어야겠다.
【진통과 체력 회복에 특효가 있는 포션을 만듭니다.】
【물과 진통초를 위대한 스킬로 빚어냈습니다.】
【목넘김에 저항이 없으며,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붙습니다.】
【다용도 회복 포션이 제작 리스트에 등록됩니다!】
그렇게 몇 병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리고 아일라에게 건네고는 뒤로 돌아섰다.
“여기 있다. 우선 스무 병. 가져가라.”
“울프람?”
“뭐. 더 필요한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도록.”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묻지 않고, 듣지 않는다.
그것이 그때 내가 깨우친 눈치였다.
***
스피카는 울프람이 제조한 포션을 받아들고, 다음 날 급하게 앨리스를 찾았다.
앨리스의 상태는 더더욱 처참해서, 입이 마르고 눈 아래 기미가 껴서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다.
“앨리스 양···. 어제 무언가 드시긴 하셨어요?”
“예에? 아뇨. 잘 안 넘어가서···.”
“정말 심한가봐요. 일단···. 여기요.”
“이건, 뭔가요?”
“진통 효과와 체력 회복 표과가 있는 포션이에요. 급하게 구해왔지만 효과는 확실하답니다?”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요새 먹을 것이 시원찮다고는 했지만···. 아프다고 한 적은 없을텐데?
“스피카 양. 무언가 오해가···.”
“일단 드세요.”
“아, 네.”
주는 것이니 받는다.
특히 포션이라고 하면, 최하급이라도 1만 린.
조금이라도 등급이 올라가는 순간 백 만. 천 만을 호가한다.
앨리스는 조심스레 포션을 받아들고 퐁. 하고 뚜껑을 따 그 향기를 맡았다.
최근 지나칠 정도로 식욕이 없었고, 수분 섭취조차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허나.
“어라···? 좋은 향이에요···. 가슴이 채워지는···.”
“그렇죠? 자. 자. 어서 드세요!”
“네···.”
아주 살짝, 혀를 적시자마자 말단에서부터 수분이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갈라질 것 같았던 혀가 생기를 찾으며, 더 달라고 재촉한다. 이윽고 포션은 입 천장에서 흘러내려, 볼 안쪽을 타고 오른다.
달콤한 맛이 관자놀이를 타고 올라 머리의 끝까지 올라가 활력을 공급해준다. 내뱉지 않고 입 안에 감춰두고 싶은 향이 코 끝을 타고 빠져나와 들숨과 날숨에 향을 더해준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간 포션은 스스로의 위장 크기까지 선명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신을 타고 흐른다. 액체가 지나간 곳에는 겨우 한 줌의 비료를 허락받은 메마른 땅 마냥 영양을 갈구한다.
허나, 고작 한 병의 포션은 금새 그 끝을 드러냈다.
할 수 있다면, 포션 병 벽에 붙은 남은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 핥고 싶을 정도로 감미롭고, 아름다운 맛.
“하아···.”
달뜬 숨을 내뱉고, 앨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까지도 포션이 가져다 준 기적에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어때요. 괜찮죠? 좋아졌죠?”
“예에···. 스피카 양. 정말 고마워요.”
글썽.
눈물이 날 정도로 스피카의 배려에 감사하며, 앨리스는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다행이에요. 제작자 분도 기뻐하실 거에요.”
“아···. 포션 제작자 분이 따로 계시는군요. 이 정도의 장인분과 연락이 닿다니, 역시 트라이스타. 서부의 맹주네요.”
“후후. 하지만 제작자 분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편이셔서요.”
“네. 그렇다면 저도 캐묻지 않겠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 말씀은 전해드릴게요.”
스피카는 방실방실 웃었다.
물론. 울프람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 정도의 포션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기저기 부주의하게 소문이 퍼지는 것 보단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포션은 더 가지고 계신가요?”
“네. 있답니다? 일단 20일 어치요.”
“그, 그렇다면.”
앨리스의 눈이 절박함과 조금의 욕심에 물드는 것을 보며 스피카는 손바닥을 교차시켜 앞으로 내밀고는 뿌우 하고 소리쳤다.
“안 돼요. 앨리스 양. 포션에 의존해 체력을 회복하면, 장기적으로는 포션이 없이는 자연치유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된답니다.”
“그런···. 가요? 처음 들어요.”
꽤나 박식하신 분이구나.
“네. 그러니까 최대한 자연 치유력을 키우기 위해 잘 먹고, 잘 마시는게 기본이랍니다. 포션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하루 한 병. 이라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후후.”
앨리스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 정도의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물약에 의존시킬 수 있겠지만,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다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션 제작자님께 캐물은 결과, 하루 한 병이 끝! 제가 보는 앞에서 전부 마시면 된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스피카 양.”
그 말에 스피카는 언니를 떠올리는 특유의 자세···. 양 팔을 허리에 대고 흥! 하고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감고 웃는 자세를 취했다.
앨리스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남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이익마저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물약을 구해오고, 건강을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고, 최상급 물약을 만들어냈음에도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연금술사가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조금 더 세상을 믿고, 누군가를 믿고 싶어 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신뢰. 믿음. 그런 것들과 담을 쌓았다고 생각한 앨리스도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얼마만의 웃음인가.
마음 속 어둠이 조금 개이는 것을 느끼며, 앨리스는 한참을 웃었다.
***
도시락은 잘 공급되고 있는지, 물약의 취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 편의점을 나와 1학년 지구에 가던 도중. 나는 그 녀석과 마주쳤다.
“앨리스 마이스터.”
“우,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 전하.”
시릴 정도의 푸른 눈.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순백의 머리카락.
창백해 보이는 검사 소녀는 이쪽을 바라보며 주춤. 몸을 반 걸음 뒤로 물렸다.
“뭘 그리 두려워하지?”
“두려워, 한다···? 제가 당신을 말입니까?”
“음. 그러지 않고서야. 물러설 이유가 있나? 음? 그건.”
“읏?!”
그녀의 허리춤에 달린 무언가를 눈치챈 내가 슬쩍 손을 내밀려고 하자, 앨리스는 급격히 몸을 뒤로 뺐다.
음.
아무래도 강제로 빼앗기는 좀 그런 듯 하다.
녀석의 경계도와 살기가 올라갔잖아.
뭐, 보물이라도 되나?
“앨리스 그건 뭐지? 묘한 것을 들고 다니는구나.”
“묘한 것이 아니에요. 제게 있어서는 믿어보고 싶다는 결의입니다.”
“결의라?”
“당신은···. 모를 거에요. 황자님.”
“뭘 말이지?”
“세상에는 남을 비틀어 이용하려고 하는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 말하며 앨리스는 소중한 것을 지키듯 허리를 옆으로 돌려 그 물건을 감추고 나와 마주 섰다.
“음. 그런가.”
“예에. 저는···. 결코 꺾이지 않을 거예요. 이 세상은 아직 믿어보고 싶으니까요.”
“그래. 그런가.”
“그럼. 평안하세요.”
앨리스는 잠시도 내 근처에 있고 싶지 않다는 듯 잽싸게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끝끝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포션 빈병을 왜 옆구리에 보물처럼 끼고 있는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