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23)
522. 리미트 브레이크
양 팔에 감각이 없다.
그도 당연하다. 안에 담긴 패턴은 하찮다고는 하나, 그 위력 하나만큼은 진짜 하르크와 비교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천무강격을 두 번이나 막은 것이다.
그러니까 팔 두개에 감각이 없지.
그 다음으로는 양 다리에도 감각이 없다.
당연하다. 그 미친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칼빵을 넣는데 어찌 다리가 홀로 편할 수 있으리오.
같은 이유로 어깨도 허리도 목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릴 뿐. 이 몸은 이미 끝장났다.
체력 10.
말이 좋아 체력 10이지 이 체력으로 이길 수 있는건 이브 폰 로엔그린 밖에 없다.
아일라? 엄두도 안 난다. 밀푀유도 그간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체력 10은 간단하게 달성했을 것이다.
약해빠진 허접 삼류 체력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몸뚱아리로 저 미친 짭르크와 일기토를 벌였으니 몸이 성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를 넘어서서 식후에 식혜 안 나오냐고 투정거리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하하···.”
온 몸이 끊어질 것 같은 더럽게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결국 웃음이 튀어 나왔다.
이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지.
그래.
이 정도의 고통으로 끝난 것에 기뻐해야 한다.
살아있다.
또 살아남았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지만, 벌써 세 번째 마계의 문을 돌파했다.
체력 10으로, 신화급 장비 없이 겨우겨우 키워낸 파티원들과 함께.
온라인 게임에서는 흔히 말하는 컷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장비. 스펙. 스킬. 레벨. 전투력등을 이야기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
나는 단 한 번도 컷을 충족해서 던전에 진입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원래 지금 스펙이라면 7막에서 허덕여야 정상인데, 그 몸뚱아리를 이끌고 12막 넘어 2문 지나 3문을 뚫은 거다.
오직 컨트롤.
그리고 고인물로서의 냉정하고 침착한 빌드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기쁘네.”
살아남은 것 자체를 기뻐하자.
“이브. 괜찮아?”
“죽었다니까요.”
“죽었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잠깐만요.”
터덜.
저 너머에서 틀림없이 죽었을 녀석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죽었다면서.
사실 마법을 한 번 쓸 수 있었던 것인가.
그런가. 드디어 나에게 끝장을 보러 오는 것인가.
비겁한 녀석. 지금까지 내 탈진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좋다. 와라.
네가 내 목줄기를 노린다면, 나 또한 너에게 일격을 가할 것이다.
발톱이 없다면 이빨로 네 목을 물어뜯어···.
“울프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뭐.”
“다시 한 번 말해봐요. 평소처럼.”
“뭘 평소처럼 말하라는 거야. 난 언제나 평소인데”
내 말에 이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또 뭐가 이상한데.
“당신.”
“어.”
“그런 말투를 썼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었지 않나요···?”
“응?”
어···.
글쎄다?
내 말투는 황실 혈통에 의해 강제 교정된 상황.
그러니까, 황실 혈통이 제대로 가동 될 때.
【황실 @통】
【%@뜨#? T】
【황실 @통 스붉띱니다. 스붉으로서 효과는 다??과 같습니다.
%@뜨#?. 땨@?보다 위%한 황실 @통으로 띤해 끼슝보다 낮은 등급의 @통을 가지고 있는 자의 모뜨을 견디지 못땁니다. ···】
아.
【주의! 스킬이 심각하게 ‘저주’에 의해 오염되었습니다.】
【상처! 양 팔과 다리에 심각한 상처가 포착됩니다.】
【흐르는 피 사이로 끔찍한 저주가 스며들었습니다.】
【수백 년 된 언데드의 원념이 피를 무력화 시키려 합니다.】
【혈통이 정상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정통된 혈통을 가졌기에 자동 복구를 시행합니다.】
【그 사이 제대로 된 황실 혈통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아.
“울프람?”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니다.”
“으음···? 원래대로 돌아왔···. 아니 돌아왔는데 좀 덜 기분 나쁜데···. 뭐지. 어째서죠···?”
“몰루···. 아니 모르겠군.”
아.
진짜!
***
황실 혈통이 맛이 감으로서, 여러가지 특성이 동시에 사라졌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고, 일단은 클리어 보상부터 정리해보자.
“피의 엘릭서. 죽음의 룬. 이건 또 뭐야···. 【금서 : 네크로노미콘】 【금서 : 블러디투스】 【반마의 이정표】 【지옥문의 열쇠】”
정말. 하나같이 다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피의 앨릭서는 말 그대로 먹는 순간 모든 체력과 상태이상을 회복시켜준다. 그 대신 이틀 정도 블러디 버서커가 된다. 피를 갈구하는 광전사.
죽음의 룬은 죽음의 정기를 모아서 집어 던지면 상대가 죽는다. 일종의 즉사효과 소모품.
금서 시리즈는, 앞쪽은 인간을 네크로멘서로 만들어주고, 뒤쪽은 흡혈귀로 만들어준다.
반마의 이정표는 반마를 완전한 마족으로 만들어주고 지옥문의 열쇠는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다.
그나마 쓸만한 거라고 하면···.
“블러디투스 이건 괜찮지.”
“들것에 실려 가는 주제에 중얼거리지 마세요.”
“······.”
이브의 퉁명스러운 말에 도무지 반박할 수 없다.
파트라슈가 끄는 수레 뒤쪽에 실려 나가는 도중이니까.
“그래서요.”
“뭐가.”
“블러디투스가 괜찮다면서요. 뭐가 괜찮은데요?”
“아. 그거. 간단하다. 이건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 있는 마도서다.”
“예? 으극···.”
이브 녀석이 놀라서 수레에서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고통을 못 이기고 드러누웠다.
원래라면 나도 황실 혈통빨로 고통을 씹었겠지만, 지금은 더럽게 아파서 누워있는 상황.
아무리 현대에서도 고통에 익숙했었다고는 하나, 지금 이건 좀 차원이 다르다.
“누워 있어라. 실려 가는 주제에.”
“으으···.”
“그대로 누운 상태로 설명을 들어. 우선 블러디투스는 말 그대로 마도서다. 금서중의 금서지. 그 효과는 책의 소유자를 흡혈귀로 만들어주는 것.”
“그래서요? 그게 소생과 어떤 연관이 있는데요?”
“시체라고 한들, 소유자라 판정이 되면, 강제로 그 심장을 물들여 생전의 모습 그대로 흡혈귀로 만들어준다.”
“그런 마법이···. 있을 수 있다고요?”
“마법이 아냐. 저주다. 시체를 되살리지만 그만큼 세상의 이치에서 어긋나지. 흡혈귀가 된다는 게 편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게 있다면···.”
“흡혈귀로 만들어서라도, 인간의 적으로 만들어 영원히 도망쳐 다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해서도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
“아뇨. 그건 없는데요. 하지만···. 처음이잖아요. 죽은 사람을 살리는 비법···.”
그건 그렇지.
하지만.
“크게 관심 가지지 마. 이걸 쓸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투 진짜 적응 안 되네······.”
“또 튀어나왔나. 음···.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지.”
“그 말투도 평소처럼 고깝지 않으니까 정말 적응 안 되거든요?!”
“······.”
나보고 어쩌라고.
근데 저게 또 공감이 간다.
아무리 이브가 저 난리를 쳐도, 놀라울 정도로 화가 나지 않는다.
로엔그린의 피는 아무래도 서로를 크게 증오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거기에 나와 이브는 사이가 더럽게 안 좋은 남매니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지금의 이브는 딱히 밉지는 않다.
이전에는 그냥 중지만 치켜들어 올릴 정도로 싫었다면, 지금은 그냥 사이가 서먹한 남매 수준.
아니.
이것도 이상하다.
나는 한 번이라도, 저 녀석을 남매라고 칭했던 적이 있던가?
“왜 그래요?”
“아냐···.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거든 말, 말이다.”
“그냥 대놓고 편하게 말하시죠. 건달 비슷한 본성을 드러내는 게 어때요?”
음.
이건 반박을 못하겠네.
황실 혈통.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마냥 이득은 또 아니구나.
***
편의점에 돌아왔을 때.
이 이른 새벽부터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
“그래. 보인다.”
“뭐가요. 또. 으극···.”
일어나려던 이브는 그대로 힘이 빠져 쓰러졌고, 그 추태를 빤히 지켜보다 시선을 저 너머로 던졌다.
“누구겠나. 이 이른 시간까지 우리를 기다리며, 근심 걱정 할 녀석은 한 녀석뿐이지.”
“필티아 언니?”
아.
그러고 보니 필티아도 있었구나.
“아니, 아일라다.”
“아아···.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죠.”
“그래. 그래야지.”
이브와 나는 동시에 동의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순식간에 접근한 아일라가, 우리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울프람! 이브! 괜찮나요? 상처가 엄청나요. 어, 어떻게 해야.”
“괜찮아. 괜찮으니까.”
“안 괜찮잖아요! 어, 어서 병원에···. 아냐. 너무 늦어. 이, 일단 어떻게 해야···.”
음.
일단도 이단도, 아일라가 조금만 조용히 해 주면 괜찮을 거 같다.
가뜩이나 상처가 심해서 욱씬거리는데, 옆에서 그렇게 소리치면 더 아프거든.
“아일라. 일단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할 이야기가 조금 있어.”
“네? 네···. 네. 그러죠. 으, 음?”
“왜 그래?”
“울프람···. 맞죠?”
“맞다만.”
“왜 그래···? 있어? 울프람이 그런 말투를 쓰던가요? 거기에 평소 울프람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압박감도 사라져서···. 으, 으음? 마력 패턴은 동일한데, 제가 울프람의 마력을 잘못 볼 리가 없는데···?”
아일라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살짝 눌렀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렇게 하면 판별이 되니?
“아일라 트라이스타. 그 부분까지 전부 포함해. 울프람이 설명해 줄 거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울프람은 다쳤어요. 그리고 저도 다쳤거든요.”
“아···. 네. 그러죠. 이브. 좋은 제안 고마워요.”
“저 자신을 위해서 한 제안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이브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드러누웠다.
그래.
설명할 건 전부 설명해야지.
***
아일라에게 원정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났는지. 그리고 지금 상황이 대체 왜 펼쳐진 건지에 대한 일장연설이 끝났다.
편의점이라는 휴식에 최적화된 공간. 거기에 태초의 루비 덕분에 고통이 가라앉고 부상이 빠른 속도로 낫기 시작했고, 이브는 아예 나가 떨어져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그렇군요. 황실 혈통에 의해 평소처럼 위엄 있는 말투와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거죠?”
“태초의 루비를 상시 가지고 있어도 적어도 2주는 걸릴 거 같네. 아니, 같군.”
“으흠. 확실히 평소의 울프람이라면 ‘같네’ 같은 말은 안 쓰겠죠. 그렇구나. 그렇군요. 그렇네.”
마지막 말을 하며 아일라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녀석 하고는.
평소에는 ‘그렇네’ 같은 말은 안 하는 주제에, 나에게 맞춰서 놀아주고있다.
아일라는 평소 이상으로 눈을 빛내며, 내 근처에 바싹 붙었다.
“울프람. 울프람.”
“왜 그러지.”
“왜 그러지. 가 아니라요. 그러면 지금 울프람은 평소와 다른 말투를 쓸 수 있는 거죠?”
“그렇다만.”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데 불편함은 없나요?”
“없다.”
“그러면, 그 말투로 대화를 해보죠!”
“뭐?”
“뭔가, 엄청 새로울 거 같아요. 괜찮죠? 할 수 있죠? 해주실 거죠?”
“어렵지는 않다···만. 너는 괜찮나? 내가 황손이 아니라 평범한···. 그런 말투를 써도 말이다.”
“어느 쪽이든, 제가 의지하는 울프람이잖아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는 반짝이며 빛나고, 평소 보던 아일라와 단 하나의 차이점도 느끼지 못했다.
정말, 이 녀석은 내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알았다. 아니. 알겠어.”
“와, 와아···. 다시 한 번. 좀 더 평범하게···!”
“평범하다고는 해도, 평소와 다른 점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와, 와아···. 와! 새롭다. 새로워요. 울프람! 좀 더 평범하게!”
“왜 숨이 거칠지?”
“어서요! 하아···. 좋아. 잘은 모르겠지만, 좋네요. 이거.”
“좋다고?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게?”
“네, 네에.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거 같아서···”
아일라의 숨결이 거칠고 눈이 어둡게 빛난다.
“앞으로는 최대한 ‘평소 말투’로 이야기 하도록 하지.”
“어째서요?! 왜요?!”
“그야 내 마음이다.”
“울프람. 조금만 더요. 평소의 울프람이 아니라 신선한 감각이라 즐거웠단 말이에요.”
“안 된다.”
“울프라암”
그렇게 한참 아일라가 내게 부탁했지만, 강하게 나서도 ‘신선해서 좋아요!’ 라는 말로 되받아쳤다.
혹시.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인데
황실 혈통 스킬이 가져다주는 은은한 압박감은 아일라를 막아낼 수 있는 브레이크였던 것 아닐까.
그리 생각하니 몹시 황실 혈통 스킬이 그리워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