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20)
519. AM 00:00
결국 끝끝내 이브는 내 일격을 피해내지 못했다.
이 속도는 이브에게 가해질 최악의 기습을 상정한 것이다.
‘마계 3문의 보스가 가하는 치명적 일격’
최악의 상황은, 이브가 보스 앞에 떨어지고, 내가 거리가 멀어진 채로 잡몹들 앞에 떨어지는 것. 이브가 보스의 일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채로 그대로 쓰러지는 것.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막아냈다면 또 몰랐겠지만, 끝까지 이브는 그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물론 이 순간 가장 괴로운 것은 이브일 것이다.
녀석은 땅에 양 손을 짚고, 고개를 푹 숙이며 오열했다.
“으, 으으···.”
“너무 자책하지 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한 번이라도 피해서, 비웃어주고 싶었는데···. 최악이에요.”
“······.”
그런 의미를 담은 오열이었나.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피해서 비웃어 줄 수 있었다면, 이렇게나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허머나 세상에 그렇게 내게 티배깅을 하고 싶으셨다 이건가.
어림도 없다. 아암. 그렇고말고.
“네가 굼뜨고 살찌고 느린 것을 어찌하겠나. 받아들여라.”
“죽일 거야···. 죽, 죽일···거야아···. 내가 왜 이 고생을 했는데···.”
“그렇다 해도, 필사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이래저래 인지 능력과 순발력에서는 이득을 보지 않았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도록.”
“그건···. 그건 그렇지만···.”
이브는 슬쩍 자기 배를 봤다.
뭐지.
빠지지 않는 뱃살에 한탄하는 건가.
“버클도 하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고요. 이건 감사해야겠네요.”
뭐, 라고.
그 빠질리 없는 무한한 뱃살이 조금이나마 들어갔다는 이야기인가.
“앞으로 원상복귀까지 조금 남았어요. 조금 더 빼야하는데.”
“그렇군. 원상복귀는 아닌가.”
휴.
다행이다.
완전히 살이 빠지면, 내가 지금까지 강제로 섭취시킨 칼로리가 억울할 뻔 했잖아.
“그럼 슬슬 갈까.”
“아, 잠시만요. 이거···. 정말 제가 들어도 되나요?”
이브는 찬란한 성광의 대검을 양손으로 안고는 부들부들 떨며 나를 올려봤다.
나름 대검이라 이브가 양손으로 들어도 버티기 힘들긴 할 거다.
퓨어 메이지라 대검 적성은 없거든.
“그리도 들기 힘든가?”
“이 정도 무게는 버틸 수 있거든요? 문제는···. 정말 제가 이걸 들어도 되냐는 거예요.”
“당연하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안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첫 기습을 막아내느냐 못 막아내느냐로 전투의 향방이 갈린다.”
“······.”
“보통 장비로는 안 된다. 저주는 모든 마력을 관통하기 때문에 마법적 ‘방어’로는 별 의미가 없어.”
“들어가자마자 제가 광역으로 마법 난사를 하면요?”
“나쁘지 않은 방안이지만, 전투가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법은 방사형이 아니라 관통형. 즉 보스에게 일직선으로 쏘는 게 맞다. 처음에는 도구에 의지하는 게 답이다.”
“정론이라 화내기가 어렵잖아요······.”
이브는 입을 쭉 내밀었고, 녀석의 어깨에 손을 툭 올린 후 앞서 걸었다.
이윽고 제3 마계의 문 앞에 도착했다.
“밤에 들어가는 이유가 낮에는 그 곳에 보스가 나타나지 않고, 약해진 언데드들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랬지.”
“그리고 보스의 외형은···.”
“······.”
내가 입을 다물자, 이브 또한 입을 꾹 닫았다.
“놈들은 2인1조. 한 쪽은 네가 처리해라. 어렵다면 잡아두기만 해라. 할 수 있겠나.”
“누구한테 명령이에요. 당연히 할 수 있죠!”
“그래. 그러면 됐다.”
“그리고 두 번째. 놈들은 흡혈귀의 끝장난 모습이다. 어떤 모습으로 보인들 흔들리지 마라.”
그렇게 걸어 우리 둘은 마계의 문 앞에 도착했다.
언제든 열리고 닫힐 수 있게끔 포탈은 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새까만 어둠.
“어둡네요.”
“더 어두워져서, 밤에 들어가야 한다. 자정 부근이 최적이지.”
지금 시각은 오후 두 시 남짓.
다른 파티원들은 이번만큼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필티아마저도 이 근처에 없다.
그저 포털을 열고 안정시킬 뿐.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울프람. 정말이에요?”
“뭐가 말이지.”
“그 보스가···. 정말 울프람이 말했던 대로.”
“그래. 정말이다.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한 거다. 쯧. 아무리 설명해도 그 충격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그야 그렇겠네요. 그리고, 저희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긴장되나? 말이 많군.”
“하, 누가요. 제가요? 이 이브 폰 로엔그린이 긴장?”
“아니면 말고 말이다.”
“웬지 엄청 화나네.”
뭘 어쩌라는 건지.
복잡한 소녀심이다.
“앞으로 진입까지 대충 열 시간 남았네요.”
“그렇군.”
“알고 있어요? 평소의 열 시간이면, 너무 일찍 온 거라고요.”
“알고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포탈이 닫히면, 제시간이 되지 않아도 진입해야 한다.”
“그럼, 뭐 할 건데요. 이제?”
“훈련이나 연습은 네 체력 고갈이 문제가 되어 할 수 없다. 한 숨 자는것도 답이지만 그랬다간 생활 패턴이 무너지겠지. 즉. 이 경우엔.”
“이 경우엔?”
“하고 싶은 걸 알아서 해라.”
“아 그러세요. 그래서 당신은 뭘 할 건데요?”
“조금이라도 공략을 더 갈고 닦을 거다. 열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필사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그 공략집을 만든다는 거.”
“실수로 죽을 때도, 필사적으로 열심히 했으니 죽어도 괜찮다.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
내가 웃어버리자, 이브는 한숨을 내쉬고 내 옆에 앉았다.
“뭐지?”
“저한테도 보여줘요. 저도 어차피 그 안에 들어갈 거니까, 공략은 같이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음.”
그건 틀린 말이 아니네.
그렇게 한동안 이브와 함께 마계의 문 공략집을 수정해 나아갔다.
그렇게 열 시간.
무심하게 흐른 시간의 끝.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눈앞에 있는 문의 입구는 불길하게 빛난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준비는 됐나.”
“네. 됐어요.”
“아 이브.”
“뭐죠?”
“말해두지만 빛을 쓰면 몬스터들이 조금 몰릴 거다. 그 부분은 알아서 하도록.”
“흥. 그 정도로 제가 긴장할 거 같아요?”
옆에서 울리는 이브의 목소리는 결의로 가득 차 있어 듣기 좋았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세 번째 마계의 문 공략이 시작되었다.
***
마계의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든 생각은 어둡다. 단 하나 뿐이었다.
몸이 전이되는 감각 끝. 아주 잠시 하늘을 올려봤다. 보름달은 떠있다. 어둡게 빛나고 있을 뿐.
저것을 광원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은 인벤토리에서 검을 한 자루 꺼내 허공을 향해 던졌다.
빛의 장검. 그저 빛날 뿐인 검이 지금 내 위치와 주변의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
“전장 한복판. 이 지형으로 생각하면 똑같은 지형이 다섯. 앞에 구덩이 둘. 시야로 잡은 몬스터 열하나.”
빛이 밝을수록 몬스터들이 다가온다. 떨어지는 검을 낚아채 바로 퀵 크리에이트 보존고에 넣어버린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아아악!
가아아아아악!
몬스터가 나의 존재를 눈치 채고 달려든다.
아아아아아! 밴시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뒤흔든다.
나에게 가해지는 기습은 ‘밴시’. 확인.
주변에 스켈레톤 로열 나이트 일곱과 리퍼 고스트 둘. 좀비 워로드 둘. 밴시는 시야 밖에 있다. 확인.
모든 판단이 끝나자마자 바로 몸을 날렸다. 단검 하나를 꼬나쥐고 가장 물리 방어력이 낮은 좀비 워로드쪽으로 달려든다.
그어어어어! 한 놈이 주먹을 쥐어 이쪽을 향해 내지른다. 검면으로 그 주먹의 옆을 긁어 흘려낸 후. 빙글 돌려 목줄기에 꽂는다.
콰득, 소리가 나며 놈의 목뼈가 끊겼다.
좀비 워로드가 쓰러지고, 시스템창이 시끄럽다. 최초로 좀비 워로드를 잡았다고 한다.
이걸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브는 아직 좀비 워로드를 잡지 못했다.
“쯧.”
얻은 정보. 얻어야 할 정보를 종합해 이브의 위치를 파악해 나아간다.
【넘어 질 것 같으면 손을 잡아주고, 늦지 않게 도착할거라면서요?】
그래. 그렇게 말했지.
한 번 말 한 이상. 지키지 못하면 그게 무슨 쪽팔림이겠나.
다시 몸을 날린다. 언데드들의 급소는 명확하다. 목뼈. 그 곳을 기반으로 전신을 제어한다. 알기 쉽게 말하면, 목을 따면 움직일 수 없다.
【스켈레톤 로열 나이트를 최초로 처치했습니다.】
【좀비 워로드를 처치했습니다.】
【다이어 본 울프를 처치했습니다.】
【스켈레톤 퍼니셔를 처치했습니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 마다 시스템창이 시끄럽다.
최초로 처치했다느니, 몇 연속 처치했다느니, 보상이 어떻다느니.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빛의 장검을 위로 집어 던져 시야를 확인. 몰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진다.
보스까지 내달려서 약 십 분정도의 위치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떨어졌다면 이브의 방어막이 끝나기 전 이 맵에 있는 모든 스폰 위치를 전부 달려볼 수 있다.
파티 메세지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계의 문 너머에서는 파티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추론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스켈 퍼니셔와 본다울은 내가 최초가 아니다. 좀워로와 본로나 구간은 내가 최초. 그렇다면 이브의 방어막이 작동한 곳은 북동쪽 서식지.”
하나 둘 조건이 갖춰진다.
남은 시간은 삼 분.
나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
이브 폰 로엔그린이 마계의 문 안에 발을 내디뎠을때 느낀 공포감은, 단언컨데 그녀 생애의 모든 공포를 합친 것 보다 컸다.
치명적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귀신의 울음소리와 그들의 노랫소리.
귀곡가(鬼哭歌)가 폐부를 파고들고 정신을 뒤흔들기 시작했고, 그들이 내뿜는 절망과 저주에 이지(理智)는 크게 흔들려 본능적인 공포가 머리를 침윤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지난 며칠간 울프람이 시켰던 혹사와 그 이유.
‘기습’ 어떻게든 그 말을 떠올렸으며 ‘방어’ 어떻게든 그 수단을 되새겼다.
그녀가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성검에 마력을 주입. 강렬한 빛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그래. 모든 것.
그녀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려 찍히려 했던 대검을 든 해골까지 말이다.
순식간에, 주변에서 모든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빛만이 남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울프람이 넘겨준 부적은 실로 그 효용이 탁월했다.
찬란한 어쩌고라고 거창한 수식어가 붙기에, 허세는 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 검 덕분에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검집에 금실 둘러줘야지. 내가 소중하게 써야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만큼 어마어마한 빛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주변의 모든 괴물들이 순식간에 휘말려들어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브는 보았다.
“아···.”
빛 너머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시선.
하나가 아니다. 둘도 아니다.
십. 백을 넘어 천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숫자.
모두가 생기가 없지만, 그렇기에 생명을 갈구하듯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말해두지만 빛을 쓰면 몬스터들이 조금 몰릴 거다. 그 부분은 알아서 하도록.’
“조금이···. 이게 어디가 조금이에요···!!”
이브는 오열했다.
허나 이 곳에는 언데드 뿐.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목소리를 인지할 청각이 없었다.
***
달린다.
또 내달린다.
시야를 한 쪽에 던져서 몬스터가 드문 곳을 파악한다.
당연히 드문 곳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근처의 언데드는 죄다 이브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으니까.
그래. 저 빛 가득한 원형 방진 속. 오들오들 떨면서 울고 있는 멍청이에게 말이다.
“이브. 이브 폰 로엔그린! 무사한가?”
“무사하지 않아요!”
그렇군. 무사한가.
언데드의 어깨를 밟고 그 사이를 내달린다. 모두가 이브에게 관심을 가진 사이. 단 한줄기의 길만을 만든다.
질주보다는 추락. 내달린다기보다는 나가 떨어지는 것에 가까운 속도.
“이브. 손을 잡고 바로 무게를 실어 몸을 내 쪽을 향해 몸을 내던져라.”
“네, 네?!”
“시간이 없다! 이곳을 우선 이탈한다!”
그리고 그 끝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네!”
나를 향해 내민 이브의 손을 낚아채고, 그 상태로 이브도 이쪽을 믿었다.
그리고, 그 반동을 통해, 잽싸게 몸을 뒤로 뺐다.
만들었던 길의 줄기가 메워지기 전에 겨우겨우 몰려드는 언데드들 사이를 뚫고, 몬스터의 흔적이 적은 땅에 도달했다.
“다친 곳은 없나? 늦진 않은 것 같군.”
“으, 우으···. 뭐, 뭐가 알아서 해라. 에요. 제 마법이 뭐가 통한다는 거예요. 여기는 지옥이잖아요···.”
“마계니 말이다. 지옥과 크게 다른 것도 없지.”
“으. 으으···. 거짓말쟁이. 쓰레기.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사람을 여기에 밀어 넣을 수가 있어요? 죽어···. 진짜 사람도 아니야.”
이브의 오열에 가까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든다.
생각해보면, 이제야 본편 기준으로도 6막에 도착한 녀석을 12막 이후의 세 번째 던전에 처박은 것과 마찬가지.
이 정도 비난으로 끝나면 차라리 값 싼 것 아니겠나.
“미안하게 됐군.”
“······.”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다면 길을 뚫고···.”
“하지만.”
이브는 눈물을 닦고, 이쪽을 빤히 보면서 한 없이 떨리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어요.”
“······.”
“손 내미는 건 늦지 않았어요.”
그런가.
그러면 됐다.
저 눈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가 담긴 눈이다.
“그럼 갈까.”
“네. 가죠.”
이브가 내민 면죄부를 받아들고 나란히 섰다.
지금부터, 진짜 공략의 시작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