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27)
526. 완전무결
지금 나의 제작계열 숙련도는 두 개가 종결. 방어구와 무기가 준종결로 생각보다 괜찮은 레벨까지 올렸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실용 지향적이 아닌가 싶다.
D/Z SAGA는 보스방을 클리어 하고나면 그 곳을 스크린샷 존 삼아 티배깅을 하면서 스샷을찍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졌으며, 나 또한 플탐 1,500시간의 따끈따끈한 뉴비 시절에는 파티원들의 스크린샷을 찍으며 놀았거늘, 어찌 이렇게 삭막한 제작만 하게 되었느냐. 이 말이다.
보아라.
도시락을 수 만개 만들고, 원정을 가는 놈들을 위해 롱소드를 찍어내고, 방어구도 사이즈 맞게 뽑아내는 그 어디에 낭만과 미학이 있단 말인가.
전부 나 잘 되자고 하는 짓 아니냐 이 말이야.
“그게 뭐가 문제인가. 주인?”
“문제지.”
파트라슈의 물음에 멍청한 놈을 보듯 한 번 바라봐주고 생각을 정리했다.
잘 생각해보면.
프로 게이머 지망이 아닌 이상.
자기 잘 되길 바라며 게임하는 놈은 없다!
특히 나처럼 하루 종일 D/Z SAGA만 잡고 있던 암흑지옥겜창이 어찌하여 스스로의 영달을 바라며 게임을 했겠는가.
요약하자면.
“쓸모없는 것을 만들고 싶군.”
“······.”
그래.
쓸모없는 것을 만들고 싶다.
뭔가 엄청 쓸모 없을 거 같은 물건들을 만들 때. 인벤에 그런 쓰레기가 들어와도 하핫 이런 거 어따써 하고 코웃음 칠 수 있지만, 십 년 후쯤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그런 거 말이야.
“그렇군. 즉 주인은 지금 시간이 남아 돈다는 이야기인가.”
“묵직한 진실이 가슴에 내려와 꽂히는구나. 허나 정답이다.”
“거 참. 쓸데없는 짓을 그렇게 진심으로 하려 하다니···. 주인 너라는 인간은.”
“인간은?”
“언제나 무척 마음에 드는군. 그런 재밌는 놀이에 내가 빠질 수 없지. 자 당장 하자.”
좋은 대답이다. 파트라슈.
내가 믿고 신뢰하는 나의종자여.
자.
생산지옥의 끝.
잉여뻘생산의 길을 함께 걸어보자꾸나.
***
【보존의 비약을 완성했습니다.】
【선선선(善先腺)의 선의(仙衣)를 완성했습니다.】
【지옥혈사의 대검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하급여신의 화관장식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음···.”
“으음···.”
나와 파트라슈는 제작을 통해 나온 물건들을 보며 신음성을 흘렸다.
“주인. 이것들은 전부 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도 쓰던 일품 같은데 말이다.”
“그래. 300년 전에도 쓸만한 일품들이지.”
보존의 비약은 장비가 마족의 마기에 견디게 해주는 일품이고, 선선선의 선의는 하루 한 번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날개옷이다.
지옥혈사의 대검은 천족에게 추가데미지가 있고 화관장식은 회복뻥이 크게 붙는다.
“일괄 폐기 해야겠군.”
“진심인가.”
“폐기 쳐서 재료로 환원 받는 게 차라리 낫다. 쯧. 어쩌다 이런 것들이 걸려서는.”
보존의 비약은 보존해주는 대신 마력을 잡아먹고, 선선선의 선의는 하루 한 번 선행을 해야 하며, 지옥혈사의 대검은 저주에 침식되고, 화관장식은 축복에 오염된다.
“하나같이 다 쓰레기들이군.”
“음. 그러니 폐기다.”
【제작 아이템을 전량 폐기합니다.】
【재료를 일부분 돌려받습니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를 만든다는 첫 목표에 근접했지만, 내가 바란 것은 이런 게 아니다.
“【랜덤 제작】”
랜덤 제작.
이건 재료를 넣으면 재밌는 게 나오는 제작 스킬이다.
모든 제작 스킬을 일정이상 올리다보면 알아서 습득하는 스킬인데, 효과는 뭐. 내가 배우지 않은 제작 스킬 결과물도 테이블에 올려서 랜덤으로 돌리는 스킬.
“예를 들어 철광석 다섯 개와 옷감을 넣고 돌리면”
【거칠거칠한 때밀이 수건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게 완성된다는 말이지.
“으음. 이건 쓸모 있는 물건 아닌가.”
“쓸모 있지. 그래서 실패다.”
하지만,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 같으니 일단 짱박아두자.
그나저나 정말···. 성공에 가까운 물건들만 나오네.
내 제작 스킬 레벨이 더럽게 높아서 그렇다.
원래라면 【아이스크림에 물든 나무막대기】 이런 거 나온다. 효과? 【입에 물면 희미한 단맛이 느껴진다】라고 적혀있다. 진짜다. 그게 끝이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거, 완전히 성공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쑤셔 박고 만들어버리겠어.
금광석 철광석에 루비를 넣고, 철주괴에 다이어베어의 힘줄을 넣고···.
이 D/Z SAGA의 재료들은 수 만 종.
나도 해본 적 없는 재료들의 조합 폭격이다.
그리고.
【정의의 저울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뭐지. 또 쓸모 있는 물건인가.”
“음. 그렇지. 그렇지만···.”
이건, 쓸모가 있지만 무척이나 재밌는 물건이란다.
***
다음 날.
결국 어제의 쓰레기 아이템 만들기 놀이는 대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 하여 건진 게 없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나는 잽싸게 저울을 들고 학생회실로 한 달음에 달려가 이브와 마주했다.
“이브 폰 로엔그린.”
“뭐에요?”
태평하게 의자 위에 앉아서 등받이에 등을 기대, 사탕을 하나 물고 봄햇살을 받는 이브.
“일도 안 하고 팔자가 좋구나.”
“하.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가지고 있는 눈이 장식이라면 아예 감고 다니지 그래요?”
“음?”
이브는 테이블 위의 서류를 가리켰고 확실히. 그 서류는 평소와 달랐다.
서류 위에 빛이 내달린다. 빛으로 그려진 글씨들이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잉크들이 빛을 향해 흘러내리고 빛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대로 종이에 착색되어 글씨가 된다.
이윽고 그 글씨들은 하나 둘 모여서 문장으로 완성된다.
미친.
그러니까 지금 빛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는 거잖아?
진짜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하고, 그 집중력은 브라이트 레인을 사용하는 것과 필적한다.
그런데 그걸, 그냥 문장 쓰는데 쓰고 있다고?
“너···. 언제 이런 기술을 익힌 거지.”
“흥. 저도 성장한다고요. 이제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죠.”
이브는 다시 눈을 감고 마력 운용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뻔히 보인다.
“그렇게나 움직이기 싫은 거냐. 펜을 놀리는 것조차 귀찮아서···. 마력으로 쓴다고?”
“윽. 누, 누가요?! 제가? 이 이브 폰 로엔그린이? 책상 앞에 앉아서 허리를 굽히고 글자를 쓰는게 귀찮아서 마력으로 글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하, 저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고요···. 진짜 반은 마력 연습이었다구요···.”
그럼 남은 반은 진짜 움직이기 싫어서 그런 거였군.
그러니까, 진짜로 1차 각성기급 집중력을 움직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쓰고 계셨다. 이 말인가?
“이브. 너에게 차갑고도 냉엄한 현실을 알려 줄 때가 온 듯하구나.”
“예?”
“자. 이걸 봐라.”
그리 말하며, 나는 이브 앞에 판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뭐에요?”
“정의의 저울이다.”
“뭐에요. 부정한 것을 올려놓으면 정죄하겠소! 하면서 태우기라도해요?”
“그런 재미있는 기능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구두를 벗고 판 위에 올라섰다.
“인간. 울프람 폰 로엔그린. 19세.”
그렇게 말하자 정의의 저울에서 소리가 울렸다.
【인간. 울프람 폰 로엔그린. 19세. 정의합니다.】
【키 175. 몸무게 59. 저체중입니다. 다만 그 외에는 건강합니다.】
【상세 정보를 확인합니다.】
【이대로 성장시 키 183. 몸무게 72.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근력과 체력이 최근 부쩍 성장했습니다. 영양 공급도 충분합니다.】
“이, 이건 대체?”
“다시 설명하지. 이건 정의로운 저울이 아니라, 정의하는 저울이다.”
자신의 종족. 나이. 이름을 입력하면 그 신체정보를 저장하고, 마력을 분석해 최근 성장동선을 파악.
지금의 건강상태를 점검해주고 향후를 예측해주는 장비.
육성루트를 전부 다 짠 나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재미있는 장비임에는 틀림 없다.
“자. 이브 폰 로엔그린.”
“그, 그러니까. 그걸 왜 저한테 내밀어요···?”
“재 보는 게 어떤가?”
“시, 싫어요. 제 체중을 적나라한 숫자로 드러내고, 그걸 심지어 남에게 보이라는 이야기에요?!”
그래. 그래.
개인 정보는 중요하지.
“그렇다면 나는 이걸 그냥 놓고 가마.”
“예?”
“네가 재거나 재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으마. 그저 내일 반납하면 된다.”
“그냥 가져가시죠!”
“아니. 놓고가겠다. 그럼 가보도록 하마.”
“가져가라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학생회실을 나왔다.
그리고 건물을 빠져나온 그 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브의 비명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 그럼.
체중에 신경쓰는 녀석 앞에 체중계를 놓고 왔는데, 어떻게 안 재보고 버티겠어?
***
다음날 아침.
이브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녀석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울프람. 안녕하세요?”
“아일라인가. 아침부터 드문 일이구나.”
“예에. 울프람에게 서명 받을게 있어서 왔답니다.”
“서명?”
“이거에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가 내민 문서의 최상단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레지나 시엘라 무죄 석방 동의서】
“뭐지 이건.”
“레지나가 얼마 전 대로에서 울프람에게 시비걸고 폭주하고 큰소리쳤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그게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이 제프린. 나아가 대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어요? 황손에게 큰 소리를 치고 고압적으로 굴다니···. 그걸 이유로 학생회 근위대에서 잡아갔단 말이죠.”
“그랬지. 나도 기억이 난다.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나의 황자님은 이렇지 않아!’ 하고 소리쳤었다.”
“파티원끼리만 있을 때도 용납 안 되는 대죄.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대중 앞에서 했으니 그 죄는 가중처벌. 허나···. 레지나는 피카로를 쓰러트리고 현 시엘라 가문의 가주. 즉 그 대죄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갇혀있으니까요.”
“······.”
“규정상 크게 단죄할 수 있지만 서명 몇 번이면 풀려날 수 도 있다고 하네요. 다른 대가문의 유력 인사들도 서명했어요.”
그리 말하며 뚱한 얼굴로 아일라는 서명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서부 에덴 가문의 가주. 글래스 백작과 단검의 루디카를 포함해 아일라가 면식이 있는 대 귀족이나 유명 인사들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종이를 가져온 것이.
그리고 손수 나서서 서명을 받은 것이 아일라라는 점.
“아일라. 네가 이 종이를 가져 올 줄은 몰랐다.”
“예에. 저도 몰랐답니다. 정말이지 귀찮은 여자에요.”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서명했다.
“그럼 차라도 한 잔 하도록···.”
“후우. 울프람. 있나요!”
아일라에게 차 한잔을 권하려는 그 때.
네모난 판떼기를 들고, 귀기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이브가 찾아왔다.
“뭐지. 이브.”
“이거, 이거! 이 망할 저울! 이거 고장난 거 맞죠. 그렇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
아니 이미 울었나. 울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인가.
“그래서 얼마가 나왔지?”
“그야 사···. 무슨 말을 하게 하려는 셈이에요?! 이 쓰레기!”
“흠.”
안 통하네.
재미없게.
“어머. 무슨 이야기인가요?”
“아 별거 아니다. 그러니까···.”
아일라에게 저울에 대해 설명해주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었군요. 이름과 나이를 입력하면 체중을 판별해준다. 그럼 저도 해 볼까요?”
아일라가 저울을 놓고 그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려 하자 이브가 허둥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자, 잠깐만요. 아일라 트라이스타. 울프람도 저도 보고 있는데 하겠다고요? 그러다 부끄러운 결과가 나오면···.”
“어머.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그 결과에 부끄러움이 있을 리 없죠.”
그리 말하며 키득키득 웃은 아일라는 저울 위에 올라가 읊조렸다.
“인간. 아일라 트라이스타. 19세.”
【인간. 아일라 트라이스타. 19세. 정의합니다.】
【완벽합니다.】
“라고 하는데요?”
아일라는 여전히 키득키득 웃으며 이쪽을 바라봤고, 불쑥 이브가 이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니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어요?!”
“있다. 정의의 저울의 본질은 계측이 아니라 정의. 완벽에 부합하면 완벽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아. 아아···. 으아아아아앙···. 나는, 나는 어제 엄청, 저울에게도 멸시당해서, 흑···으흐흑···.”
이브는 그 자리에 쓰러져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구슬프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서글퍼, 나도 모르게 다이어트의 비약을 만들어 줄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이 녀석은 그런 비약을 건네주면 더욱 게을러질게 뻔하니까.
이건 전부 다 이브를 위해서다.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결코 나 재밌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아닐걸?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