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40)
539. 월하의 분기점
틀림없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시나요? 혹여 제 얼굴을 잊을 뻔 했나요?”
“음···.”
“아니면···. 후후. 피앙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었나요?”
“······.”
이건, 내가 알던 그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맞다.
검고 푸른 드레스를 입고, 등 뒤에 수 백의 학생을 대동하며 항상 자신감에 가득 차 있고 세상 모든것을 내려보던 녀석.
지금까지 내가 추론했던,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비뚤어질만한 사건을 겪어서 비뚤어진게 아니라···. 그저 수면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인가?
“조금 변했구나 아일라.”
“그럴만한 밤이니까요. 아름다운 달이죠?”
“······.”
이중인격은···. 아니다. 무언가 악령이 씌인 것도 아니고, 그럼 평소의 아일라는 가면이고 저 아일라가 진짜인가?
매일 에헤헤 거리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인가?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그런 엄청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고?
···.
······.
그럴리가 없지.
“그렇군. 실로 좋은 밤이다. 아일라.”
“후후. 역시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반역에 어울리는 밤. 흑의의 타천사가 그 검은 날개를 펼치고, 차오른 달을 향해 비상하기에 어울리는 흑야. 자. 태양이 아니라 달을 향하는 우리들의 날개는, 녹아내리지 않을지언정 어둠에 물들겠죠.”
“······.”
이걸 계속 들어줘야 하나.
어지럽네 진짜.
사실 이런 아이였나? 이렇게 그···. 뭔가 손발이 힘든 그런 말을 줄줄 외는 아이였다고?
“그, 그렇구나.”
“그럼 나가죠. 울프람.”
“지금은 자정이 넘었는데, 어딜 가자는거지?”
“어머. 어둡지 않잖아요? 달이 우리를 비춰주고, 우리의 마음이 서로를 비추니, 한 밤 중이라고 해도 거리낄 것이 있나요?”
“······.”
음.
아일라야. 아일라야.
그 녹음해두고 내일 들려주면 재미있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거 같은 감수성 풍부한 포엠은 그렇다 치고···.
“달은 그렇게 밝은 조명이 아니다.”
“······.”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생각보다, 보름달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다 비춰주는 건 아니란다.
내 말에 아일라는 보름달을 보고, 8구역 중심의 숲을 보고, 그 명도와 채도를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도 좋죠. 원래 반역이란 가장 조용한 곳에서, 가장 은밀하게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
이런 포기가 빠른 점은 또 아일라 답네.
***
아일라는 내가 내어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곱게 다리를 모으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울프람이 타준 차는 다른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은 풍미가 있네요.”
“요리는 그 나름대로 숙련되었으니 말이다.”
“어머, 또 겸손한 말을 하네요. 장담할게요. 이 세상 누구도 울프람의 요리를 따라올 수 없답니다?”
음.
그건 또 그렇긴 하다.
“역시 홍차가 나와야죠. 다른 음료는 좋아하지 않는지라. 잘 마실게요.”
“음.”
내 요리 스킬은 1T. 그것도 최상위 숙련도인 ‘신화’
저 까다로운 아일라의 입맛을 맞추는 것은, 단언컨데 이 제프린에서 오직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향기. 차를 우려내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 따듯하게 데운 찻잔까지. 이 한 잔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구. 그리고 실패를 거듭했을까요. 아니면 그 모든 순간이 성공이었기에, 당연하게 이루어진 성공일까요. 어느쪽이든···. 후후. 당신의 차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해요. 울프람.”
“칭찬 고맙군.”
“어머. 저는 누군가를 그렇게 쉽게 칭찬하지 않는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평가할 뿐.”
아일라는 살며시 웃고는 다시 찻잔을 기울였다.
음.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
이 아픈 아일라, 그러니까 정신이 무척이나 아파보이는 아일라에게···. 나는 아주 조금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게 내가 알던 아일라다. 악녀 아일라 트라이스타다.
녀석의 원래 컨셉은 ‘악역 영애’였고, 나의 원래 컨셉은 ‘망나니 황태자’였다.
나는 죽어 사그라들었다 쳐도, 그 약혼녀인 ‘악역 영애’는 끝까지 발버둥치다가 파멸을 맞이하니 정말 죽이 잘 맞는 둘이었다 할 수 있겠다.
허나.
황태자 안에는 한 놈의 고인물 양아치가 들어가고···. 악역 영애는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 순한 양이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기억하는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이 곳에 있다는게,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설정집에서 아일라가 저녁에 즐기는 것은 홍차와 스콘 하나.
능숙하게 파티셰 스킬을 발동해 아일라에게 다과를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다과를 준비하는게 늦었군.”
“어머나···. 후후. 용서해 드리겠어요.”
스콘을 즐기는 그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과 같았고,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는 그 자태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동글동글하지 않은 아일라는 내 그런 모습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울프람은 들지 않나요?”
“이 시간에 무언가를 먹으면 내일 업무에 지장이 있어서 말이다.”
“어머나, 그렇게 말하면 제가 한 밤중에도 무도한 다과를 즐기는 천박한 여자 같잖아요?”
“개인 취향이라는 것이다. 무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네. 그러도록 하죠. 그 자상한 말에 기대서, 무도한 다과를 즐겨볼까요.”
정말.
그 뒤. 한 잔 더 홍차를 즐기고, 스콘을 반 정도 비운 아일라는 다과에서 흥미를 잃고 하늘을 올려봤다.
그저 작은 점으로 보일 뿐인 달을 멍하니, 시선을 빼앗긴 채 올려본 아일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여기서 올려보는 달은 무척이나 아름답네요.”
“그런가.”
“네. 울프람 알고 있나요? 이 안에는 모든것이 있어요. 식사. 홍차. 디저트. 그리고 당신이라는 사람과, 여기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온기까지. 달은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안전하게 볼 수 있죠.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곳. 저는 이 곳을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
“그렇기에, 가끔 두려워요. 저만 알고 있는 온기가 아니니까요. 다른 좋은 아이들도 이 곳을 찾아와 의지하고 몸을 기대죠. 저마다 기댈곳을 찾아 도착한 이 편의점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에요.”
아일라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두려워요. 당신의 곁에 모인 착하고 좋은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할 수 밖에 없는 자신. 내년 봄. 우리가 졸업하고 이 편의점에 더 이상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없을 때. 당신이 날개짓하고 멀리 떠나갈 준비를 마친 그 때.
과연.
당신의 곁에는 누가 서 있을까요.”
“아일라.”
“후후. 미안해요. 곤란하게 만들었네요. 저는 그럼 안에서 잠깐 잠을 청해도 될까요?”
“그래. 그러도록. 이불은···.”
“혼자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거라 생각하나요? 후후. 저 이래봬도 울프람보다 두 달 연상이랍니다?”
“그건 동갑이라고 부른다.”
“후후.”
아일라는 곱게 웃더니 스커트 끝을 양 손으로 잡고 가볍게 인사를 올린 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제게 대답을 줬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대답을 내렸을까요?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은 너무나 공허한걸요.”
스쳐지나가는 아일라의 작은 읊조림이 귓가에 울렸다.
그러고보니.
“내년 봄이라.”
작년 초.
에덴 영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 아일라는 내게 말했다.
【네. 주변 환경 요인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쥐었을 때. 반역이 성공했을 때. 그 때 가서 울프람과 아일라가 스스로 선택한 답을 내려요.】
【지금은 신뢰하고, 신용하며, 신의로 맺어진 있는 친구. 언젠가 운명이 교차하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
우리의 약혼은 주변 환경에 의한 것.
그러니 환경이 아니라, 울프람과 아일라 개인으로서 이 약혼에 대한 대답을 내리는 것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졸업까지 미뤄둔다.
그런 아일라의 제안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멋지구나 아일라. 네 삶의 방식을 나도 존중한다.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금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지.】
···.
······.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다. 어찌 잊겠나.”
길어도, 짧아도 앞으로 8개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정해야만 하는 시간이 차근차근 다가온다.
***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생체시계는 완벽하다.
지난 십 수년간 한 번도 일그러진적이 없으며, 일그러지면 억지로라도 잠을 자서 맞춘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또한 퍼펙트 아일라가 잠에서 깼다.
완벽한 하루는 동이 완전히 트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신념.
해가 뜬 이후에 하루를 시작하면 늦기에, 아일라는 새벽 일찍 일어나는 편,
그리고 오늘.
아일라는 생에 다시 없을 정도로 놀라운 아침을 맞이했다.
“왜죠. 왜 해가 중천이죠.”
살면서 단 한 번도 크게 아파본 적 없고, 건강이라면 마법사 가문의 이단아 취급 받을 정도로 최고며, 전직 기사학부 수석에게 신입생 시절 ‘기사학부에 들어오지 않겠니’ 라는 제안을 받을 정도의 건강한 아일라 트라이스타에게, 낮잠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허나.
낮잠을 자버렸다.
빼도박도 못하고 틀림없는 낮잠이었다.
하물며 이 곳은, 몇 번이나 자서 알고 있다.
모르는 천장이 아니라 아는 천장이다.
그러니까.
“늦잠을 잤다? 내가? 울프람 편의점에서? 해가 뜰때까지 쿨쿨? 게으르게 잤다?”
절망적인 현실이 아일라의 머리를 때렸다.
끝이다.
자신의 퍼펙트한 일상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남들이 반역의 깃발을 올리고 승리의 봉화를 지필 때, 아일라는 집안에서 쿨쿨 낮잠이나 자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게으르고 멍청한 아일라가 된다 생각하니, 무릎을 끌어안고 침울해지고 말았다.
“아일라 있나.”
“울프람···?”
“잘 잤나.”
“으, 으으···. 미안해요. 죄송해요. 지금 저를 보지 마세요.”
“어째서 사과하지?”
“그게···.”
아일라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토로했다.
자신이 울프람이 자야할 곳에서 잠을 잔 것. 해가 중천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긁으며 쿨쿨잔 것 까지.
울프람은 이를 듣더니.
“하···. 하하. 하하하.”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미, 미안해요 울프람. 그렇게 웃을 정도로 제 추태가 미웠나요?”
“아니. 아니다. 전혀 밉지 않아. 그래. 그게 전부인가? 아니. 그게 전부겠지. 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네?”
“그래서 잘 잤나. 아일라?”
아일라는 입을 꾹 닫고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프람은 만족한 듯,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안도하면서도, 아일라는 가슴 속 깊은곳에서 솟아오르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울프람? 화 안 났나요?”
“잘 잤으면 됐다. 당연하지만 화는 안 났다. 솔직히 안도감마저 드는군. 그럼 나와라. 식사 할 시간이다.”
“네? 네···.”
그 뒤. 준비된 식사를 하며 아일라는 어째서 자신이 늦잠을 잤는지 그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제가 일찍 자니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했다가 그만···.”
“음. 그렇다. 미안하구나, 네 생활패턴이 네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도 못 한 채 그런 무도한 일을 저질렀다.”
“아, 아뇨. 사과하지 마세요. 애당초 인내심이 부족한 제 잘못인걸요.”
“아니다. 이건 정말,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울프람?!”
깊게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아일라쪽이 놀라 그의 어깨를 잡아 들어올렸다.
“그럼. 사과는 이쯤 하고 식사를 이어 하자꾸나. 어때 마음에 드는가?”
“네. 울프람이 만들어준 식사는 전부 최고인걸요.”
“그럼 식후에는 홍차와 스콘이 좋은가?”
“으음? 아뇨. 저 간식은 잘 안 따지는 편이에요. 울프람이 끓여준 홍차도 좋지만, 스무디도 좋아요.”
“하하···. 그런가. 알겠다. 금방 준비하도록 하지.”
개운하게 웃는 울프람을 보며,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티 타임까지 마친 후.
오늘 해야 할 업무들이 있어 아일라는 귀가를 서둘렀다.
“그럼 들어가볼게요. 울프람.”
“음. 조심히 들어가도록.”
“네! 아, 그리고 오늘 정말···. 늦게 일어나서 미안해요.”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인 아일라를 보며 울프람은 끝까지 영문 모를 쓴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녀가 떠나기 직전.
“아일라.”
“네. 울프람.”
“어떠한 대답이 되었던 간에 나는 대답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라.”
울프람의 의미도, 의도도 알 수 없는 말.
허나. 그 말을 들은 아일라의 얼굴에는 영문 모를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 울프람. 믿고 있을게요.”
거기까지 말해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긴 했지만, 어째서 자신은 지금 믿고 있다. 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까. 왜 웃었을까.
끝까지 그 해답을 얻지 못 한 채. 피어오르는 미소로 귀가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