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499)
498. 어둠의 황자
제프린에 돌아왔을 때는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내 옆에 선 것은 파티원들과, 우호선린을 기념해 방문한 릴리아 스노우.
릴리아는 얼음 정령들과의 교섭창구가 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외교관 취급이다.
그런 그녀가 기거하는 곳은, 편의점 근처 공터.
버틸 수 있다고는 하나 더운 것은 질색인 그녀답게 얼음과 눈으로 집을 만들어 지내기로 했다.
“울프. 정말 내가 여기에 있어도 괜찮을까?”
“안 될 것 없지 않나.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릴리아.”
“응!”
완전히 어리숙했던 시절을 벗어나, 간부 수업을 받은 그녀는 조금이나마 어른스러운 대응과 인내심이 늘었다. 겸사겸사 상황파악까지 말이다.
그렇게 릴리아를 이글루에 짱박아뒀다. 내부 가구를 얼음 마법으로 만드느라 한동안은 바쁘다고 한다.
그 다음 나는 또 다른 뒷풀이를 시작했다.
단 둘이서 하는 뒷풀이.
즉.
원정에 참여하지 않은 이브와 꽤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된 떡밥은 앞으로 북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제 학생회장 임기는 앞으로 길어봐야 2년이니까요.”
“그렇군. 장담컨데 그 뒤에는 어떤 학생회장이 부임하던 북부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최소한의 교류 수준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을까요?”
“내 목표를 생각하면···.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는 반드시 이 제프린 밖으로 나갈 것이고, 그나마 남아서 얼음 정령족을 수습할 존재는 릴리아 정도겠구나. 그녀가 모든 얼음 정령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
“······.”
이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문득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군요. 얼음 여왕뿐만 아니라, 요정 여왕에 필티아 언니도 밖으로 나갈테니까요.”
“그렇지. 일년이 되지 않아 적어도 셋은 나간다고 봐야 한다. 즉 내년은 이 정도의 지원군은 없다고 봐야 한다.”
“······.”
이브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것이 냉정한 현실임을 깨달았다.
원래라면 이딴 시나리오를 짠 이브의 뱃살을 탄지신통으로 찌르려고 했지만, 막상 회의에 들어간 후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꽤 진지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래서야 짜증내거나 화낼 틈도 없지 않나.
“뭐. 저 혼자서도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당신의 걱정을 받을 이유는 하등 없어요.”
“나도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도록.”
“뭐에요. 그게···. 걱정하는 걸 걱정하지 말라니.”
내 말에 이브는 풉. 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말해놓고도 이상하긴 하네.
“아무튼, 이번 원정 이야기는 밀푀유에게 들었어요. 어마어마한 연극이었다면서요?”
“흥. 네놈들이 짠 각본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움직여 줄 줄은 몰랐는데요. 뭐. 동석하지 못한게 한이네요.”
“왜 동석하지 않았지?”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어서죠.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쓰러지기라도 해봐요. 각본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
호오. 웃으려고 하셨겠다?
“거기에 언제나 무대 위에서 주역은 한 명 뿐. 시선이 분산되어 좋을 일이 어딨겠어요?”
“······.”
아까 전부터, 이브 녀석의 상태가 이상하다.
묘하게 침착하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틱틱거림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시선이 붕 뜨고, 묘하게 둥실거리는 것이···.
“이브.”
“뭐에요?”
“감기 걸렸나?”
“하, 누가 감기 따위를 걸렸다고 그래요? 이 이브 폰 로엔그린이 감기를? 뭐 하는 거에요?”
이마에 슬쩍 손을 대보니, 펄펄 끓는다.
이 녀석. 진짜로 감기에 걸렸군.
“감기가 맞구나.”
“······.”
“어째서 걸렸지? 배를 내놓고 잤나? 밤에 찬물로 샤워하고 안 닦고 바로 이불 안으로 들어갔나?”
“일곱 살 때나 할 법한 짓을···.”
“일곱 살 까진 했나?”
“응그극···.”
“그래서. 왜 감기에 걸렸지?”
“그냥 바람을 좀 맞았을 뿐이에요. 밖에 오래 서 있는게 잘못이었겠죠.”
“······.”
이상하다. 이 녀석이 밖에 오래 서 있다고 해서, 감기에 걸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4월말의 제프린이 그렇게 추울리는 만무. 그렇다는 건···.
바람을 맞되, 찬 바람을 맞았다···?
즉. 추운 지역에 있었다?
“북부의 입구에 있었나?”
“윽···. 아니거든요?”
있었구만 이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원정을 떠난 뒤 이브는 홀로 북부의 입구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하여간 어리석군.”
“뭐에요···.”
“허튼 소리 말고 누워 있어라. 지금 태초의 루비를 꺼내주지.”
“됐거든요. 제가 감기···. 그래요. 감기에 걸렸다고 쳐요. 그래도 당신보다는 건강해요.”
“······.”
아니 그렇게 팩트로 때리시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잖아요. 사람 무안하게 그러실래요?
“그런가. 그러면 약을 만들어주지.”
“싫어요.”
“왜지?”
“그야···.”
이브는 힐끔 이쪽을 보고, 시선을 돌리고, 한숨을 쉬고, 슬쩍 보고, 시선을 돌렸다.
뭘 하고 싶은거지.
“그야 뭐지.”
“그야···.”
당신이 준 약 따위를 믿고 먹겠어요? 살 찌는 약일지도 모르잖아요! 라는 소리를 하면 깔끔하게 무시하고 재운 다음 나도 모를란다를 박으려고 했다.
그러나.
“약은··· 쓰잖아요.”
“······.”
살짝 얼굴을 붉히고 퉁명스레 내뱉은 말에, 나도 할 말을 잊었다.
그런가.
약은 쓰긴 하지.
“포도맛으로 해주면 되나?”
“딸기맛이 좀 더 취향인데요···.”
아. 네 그러시군요.
이브를 대충 던져두고 포션 제조를 시작했다.
어디보자.
【맛 : 딸기】 옵션을 포함하는 포션 제조식이 뭐더라?
***
전장에서 돌아온 학생들의 보고에 제프린은 조용히 술렁였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영웅적 행보.
처음에는 그런 식의 세뇌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한 입으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칭송했으니 말이다.
이 제프린의 폐쇄성으로 인해. 소문은 새로운 소문을 낳는다.
거기에 뛰어난 학생들의 두뇌는, 소문에 그럴듯한 추론을 붙여 살을 부풀린다.
소녀. 네프테리안이 접한 소문의 총체 또한 그러했다.
“저는 울프람 선배님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로열가드는 그런 직업이잖아요?”
“알고 있답니다. 네프테리안 학우님! 저희도 감히 그런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어요!”
“그럼 어떤 이야기를 바라시는 거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예 뭐···. 그런건 어렵지 않죠. 자. 봐주세요!”
그리 말하며 네프티 앞에 놓인 수 십장의 종이. 그녀는 슬쩍 첫 타이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을 끌어안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본 황자 전설】
과연.
제목만큼은 우선 사람의 흥미르 동하기에 충분하구나, 네프티는 슬쩍 다음 페이지를 읽었다.
【이 문서는 실존 인물과 지명. 단체와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것은, 홀로 어둠을 향한 이름 없는 황자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했고, 어둠속에 사그라드는 것을 알면서도 빛을 사랑해, 빛에 헌신한 남자의 이야기.】
“오.”
네프티는 짧게 첫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다. 네프티는 이 이야기가 누구를 주역으로 삼고, 누구를 위한 이야기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친애하는 자신의 주군의 이야기를 창작으로 펴낸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태생의 체력이 약하고, 가진 바 능력이 부족했으나, 그 안에 있는 빛에 대한 동경.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하지만, 자신의 치세에 기사학부와 마법학부. 그리고 귀족들을 제어할 자신은 없었다.
자신에게는 그럴 세력도 없고, 힘도 없으니까.
“그래서.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네!”
그래.
빛이 될 수 없다면 어둠속으로 숨자.
자신이 더 깊은 어둠이 되어, 세계를 혼란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대업.
그는 기사학부를 이간질하고, 마법학부를 속였다.
서로를 경쟁시키고 수 없이 많은 재보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 모든것을 학생회에 귀속시킨 뒤. 스스로를 화형대에 올렸다.
후회도, 절망도 없었다.
그 다음에 이어질 빛이 있으니까.
이 몸 하나를 화형해도, 타올라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불길이 이어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어둠의 황자의 뜻을 이은것이 빛의 황녀님···. 이군요?”
“예! 그렇죠!”
그 뒤. 빛의 황녀는 정의를 가치로 내걸고 순식간에 학생회의 정점에 올랐다.
무대는 모두 준비되었다. 기사학부도 마법학부도 힘이 빠져있고, 그들의 보물은 학생회실 창고에 잠들어있다.
거기에 모든 민중이 빛을 갈구하고 있었다.
황자가 가져온 제프린의 어둠이 너무나 깊었기에, 황녀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이 땅을 뒤덮었다.
그 뒤. 황자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황자의 계획의 끝은, 스스로를 불사르는 것.
하지만 빛의 황녀는 황자의 퇴장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렇게 되는 건가···.”
“네! 빛의 황녀님은 어둠의 황자님께 손을 내밀었겠죠. 당신은 어둠에서, 저는 빛에서. 혼자서는 부족해요. 따라오세요. 그리고 황자님은 이렇게 말했겠죠.”
“너의 빛은 나에게는 너무나 눈부시군. 하지만···. 좋다. 받아들이지. 라고요?”
“예!”
네프티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 괴문서를 가져온 학생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대체 어디서부터 뭐라고 해야 할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뭐라고 해야 할까.
“괜찮은···. 이야기네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완전히 솔직하게 적어도 되겠죠?”
“뭐라고요?”
“로열 가드 또한 ‘괜찮은 이야기다.’ 하고 극찬한 문서라고요!”
“······.”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으음. 이런 이야기가 세간에 풀려도 될까.
묘하게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어서 뭐라 하기 어렵다.
거기에 세간에 있는 소문을 조합해보면, 이 소문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추리로 받아들여진다.
거기에 다른 식으로 반박하자니, 그 내용이 궁색해진다.
어떻게 할까? 이브는 진짜 쫓아내려고 했다? 울프람은 알아서 살아남았다? 굴러가다보니 어떻게 된 거다?
지금 네프티가 그런 식으로 반박하려고 하면 이들은 솔직하게 받아들일까?
아니다.
장담하는데 ‘로열 가드에게 진실을 언급할 권한은 없다.’ 라고 하면서 추측을 더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봉합하는게 맞다.
“예에. 뭐···. 제가 한 말은 맞으니까요. 그렇게 적으셔도 됩니다.”
“역시. 이 이야기는 진실이었어요!”
네프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문이란 원래 근거가 없으면 금방 꺼지는 법.
부디. 이 소문도 빠르게 가라앉기를.
***
이브에게 딸기맛 물약을 먹인 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프티인가. 말해보도록.】
【사실 그게 말입니다. 오늘 기사학부에서 한 귀족분께서 소설을 가지고 오셨는데요···.】
그리 말하고 네프티가 내뱉은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까 뭐야.
나는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내 한 몸에 불을 지른 남자고, 이브는 그 뒤를 이어받은 빛의 계승자라고?
잘도 그런 미치광이 소리를. 당장 개소리라고 집어치우라고 해!
【어떻게 할까요. 선배님과 이브 님의 명령이라면 소문도 바로 지울 수 있을텐데요.】
【아니. 일단 내버려 둬라.】
【예. 알겠습니다.】
슬쩍.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이브 녀석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강하게 반박하다 잘못하면 이 녀석이 나를 양지로 꺼내려고 한 의도까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야, 원정을 보내놓고 걱정이 되는 바람에 설원에서 바람을 맞다가 감기에 걸린 멍청이를 볼 면목이 없지 않은가.
“녀석은 눈치 못 챘을거라 생각하겠다만···.”
아니면 봄이 한창인 지금 바람 몇시간 맞았다고 감기 걸릴 이유가 어디 있겠어?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내 소문이 조금 더 퍼지고, 어떻게 구르던말던 지금은 고작 그딴것에 정신이 팔릴 틈이없다.
내가 정신이 팔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브의 감기약을 제조하던 도중. 대성공이 터지면서 나온 물약.
【신화급 딸기맛 시간회귀 포션】
【1T】
【복용자의 시간을 되돌립니다. 최대 15년 전까지 되돌릴 수 있으며 육체와 정신 모두 어려집니다. 지속 시간은 36시간입니다.】
“······.”
이걸 어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