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24)
523. 짧은 꿈이었습니다
혈통 버그.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지옥에서 돌아온 풍둔지옥주둥아리술은 이제 핀란드인들도 ‘자일리톨 생산지는 한국입니다,’ 라고 할 정도의 청량감 가득 찬 이영진의 주둥아리가 되었으니, 이 말인 즉슨 이제 그 거지같은 컨셉을 잡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물론.
나는 주변 모두가 놀랄 것을 염려, 파티원을 신경쓰는 파티 리더의 소임을 다해 평소처럼 말하려고 했으나···.
“울프람은 뭘 하던 울프람이잖아요.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요.”
“그런가. 으음. 그러도록 할까.”
“네. 저는 괜찮답니다.”
아일라의 만류로 인하여, 아무래도 편하게 말해도 상관없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아일라. 궁금한게 있는데.”
“뭐에요. 울프람?”
“이 황실 혈통이 고장나고 나서···. 정확하게 나에게 느껴지는 차이점이 뭐지?”
“아···. 그러고 보니 울프람 본인은 잘 모르겠군요. 잠시만요.”
아일라는 검지만 펼쳐 자신의 턱에 가져다대고는 잠시 고민하고 말했다.
“우선, 평소처럼 울프람의 묘한 압박이 사라졌어요!”
“묘한 압박?”
“네. 그런 게 있거든요. 울프람 옆에 가면 ‘이 급 안 맞는 혈통이 대체 무슨 깜냥으로 내 곁에 다가오느냐!’ 라는 그런 분위기가 풍겨요.”
죄송합니다.
백 퍼센트 황실혈통 잘못입니다.
“그렇구나. 지금까지 다가오느라 힘들었겠군.”
“아뇨?”
“아닌가?”
“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가면 ‘흥. 너만큼은 다가오는 걸 허락해주겠다. 다만 예의 있게 굴도록’ 같은 식으로 변했거든요.”
대체 누구야 그 홀딱 빠져버릴 것 만 같은 배드 가이는···.
머리가 아파온다. 황실 혈통은 감정을 제어해줬지만, 지금은 그런 어시스트가 없으니 완전 이 세계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다.
“그렇군. 그것 외에 다른 점은 없나?”
“네. 그 외에는 없네요. 제가 봤던 울프람이고, 제가 봐 왔던 울프람이예요.”
“음···.”
아일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그것뿐이겠지.
이 녀석은 이래봬도 지금까지 나만 쭉 봐온 녀석이니까.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울프람.”
“무슨 소리야?”
“다른 아이들도 지금의 울프람을 보면서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
내가 걱정하던 부분을 완벽하게 짚어낸 그 실력.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이브나 아일라가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걱정되긴 했다만···.
아일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문제없겠지.
“그럼 이제 큰 원정도 끝났으니, 뭔가 새로운 일이 있나요?”
“새로운 일을 하기보단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을 관리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군요. 동행할까요?”
“아니. 괜찮다. 혼자 둘러보고 싶구나.”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은 여전히 지끈거리지만, 영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 해야지.
힘들어도 일 해야지.
***
제프린 중앙구를 걸어 상점가를 향한다.
오늘 납품된 물품의 재고 체크와 소비자 동향 체크.
대부분은 밀푀유가 알아서 해주지만, 오늘만큼은 직접 움직이고 싶었다.
아무리 편의점이 잘 나가고, 밀푀유를 믿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에서 감이 죽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그렇게 매점에 갔을 때.
“어. 황자님 오셨습니까!”
“음. 장사는 잘 되고 있나?”
“물론입니다! 아, 거기 서 계시지 말고 안으로 드시죠. 차라도 한 잔 준비하겠습니다.”
“됐다. 다른 점포도 들러봐야 하니 말이다. 차는 나중에 들도록 하지.”
“예!”
“잠깐 장부 좀 볼 수 있겠나.”
“아···. 저, 저희는 절대로 해먹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니 그게 아니라···. 원래 이런 보고는 전부 밀푀유가 취합해서 올려주는데, 오늘은 그냥 판매 동향을 보고 싶구나. 부탁한다.”
“부, 부탁이라는 말씀까지 하실 것 없습니다! 당장,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근육질의 사장은 바로 매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매점 밖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계신가요? 도시락을 사러 왔는데요.”
기사학부 교복을 입은 여학생 셋이 모여 이쪽을 슬쩍 바라본다.
“미안하군. 지금 점장은 용무가 있어서 말이다. 도시락을 사러 왔다고 했나?”
“화, 황자님?!”
“아, 안녕하세요. 울프람 황자님!”
“와···. 나 황자님 처음 만나···. 아, 이렇게 말거는 것도 무례인가요···?”
슬쩍 말을 걸자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넥타이 색을 보니, 1학년인가. 퇴학러쉬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새싹들이다.
“그리 놀라거나 격식 차릴 것 없다. 지금은 로엔그린의 황자가 아니라, 편의점 점장 울프람이니 말이다.”
“네, 넵!”
“와아. 생각보다 친근해···. 예상외!”
“응···. 처음으로 대화 나눈 황손 분. 아, 안녕하세요.”
학생들 셋은 도시락은 어떻게 됐는지 바로 내 곁으로 모여들었고, 이내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도시락을 먹는다고 들었다만, 품평을 듣고 싶다. 부탁해도 될까?”
“아···! 그러고 보니 이거 황자님께서 공급한다고 하셨죠! 으음. 품평. 품평이라···. 역시 그렇지?”
“응. 역시 그거지.”
“응 그거···.”
그거?
그게 뭔데.
“맛 합격! 엄청 맛있어요!”
“외형도 합격! 깔끔하고, 자주 손이 가는 맛!”
“하지만···. 양. 그리고 내용물이 좀···.”
“내용물? 내용물이 어떻지?”
“고기가 부족해요.”
“고기가 두 배로 들어 있으면 좋겠어요.”
“고기가 두 배 들어간 대형 도시락은···. 없나요?”
아니.
얘들아.
“매일 도시락에 고기류가 하나씩은 반드시 포함되게 만들고 있다만···?”
“그래도 부족해요! 저희 기사학부는 엄청 움직이니까요!”
“고기! 더 고기를 주세요!”
“고기···.”
아. 그렇군.
어느 세상이나 똑같은 것인가.
“알겠다. 우선 고기를 더 늘리고···. 양도 늘어나는 게 좋나?”
“네! 아 이건 저희 학부 강의표인데요. 보시면 이렇게 목요일 오전에 검술 수업이 있잖아요?”
“금요일 오전에도 기초단련 있지!”
“화요일 오전 무기술 실전 훈련···. 싫어.”
“그래 있구나. 그래서?”
“이 때 오전에 힘을 엄청 쓰니까, 점심시간이 엄청 기다려지거든요!”
“응응! 엄청 배고파서 도시락 하나로는 부족하지!”
“화. 목. 금.”
“알겠다. 화 목 금에는 고기반찬으로 양을 좀 더 늘려서 공급하도록 하마.”
“와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황자님!”
“어쩌지···. 사랑. 사랑이 피어날 거 같은 예감. 나 첫사랑이야···.”
“첫사랑은 숯불구이 향기···? 맛있어보여.”
그런 사랑은 받아도 곤란하다.
“음. 그 외에 문제점은 없나? 청결함이나, 이런 점은 개선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도 된다.”
“없어요!”
“맛있어요!”
“최고에요···.”
“그런가. 고맙구나. 앞으로도 편의점 물건을 더더욱 사랑해주면···. 뭐지. 그 종이는?”
“저기···. 황자님.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게,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이 아닐까요?”
“사인···. 해주세요.”
그리 말하며, 여학생 셋은 나란히 노트를 꺼내 들었다.
저기다 사인하는 건 좀 그렇고, 가볍게 손을 휘저어 허공에서 두꺼운 종이 세장과 펜 하나를 꺼냈다. 학생들이 와아, 하고 놀란다.
“어디서 꺼내신 거예요?!”
“선배님은 마법학부시잖아.”
“이것도 마법···.”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튼.
하나하나 격하게 반응하는 애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후. 사인을 건넸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 금요일이구나, 도시락 세 개로는 모자라겠지. 이것도 가져가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한명 한명 나눠주니, 숫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손을 꽉 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청난 사건!”
“이걸로 저녁까지 끄떡 없음···.”
녀석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돌아갔다.
마지막에 악수까지 한 번씩 해주고, 손을 탁 탁 터니 뒤에서 점장의 쓴웃음이 들려왔다.
“이것 참. 엄청난 인기시군요. 아. 여기 서류입니다. 황자님.”
“보고 있었나. 저 아이들은 단골인가?”
“네. 평소에도 도시락을 사가는 아이들인데, 오늘은 한창 떠들썩하네요. 그냥 말 없이 사가는 애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가.”
그것 참 기쁜 일이네.
생각해보면, 아일라도 황실 혈통이 버그난 이후 좀 더 다가오기 쉬워졌다고 했지.
아일라 정도 되는 친밀도를 가진 녀석도 알고 지내고 나서야 지릿거림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니, 평소에는 얼마나 내게 다가오기 어려웠겠나.
그렇게 치면, 황실 혈통이 맛이 가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 황자님! 안녕하세요!”
“코튼인가. 좋은 아침이구나.”
“네! 좋은 아침이네요!”
나를 본 코튼이 고기 주제가 아님에도 ‘말을 떨지 않고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황자님! 이후에 시간 있으세요? 차라도 한 잔 어떠세요?”
“나중에 꼭 방문하마. 지금은 조금 바쁘구나.”
“아! 황자님! 좋은 아침입니다!”
“음. 좋은 아침이다.”
평소 얼굴만 알던 애들이 다과회에 초청하거나, 아침 인사를 하러 온다.
그런가.
지금까지 내가 친구가 없던 것은 다 황실 혈통 때문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내가 어떤 편의점 사장을 목표했는가.
민폐 끼칠까봐 싶어 동네 일진도 담배 뚫으러 안 오는 사장 형의 뒤를 쫓아.
누구나 와서 웃으며 물건 사고, 잡담이나 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편의점 사장을 목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분위기야 말로 내가 바라는 편의점 점장의 이상향.
눈물이 나고 주먹이 꽉 쥐어진다.
황실 혈통만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마법학부까지 한 바퀴 돌고, 다시 편의점으로 가려고 하는 그 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라···. 황자님?”
“음? 그래 좋은 아침···.”
“울프람 황자님. 맞으시죠?”
“맞다. 그런데 누구···. 레지나?”
“네, 네에···. 레지나 시엘라입니다.”
레지나는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는 눈을 꾹 감았다.
마력을 끌어올려 나와 동조. 이후 늪으로 내 마력을 감쌌다.
“뭐 하는 짓이지. 레지나.”
“아, 아뇨. 황자님의 마력 패턴이 맞으신데···. 정말 울프람 황자님이시죠?”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지. 나는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맞아.”
“맞아? 맞아. 라고 하셨나요? 맞다. 가 아니라 맞아? 그게 지금 황자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목소리를 내시어서 내뱉은 말이 맞나요? 맞아? 맞다가 아니라 맞아?”
“······.”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레지나?”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뭐가 말이지?”
“아닙니다. 이게 아니에요. 제가 알던 황자님은 이렇지 않습니다. 서, 설마 제3의 문에서 나쁜 독에 걸리셨나요? 아니면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서 나쁜 기운을 주입 받으셨나요? 그 여자가 만든 요리를 드셔서 혹시 신체가 그 여자에게 물든 건 아닐까요? 당장 배를 갈라서 그 요리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요? 황자님께서 더욱 그 여자에게 물들기 전에···.”
“진정해라. 대체 뭐가···.”
“평소 언제나 저를 짓이기고 찍어 누르면서 언제나 제 목을 그 손으로 졸라주실 것 같은 기세는 어디 가셨는지 제가 묻고 있습니다!”
“······.”
아니.
그런 기세였어···?
진짜?
“내 황자님은 이렇지 않아. 이럴 수는 없어요. 이럴 수는···.”
끝끄내.
그 자리에 앉아 울기 시작하는 레지나.
“화, 황자님께서 레지나 시엘라 양을 울렸어.”
“오, 오늘 다가가기 쉽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황자님은 황자님인가···?”
“세상에, 레지나 양···. 진심으로 서럽게 오열하고 있어···.”
“치정이야···. 분명 치정극일 거야.”
그리고 동시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나에 대한 재평가의 재평가. 지옥까지 가고 있는 울프람 주식.
“흐앙···.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단 말이에요······. 이건 안 된다구요···.”
그리고 오열하고 있는 레지나.
···.
······.
하하. 개판이네.
다 때려치우고 황실혈통 돌아왔으면 좋겠다. 진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