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19)
518. PM 08:30
생각보다 이브는 훈련에 잘 따라왔다.
훈련이라고 해도 대단할 것은 없다. 내가 검을 휘두르면, 최대한 몸을 움직여 피한다.
타이밍도 엇박이고, 속도도 랜덤. 순수하게 동체시력과 순발력만을 시험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바닥을 구르는 것 외에는 그리 큰 운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훈련이라도 최선을 다해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힘들지 않은가?”
“힘들어 죽을 것···. 같거든요!”
“그렇겠지.”
하지만 힘든 소리는 그걸로 끝.
저것도 내가 물었기에 힘들다고 한 것이지, 본인이 힘들다고는 한 번도 안 한 것이다.
“노력하는구나.”
“그래야 한다면서요? 당신이 그렇게 지시했으니까, 하는 것뿐이에요.”
“내 지시를 따르는가?”
“말 했잖아요. 당신이 저를 믿는 만큼, 저도 원정에 있어서는 당신을 믿는다고···!”
“하···.”
이브 주제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훈련은 훈련이다.
자. 다시 한 번 죽을 만큼 굴러보자.
“피해라. 진심으로 찌른다.”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었어요?”
“그럼. 왜냐하면 지금부터는 날을 갈지 않았다고는 하나···.”
“금속제 무기···? 미쳤어요? 아니! 야! 진짜! 야아!”
뭐.
설마 진짜 베겠니.
눈앞에서 멈춰줄게.
진짜 딱. 눈앞에서.
***
방금 걸로 몇 번 죽었더라.
이브 폰 로엔그린은 눈앞에서 바로 멈춘 검날을 보고 몸이 얼어붙었다.
자신도 이제 한 사람 몫의 마법사다.
즉 전장에서 마법을 쏘고, 검은 깃발이라고는 하나 인간을 해해 본 기억도 있다.
즉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를 넘겨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착각이 아니었을까.
자신은 아직 병아리에 지나지 않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누군가의 보호 아래에 커왔던 것 아닐까.
깃털갈이를 겨우 해놓은 닭 주제에 한 마리의 새라고 착각한 것 아닐까.
그걸, 울프람의 검이 끔찍할 정도로 알려줬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아군이 아니라 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소보다 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착각.
칼을 앞에 두고, 눈을 감는 추태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피해 본 적이 없다.
“방금 걸로 서른여덟 번 죽었구나.”
“알, 고 있어요···.”
“계속 하겠나?”
“할 거에요···. 한 번이라도, 제대로 피할 때 까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있는데, 한 번이라도 피하겠다. 그거 좋구나. 꽤나 오만한 말이다.”
“······.”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크게 인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볼까.”
오만하기 그지 없는 말.
하지만, 전장 있어서만큼은 단 한 번의 실패도 하지 않은 패자가 내뱉은 말이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사지가 굳는다.
그럼에도 이브는 움직였다.
저 남자의 얼굴을, 수치심으로 일그러트리고 싶으니까!
자신이, 그저 깃털갈이가 끝난 병아리가 아니라, 한 마리의 새라고 보여주고 싶으니까.
“서른아홉 번 째 죽었구나.”
“아···! 진짜!”
“시끄럽다. 병아리. 삐약 거릴 시간이 있으면 제대로 움직여라.”
***
그 날 밤.
이브 폰 로엔그린이 넝마가 된 옷과 그보다 더 널널해진 정신상태로 기숙사에 가서 잠든 시각.
다행히 아일라가 잠들기 전에 물을 데워줬고, 이브의 마력을 등록해줬기 때문에 어제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편의점.
눈을 감고 다시 몽경으로 들어간다.
“울프람. 왔어요?”
“음. 왔다.”
“오늘은 뭐 할 건가요?”
이브···. 아니 이비가 슬쩍 다가와 눈을 빛낸다.
뭐 할 건가요. 라니···. 원래라면 가이드가 안내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가이드의 본분은 어떻게 했나. 뭐든 안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부분의 보스는 다 때려잡았는걸요? 이제 남은 건 셋 정도? 그건 언제든지 공략하러 갈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세계에서 울프람이 뭐 하는지가, 가이드로서 더 궁금하답니다.”
“무기를 연마할 것이다. 거울의 황궁으로 가야겠구나.”
“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이별의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이비는 살짝 처연한 미소로 나를 응대했다.
그래. 이곳에 남은 보스는 셋.
저걸 전부 정리하면 이 몽경성역의 이벤트도 끝이다.
손에 든 아스칼론을 잠깐 바라보다, 내던지고는 대장장이 망치를 쥐었다.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뽑아먹는다.
“이비.”
“네?”
이브와 똑 닮은 그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다.
최근에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저 얼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정들겠다 진짜.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나가고 싶나?”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곳의 신령. 즉 순리에 따라 이 세계를 지켜야하는 당번이니까요. 이 곳 밖에서의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답니다.”
“그럼 생각해보도록. 기한은···. 내가 이곳의 모든 대적(大敵)을 때려눕힐 때 까지다.”
“아···. 네. 알겠어요.”
이비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을 밖으로 꺼낸다.
게임에서는 불가능 했던 일.
하지만.
설정집을 생각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설정과 설정을 조합해. 해 본 적 없는 결말로 이끈다.”
그건···.
고인물로서 최고의 쾌감이잖아?
음.
정했다.
저 녀석이 뭐라 대답하든 현실로 끌고 나가버려야지.
내가 정했으니 싫어도 어쩔 수가 없어요.
***
이브가 녹초가 되고, 이비가 있는 곳에서 대장기술을 연마한다.
가끔 밀푀유가 따듯한 차와 보고서를 내오거나, 네프티가 ‘저도 같이 가면 안되나요! 저는 이래봬도 선배님의 로열 가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라는 건방진 말을 하면 대련으로 혼내준다.
루디카가 쓴웃음을 짓고, 레지나가 찾아와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아일라가, 무언가 엄청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으로 왔다가 간다.
“이번만. 이번 단 한번만 울프람이 저를 내버려두고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걸 용서해줄게요.”
“······.”
“다음부터는, 죽어도 함께 죽을 거니까요. 알았죠?”
“음···.”
“당신이 파티 리더라면, 우리는 파티원. 당신이 우리를 아끼는 만큼, 저희도 당신이 소중해요.”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정신 공격에는 완벽한 면역일텐데도, 그 박력에는 저항할 수 없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울프람. 울프람이 준비해달라고 한 광석이 전부 모였어요. 지금부터 제작에 들어 갈 건가요?”
“그래야겠지.”
하나 둘.
원정을 위한 재료들이 모이고 준비가 갖춰진다.
보름달까지는 앞으로 이틀.
기대와 우려 속.
또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대장장이 스킬이 진화합니다!】
【무기 제작(전설)이 무기 제작(신화)으로 변화합니다.】
【무기 제작(신화)】
【1T】
【재료와 제작 비법서만 있다면 이론상 모든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신화의 영역입니다.】
【사용자의 재주가 ‘최대 20(인외)’에 도달했기에 1T 장비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1T 장비 제작 비법서가 없습니다.】
단 하루 남은 시점에 또 하나의 종점에 도달했다.
***
무기 제작(Blacksmith)은 신화의 스킬에 도달한다고 해서 재료를 안 먹거나, 무한 제조가 가능한 스킬은 아니다.
당연히 이건 게임사의 밸런스 패치의 일환으로, 10린짜리 철광석을 대량 사다가 7T 철검을 만들어서 되팔면 모든 린이 쓰레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1T 장비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비 제작 비법서와 그에 맞는 광석이 있어야만 신화급 장비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스킬을 신화까지 찍었을 때의 이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으, 으극···. 아직이에요? 아직도 멀었어요?”
“너무 보채지 말도록.”
“덥다고요···.”
“살도 빠지고 땀도 흐르니 좋지 않은가.”
이브는 나를 팩 쏘아봤지만, 그렇다 해도 대장장이 망치를 쥐고 있는 내 작업을 방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래.
무기 제작이 1T가 되면 가장 좋은 점은, 마법 무구를 스테이터스 소모 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법 무구는, 재료 속 포함된 마력에 따라 그 속성이 바뀐다.
번거롭게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브 폰 로엔그린이 내 대장장이 망치에 마력을 잔뜩 밀어넣는다.
그걸로 무기를 만든다.
그러면 높은 확률로
【빛의 장검 제작을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빛 속성이 깃든 마법 무구가 나온다.
“와···. 된 거죠? 이거 된 거 맞죠?”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빛나잖아요!”
“그렇군. 빛나는구나.”
“그러니까 성공 맞죠? 이걸로 그 안에서 쓸 무기는 전부 만든 거 맞죠?”
【빛의 장검】
【8T】
【빛납니다.】
아니.
안타깝게도 아니란다.
무구의 능력을 설명해주자 이브의 눈이 퀭해지고 시꺼멓게 죽어간다.
생각해보면 벌써 스무 자루째 만들고 있다.
이 녀석은 내일 원정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이 뒤부터는 나 혼자서 할까.
“힘들다면 나 혼자서 제작해도 된다. 물러서도록.”
“시끄럽고, 대장장이 망치나 들어요.”
“뭐라.”
“당신 마력이 몇이나 된다고···. 됐으니까 망치나 들어요!”
그리 말하면서 쏘아보는 이브의 얼굴이 묘하게 붉다.
“이브.”
“뭐에요. 또!”
“지금 혹시, 배려해 준 것인가? 나 혼자 만들면 지칠까봐.”
“아 됐어. 됐어. 안 해. 안해요. 때려 쳐요. 아 진짜!”
거 참.
아니면 아니라고 하지, 그렇게 새빨개져서 부정할 건 없지 않나.
잠시 이브와 투닥이다 저녁이 지나 아일라가 슬슬 졸려올 무렵.
【찬란한 성광의 대검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2T】
“또 빛나는 대검이에요···? 다음 무구를 어서···.”
“아니. 아니다.”
“그럼요···?”
“됐다. 이거면 됐구나.”
“아···.”
이브가 주저앉고, 나도 쓴 웃음을 지었다.
“고생했다. 이브.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네, 네? 뭐에요. 또 뭘로 놀려먹으려고 그렇게 장대하게 칭찬해요?”
“아니···. 이것 참. 칭찬을 해도 불만이 많다니.”
“당신이 항상 평범하게 칭찬하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죠!”
“그런가. 그렇구나.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찬란한 성광의 대검】
【2T】
【빛의 학생회장이 신뢰하는 이를 위해 마력을 쏟아 부었고, 이 세상에 다시없을 명인이 그녀의 안전을 위해 만든 단 한 자루의 명검입니다. 검신에 흐르는 빛의 마력은 두 사람의 신뢰를 나타내는 일품입니다.】
【파티원 ‘이브 폰 로엔그린’과의 신뢰도가 높을수록 검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검의 위력은 (최상급)입니다.】
【빛은 마를 멸하고 정의를 세웁니다(魔滅立正). 모든 ‘부정한 속성을 가진 것’들에게 추가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주변 모든 삿된 것들의 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하며 이 방어진은 3분간 유지됩니다.】
【이 무기는 본디 ‘귀속 장비’ 취급이나 두 개의 마력과 하나의 속성이 융합되어 소유자를 ‘2인’으로 판정합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이브 폰 로엔그린의 전용 장비입니다.】
【한 파티 내에 두 사람이 속해 있을 경우, 무기의 거리 제한 없이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3분입니다.】
“어떻게 칭찬 안 할 수 있겠나.”
“뭐라고 했어요?”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씻고 자는 게 어떤가.”
“지, 지금 저한테 땀냄새 난다고 한 거예요? 당신이?! 저한테?!”
“음.”
아니. 그것보다는···. 그냥 고생했다는 의미로.
아니. 아니지.
여기서는 그런 대답을 하는 게 아니다.
저 녀석도 바라지 않고, 나도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 했다. 가서 씻고 자도록.”
“으, 응극···. 죽일 거야. 이 남자를 죽여서 그 피로 이 갈증을 씻겠어요···.”
“기회 되면 해 보도록. 내 공격을 한 번도 피하지 못해놓고, 그게 할 말인가?”
“죽어···. 죽일 거야···.”
“됐고, 내일은 진짜 결전의 날이다. 가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이브 폰 로엔그린. 파티 리더로서의 명령이다. 원정에 관해 내 명령은 항상 따른다 하지 않았나?”
“윽···. 쯧. 알았어요.”
그리 말하고 돌아선 이브는, 편의점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내 쪽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래서, 그 무기는 정확히 어떤 효과에요?”
“그건···.”
“말 해 줄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잘도 설명해놓고 묘하게 설명이 없네요?”
듣고 싶니?
진짜?
만약 그걸 말했다가, 수치심에 뒤로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비밀이다.”
“쫌생이.”
그러지 마라.
다 너를 위한 거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