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37)
536. 무서운 아이
녀석의 손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긴다. 반드시 이겨서 저 녀석을 무릎꿇려 나의 승리를 천하에 포효하리라.
그리 생각했지만, 놈도 만만찮았다.
“으···. 으으···!”
“크으으···!”
만전의 근력을 가지고 있는 이브 폰 로엔그린과 허약한 상태의 나는, 생각보다 근력의 밸런스가 잘 맞는다.
승부는 길항.
어느 누가 확실한 승리를 가지고 온다 말 할 수 없다.
“꽤 하는구나···.”
“저도···. 단련했거든요···? 당신이 비웃는동안 저를 얕보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매일 운동하고! 악력기도 쥐고! 하루 열 개 씩은 쥐었거든요!”
“그런가···.”
그걸 운동이라 부르기에는 참으로 미묘한 수치지만, 그래도 이브는 매일 운동을 해 온 것인가.
하면 의문이 남는다.
어째서, 녀석의 살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거지?
물만 먹어도 살 찌는 타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 원인이 있을 터···.
“밥이 맛있는 걸 어쩌라고요! 누가 먹인건데!”
“음!”
이브의 포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 도시락은 당연히 학생회가 제일 먼저 정량 보급 되고 시중에 풀린다.
이브는 매일 그것을 먹고, 거기에 내 간식도 먹은 것인가.
그렇다면 살이 빠지지 않는 것 또한 당연지사.
“그러니까, 저는 지금 튼튼하다구요···. 살은 안 빠졌지만···!”
이를 바득바득 가는 그 모습.
그런가.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이면, 체질이 바뀐다.
지방은 근육으로 바뀌고 체력이 늘어난다.
즉 이브가 지난 번 자신의 근육을 진심으로 걱정한 것은 허언이 아니라, 조금씩 근력이 붙어 가는 자신을 보고 겁을 먹은 것 아닐까.
장하구나. 조금은 인정해주마.
하지만.
그것과 승부는 완전 별개의 이야기.
자. 진짜 승부를 내보자꾸나.
“응그으으으!”
“으음!”
순식간에 근력을 두 배까지 증폭시킬 수 있는 스킬과 10의 체력.
이 두개를 완전히 조합해 이브 폰 로엔그린을 꺾는다.
잔기술은 필요 없다.
놈이 진심이라면, 나 또한 진심으로 대처하면 될 터!
“아아아으으아아!”
다행히 체력은 내가 더 높다.
그렇다면 아직 승산은 있다.
그리 생각하며 팔에 힘을 주지만, 이브의 팔은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지?
놈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을 터. 그걸 뛰어넘는 정신력을 갖추고 있단 말이냐.
이 내가 이브 폰 로엔그린에게 정신력으로 밀린다고?
그리 생각하고 이브를 빤히 바라봤을 때.
녀석의 등 뒤에.
아주 작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브.”
“뭐에요?”
“소울 체인지를 쓰고 있나?”
“······.”
“마력을 체력으로 변환시키고 있나?”
“마법을 쓰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아.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슬쩍 팔을 내 앞으로 당기고 손목을 비틀었다.
“응그그으으. 질까봐요? 이기고 나서 비웃을거야, 비웃어 주겠어요. 있는 힘껏···!”
“나 또한 지지 않는다. 여기서 질까보냐···.”
지금부터, 승부는 더럽기 그지 없는 진창으로 빠진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죄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누군가는 마법을, 누군가는 잡기술을 쓰려는 그 시점.
“으음?!”
“꺄?!”
우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 두 분 다. 그쯤 하시죠. 그 이상은 제가 못 봐주겠어요. 한 쪽은 마법, 한 쪽은 기술. 그런 승부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에요?”
넘어 질 뻔 한 우리 사이에 들어와 박수를 치며 상황을 정리한 아일라 앞에 차마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추레함에 살짝 자리를 피할 뿐.
승부의 열기를 담은 눈빛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브.”
“예에. 나중에 한 번 더 붙죠.”
다행히.
그건 저쪽도 똑같은 것 같다.
이 승부는 반드시 내리라.
***
뭐.
이브와의 장난은 이 정도로 하자.
목숨을 건 장난이긴 한데, 아무튼 장난은 장난이다.
“그래서 울프람.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뭔가요?”
“음. 마침 그 점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파티 내에서 사연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 레지나와 루디카를 제외하고 전원이 모였다.
물론, 녀석들에게 제대로 된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오면 안다. 정도로 말하고 끝.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우리의 마계 팔문 공략도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 점은 모두 알고 있겠지.”
“네. 이제 세 번째 문 공략. 네 번째 문이 남았네요.”
“그리고 네 번째 문부터, 공략이 본격적으로 어려워 질 것이다.”
“네?”
대표격으로 나와 대화를 주고받던 아일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의 마계의 문은 그냥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육 문 까지 난이도가 확 뛰고, 그 다음 칠문에서 지옥을 보고, 팔문은···. 이야기 하지 말자. 거기는 솔직히 풀세팅으로도 들이박기 싫다.
“그렇군요. 지금까지의 어려움은 어려움조차 아니었다. 라는 건가요.”
“음.”
“저희는···. 그런 곳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군요.”
뭐. 사실 따지고보면 그렇다.
1,2문은 나 혼자서 처리한거에 가깝고···. 3문도 이브가 보조를 잘 맞춰주긴 했지만 보스전은 혼자 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하여 앞으로의 일을 의논할까 한다. 다음 마계의 문 공략에 앞서 시간이 조금 남으니, 회의를 한다면 지금이겠지.”
“다음 문 공략 회의인가요?”
“아니. 아니다.”
나는 슬쩍 전원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너희들 전원이 다음 문의 공략에서 빠지는 것에 대한 회의다】”
순간 정적이 내려앉는다.
“울프람···?”
“말해두지만 아일라. 이번만큼은 농담도 아니고, 얼버무리기도 아니며, 너희들을 흔들려는 생각도 아니다. 그저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해 하는 말이다. 네 번째 문의 난이도는 너희가 우습게 생각할 수준이 아니다.”
“······.”
“그러니 묻겠다. 다음번 마계의 문 원정은 나 혼자서 해낼 테니 물러나 있도록. 오늘 이 자리에 너희를 부른 것은 그걸 위한 회의를 하고자 함이었다.”
내 말에 모두가 침묵한다.
깊게 내려 앉은 침묵 속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울프람.”
제일 먼저 이 기분 나쁜 정적을 깬 것은 아일라 트라이타.
아일라의 나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에 눈을 마주했다.
계속 말해보라는 신호를 담아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후우. 큰 숨을 한 번 내쉰 아일라가 말을 이어나갔다.
“회의라고 하는 건···. 결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죠?”
“······.”
“울프람이라면 필시. 정해진 일은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거에요. 그게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회의라고 했어요. 통보도 보고도 아니고 회의. 즉···. 저희가 참전할 여지는 남아있다. 라는 의미. 맞나요?”
역시 아일라다.
내가 평소 했던 말. 하지 않았던 말을 완벽하게 분간해. 내 단어 선택과 그 의미를 추론한 다음 반론에 나선다.
내가 했던 말이니 당연히 얼버무릴수는 없다.
“맞다. 너희들의 참전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즉. 죽을만큼 노력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 그 정도의 각오는 되었거든요?”
아일라의 발언에 맞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 네프티. 밀푀유도 같은 생각인가.
어쩔 수 없군.
“알겠다. 너희들의 각오를 듣고, 지금부터 한 가지 규칙과 한 가지 조건을 정하겠다. 우선 조건은, 내가 봤을 때. 가장 훌륭한 성과를 올린 녀석 한명만 대동할 것이다.”
“한 명···.”
“그리고 조건은 죽음을 통해 기분이 나빠지거나 정신이 어지러우면 그 즉시 훈련을 중단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알겠나?”
“네? 네···. 알겠···. 잠시만요. 울프람. 죽는다고 했어요?”
“그랬다만?”
“지금 말하는 것 만 들으면 정말 저희가 죽는 것 처럼 들리는데요···.”
“하하.”
“그렇죠? 아니 그 뒤에 왜 부정을 안 하고 웃기만 해요? 죽는다는게 혹시···. 말만 그런거죠? 울프람?”
“하하하.”
“울프람···. 울프람?”
***
그 날 저녁.
아직 밤이 되지 않은 시각.
파티원들을 끌고 도착한 곳은 제 3 마계의 문 앞이었다.
1,2문과 함께 3문에도 클리어 특전 포털이 생겨나 있었고, 나와 파티원은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도, 넓이도 끝을 모르고 한 없이 펼쳐진 백색 공간.
순백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이 무한한 장소에 모두들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여긴···. 대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겪어온 모든것이 될 수 있는 장소다.”
“네, 네?”
마계의 문은 4문부터 어려워진다.
스펙이 부족할 때 노려볼 수 있는 것은 3문까지라는 이야기.
스펙이란 장비와 스킬뿐만이 아니라 ‘보스전에 대한 지식’과 ‘패턴의 파악’도 그 안에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3문의 보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지식의 습득’
지금까지 우리가 클리어한 보스와 던전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트레이싱 일루전’ 이라는 복제 던전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즉 이 곳에 있는 모든것이 복제품이며 허구라는 이야기다. 직접 보여주지. 소환. 흑랑장 알카인. 1체. 선공. 타겟고정 울프람.”
【그아아아아아아아아!】
첫 문의 보스.
흑랑장 알카인을 소환했고 놈이 포효를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직후 오른팔을 내밀고, 서걱. 하고 팔이 잘려나간다.
“울프람?!”
“선배님!”
“이렇게 팔이 잘려나간 것 처럼 보이지만 음. 일단 송환. 흑랑장 알카인.”
알카인을 돌려보내고, 나는 슬쩍 팔을 내밀었다.
단면은 그저 까맣게 먹처럼 칠해져 있을 뿐.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아···?”
“이 상처의 위화감에서 알 수 있듯. 여기는 그저 자신의 한계를 실험해 보고자 하는 던전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있는 힘껏 자신의 전력을 측정하고 놀아볼 수 있는 놀이터지.”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훈련 던전과는 궤가 다르다.
마계의 문 보스와도 맞다이를 쳐볼 수 있고, 다굴을 맞아볼수도 있고, 던전을 다시 돌아볼수도 있다.
아. 이렇게 큰 상처를 입으면 복구되지 않지만, 전투 불능이라 판단되면 알아서 문 밖으로 사출된다.
“즉. 투쟁심이 꺾이지 않는 한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나가도 이 곳은 ‘싸울 수 있다고 판단한다. 허나 그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피로감을 동반한다. 정신이 일그러질 정도로 두려운 전장이 된다. 그럴 자신이 있는 녀석부터 자리에 남아라.”
흠.
전원이 그렇게 자리에 남아 나를 빤히 바라봤다.
거 참.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나?”
“이미 다 쓰러트려 본 거 잖아요? 그렇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일라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래.
그럼 가보자고.
***
그렇게 훈련 첫 날.
“울프라암···. 저 녀석들 비겁해요. 사람이 졸려서 자고 있는데, 자고 있는데 기습을···.”
당연히 훈련의 결과는 처참했다.
우선 아일라.
가장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녀석은 서바이벌에 최약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도그럴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수면시간이 녀석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아.
던전 트레이싱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그대로 짰다.
처음은 동부 숲의 골렘. 그 다음이 잠든 산맥이다.
그렇게 동부 숲을 지나 잠든 산맥 수준에서 컷.
샌드맨의 수면가루에 잠든 상태에서 전투불능이라 판단되고 사출됐다고 한다.
결과. 아일라는 수면저항이 무척이나 낮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 뒤로 이브도 사출. 네프티도 사출되었다.
“크윽···. 비겁한 녀석들···.”
“아하하. 당해버렸습니다.”
이브는 에르헬을 위시한 검은깃발의 다대일의 싸움에서 운동능력을 따라잡지 못해 마력을 난사하다가 사출. 네프티는 그 곳은 넘어섰지만 골렘과 접근전을 벌이다 사출.
그리고 두 명이 없는 가운데,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긴 전투 시간을 보여 준 것은, 다름 아닌 밀푀유였다.
“다녀왔습니다. 선배님. 포영의 설원 라이아 님 바로 앞까지는 갔는데, 제 목걸이로는 라이아 님께 통하지 않더라고요.”
“······.”
“선배님. 그래서 제 죽음에 대해 분석해보고 싶은데요. 저는 왜 져서 죽은 건지 같이 고민해주실 수 있나요?”
매 사에 탁월한 지식과 현명한 상황판단을 갖춘 후배.
자신의 죽음마저 분석하려 드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네 번째 문.
모든 즉사 트랩을 끝까지 보고 피해야 하는 죽음의 던전.
그 안에서 내 등을 진짜로 맡길 수 있는 파트너가 눈앞에 있는 듯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