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15)
514. 광신도
이 게임에서 내가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흘릴 수 있냐고 물으면 ‘물론 그럴 수 있다.’
대부분의 공격은 파훼법이 존재한다. 이건 자기가 키운 캐릭터들로 호스트를 잡고 PvP 방을 오픈하는, 일명 배틀룸 시스템도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D/Z SAGA는 궁극적으로는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상대의 프레임을 저스트 캐치해서 반격, 패링, 회피, 혹은 방어를 해내는 것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마하고, 내 공격을 저스트 타이밍에 박아 넣거나 엇박을 박아 넣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에 누구보다 통달한 나는 나무 너클로 최종보스의 공격을 0.4프레임 내에 저스트 캐치해서 패링, 반격을 집어넣을 수 있다.
즉. 모든 공격은 내가 강해질수록 무위로 돌아간다.
고인물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야 어디가서 이력서에 저 D/Z SAGA 좀 했습니다. 궁금하시면 넷플로 따라오십시오. 제 이브가 당신을 박살낼것입니다. 하지.
하지만, 지금 이 상황.
살면서 처음으로, 아 내가 반격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까.
“후후. 편하신가요. 황자님?”
“음. 으음···.”
레지나 시엘라가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이 편의점에 침대라고는 존재할 수 없는데, 듣자하니 들고 왔다고 한다.
“침대는 안 보였는데, 어디에 있었지?”
“저기에 있답니다.”
그리 말하며 손을 위로 치켜드니, 편의점 창 밖. 상공 수 십 미터 위에 무언가가 둥둥 떠다닌다. 집중해서 보니 침대뿐만이 아니라 테이블. 의자. 찻잔. 식재료까지 둥실둥실 날아다니고 있다.
이 세계는 공해라고는 없으니까 건강에 나쁜 먼지가 묻을 염려는 없겠네 하하.
“그러니까, 저걸 전부 허공에 띄워서 들고 왔다는 건가?”
“예에. 늪의 능력은 ‘무속성’ 그리고 ‘제어’니까요.”
“그렇긴 하다만.”
“그것이 물건을 바닥으로 내리끄는 중력. 반대로 띄워 올리는 반중력. 그 뿐만이 아니라 공간에 고정. 혹은 반발까지···. 제 마력이란 이토록 다재다능했군요. 그저 뭉쳐서 휘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답니다.”
“언제 깨달았지?”
“무엇을 물으시나요. 당연히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황자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여 황자님의 마음이 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랍니다.”
“······.”
그러니까, 지금 레지나가 말하는 것은 본인의 2차승급의 본질이다.
스토리 상.
저걸 깨달은 레지나가 아아 마법이란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워. 세상은 저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후후. 마법이란 증명과 증오의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다각도로 보게 하는 기적인걸까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2차승급 완료.
그런데 지금은.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목줄기를 졸라서 콜로세움 벽에 처박기 위해 제 마법은 존재하는 거랍니다. 예에. 그 여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한 여자. 언젠가 제 마법으로 벽에 몇 번이고 처박아 주겠어요. 쓸 데 없이 튼튼하니 죽지 않겠지요. 마법이란 오직 숙적을 파멸로 이끌기 위한 기적인걸까요?”
세상에.
완전히 다르잖아. 원작 스토리 어디로 갔어.
거기에 지금은 본편으로 쳤을 때 2학년 초반부. 내가 이끌지 않으면 2차 승급은 한없이 멀다.
아름답게 보는 것 보다 증오가 더욱 강력한 힘을 불러오는 것인가.
사랑보다 증오가 아름답다 하는 것이냐.
“후후. 하지만 황자님께서 걱정하실 것은 없답니다. 자. 편하게 누우세요. 남은 것은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2차승급이라고 해도, 레지나 시엘라의 공격 패턴은 생각보다 다채로워지지 않는다.
레지나가 3차 각성. 즉 초각성을 해내야만 막기 까다로워지지, 지금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즉. 인벤토리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 그녀의 마법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그래. 그러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답니다. 황자님!”
파티원에게 무기를 겨눈다는 것이, 세상 제일 어렵다.
최초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을 깨닫고, 쓰게 웃어버렸다.
정말, 이 녀석도 어느새인가 내 파티원이 되었구나.
***
하지만 레지나의 그 흉신악살같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녀의 간호는 실로 완벽했다.
“불편하신 부분은 없으신가요?”
“없다. 편안하구나.”
“다행이네요.”
과일을 깎아오고, 청량한 물을 준비한다. 침대의 쿠션 사이에는 늪의 마력이 들어가, 조금 더 몸을 깊게 뉘일 수 있게 배려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마력으로 햇살을 조절해 한낮임에도 저녁에 가까운 밝기로 만들어, 눈이 부담스럽지 않다.
자주 말을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준비해준다.
“음···.”
“아, 차라면 여기에 따라놨답니다. 그 외에 다른 음료들도 있답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렇다면, 과일 쥬스를···. 아니 내가 직접 만들도록 하지.”
으드득.
내가 그리 말하자마자, 두둥실 떠오른 과일들이 허공에서 으스러진다.
그리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얼음컵 안으로 투척.
“후후. 과일 음료라면 이렇게 직접 만들 수 있답니다?”
세상에나 어머나 진짜 더럽게 무섭네.
나는 파티원을 공격하고 싶지 않은데,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레지나의 저 늪의 마력이 울프람을 울프람 100% 천연 스무디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처진다.
【황실 혈통이 정신적 공격을 무효로 되돌립니다.】
【공포 상태이상이 무효화됩니다.】
“고맙구나.”
“별 말씀을요.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없다.”
“네. 알겠습니다.”
레지나는 싱긋 웃고는, 내 옆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빤히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는 눈동자를 살폈다.
맑고 투명하다. 탁기라고는 전혀 없다.
원작 기준 레지나의 광기를 판단하는 근거는 눈의 탁기였고, 그녀의 눈이 완전히 투명하다는 것은 ‘완전히 해방되어 정상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미 맛이 가서 늦어버렸거나’ 둘 중 하나다.
“음···.”
생각해보면 어느 쪽도 내가 손을 대봐야 의미가 없구나.
그냥 이 상황을 즐기자.
“어머. 과일 스무디 한 잔 더 드릴까요? 어떤 과일이든 으스러트릴 수 있답니다? 수박도 가능해요!”
“아니···. 괜찮다.”
“네. 알겠습니다.”
즐길···. 즐기···. 즐겨야···.
【황실 혈통이 정신공격을 무효로 되돌립니다.】
【공포 상태이상이 무효화됩니다.】
돌겠네. 진짜.
***
시간은 흘러, 휴업 이틀차의 오후가 찾아왔다.
태양은 머리 위를 지나 지평선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고, 이는 즉 레지나 시엘라의 ‘응원 시간’도 그 끝을 고한다는 의미.
그 사이 나와 레지나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녀가 만든 식사를 하기도 하고, 잡담이나 최근에 읽은 책.
편의점 사업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했으며, 중앙. 즉 수도 엠펠리움의 정세 이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자연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지금까지 찾아왔던 녀석들과는 다른 의미로 가장 마음이 편했다.
나는 레지나 시엘라를 불편해 했고, 원작을 진행할 때도, 다른 녀석들보다 레지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렇게 편한 시간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자문에, 자답은 쉽게 나왔다.
“레지나 너는.”
“네. 황자님.”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구나.”
그래. 그렇다.
레지나는 그저 나를 보좌하고 보필할 뿐.
지켜보고 내 안식만을 생각할 뿐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아일라마저 내가 쉬기를 바랐고 밀푀유 또한 내게 사업에 대해 상의하거나 물어보곤 했다.
허나 레지나는 다르다.
그저 지켜보고, 꼭 필요한 배려를 제외하고는 내 행보를 결코 막지 않는다.
“그야, 저는 황자님의 모든 행동을 긍정하니까요.”
“나는 신이 아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신과도 같은 분이시랍니다. 아니죠. 쿡쿡. 신보다 위대하신 분이죠. 그 위대하신 하르크 폰 로엔그린 초대 황제 폐하께서 천신장을 쓰러트리셨으니, 그 후예이신 울프람님께서는 신보다 위대하신 분이 아니겠어요?”
“······.”
순간 말을 잃었다.
레지나의 투명한 눈을 깊숙히 바라보면, 그 안에 보이는 것은 더 이상 끈적한 욕망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로 순수하고 옳곧은 감정.
즉.
완벽한 광신(狂信).
그리고 그 숭앙은 오직 나를 향하고 있다.
어째서···?
“나는 너에게 대체 무엇이지?”
“이정표랍니다.”
“이정표?”
“예에. 황자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좋은 집에서 태어나, 편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녀의 아버지 피카로 시엘라는 악당이었다.
자식들을 언제나 시험대에 들게 했으며, 가지고 있는 손패로서 활용하려 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나와 약혼해야 했으며, 집안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파혼했다.
그리고 다시 나이를 먹어, 사랑을 그려야 할 나이에 나와 약혼시키려는 움직임에 놀아날 뻔 했다.
경제적 자유는 주어지되 인격이 완전히 말살되는 삶.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브에게 밀려 제일이 될 수 없는 2등의 재능.
“하지만 황자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알려주셨죠. 세상은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재능을 넘어서는 재치가 있다. 능력은 결코 지혜를 앞서지 못한다. 그 낮은 능력으로 작년의 저를 세 번이나 꺾으셨고, 저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영단으로 초대 황제님조차 방치하셨어야 했던 마계의 문을 공략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정표입니다. 제가 잘못된 길을 들지 않게 해주시는 이정표.”
“그런가.”
“황자님은 틀린 결단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숭앙하는 저는 황자님께 의견을 내지 않습니다. 그저 걸어가시는 그 길에, 해갈을 위한 물 한잔을, 지친 다리를 위한 신발 한 켤레를, 말라가는 마음을 위한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낼 수 있다면 그게 제가 바라는 바.”
양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레지나는 세상 다시없을 다정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그것은 이적을 목도한 신자의 믿음처럼 견고했고, 다시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그리고.
“그러니···. 황자님을 가장 곁에서 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쳐 죽이는 것 또한 저희 사명.”
“······.”
그 신앙의 대상이 된 저는 진짜 더럽게 무섭거든요.
아니 어째서? 그게 그렇게 평가가 되나?
내가 뭐 대단한 거 했다고.
그 뭐야.
대단한 거 했다고 해봐야.
체력2일 때 경진대회 한 번 하고, 대륙에 철도망도 좀 깔고, 마계의 문도 몇 개 부수고, 초월종이랑 세력규합도 하고, 황자 하나하고 황녀 하나 꺾고 천사장 모가지도 하나 따보고.
······.
아니. 이건 모두가 아는 내 업적이고, 레지나로 좁혀보자.
그녀의 말마따나 인식도 좀 깨주고? 어? 피카로의 손에서 좀 구해주고?
이것 참. 하하···.
“내 죄로구나.”
“황자님은 죄가 없으시답니다.”
아니야.
이건 내 죄란다.
“내가 여기서,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라 자칭하더라도 너는 믿지 않겠지.”
“아뇨. 믿을 거랍니다. 그렇게 믿어주시길 바라신다면요.”
“······.”
즉.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한다면 ‘아 그런 컨셉 플레이시군요.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겠다는 거지?
레지나야. 그건 믿는 게 아니란다.
안 된다.
이 녀석의 광신을 막으려고 뭔가 말하고 싶어도, 이렇게 무색 투명한 눈을 한 레지나는 이미 그렇게 ‘굳어졌다.’ 제프린에서 나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풀 수 있다면 모를까 마계 팔문을 공략해야하는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다.
왜냐하면, 완전히 한 바퀴 돌아서 뒤집어졌지만 이게 레지나의 ‘제대로 된 결과’중 하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죽지 않고, 그녀 스스로 성찰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이걸 깨달음이라고 해도 되나.
많은 공략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루트는 그랬다.
언제나 스스로 대답을 내리고 해방되는 삶을 그려왔다.
그것이 파멸과 죽음이든, 행복과 미래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 그 결과가 나온 셈이다.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해답이다.
내가 더럽게 부담스럽기는 해도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틀리지 않는다고 신뢰하는 너에게 부탁하마.”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그저 이행할 뿐이랍니다.”
“아니···. 음. 알겠다. 그래. 그럼 말하겠다. 아일라, 혹은 파티원들과 다툼이 있을지언정···. 죽일 각오로 덤벼들지는 마라. 알겠나.”
“······.”
“알겠나?”
“네, 에.”
레지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에 눈이 좀 탁해지긴 했는데.
내가 잘 못 본 거겠지.
그렇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