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42)
541. 떠나간 이를 위하여
그렇게 필티아와 헤어진 후.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들어와있는 아이템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더니, 왼손으로 하나 뜯고 오른손으로 하나 뜯어서 양 손이 서로 모르게 반대쪽 손으로 하나씩 얻어온 이 약초를 보라.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무령근력초】 【월령의지초】
둘 다 나란히 1T 약초다.
그것도 보통 1T가 아니라, 순수한 효율로 치면 불사초와 비슷하다.
무령근력초는 근력을, 월령의지초는 의지를 올려준다.
다만 게임 내에서 의지란 명확하게 그 능력치가 발동하는 부분이 있었던 반면, 이 세계에서는 모르겠다.
왜냐고?
공식 설정상 레지나가 아일라보다 의지가 높다.
하지만 현실이 되어보니 이것 참. 아일라쪽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가.
그래서 의지초가 손에 들어온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근력초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 이득이다.
“천령체력초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천령체력초는 작용방식은 다르지만 불사초와 효능이 비슷하니까 말이야.
이브에게 달여 먹이면 그 약해빠진 체력도 조금이나마 보강되겠지.
하지만 근력과 의지는 모르겠다.
근력은 내가 먹는다고 하고, 의지는 어디에 쓰지?
내 손에 들어왔지만, 묘하게 사용할 곳이 없는 보물을 손에 쥔 채 고개를 갸웃했다.
파티원들이 보면 뭐라 설명할 길이 없어서 우선 전원을 물려놓고, 약초를 어떻게 처리할건지 고민하던 와중.
“울프람.”
“음?”
내 앞을 내 키 반만한 무언가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엘피라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은요. 최근 강의 출석을 지나치게 안해서 찾아왔답니다.”
“내가 말인가?”
이상하다.
나는 엘피라네의 강의를 듣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질타를 받을 이유가···.
“아뇨. 레지나 시엘라요.”
“아.”
걔는 그럴 수 있지.
음. 지금은 한창 심경이 복잡할 시기니까 내버려 두는게 나을 것 같다.
“잠시만, 그 녀석이 방황에서 돌아올 때 까지 지켜봐 주지 않겠나. 조금의 아량을 부탁하마.”
“뭐. 어렵진 않군요. 알겠어요.”
고맙군 그래.
레지나 시엘라는 지금 아버지랑 끝장을 보고 있다고 했으니까, 잠시 공백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제프린 졸업 vs 아버지 자리 빼앗아서 가주되기의 심각한 싸움에서, 당연히 졸업을 택하고 집안에서 팽당하느니 가주직을 물려받고 떵떵거리기를 택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엘피라네는 파닥거리다 이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지쳐 보이는군. 무슨 일 있나?”
“글쎄요. 술 빚기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하네요.”
엘 피라네의 스테이터스는 마력 의지 21을 제외하면 근력 4 체력 8 재주 5. 이렇게 보면 이브의 하위호환 같지만···.
“위대한 지배자의 월계관 덕분에, 마력을 다른 능력치에 분배할 수 있지 않나?”
“제가 당신에게 그 보물을 설명한 적은 없는데요?”
“무얼. 나는 위대하신 선조님의 안배를 이어받았다. 네 보물이 무엇이 있는지 내가 정말 모를리가 없지.”
“저는 당신에 대해 다 안다고 할 수 없는데, 당신은 저를 다 알고 있네요. 예에. 맞답니다.”
위대한 지배자의 월계관.
마력을 깎아 체력 재주 근력에 분배할 수 있다.
다만 분배 스테이터스는 최대 18을 넘길 수 없다는 한계점도 존재.
허나 이것 하나만으로도 엘피라네는 이브보다 괜찮은 체력과 근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체력이 부족하다니, 월계관으로도 안 된다는 말인가?”
“그게···. 이번에 만들고자 하는 술이 꽤나 난이도가 높거든요.”
“음.”
그녀의 주조 실력은 농담으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다.
허나, 술을 빚는 법을 익힌 후 꽤 재미있게 파고든다 생각했는데 말이야.
“뭘 빚으려고 하지?”
“여신의 넥타르.”
“되겠나. 그게.”
“······.”
앗.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을.
하지만 엘피라네가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것 같아서, 따끔하게 일침을 때려넣을 수 밖에 없었는걸.
“하여간. 알고 있거든요. 그게 어떤 술인지···. 그럼에도 빚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빚어내야 해요.”
“그런가. 그렇다면 준비하도록 하지.”
“응? 갑자기 뭘요?”
“여신의 넥타르를 만드는 법을 익히고자 하는 것 아니었나. 자, 가자.”
여신의 넥타르.
다른 건 몰라도 그 술은 아이템이고.
분류상 포션이거든.
***
엘피라네를 이끌고 향한 곳은 그녀의 양조장.
끼익. 하고 나무로 된 문을 열자마자 나무와 술 향기가 코끝을 가득 채웠다.
술이 발효되는 이 향기, 냄새만으로 취할 것 같다.
아이템 감정으로 슬쩍 돌려보면···.
【초보자의 포도주】
【8T】
【초보 제작자가 있는 열정을 다해 만든 포도주입니다. 품질은 낮으나 맛과 향의 균형이 좋아 미래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대부분 이런식으로, 그녀의 노력을 인정하는 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할 일이 생긴 요정여왕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아···. 그랬었죠. 지금은 하지만 할 일이 없는걸요?”
“그런가?”
“마법 이론은 결국 마법의 총체에서 3할 이상을 차지하지 못해요. 그러니 나머지 7할은 전부 실전. 그래서 전부 원정대에 밀어넣어버렸답니다.”
“음.”
이것 참.
이론적으로도 필티아보다 위에 있으며, 그 대전쟁을 겪은 마법 투사가 하는 말이니 할 말이 없다.
“마법이란 싸움의 수단이 아니지만, 싸움을 빼놓고 마법을 이야기 할 수 없는것도 사실이죠. 이 세계에서 마법이 어디에 가장 많이 쓰이겠어요? 요리 도구? 편의 시설? 아니면···. 몬스터에게서 몸을 지키거나 인간끼리 싸울 때?”
내가 말을 아끼자 엘피라네는 픽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결국 싸움에서 활용할 수 없는 마법은 반푼 이하. 그게 공격. 방어. 보조. 설령 제작이라고 하더라도요.”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울프람?
엘피라네는 그리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제작 스킬을 굳이 마법으로 분류한다면, 내 마법 또한 전투에서 빛을 발할테니까.
학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계속 공급하여, 기초 체격이 좋아지면, 결국 몬스터 수렵을 나가고, 그 곳에서 내 도시락을 먹을 것이다.
즉.
나 또한 싸움을 위한 제작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제 이론은 끝. 나머지는 학생들이 알아서 원정지에서 고찰하고, 덜어내고, 더해서 완성하는거죠. 그러니 저는 다시 술마시고 술빚는 주정뱅이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그거 멋지군. 실로 멋진 계획이야.”
“후후. 그렇죠?”
엘피라네는 흥얼거리며 날아다니다 자신이 만든 오크통을 통통 때렸다.
그렇게 몇 개의 통을 때리다가, 오늘은 이 녀석이에요! 하고는 손가락으로 쿡 눌렀다.
이윽고 통에 마력을 흘리고, 그 마력에 따라 와인이 뽑혀나왔다.
그리고 한 잔. 자신의 글래스에 따르고는 그대로 원샷. 파하! 소리를 내뱉으며 호쾌하게 몸을 부르르 떤다.
소설에서나 봤을 비우는 순간 무한으로 술이 차오르는 술잔처럼 와인 글래스에 와인이 차오른다.
원 샷을 때리고 잔을 내리면, 다시 잔이 차오르고 그걸 원샷한다.
저렇게 마시는 것과 오크통에 수도꼭지 달고 식도를 쳐박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무렵. 푸흐흐! 소리를 내며 엘피라네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주정뱅이가 따로 없군.
“한 잔 하실···. 끄윽. 래효?”
“아니. 됐다.”
“제가 만든건데에···. 한잔 하시죠오오.”
그리 말하며 손 끝으로 와인통을 툭툭 튕기자, 이내 허공에 술방울이 하나 맺혔다.
세상에 물방울도 솔방울도 아니고 술방울이래.
그 방울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허공을 노니는 물방울이 그러하듯, 허공을 아름답게 날아 내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아 하세요. 아!”
“음···. 아.”
여기서 거부했다가, 엄청나게 귀찮아 질 거 같아, 입을 벌려 그 술을 음미했다.
으음···.
“어때요? 잘 만들었죠호?”
“음. 그렇군. 편의점에 납품해도 될 정도다.”
“어머나···. 아하하. 그렇게나 칭찬해 주실줄이야!”
아니. 뭐.
편의점에서 파는 2+1 9,900원짜리 와인맛이랑 비슷해서 그래.
아마 여기에 납품되는 재료는 최고급일텐데, 어떻게 최고급 포도와 최고급 오크통으로 맛을 조질 수 있는거지?
“자! 그럼 이제 좋은 술도 대접받았으니! 말해주시죠. 울프라함!”
“뭘 말이지?”
“여신희 네타르! 그거 만드는 법 안다고 햇잔아요!”
“아. 그거 말인가. 내가 만들수 있다.”
“네헤?”
“기본적으로 넥타르는 포션과 와인. 두 개의 속성을 지닌다. 그리고 넥타르의 근간은 회복쪽에 조금 더 가깝다.”
“아···.”
앨릭서가 순수한 포션으로서 최상위에 존재한다면, 넥타르는 약술로서의 최상위 존재다.
하지만, 결국은 약이라서 와인을 재료로 포션 제조를 돌리다보면 하급 넥타르가 뜬다.
거기서 넥타르를 상위 약초와 조합하다보면, 결국 최상급 넥타르. 즉 여신의 넥타르가 뜬다.
“그렇게 만들면 된다만···.”
“이 편의주의에 찌든 잉간!”
갑자기 욕을 먹었다.
“그건 나쁜건가?”
“나쁘진 않은데, 그러면 안된다구요!”
“어째서지? 결국 만들어진 여신의 넥타르는 같은 거 아닌가?”
“그건···.”
엘피라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인 글래스를 허공에 던져 분해시킨다.
저 알중이 잔을 던지다니, 지금부터 꽤나 진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나보군.
그리 생각하며 그녀의 발언에 집중하고 있는데.
“히끅. 역시 감질나서, 이게 맛이지!”
“······.”
잔 대신 병을 들고 그 안에 와인을 콸콸 붓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건 그냥 오크통 뚜껑을따고 목을 박아넣는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무튼, 그런식으로 나온 넥타르는 안된다구요. 울프람.”
“어째서지.”
“그런 약속! 아, 제가 이 이야기는 안 했나요? 그러니까요.”
히끅거리면서도 발음을 최대한 교정해 엘피라네는, 옛날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제가, 하르크랑···. 린디랑 엄청나게 싸운 건 알고 있죠?”
“음. 알고 있지.”
“그 와중에···. 린디랑은 진짜 주글만큼 싸웟거든요?”
“호오. 어째서지?”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분명. 엘피라네는 하르크를 좋아했던 거다.
그래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삼각 관계가···.
“린디가 마싯는 술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엄청! 쪼잔한것이 그거 한 잔 안주고 자기 남편이랑 알콩달콩 마시겠다고 하는데! 화가 나겟어요 안나겟어요! 때려주겨야지! 놈들을 추방하고 그 술을 다 빼앗아 내 메마른 목을 달래리라!”
“내가 틀렸군.”
완벽하게 틀렸다.
죄송합니다.
“으으. 또 화나네···. 하르크 개자식 주겨버리겟다!!”
“······.”
그. 부끄러움을 숨기거나 투덜거리는게 아니라 진짜 목숨걸고 죽을만큼 싸우셨군요.
“아무튼, 그렇게 싸웠어요. 엄청. 하르크랑도 싸우고, 린디랑도 싸우고···. 그러다 친구가 된거죠. 그리고 이 웃기지도 않는 섬을 만들어서 저희가 반 자의적으로 유폐된 사이에.”
“······.”
“린디가 죽었대요.”
그래. 그렇다.
마신이라 불리며 신역(神域)에 다다른 하르크와 다르게, 린디 폰 로엔그린은 자손 사이에서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는 역사서에도 나와 있다.
내가 설정집을 회상하자 엘피라네는 후우, 하고 알콜 가득찬 큰숨을 내뱉었다.
“린디는 늙을 때 까지도 이 섬에 놀러와 저희를 만나줬어요. 하르크는 행방불명 됐기 때문에, 저희의 성역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마법식의 천재이자, 저도 한 수 접어주는 린디 뿐이었죠.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나고, 손끝의 피부가 퍼석해져, 그것이 팔로 이어져가는 걸 저희는 볼 수밖에 없었죠. 인간의 탈을 벗어나 정령화를 권했지만···.”
“거절하셨지. 그 분은 끝까지 인간을 고집하셨으니 말이다.”
“네. 인간은 너무 일찍 죽어요. 저희가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즐기며, 가을에 마시다. 겨울에 잠들고···. 다시 봄이 되는 것을 수십 번 반복한 것만으로도, 인간은 죽어버리고 말죠.”
“······.”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린디는 넥타르라는 술을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이 넥타르의 끝에는 여신의 넥타르라는 술이 있다고 했죠. 언젠가 그걸 마셔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군.”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졌다.
먼저 떠난 친구를 추억하기 위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엘피라네는 여신의 넥타르에 목을 맨 것이다.
“그 분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그 술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아뇨? 제가 먼저 만들고 마신 다음 너는 못 먹고 죽었지? 하고 놀리려고 하는건데요?”
앗.
제가 엘피라네님의 인성을 몰라뵙고.
“그래서 린디의 묘 앞에서 이렇게 말 할 거에요. 너는 못 먹은 술이라고, 와하하! 하고. 그녀의 묘 앞에 한 잔 따라주고, 저도 한 잔 마시고···. 제 손으로 빚어서, 훔치기만 요정이었던 제 손으로 만들어서, 한 잔 줘야죠.”
“······.”
“그래서, 울프람의 방식으로는 안 돼요. 미안해요. 울프람.”
이것 참.
그렇다면, 제조가 아니라 정말 주조를 해야한다.
“알겠다. 다른 방법으로, 정말 빚어보도록 하지.”
“정말요? 가능하겠어요···? 엄청 오래 걸리지 않나요?”
“무얼.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걱정하지 말도록.”
“아하하. 그렇네요. 시간이라면 넘치죠.”
엘피라네는 한참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졸업하고 나서, 세상에 나가고, 얼마든지 과거를 추억하며 떠나간 이를 위한 선물을 만들 시간이 말이다.
“울프람이 늙어 죽을 거 같은데 완성 못하면, 강제로 요정화 시키면 그만이니까요! 영생에 흥미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조아요!”
“······.”
아뇨.
죄송하지만, 저도 그 제안은 사양할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