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48)
547. 그녀 목소리
음.
유즈나엘은 천족이 맞다.
그래서 언제 천계에서 떨어지느냐가 스토리의 기준점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변수통제가 안된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변수를 통제할 생각을 못하고, 그냥 언젠가 떨어지면 떨어지겠지. 라는 감각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즈나엘은 패키지에 그려져 있으면서도 만나기 더럽게 힘들고, 만나더라도 루트를 열기가 더럽게 까다롭다.
예를 들어 이브 스토리가 한창인 6장에서 만날수도 있고, 이졸데랑 함께 졸업하겠다고 마음먹은 10장에서 만날수도 있다.
그 상태에서 유즈나엘에게 걸맞는 키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루트를 열 수 있는게 유즈나엘 루트가 되시겠다.
나보다 더 연배가 많은 할배 유저들은 ‘흘흘흘···. 98년도 미소녀게임에나 나올법한 장난질이구먼···. 내가 또 이런건 못 참지···.’ 하면서 즐겁게 플레이하지만 모든것이 통제되어야 하며 완전한 변수가 없어야 갓겜이라는 지론을 가진 우리들에게, 유즈나엘은 썩 접하기 좋은 히로인은 아니다.
다만 유즈나엘의 특수한 스토리가 있었기에, 우리들은 유즈나엘을 좋아했지.
말 그대로 켈터스를 위해 준비된 운명의 히로인이다.
하지만···. 맞다. 천족이다.
즉 나의 처형집행을 꽂으면 그대로 죽고, 엘리스처럼 감지의 능력이 탁월한 녀석이 눈치를 챌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유즈나엘을 일부러 무시하면, 엘리스는 내가 황손으로서 그 책임을 다 하고 있지 않다 판단하여 나를 혐오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충분히 쓸곳이 있는 엘리스랑 척을 지는건 조금 곤란한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흠. 그런가. 네 의견은 알았다.”
“그럼···.”
“하지만 중간계에는 이미 천족이 있다. 알고 있지 않나?”
“네, 네? 진짜입니까?”
“그렇다. 신전에 칼레도니아 아루아···. 그녀는 천족이다.”
“어, 어라···. 진짜요? 그런 분이 아니 중간계에 천족이 있었다고요?”
“음. 마지막까지 포로로 남았다가 천계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멍청이지.”
“아···. 그, 그렇군요. 중간계에 천족이···. 천족이 있었구나···.”
효과는 대단했다!
엘리스는(은) 혼란에 빠졌다!
“네 말마따나 천족이라 치고 천족은 신뢰하고 숭앙하지 않으면 그 권세를 넓힐 수 없다. 즉 그녀가 포교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뭐···. 그리 적대적일 것 같지는 않구나.”
“······.”
엘리스는 여전히 불안한 듯 이쪽을 바라본다.
알겠다. 알겠어.
의심을 사지 않을 정도의 작업은 해야겠지.
“나중에 기회가 나면, 만나보도록 하지.”
“정말이신가요!”
“음. 그래. 약속하마.”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리스는 드물게도 밝은 얼굴로 고개를 몇 번이고 숙였다.
나는 현대 지구. 대한민국에서 게임으로 이 세계를 봐 왔지만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천족과 마족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무겁고 두렵게 다가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거 둘 다 전부 찢어버리면 되는데, 뭘 그리 두려워할까.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한 번 유즈나엘과 만나볼 필요는 있겠군.
별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야.
***
엘리스가 떠나고, 다시 시장 거리를 돌기 시작했다.
근처 가게 앞에서 묘한 냄새가 나고 있길래 들어가보니 점장이 엄청나게 거대한 솥을 닦고 있었다.
“있나.”
“장사 끝났습니다. 누구시죠···. 황자님?”
“음. 묘한 냄새가 나서 말이다.”
“아. 예. 앉으시죠.”
그리 말하고 가게 구석에 대충 앉았다.
이런 가게가 있었나? 내게서 납품받는 가게가 아니다.
일단 메뉴판. 1인분 1,000린 이게 끝. 메뉴 설명도 없다.
거기에 가게 전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영 좋다고 하기 힘들다.
“음. 설거지 중이었나? 미안하군.”
“아, 아닙니다. 곧 끝납니다.”
“다른게 아니라 궁금하게 있는데, 물어도 되겠나.”
“네. 말씀하시죠.”
“대체 이 가게는 무엇을 팔고 있지? 메뉴가 영 궁금해서 말이다.”
“아···. 하하. 황자님께서 신경쓰실만한 메뉴는 아닙니다···. 라고 말씀드리는 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군요. 요컨데 저희는 ‘하루 스프’를 팔고 있습니다.”
“하루 스프.”
“예에. 요컨데 식당에서 한 끼 먹을 돈도 없는 학생들에게 끼니당 천 린에 판매하는 식당이죠.”
“그런 판매 단가로 이윤이 남나?”
“음. 말씀 드리는것보다 직접 보여드리는게 빠르겠군요.”
그리 말하며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 안의 재료를 보여줬다.
아.
이 냄새 그거였구나.
상하기 직전의 우유와 치즈에서 나는 군내다.
“흑빵 쪼가리에 우유를 넣고 끓인 다음 치즈를 올립니다. 하루 살기 위해 먹기 때문에 하루 스프입니다.”
“단가가 쌀 거 같진 않다만?”
“대부분 상하기 직전에 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명확한 식품공업이 발전한 세계가 아니다. 일단 끓이면 탈은 안 날 확률이 높으니 끓여서 먹여보자. 라는 건가.
내가 빤히 보자 점장도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통기한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세계니, 본인도 가끔 상한걸 넣는다는 의미겠지.
“지금 제프린의 전반적인 식사 사정이 좋아졌는데, 그럼에도 하루 스프가···. 팔리나?”
“무척이나 잘 팔립니다. 아주 무척이나요.”
“······.”
“일괄 공급가 7,000린 미만의 도시락이라 한들 모이면 한 달에 21만린이 됩니다. 하지만 하루 스프는 1,000린. 어떻게든 배를 채우면 된다는 학생들은 많습니다.”
“······.”
아! 이렇게나 제프린의 식량사정이 어둡다.
“그렇군. 알겠다. 고견 감사하도록 하지.”
“고견이라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가게를 나왔다.
음.
이건 이브를 만나서 해볼 이야기로군.
***
그렇게 바로 학생회로 쳐들어갔다.
물론 허가는 없다.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들어가는 거지.
학생회장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
내가 쳐들어가자 이브는 가는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봤다.
“그래서 또 뭐죠.””
“하루 스프라는 음식을 알고 있나?”
“듣기는 좋네요. 하루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다 채워 넣은 스프?”
“아니. 그날 상하는 식재료를 전부 넣고 끓여서 하루를 어떻게든 버틴다는 의미다.”
“?”
내 말에 이브의 눈동자에 우주가 깃들었다.
도무지 이해 못 할 말에 뇌가 해석을 거부하고 우주로 날아간건가.
“그런 요리가 있다. 가격은 그릇당 1,000린. 꽤 잘 팔린다고 하더군.”
“잠깐, 잠깐만요. 그런게 있다고요? 그걸 판다고?”
“풀을 뜯어먹지 않고 남는 식재가 전부 저런 상회로 돌아서 하루 스프라는 식량이 탄생했다고 하더군.”
“무슨 소리에요! 그럼 그 전에는 대체 뭘 먹었는데요?!”
“풀 뜯어 먹었다.”
“하하 농담···.”
“······.”
“농담이죠?”
그러게.
농담이면 좋겠네.
나도 네프티가 자기 식권 다 팔아먹고 풀 뜯어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긴 좀 그렇잖아?
“그, 그래요. 풀보단 그래. 끓여먹는게 낫죠. 하지만 아무리 끓여먹는다고 한들, 상한 식재료를 먹어도 되는 건 아닌데···.”
“음. 그렇지. 결국 식문화 개선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잘 들어요. 저희 학생회는 지난 그 어떤 학생회보다 청렴결백하게 예산을 운영했다고 생각하고요. 거기에 비리의 온상인 전 학생회까지 쳐낸 후 가장 많은 식사 환경 개선을 이루어냈다고 장담하거든요?”
너무 그러지 마.
전 학생회장이 울잖아.
“그래서?”
“솔직하게 말 할게요. 그렇게 했어도! 예산이 없어요.”
“······.”
“죽었다 깨어나도 돈이 안 나와요. 그렇다고 제프린에서 상업을 일으키는 학생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하루 스프같은 것을 폐기시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매점 사장님들도 열심히 번창하고 싶을 뿐인데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잘만 내던 세금을 몇 배로 더 늘릴 수는 없죠.”
“그것도 맞는 말이군.”
“솔직히, 제 무력함을 실감해요. 네. 이번 만큼은 저도 할 말이 없네요.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 말하며 이브는 미간을 좁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보다 약해진 기세.
빛의 학생회장.
그 어떤 부당한 현실을 들이대도 굽히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 세상을 빛내겠다고 하는 그 마음.
그게 이브의 아이덴티티고, 이런 세계에는 다시 없을 정도로 빛나는 모습이다.
다만 뭐···.
이렇게 자기가 손도 발도 못 쓰는 일에는 깨꼬닥 하고 멘탈이 나가버리는 문제가 있다.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없나.”
“모르겠네요. 결국 하루 1,000 린 이상으로 식사에 돈을 쓸 수 없는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돈을 더 쓰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음.
그것도 그렇다.
“부정적인 말만 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이브.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지.”
“······.”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아뇨. 당신의 입에서 포기하지 말라. 조금 더 남을 위해 생각해보자. 라는 말이 나오니까 우스워서···.”
“그게 그렇게 우스운 일인가?”
“후후. 아뇨.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게 우스운 거에요.”
“음?”
이브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뭐지.
내가 남을 생각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웃···. 모르겠다. 뭐야 대체.
“알겠어요. 조금 더 생각해보죠. 음···. 우선은 그 하루 스프 자체의 식재료를 검열하는건 어떨까요?”
“더욱 음지에 숨어서 반나절 스프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군. 그건 좋은 안이 아닌 것 같다. 인력 확충도 보통이 아니고 말이다.”
“그 말도 맞네요. 그럼···. 어디보자. 다른 식재료를 공급할 수 없을까요? 거의 100린 정도에 말이죠.”
“100린인 이유가 뭐지?”
“그 정도는 학생회 예산이랑 지원금으로 어떻게든 지원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진짜냐.
규칙상 전원분의 급식이 나가고, 그 다음 우리 도시락도 30,000개가 나가는데 지원금은 겨우 인당 백 린이 한계인가.
하지만 100린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봐야 뭐가 있을까.
“모두에게 안정적으로 해독제라도 보급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혹시 100린짜리 해독초 있어요?”
“그런게 있을리가···.”
거기까지 말하고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있다.”
“정말 있나요?”
“음. 확실히 있다. 그렇군. 해독제. 그걸 생각하지 못 했어.”
미봉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탈이 날 것 같은 상황을 막아낼 수 있다.
완전한 식생활 개선은 안 되지만···.
“그럼 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겠군.”
“어떤 방법인지···. 말 안해 줄 거죠?”
“그건 하고 나서의 즐거움으로 알아두도록. 나중에 보고서는 올리마. 건당 100린의 지원금으로 우리 편의점에서 이 작업을 따내도록 하지.”
“마음대로 하세요. 보고서만 제대로 올리면 예산 집행을 하도록 하죠.”
슬쩍 웃고는 학생회실을 나선다.
문을 열고 나서기 직전.
“고마워요. 울프람. 이번만큼은···. 예에. 솔직하게 말할게요. 그리고 기대할게요.”
“하. 답지 않게 약한 소리나 하고, 나는 그런 놈을 학생회장으로 둔 적 없다.”
***
그리고 다음날.
하루 스프 매장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전날 새벽부터 여기저기서 상하기 직전의 식재료를 떼 와서 전부 끓여야 하는 일도, 충분한 중노동.
그리고.
“이거 말씀이십니까···? 이걸 하루 스프랑 손님들한테 같이 드리라고요?”
“음. 배탈에 좋은 물약이다. 학생회에서 나온 예산으로 집행한거니 한 그릇에 하나씩 공짜로 주면 된다.”
“아···. 그,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배탈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종종 나와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점장은 그제야 처량한 미소를 거두고, 진심으로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영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게 뭐냐고 하면···. 해독제다.
그것도 엄청 연한 해독제.
물 1,000L에 해독초 10뿌리. 그걸 500mL로 포장한 물건.
하지만 내 포션 제조는 이미 하늘에 도달했으니 효과는 확실하다.
식중독도 뭐. 엄연히 말하면 중독이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괜찮다. 그럼 앞으로도, 가장 아래에서 힘겨워 하는 학생들을 위해 힘내줬으면 하는군. 아니,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하겠다. 그때까지만, 힘 내다오.”
“고, 고개를 숙이시면 안 됩니다!”
내가 깊게 고개를 숙이자 점장은 적잖이 당황했다.
허나 황실 혈통은 내 이런 행동을 ‘황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며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점장과 서로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매장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하루 스프를 먹기 위한 행렬이 가득 차 있었다.
그 행렬을 스쳐지나가던 그 때.
“오늘도 맛있겠네요!”
“······.”
등 뒤에서 밝고 활기차며 어둠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빛에 감싸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수만 번은 족히 들었을 소녀의 목소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