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92)
491. 악당 등장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그 격한 반응에, 레지나 시엘라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쁜 말.
그래 흔히 말하는 나쁜 말이다.
그 맹하고 착하고 얼빠지기 그지없는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레지나 시엘라의 놀람의 근원이었으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뭘 웃어요?! 당신 진짜 돌았어요?!”
“아하, 아하하. 미안. 미안해요.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요.”
아하하. 하면서 이내 배를 잡고 웃는 레지나.
오히려 먼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은 것은 아일라였다.
“가출한 이유는 알겠어요. 예. 저도 그런 상황이면 집에 초거대 흑수정을 박아넣고 냅다 튀었을 거니까요.”
“그건, 당신이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하는 건가요?”
“네.”
아일라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질문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비웃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기 때문에 아일라 트라이스타인 것이다.
호적수고 라이벌.
단순히 집안. 전공. 성적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라이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눈앞의 흑수정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는 눈부시다.
“후후.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다니 부러워요.”
“지금은! 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요!”
“쩌렁쩌렁 소리치지 마세요. 몰래 들어왔는데, 이래서야 잠입한 의미가 없잖아요?”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당신 진짜 미쳤어요? 이거 범죄인 건 알아요?!”
“어머. 그러면 고소하시겠어요?”
“갸으아아아!”
아일라는 양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으며 포효했고, 레지나는 태연하게 웃었다.
평소라면 정 반대. 아일라가 태연하게 대꾸하고 레지나의 복장이 터졌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에서 해탈할 정도로 초연한 레지나의 모습에, 당장 머리를 붙잡던 아일라는 이내 후우. 하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도망쳐 나왔다고 치고, 앞으로 어쩔 거예요?”
“글쎄요. 이래서야 집안과 인연도 끊긴 셈이니, 제프린에 계속 다녔다간 강제로 송환될 것 같고···. 혼자 몰래 여행이라도 다닐까요?”
“진심이에요?”
아일라의 눈은 차갑다.
그리고 그 안에는 확연한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
그 경멸에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레지나는 다시금 웃어버렸다.
“농담이에요. 농담. 다 방법이 있죠.”
“어떤 방법이죠?”
“아이디어 모집하고 있답니다.”
“야!”
다시 한 번 으갸! 하고 화내기 시작한 아일라를 보며, 레지나는 폭소했다.
방법이라.
“사실. 제가 생각한 방법이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말이라도 해봐요.”
“말하는 순간, 모두가 말려들게 될 거에요. 그래도 괜찮나요?”
드물게도 웃음기를 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과 마주해. 아일라도 진심을 내비쳤다.
“헛소리 말아요.”
“네?”
“사건이 이렇게 커졌다면, 더 이상 당신 혼자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문제. 울프람과 우리 파티 전체의 문제에요.”
“······.”
“저는 당신이 싫어요. 짜증나죠. 당신도 저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어찌 되었던 우리는 울프람의 파티라는 깃발 아래에 모였어요. 그리고 우리 파티 리더는 모두 공평하게 아껴주고 있어요. 알잖아요? 그러니까. 헛소리 집어 치우고 본론이나 말해요. 지금부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죠.”
“하.”
이것 참.
한 방 먹었네요.
레지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의 해결책을 입에 담았다.
***
【속보. 레지나 시엘라(18) 가출. 피카로 시엘라(43)의 집을 반파시키고 도주.】
아일라가 보낸 파티 메세지를 처음 보고,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화냐.”
황실 혈통이 허락하는 가장 아슬아슬한 막말을 입에 담고, 지끈거리는 두통에 머리를 붙잡고 소파에 몸을 뉘였다.
당연히 파티 메세지는 난리가 났다.
평소, 서로간의 사생활을 존중해 개인 정보보다는 파티 중심의 메세지가 오가고, 공략 때. 혹은 본인의 스케쥴을 언급할 때나 쓰이던 이 메세지창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메세지가 올라왔다.
【그래서. 어떤 일이지?】
【피카로 시엘라(43) 왜 결혼 안 하냐 내가 좋은 혼처를 구해놨다. 레지나 시엘라(18) 나를 결혼시키려 하다니 집안을 부수고 도망칠 것.】
짧은 요약이지만, 동시에 이해도 갔다.
레지나의 다른 혼처는 본편에서도 꽤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서 피카로의 인정을 받은 켈터스가 레지나와 약혼하게 되는 전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둔감한 켈터스는 그게 약혼이라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멍청한 녀석. 그 만큼 대시했으면 사람이 눈치라는 게 있어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구해줄 켈터스는 없다.
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 구원해야 할 터.
【그래서. 레지나 시엘라는 어떻게 한다고 하지?】
【저기 그게···.】
아일라의 메세지가 망설이고 있을 동안, 레지나가 적었을 메세지가 올라왔다.
【황자님. 저는 세력을 모아, 아버지께 저항하고 싶습니다.】
【호오. 설명해보도록.】
【지금의 저에게 혼담은 이르다. 황자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대륙을 바꿀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확실한 비전을 이야기 한 다음, 확실히 무력적으로 강해져 집안에서 뭐라고 할 수 없게 만들고 싶습니다.】
흠.
그러니까 실력 행사로 인정받겠다 이건가.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은 수준에서 끝나서 문제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가요?】
【그래. 잘 생각해봐라. 대화로 풀 거라면 집을 박살내지도 않았어야지.】
【······아하.】
뭐가 아하야. 생각 좀 해라 진짜.
【하지만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재조정 하자꾸나.】
【어떤 식으로 말씀이십니까?】
【레지나 시엘라. 하나 묻고 싶다. 가주가 되려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나?】
【물론입니다. 저는 시엘라 가문의 가주가 되어 저를 무시하는 모든 것에게 저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럼 되었다. 그렇게 하자.】
【예?】
【가주. 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말에, 이번에는 레지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일라의 채팅이 올라왔다.
【과연! 반역이군요!】
음.
이번만큼은 딱히 반박할 수 없군.
***
그렇게 아일라와 레지나는 재빠르게 편의점을 찾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현장 학습을 나갔던 밀푀유. 네프티. 이브. 루디카도 원격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거기에 엘피라네. 필티아도 우리를 돕겠다고 나섰다.
즉.
울프람 파벌의 총전력이 이곳에 모인 것이다.
오히려 이쯤 되는 인원이 모이니 천하의 레지나 시엘라라고 해도 몸을 떨 정도.
“엘피라네와 필티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든든하군 그래.”
“후후. 울프람. 레지나는 부족하지만 제 제자랍니다?”
“맞아. 동생.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제자니까.”
그 부족하다는 말에 레지나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지지만, 파티원들 또한 그 의견에 동참했다.
【맞다. 루디카도 레지나는 처음부터 집착이 취미인 기분나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한다.】
【레지나 선배님 꽤 좋은 분입니다? 예에. 뭐.】
【아하하···.】
【쯧.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자.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해결 할 거죠?】
루디카, 네프티. 밀푀유. 그리고 이브까지 레지나를 응원하고 나섰다.
정작 응원을 받는 당사자는 ‘이런 부당대우라니···. 내 취급은···.’ 같은 소리를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레지나가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건 뭐 매번 있는 일이니까.
“그럼 지금부터 프로젝트 시엘라 리벨리온을 시작하죠!”
멋대로 프로젝트 명을 지은 아일라의 선언과 함께. 우리들은 그렇게 어떻게 하면 레지나 시엘라를 시엘라 가문의 정점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
피카로 시엘라는 반파된 별채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라면 집안에서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피카로지만, 자신의 딸이 저지른 이 화끈한 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비치고 만 것이다.
“순하고 곱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며 키웠다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어금니를 가지고 있었구나.”
허나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 녀석은 제프린에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게 아니라 홀로 여행을 떠나거나 잠적한다면 사람을 풀어 잡아오면 그만이다.
이번에는 그 어금니까지 갈아내면 그만이다. 그리 생각하며 피카로는 부서진 별채를 뒤로 했다.
“허나 이상하군. 그 어금니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믿는 구석이 없으면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 의지할 구석이 있을 터.”
대체 누가, 그 아이에게 어금니를 만들어 줬을까.
이미 정신체계가 엉망이 되어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아이를 제대로 붙잡고, 이끌어 줄 수 있었을까.
그 거슬리는 존재가 누구일까.
피카로 시엘라의 그런 의문은 생각보다 금방 풀렸다.
“주인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가문에서 평생을 일한 늙은 집사가, 창백한 안색으로 한 보고에 피카로의 미간이 조금 좁혀졌다.
“정말인가?”
“예. 황성에서···. 황실의 이름으로 시엘라 가문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겠다고 들고 나섰습니다.”
***
제가 말이죠. 희망의 집에 있을 때, 항상 느끼던 게 있거든요.
와 요새 애들 무섭다. 라는 겁니다.
나 때는 원장님이 뭐라고 하시면 네 죄송합니다. 라고 밖에 대답을 못했고, 형아들이 ‘영진아 이거 형이 좀 쓸게.’ 하면 우주 꿈돌이 크레파스 18색중 가장 소중한 살색도 내어주고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머리 좀 크고 동생들 키워보니까, 나 때랑 다르게 애들이 할 말은 하고 따질때도 따박따박 따지고 어? 그러더란 말이야.
그래서 느꼈지. 요새 애들 참 무섭다.
그런데 그걸 여기서 또 느낄 줄은 몰랐다.
파티 메세지로 대화를 나누는 레지나와 이브의 내용을 들으며, 나는 작게 몸서리쳤다.
“일단 피카로 시엘라의 부정부패와 시엘라 가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범죄. 비리의 목록이에요.”
【그렇군요. 그래서 이걸 어쩌자는 거죠?】
“이걸 이브님께서 적발해서 완전히 가문을 박살내주세요.”
【이봐요. 레지나 시엘라. 당신 가문은 제 지원 가문인데, 제 손으로 죽이라고요? 제 힘이 약해질 텐데요? 제 살 파먹기에요.】
“어차피 이브님께서 황위에 오를 때. 자기 몫을 주장하면서 멋대로 범죄를 저지를 가문이에요. 일단 싹 다 쳐내죠.”
【으, 음. 그래서 당신에게 득이 될 게 있나요?】
“제가 가주가 되고, 황녀님께서 옥좌에 앉으셨을 때, 국고로 환급된 비리 금액중 일부를 다시 돌려주시면 시엘라 가문은 지장 없이 끝나요.”
【흐으으음.】
세상에 미친.
저거 완전 돈세탁 아니야?
아니 이브야. 흐으으음. 이 아니잖아. 너 정의라매. 빛의 학생회장이라매!
【안 되겠어요. 당신이 또 범죄를 저지를 거라 생각하면 주인이 바뀔 뿐이에요. 저는 당신을 믿지 않아요.】
“네. 저도 완전히 깨끗하게 가문을 운영할 자신은 없어요. 그러니까 황녀님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저희 가문에 심어주세요.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거기까지 하겠다. 이건가요.】
“네.”
생각보다 많이 진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장로 가문이 반대할거에요. 이건 장로 가문에 대한 핍박이다. 하고 말이죠.】
“괜찮아요. 그것도 방법이 있어요.”
【뭐죠?】
“일단. 저희측에도 장로 가문의 가주분이 한 분 계시잖아요?”
힐끗. 루디카를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한 루디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돕겠다는 의미다.
“루디카님께서 도와주시면, 다른 가문의 외압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이브 폰 로엔그린 세력의 물갈이라고 표방하고 나서죠.”
【음···. 그렇게 포장하면 나쁘지 않겠지만···.】
이브는 끝까지 망설였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브 폰 로엔그린은 어디까지나 공정함과 대범함을 가치로 내세운 세력.
그런데 자중지란을 일으키면 내부의 결속이 크게 흔들릴 수 있으며, 대외적인 이미지도 망친다.
그러니까 망설이는 거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악역이 나설 차례다.
“아니. 그 주체를 바꾸지. 악역은 내가 맡는다.”
“황자님?”
【울프람?】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황손 중에서도 악당인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시엘라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폭거를 저질렀다.”
【당위성이 부족하잖아요.】
“당위성이라면 있지 않나. 감히. 황손의 의도도 물어보지 않은 채. 어린 시절의 약혼을 파혼했다. 그거면 얼마든지 이유가 되지 않겠나?”
【그야···. 되긴 하는데. 그랬다간, 당신이 아직도 어린 시절의 파혼에 꽁해져있는 삼류 악당 취급이 될텐데요?】
“이제 와서 그런 악명 하나 더 얹어진다고 무언가 바뀌겠나?”
【하긴, 그건 그렇네요.】
이브는 어깨를 으쓱했고, 방금 전까지 활달하게 담화를 나누던 레지나는 침묵했다.
“화, 황자님.”
“뭐지?”
“정말로,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린 시절의 파혼이 충격이었다고···.”
음.
그렇군.
생각해보면 이 녀석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레지나의 어깨를 툭 짚었고, 한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힉. 읏···. 같은 침음성이 들려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전혀 그렇지 않다. 신경쓰지 말도록. 이젠 아무런 감정이···. 아니 처음부터 아무런 감정도 없었으니까.”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알았지?
레지나 시엘라는 내 말에 너무나 감격했는지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녀석.
울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울면 쓰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