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43)
542. 지옥의 삼지선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초월종···. 그러니까, 내 주위에 있는 원작 히로인이든, 아니면 보스든 간에 그 안에서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과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다.
새로운 인물은 없지만, 생각보다 만나는 빈도가 늘었다고 해야 할까.
그제는 필티아, 어제는 엘피라네.
“음. 기왕 만나는 거 전원 다 만나볼까.”
하여 생각한 것이 남부 바다에 있는 에리얼을 만날까 하여 천혜의 고도를 향했지만, 녀석은 지금 한창 항쟁중이라고 한다. 아쉽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족계애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에르헬이나 시에스타는 뭐 알아서 잘 지내겠지.
그러고 보니 마계의 문 열쇠가 있으니, 녀석들을 그 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으면 고향에 귀환한 것 마냥 잘 살아가지 않을까.
“나중에 수틀리면 마계에 집어넣도록 하고, 지금은 그런 녀석들이 아닌 마지막 남은 초월종과 만날 시간이로군.”
하여.
나는 코트를 껴입고 편의점을 나섰다.
끝없이 북쪽을 향해 걸어, 설원을 지나 도착한 곳은 얼음의 왕성.
말 그대로 동화속 공주님들이 살 법한 왕성은, 전부 얼음과 수정으로 지어져 있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내부에는 난방이 안 되어서 더럽게 춥다는 의미.
“앗 울프. 그 돌은 놓고 가면 안 되나?”
“음. 미안하군.”
거기에 여기 녀석들은 태초의 루비를 무척이나 꺼리는 기색이 심하기에, 들고 가기도 애매.
즉 나는 추위에 떨며 마지막 남은 초월종.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를 만나러 도착했다.
“어머. 울프람 폰 로엔그린. 후후.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냈나요? 나의 영원한 동지 울프람. 힘든 곳은 없죠? 뭔가 힘든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주세요. 저는 당신의 영원한 편이랍니다.”
“······.”
뭐지.
잘못 왔나.
더러운 마계 놈들. 내 정신에 세뇌를 걸어 이런 환각을보여주다니 용서못해. 죽여주마 이브 폰 로엔그린.
하지만, 그 더러운 지랄도 거기까지다. 나의 황실 혈통을 켜서 언제든지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잘 보아라. 이런 정신공격 정도는···.
【정신상태는 정상입니다.】
왜죠. 어째서죠.
“후후. 자. 그런 곳에 서 계시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당신을 위한 차를 한 잔 준비했답니다. 저는 식음을 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생긴 저의 인간 친구를 위하여 직접 끓였으니 맛을 봐 주겠어요?”
“······.”
왜냐고요.
***
“어떤가요. 차 맛은?”
양 손을 치마 가운데로 모아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라이아는 차의 감상을 물었고 제프린의 봄 날씨보다 화창한 라이아의 미소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잘 끓였군.”
“다행이네요. 후후···. 노력한 보람이 있어요.”
노력.
그래 노력이다.
먼저 말해두지만, 그녀는 얼음 여왕이고, 모든 얼음 정령족의 수장이다.
허나 오해하면 안 된다. 그녀는 ‘물’의 정령이 아니라 ‘얼음’의 정령이다.
이거 구분이 꽤나 중요한데, 그녀의 본질은 매체가 아니라 온도라는 것이다.
뭐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모든 추위를 지배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 라고 보면 된다.
그녀들은 미지근한 물에도 ‘화상’을 입는다. 웃기지 않나?
반대로 불의 여왕 그랑펠리시에는 찬 물에 ‘화상’을 입는다. 막 몸에 기포 솟아오르고 그 안에 미지근한 불이 차있고 그런다니까. 진짜 있는 설정이다.
즉.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를 위해 차를 끓였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노력했다는 것은.
“손 끝을 보여다오.”
“아···.”
“역시. 괴롭지 않은가.”
“후후. 동지 울프람을 위해서인걸요.”
자기 자신의 냉기를 뚫고 나올 정도의 열기를 다뤄 그 끝에 차를 끓여냈다는 이야기.
저 손 끝이 무르고 물기가 내려앉는 것을 보니, 화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다.
진짜.
할 말이 없네.
왜 갑자기 이렇게 태세를 바꿔서 화창한 봄날처럼 웃는 거지?
“기분좋은 일이 있었나?”
“예에. 매일매일이 기분 좋은 일 투성이랍니다. 당신 덕분에 하루하루가 다른걸요.”
“······.”
아무리 생각해도 얘가 뭔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얘한테 뭐 해준 거 있나?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그랑펠리시에를 줘 팰 수 있는 권한을 준 것 뿐···.
설마.
“죽였나?”
“네?”
“그랑펠리시에 말이다. 드디어 죽여버리고 염원을 달성했나?”
“어머, 그건 무척이나 기쁘고 듣기만 해도 가슴 두근거릴 일이네요.”
너 심장 없잖아.
하지만 그런 말로 화제를 묘하게 돌리는 것 보다, 지금은 그랑펠리시에의 생사여부가 더 중요하다.
“안 죽였어요. 죽일 리가 없지 않나요.”
“그럼 왜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거지?”
“죽지는 않았을 걸요?”
“······.”
아. 그렇구나.
끝장이 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곧 끝장낼지도 모른다는 건가.
“라이아. 내가 계속 말했지만, 죽여도 된다고는···.”
“안 되나요?”
“······.”
라이아의 그 빛나는 투명한 눈동자에 으음.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나는 얼음 정령족과 호감도작이 풀로 되어있고, 그 근거는 역시 공통된 적 ‘그랑펠리시에’ 덕분이다.
그랑펠리시에를 죽이고, 라이아의 호감도를 더 올릴 수 있다면, 이 곳을 벗어났을 때 적어도 모든 얼음이 나의 지배하에 놓인다.
즉.
마력을 얼음으로 전환해 대륙 전체에 일괄적으로 뿌린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라이아의 힘이 필요하다 이 말이다.
반대로 불의 정령을 이용한 이동식 포차 사업도 포기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하여도.
나는 사업보다는 신의를 우선하는 인간이다.
“알겠다. 아쉽지만 그랑펠리시에는···.”
“후후. 농담이에요. 안 죽였답니다. 죽일 일도 없어요.”
“그런가?”
“예에. 그렇게 쉽게 죽여버리면 재미없잖아요?”
그리 말하며 환하게 웃는 라이아.
아.
그쪽이셨구나.
***
그 뒤로 라이아는 기쁜 듯 나에게 잘 대해주기 시작했다.
그게 어느정도냐면, 진짜 부담될 정도로.
“그러고 보니, 울프람. 우리 보물고에 있는 보물들에는 관심이 없나요? 정말 당신만을 위한 진정한 보물들만 잠들어있는 보물고가 있는데···.”
“호오. 그거 흥미롭군. 무엇이 있지?”
“최상급 보석들부터 시작해서 마법지팡이. 단검. 혹은 옷이나 갑옷까지 있답니다. 뭐든 당신이 집고 싶은 대로 집어가도 괜찮아요.”
“흐음. 그렇군. 하지만 정령들이 무언가를 공짜로 주는 경우는 없지. 이 경우에는 내가 너무 큰 이득을 본다.”
“어머. 그것도 괜찮답니다.”
“어째서지?”
“그 보물을 받으면, 저희의 사이가 더욱 깊어질 테니까요. 후후.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나요? 그렇다면 얼음의 신전으로 당신을 안내할게요.”
“아니. 괜찮다.”
“어째서죠?”
“얼음 정령의 수호자가 될 생각은 없거든.”
“어머나···.”
얼음의 신전이면, 가자마자 얼음 정령의 수호자라는 서브타이틀을 얻잖아.
그런데 게임 내에서 얼음 정령의 수호자라는 건,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나 얼음 정령을 불러내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대 2T까지 얼음 관련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브 퀘스트. 수호자의 의무가 시작됩니다.】
이렇게만 보면 진짜 좋거든.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언제 어디서나 라이아가 내 거동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즉.
“감시당하는 취미는 없다.”
“후후. 역시나. 눈치가 빠르네요.”
“하지만, 너의 감사한 마음은, 거짓 없이 내게 전해졌다.”
“그것만으로 부족해요.”
“하지만 이건 역사상 최초지.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얼음 여왕에게서 진실된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는 최초의 인간이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어떻게, 그걸···.”
“라이아. 너와 위대하신 선조님은 상호 협조 관계였지. 서로 감사하고 이해하는 관계는 아니었지 않나.”
“어머,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나보네요. 아니면···. 황손인 당신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서가 따로 있나요?”
나는 그 질문을 미소로 얼버무렸고, 라이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맞아요. 저는 단 한 번도 하르크에게 감사한 적 없답니다. 그야···. 세상이 멸망하건 말건, 저는 저 불쟁이 계집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불과 얼음이 친해지게끔 세계는 이루어져있지 않으니 말이다.”
“예에.”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하르크가 라이아와 그랑펠리시에에게 도움을 구할 때는 어느정도 무력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다들 한 조직의 수장인 이상. 그냥 도와줘! 한 마디에 도와줄 리가 없다.
대의로 뭉치는 놈들이 제일 다루기 쉽고, 재물로 꼬이는 놈들이 그 다음.
하지만, 서로 죽여라 싸우는 두 집단을 우리 같이 공투해요 하는건, 도무지 답이 안 나오지 않나.
“솔직히 말하자면, 싸움은 백중세였어요. 저와 그 불쟁이 계집. 둘 중 하나가 죽으면서 끝날 정도로 험악했죠.”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랑펠리시에쪽이 압도적으로, 지이이인짜 유리했다.
생각해봐라. 걔는 영상 수십만도까지 열을 올려서 때릴 수 있지만, 영하는 이백몇십도가 끝이다.
영하 수천도의 【앱솔루트 제로】 같은 스킬은 그, 90년대 과학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소년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능력이다.
그런고로, 일방적으로 쳐맞기만 하던 라이아가, 이렇게 그랑펠리시에를 일방적으로 팰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최초.
그녀가 천 년은 살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건 꽤나 영광스러운 위치다.
라이아가 화상을 입어가며 끓인 따듯한 차는, 그녀가 혐오하는 온기를 오직 친구를 위해 감당했다는 증거다.
“정말 고마워요. 울프람 폰 로엔그린. 나의 친구. 나의 영원한 동지.”
“그 감사인사. 영광이라 생각하며 받겠다.”
나와 라이아는 잠시 티타임을 가졌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래서, 정말 신전 안 갈 거예요?”
“안 간다.”
“칫.”
혀 차지 마라.
진짜.
***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사라진 이후.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는 차를 급속으로 얼려 마셨다.
차는 눈처럼 곱게 갈렸고, 찻잔 안에는 작은 눈 동산이 생긴 모양새.
그것을 입가에 대고 마시는 것은, 마치 컵빙수나 슬러시를 입 대고 마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행에, 최근 간부로 커가고 있는 릴리아가 물었다.
“그건 무슨 새로운 취미인가요. 여왕님?”
“계속해서 차를 끓여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마시기는 힘들더구나.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마시면 서로 계속 티타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낸 계책이란다.”
“티 타임이라는 시간이 마음에 드셨나요?”
릴리아의 물음에 라이아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실것. 이라는 개념은 아직 생소하지만, 두 사람이 그저 앉아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이름을 붙인다···. 후후. 인간의 개념은 재미있고, 가끔 마음에 드는구나.”
릴리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생각해보면 이 개념도 인간에게서 처음 배운 것이다.
“울프람은 인간. 우리는 정령. 서로간의 개념과 가치관 차이는 명확하지만···. 그렇기에 알아가고 싶구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개념 속에 사는지.”
“하지만 여왕님. 울프는 결국 인간이에요.”
“그래. 알고 있단다.”
릴리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그 말의 의도를 라이아는 정확하게 캐치했다.
울프람은 인간이다.
가치관으로서 종의 차이가 아니라, 순수하게 종으로서 차이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작 백 년 밖에 살지 못하는 수명이지.”
“네···. 울프는 정말 최고의 친구지만···.”
“하지만 릴리아. 친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예? 잘 모르겠어요.”
“상대의 가치관에 감화되며, 나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가르쳐주고, 서로의 시선을 결국 같은 높이에 놓는 것이란다.”
“우···. 어려워요.”
“후후.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단다. 내가 울프람을 위해 차를 탔듯, 울프람도 나를 위해 조금만 변해주면 되는 일이에요.”
그래.
아주 조금만 변해주면 된다.
예를 들면.
“영원히 내 곁에서 살아가게끔, 그 수명을 정령과 같이 늘린다던가. 그 정도의 타협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 역시, 현명하세요! 하지만···. 인간을 정령화시키는 정령석은 전부 써버렸는걸요?”
“그 점도 걱정 없단다.”
“?”
후후. 하고 라이아는 웃었다.
“나한테는 그 시절부터 함께 한 아이도, 친구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야.”
그래.
꼭 정령일 필요는 없다.
드래곤의 권속.
요정의 탈피.
정령화.
그래. 방법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일까.
어느쪽이든 영생을 살면 그만이다.
“내 최초의 친구는 영생을 기뻐해줄까?”
“그럼요! 오래 사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그렇지? 그럼 다른 아이들에게도 연락을 넣어봐야겠구나.”
다행히 자신의 주위에는 같은 목표를 둔 동료는 얼마든지 있다.
“어린 필티아와 나의 벗 엘피라네부터 찾아볼까?”
“제가 연락을 넣을게요!”
울프람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면, 웃으며 기뻐하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