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
004. 내가 누구? “3류 편의점 오너”(2)
필은 보증금을 포함해 식료품점 내의 모든 물건을 내게 넘기기로 했고 나는 검과 옷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손해라면 내쪽이 조금 더 크다.
검도 옷도 마에스트로와 위그드라실에서 가격 감정을 받았으니까.
‘울프람’에게서는 사주지 않아서 문제지 필이 팔려고 하면 사 줄거다.
아무튼 그 가격만 해도 이 식료품점은 사고도 거스름이 이천만은 남을거다.
오히려 필 쪽에서 당황할 정도.
“음. 내가 너무 이윤을 많이 보는데.”
“그러면 좀 남겨주던가.”
아니 이제는 전 사장님의 말에 따라 식료품점 내부를 둘러봤다.
깔끔하게 청소되어있고 선반도 가지런하다.
열심히 운영하려고 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
허나 물건이 많지 않다는게 흠으로 작용했다.
흑빵이 상할 정도면 말 다 했지
“조금 문제가 있긴 하군.”
“흠···.”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물건이 너무 적다.
있는 거라고는 하급 힐링 포션 백 여개와 ···이것 저것 무난한 공산품들. 펜이나 종이와 흑빵에 물 정도?
내가 물건을 물끄러미 보자 필은 하하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물건 자체의 품질이나 갯수는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좀 오래돼서.”
“···?”
뭐라는거야 이 새끼.
원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려고 입을 터는건가?
이게 나쁘지 않다고?“
“···좋아. 이렇게 하자. 너도 다음 물건 발주비 정도는 필요하지? 내가 지금 오백만 린이 있으니까. 이것까지 너한테 넘겨줄게.”
“···흠.”
그럼 실질적인 인수비용은 칠천 오백만 린인가.
이 편의점의 보증금과 선납한 월세등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가격이 맞아 떨어진다.
거기에 열 배 뻥튀기 받은 인증서에 어차피 내가 들고 있어도 환금 못하는 물건으로 얻은 셈.
“좋다. 그렇게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이제부터 울프람의 화려한 부활이 시작
“아 맞다. 계약에 건물주님이 입회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
아니.
시작좀 하자고 좀.
***
건물주?
보통 이런 작은 점포 계약을 할 때 건물주가 직접 참관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이 엄청난 거물인가?
아니다. 이런 사람은 내 기억에 없다.
그럼 왜 이런 작은 점포 계약에···.
“네 이름을 이야기 하니 바로 찾아오겠다고 하던데? 꽤 친절한 사람이야.”
···그렇군.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시작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사람에 친절한 사람.
머릿속에 희번득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사람이고, 가진 권력 때문에 돈이 궁하지 않은 사람이다.
“누구지?”
“그건 보면 알게 될 거야. 아무튼 나는 환금하러 간다. 수고해라.”
아니 말하라고 새끼야.
내가 노려봤지만 필은 물건을 환금하러 가겠다며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
······.
“아니.”
이브처럼 정의에 미친 사람이면 ···건물에서 꺼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진짜 끝장인가.
영끌 인생 한타 너만 오면 고 상태였는데, 이렇게 조진다고?
그리고 이 거래의 심판을 맡으실 조물주 위에 계신 건물주님께서 식료품점에 들어오신 그 순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늦었습니다.”
“어···,”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틀림 없다.
“······.”
무미건조하지만 숨길 수 없는 미성.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은 찰랑거리고, 어두운 자수정을 방불케하는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있다.
얼핏 의욕이 없어 보이는 얼굴. 혹은 무표정. 완전한 포커페이스.
거기에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
아일라 트라이스타
트라이스타 백작가의 차녀이자 마법부 3학년 차석.
내가 알고 있는 네임드 캐릭터.
내 머릿속에는 그녀의 상세 스펙. 스테이터스. 스킬이 주르륵 떠올랐고, 설정집의 일부마저 읽어낼 수 있었다.
태생 마력치 19의 괴물.
로엔그린 제국 상권의 2할을 지배하는 상가의 차녀.
엄청난 두뇌.
벌써부터 3티어의 마법을 쓸 수 있는 힘.
그 모든것을 지나 머릿 속 기억의 스크롤을 내리면, 가장 구석에 아주 희미하게 한 문장이 빛난다.
“정말 밑바닥까지 떨어졌네요. 울프람.”
상인루트 3막의 중간보스.
“나를 또 이용할 게 남았나요?”
“아일라.”
그리고, 울프람의 약혼녀.
***
사람은 상상하지 못 한 일을 만나면 사고가 정지하고 말을 잊는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되고 나서 이틀만에 환장할 위기를 겪었다.
학원난민에서 시작해서 백수,
그런데 단언코 지금이 제일 놀랍다.
기억에도 없는 약혼녀가 갑자기 나타나면 그야 놀라지 안 그래?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 보세요. 울프람.”
“······.”
나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새로 입주한 구석탱이 건물의 건물주가 내 약혼녀면서 스토리 중간보스라 이거지?
와 환장하겠네. 난이도 왜 이래? 주먹으로 최종보스랑 싸우는게 더 쉽겠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잘렸다면서요. 학생회장.”
“그래. 그랬지.”
몸쪽 꽉찬 포심도 이것보다는 덜 아플거다.
“그래서 처음 새 임차인 이름이 당신이라고 들었을 때 꽤 많이 놀랐어요.”
“······.”
“아직까지 아카데미에 남아있구나. 내가 알던 울프람이라면 그 모멸을 견디지 못해서 뛰쳐 나갔을텐데.”
“······.”
“혹시 자신이 버린 패에게 복수당할까봐 두려워서 안 나간 건가요?”
와 약혼자 맞긴 맞네.
울프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실까.
“대답해보세요. 울프람. 왜 남은거죠? 그리고 왜 나를 찾아 온 거죠?”
“······찾아왔다?”
“흥. 이 식료품점을 사들인 것은 저에게 보내는 사인이잖아요? 당신을 구제해 달라는 부탁? 아니면 명령?”
“······.”
“볼 만한 점이라고는 야망밖에 없었던 남자가 여동생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끝까지 가서 약혼녀에게 기댄건가요?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죠? 울프람 폰 로엔그린.”
잠깐 스톱. 스톱. 웨잇. 야 잠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하자.
아무튼 네 안에서 울프람을 향한 몇 개의 증오가 오가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울프람한테 가서 따져주라.
“아무튼 이 거래는 없어요. 더 추해지기 전에 스스로 사라져 주세요.”
“······.”
아니 그건 곤란하다.
그래 줄 수야 없지.
나가면 칼찌엔딩이라고.
좀비부활이라고
여동생 뚜쟁이로 사망이라고.
“아일라 트라이스타.”
“뭐죠?”
아일라는 3막의 중간 보스.
주 특기는 흑마법과 결정마법이다.
3막 기준으로 꽤 난적.
지금이나 그 때나 그녀의 전투력은 크게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녀가 진심을 다 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생각이라는 무기가 있다.
체력도, 마력도 없고 죽을 위기만 도처에 깔린 울프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각을 무기삼아 최대한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생각을 멈추지 말자.
제프린은 캐릭터 하나하나의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대부분의 캐릭터성을 꿰고 있다.
내 머릿속에는 캐릭터와의 대화 스크립트가 흘러 지나갔다.
[3막 2장. 반역의 마녀. 야망의 숙녀.]아일라의 캐릭터성은 어땠지?
야망. 그리고 중2병.
결론이 나왔다.
직후 나는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 손가락 깍지를 끼고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우습군.”
“···뭐라고요?”
“이 건물은 네 것이었나? 이런 건물에 투자하는 건 좋지 않아.”
“하! 헛소리를!”
그래 이런 대사를 쳐야 아일라다.
아일라는 야망. 바꿔 말하면 중2병의 화신인 악역 영애다.
뭔가 그럴싸한 말을 자주 하고, 그럴듯하고 실제로 멋지기도 하지만, 옆에서 보면 너무 진지해서 중2병같다. 거기에 야심 덩어리.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서 좀 대단한 사람인 척 하면 어느정도 대화가 가능하다.
“뭐가 헛소리라는거지?”
“얄팍한 거짓말이군요. 당신이 몰랐을리가 없어요. 이 건물이 제 거라고 해서 접근한 거 아닌가요?”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이런 하찮은 건물까지 기억해야 한다고?”
“······.”
“잘 들어라 아일라. 나는 이 건물이 누구 것인지 방금 전까지 전혀 몰랐다. 이게 거짓말로 들린다면, 네가 자랑하는 눈은 멀었고, 귀는 먹었군. 나는 울프람이고, 이 나라의 황자다.”
“좋아요. 그건 진짜라고 믿어주도록 하죠. 그럼 왜 이 곳의 식료품점을 인수
하려고 하죠?”
여기가 중요하다.
한 호흡 쉬고, 손가락을 까딱. 입가에는 미소. 거만함 일발장전.
“내 야망을 위해서다.”
“야망···?”
일단 아일라가 좋아 죽는 말로 시작한다.
괜히 챕터명이 반역의 마녀. 야망의 숙녀겠냐.
그녀의 보스로서의 특성은 수 없이 많은 부하고, 그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전부 인재였다.
“나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아무것도, 단 하나도···?”
“그래. 내 야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렇기에 이 식료품점을 얻으려고 한 것이고.”
“···이 식료품점이 대체 뭐길래?”
“그림자는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야 하는 법.”
“하! 계획도 없는 헛 소리를···!”
그렇게 말하면서 왜 숨은 달뜨고 손은 부들부들 떠냐, 솔직히 너도 궁금하지? 지금 분위기 쩔어주잖아?
여기서 핀 포인트로 때려주면 된다.
“계획은 있다.”
그 다음은 그럴듯한 계획을 나불거려보자.
아일라는 좋아 죽을 것이다.
“······조, 좋아요. 말 해 봐요. 어서. 빨리. 방법은 들어보죠.”
“아니 말 할 수 없다.”
“뭐라고요? 역시 헛소리···.”
“너는 지금 내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으윽!”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얘.
“내 편이 아닌 이에게 정보를 흘릴 이유는 없다. 돌아가라.”
“···제, 제가 건물주고 언제든 당신을 내쫓을 수 있다는 거 몰라요?”
“삼류의 협박이군.”
“윽! 조, 좋아요. 제가 당신의 편이 된다면 알려 줄 건가요?”
그래?
그러면 나쁘지 않지.
보자. 아일라가 편을 들어준다면 건물주와 사이가 괜찮은 세입자로 탈바꿈한다.
아무튼 내가 대단한 걸 할 필요는 없다. 아일라가 내게 기대하는 것은 ‘야망을 잃지 않은 울프람’ 일테니까.
울프람의 야망은 역시 복권이겠지. 아니 그 복권 말고. 학생회장으로 돌아가는 거.
그럼 어디보자.
“나는 인재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인재들이 당신 품에 들어온다고요? 인재가 누구인지 알고?”
“알지. 네가 그리도 아끼는 드루이드 소녀부터 시작해서, 마법부 신입생중에도 불꽃 마법에 특화된 아이가 있다. 기사부에도 미래의 검성의 소질을 보여주는 녀석도 있지.”
“···어떻게 그걸.”
“아일라. 아일라 트라이스타. 내가 누구지?”
“울프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쫓겨난 학생회장.”
“그래. 나는 학생회장이었다. 전 학생회장. 하지만 내가 그냥 쫓겨났을거라 생각하나?”
“···뭐, 라고요?”
“내 눈은 아카데미 어디에나 있다. 오히려 이브가 내 옥좌를 찬탈했으니 나는 음지에서 이 아카데미를 지배할 기회를 얻은 셈.”
“······당신에게 그게 가능하다고?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는 명분이 있어. 정의의 학생회장이라는 프레임을 쓴 그녀에게 반역이 성공한다고?”
“반역은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조용하게, 가장 위대하게.”
“·········!!!”
내 이 말에 아일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이게 생각을 멈추지 않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반역.”
“그래.”
그녀가 최고로 뿅가죽는 말을 입에 담았다.
‘반역’ 이게 보스로서의 그녀의 아이덴티티다.
[어머, 반역은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조용하게 행해지고, 가장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죠.]이 대사는 3막에서 그녀의 시그니처 멘트였다. 그걸 먼저 썼다. 미안. 나도 살아야지.
“당신이. 당신이···. 아직···.”
아일라는 손가락을 질끈 깨물고는 분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웬지 얼굴이 붉은게 오죽 억울한게 아닌가보다.
자.
보아하니 아일라는 울프람을 증오하면서 동시에 ‘아주 잘 안다.’
그녀 안에서 울프람은 재수없고, 건방지며 자존심을 굽힐 줄 모르는 남자.
지금 그녀는 울프람이 여동생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심지어 구제를 바라면서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멸시했다.
동시에 그녀의 말 안에, 또 하나의 힌트가 있었다.
‘야망만큼은 봐 줄 만 했다.’ 라는 점.
그렇다면,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나이 울프람 아직 안 죽었다. 마! 를 보여줘야 한다.
“···믿을 수 없어.”
“믿으라 한 적 없다.”
“뭐, 라고요?”
“믿음이라는 것은 허황된 말이지. 결과가 선행되면 따라오는 가장 하찮은 단어다.”
“······.”
“네 도움을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방해하지 마라. 방해한다면 너마저 치워버릴 뿐이다.”
“······.”
아일라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멸시를 거두지 않고 나를 쏘아봤다.
“그 거만한 모습은 시궁창에 쳐박혀도 똑같네요. 당신이 언제 무너질지 지켜볼게요. 울프람.”
나는 끝까지 거만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 모습에 이를 악 문 그녀는 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나가려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가기 전에, 이 식료품점은 어떻게 할 거지?”
“······정당한 값을 치루면, 못 팔 물건은 없어요. 그게 저희 트라이스타 가문이에요.”
“그런가. 값이다. 가져가라.”
이후 아일라가 자리를 떴고, 나는 한참이나 그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후우. 하고 몸을 기댔다.
“와 좆 되는줄 알았네.”
나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떻게든 입을 털어서, 그럴 듯 하게 포장하긴 했네.”
내가 반역의 사도? 미쳤냐?
아일라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무사 안일 안온 평온 평안 평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식료품점으로 밑천 모으고, 졸업장 따고, 기술 배워서 시골에서 살 몸이라 이거야.
“···아. 지친다.”
차기 정권을 집권하는 학생회장에게는 밉보였다.
이종족들은 싹 다 나를 거르고 있다.
이 낡아빠진 식료품점을 어떻게 부흥시킬지도 생각해야 한다.
중간보스 약혼자 앞에서 위대한 반역자인 척 했고, 앞으로도 걔 앞에서는 계속 컨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살아있다.
폐기라고는 하나 당장 먹을게 있고, 좁아 터졌다고는 하나 직원실에서 수면도 취할 수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내일은, 이미 오늘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내일 또 살아남자.”
이 편의점에서, 또 살아남아서, 살아가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혹사한 정신을 끄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