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5)
“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위그드라실의 전령이자 이브의 수호기사. 기사학부 4학년의 차석.
은빛 포니테일이 특징이고 대자연과의 공감력이 뛰어나 【정령 기사】의 타이틀을 얻은 기사.
그녀는 자신의 주군, 이브 폰 로엔그린의 지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디 황실에 충성하는 신하라면 있을 수 없는 추태.
허나 이브의 지시가 그만큼 예상 외였기에, 실피아는 다시 되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는지요?”
“이번 검은 깃발 원정에 울프람도 함께 할 거라고 했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군. 어째서 그런 판단을 하셨는지요?”
“음. 그게 말이죠.”
이브의 말이 궁색해진다.
주군께 반문을 하고, 거기에 고민까지 하게 만들다니!
이는 신하로서 자결을 해야 할 안건.
실피아는 주인의 답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추론했고, 답을 내렸다.
“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이, 이해했다고요? 어떻게?”
“저는 주군의 검이니까요.”
“······?”
상록의 숲에서 자란 실피아.
이름의 뜻과는 정 반대.
귀족가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그녀는 이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일반 학생 신분으로 내려간 울프람이 이브와 함께 해야 하는가,
그 안에 있는 황실의 더러운 암투를 깨달아 버린 것이다!
황실 혈통.
이브 폰 로엔그린과 울프람의 차이.
그리고 복잡한 정치.
“어쩔 수 없군요. 황실의 외압입니까.”
“네, 네?”
“어쩔 수 없는 일. 허나 이 굴욕을 가슴에 새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브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으나 실피아는 눈에 눈물까지 맺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이 굴욕을 곱씹으며, 주군과 함께 영광의 길을 걷겠습니다. 천하를 쥐실 그 날 까지.”
“···아, 음. 고마워요. 실피아.”
잘은 모르겠지만, 납득 한 것 같다.
“아. 그럼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한 명을 넣은 채로, 원정대를 꾸리면 됩니까?”
“그렇죠?”
이브의 말에 실피아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도 첫 원정 아닙니까. 주군.”
“네. 그렇죠. 교내 단속은 계속 했지만, 밖에 아지트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으니까요.”
“헌데 그 와중에 울프람이라는 불안 요소을 넣어야 한다니···. 그의 스테이터스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아하.”
어느 의미 실피아의 말이 옳았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스테이터스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냥 폐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울프람의 한계를 단정 짓게 해주는 것은 또 아니다.
“그 부분은 괜찮을 거예요.”
“그렇···, 습니까?”
“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합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따르겠습니다.”
이브의 그 말에 실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께서 정하신 길에 틀림이 있을 리가 없다.
허나 주군도 인간이고, 실수를 할 때가 있다면, 실수 한 이후에 신하된 입장에서 최대한 보좌하면 되는 일.
실피아는 이브의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큰 실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학생회실을 나서면서, 실피아는 나직이 읊조렸다.
“부디, 이 이상 이브님께 부담을 안겨주지 마십시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큰 실수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
***
나를 추방한 이들과 함께 하는 두근두근 원정데이!
와! 오늘은 저희 손으로 직접 추방한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모셨어요!
“······음.”
그 뒤에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로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처형 파티 같은 거 하지 않겠지?
설마, 이브가 그런 나쁜 짓을 할리가 없지. 오빠는 우리 동생 믿어.
하지만 검은 깃발이 울프람을 죽였다고 하고, 안타깝게도 흉수의 손에 죽어버린 울프람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엔딩을 내버리고, 학생회 모두가 공범이 된다면 어떨까!
“···아니. 대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실제로 겪어봐야 알겠군.”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이브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다. 나를 띄워주겠다고 하면 진짜 띄워주겠지.
“더군다나 이 원정은 기억에 있다. 가서 손해 볼 건 없어.”
켈터스 입장으로 해본 거긴 했지만, 2-1 이벤트였고, 꽤 상징적인 아이템이 떨어진다.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아이템.
더군다나 본편에서 이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입수하기 까다롭다.
“음.”
정말 두근두근 캠핑 이벤트가 될 듯하군.
울프람을 증오하는 이브 휘하의 학생들, 나의 편은 호적 메이트인 이브 뿐. 거기에
“그러고 보니.”
원래 2막을 유저들끼리 칭하길 두근두근 아카데미. 혹은 썸섬 아카데미였다.
“다른 의미로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군 그래.”
뭐.
기왕 두근거릴 거라면
연애나 썸을타기보단 생사의 위기를 느끼는 두근거림이 더욱 격렬하지 않겠어?
***
그리고 다음날.
실로 오래간만에 나는 위그드라실의 엘프들이 장사하는 숲의 거리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들린 게 옷을 팔기 위해서였던가? 그립구만 그래.
“···울프람? 오 이런 젠장할.”
“아이에에!! 울프람! 울프람 어째서?!”
와 엄청난 환영인사 고마워요. 그리고 마지막 넌 뭐냐 왜 숨기는데.
쯧.
아무튼 저들의 힐끔힐끔 보는 시선을 피하고 나는 숲의 거리를 걸었다.
한 쪽에는 최근 들여온 공법으로 지어지는 신식 건물들. 다른 한 쪽은 고전적인 목조 건물.
도시 엘프와 숲 엘프. 엘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거리는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웠고, 혼잡하면서도 질서정연했다.
보통 소설에서는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지만, 내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판이군.”
이 되시겠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옆에서는 공사가 한창인 동대문 도떼기 시장 같은 느낌으로···.
뭐 아무튼. 오늘은 사야 할 물건도 있으니 후딱 사서 돌아가자. 그리 생각하며 걸어가자니 한 명의 인영이 보였다.
“어이 네 씨! 점심시간이야! 새참 먹고 일해!”
“예!”
······쟤는 왜 여기에 있지.
네프티는 짊어지고 있던 H빔을 바닥에 툭. 하고 내려놓고는 허리와 팔을 쭉 들어올렸다.
햇살에 비춰서 반짝이는 땀. 이런 봄부터 김이 모락모락나는 네프티를 보고 있자니 저게 진정한 근로청년이구나 싶었지만 모른 척 했다.
요새 우리는 너무 많이 만났어. 너를 만나면 귀찮아. 한 밤 중에 정산비율 따지려고 편의점 쳐들어오지 마.
“어 선배님!”
“음.”
젠장. 들켰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별 일 아니다. 근로 중인가.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선배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내가 뭘 했다고 수고했다 말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네프티가 히죽 웃었다.
“정산비. 감사합니다.”
“···음. 아 그렇군. 네가 판매를 담당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십만 린 정도 더 떼어줬다. 네프티 사십만. 나와 루디카가 삼십만.
루디카는 전부 다 가져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는 또 없으니까.
“십만 린이면 제 하루 일당입니다. 제 하루는 선배님 덕분에 늘어났습니다?”
“으, 음. 그러냐···.”
“넵!”
그리 말하며 네프티는 히히 웃었다.
나는 네프티를 빤히 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그런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나?”
“예? 아아···. 이게 편해서 잠깐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짧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상태의 네프티. 평소의 웨이브 진 단발이 아니라 저런 날렵한 모습이라니. 늙은 울프람은 저런 젊음이 부럽구만 그래.
“그래서 선배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음. 공방을 찾고 있다. 싸고 튼튼한 모포나 침낭을 파는 곳.”
“···아! 그런 곳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지? ···거기에 믿을 수 있나?”
“저희 현장 작업복을 전부 발주하는 곳입니다! 제 목장갑도 나시티도 전부 다 거기서 주문했습니다?”
“오.”
그러면 또 믿을 수 있지.
***
위그드라실의 현장 납품 포목점에서 튼튼하고 질긴 텐트와 침낭. 모포 베개에 난방도구를 포함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을 산 뒤. 배송을 부탁하고 편의점으로 귀환했다.
집에서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는 파트라슈를 노려봤다.
뭐 어쩔 거냐는 듯 발로 배를 벅벅 긁는다. 뭐야 저거.
곧 있을 산행을 설명하니 티 나게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 대신 반나절 정도 자유를 주겠다고 하여 노사 대타협의 장을 열 수 있었다.
“그렇군. 내일은 다른 곳으로 외출을 나가는가.”
“음. 이번에는 진짜 위험해 질 수 있다.”
“···잠든 산맥은 잘 모르지만, 그 쪽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 진 적은 없다만?”
“동행하는 학생들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군. 그럴 때는 어떻게 하지?”
“나를 리어카에 태우고 도망치면 된다. 무조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알겠다. 간단하군.”
아무튼 그렇게 런 각을 깔끔하게 잡은 뒤. 제조 키트를 깔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뭘 만들지?”
“밤새 지속되는 핫팩이다.”
“수가 꽤 많군 그래?”
“다들 필요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 너를 적대하는 놈들과 동침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과연. 자신을 증오한다 해도 애정으로 감싼다?”
파트라슈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고 나도 웃음으로 회답했다.
“나한테 잘 보이는 녀석에게 팔아먹어야지.”
“···그런가. 그렇군.”
뭘.
편의점에서 폐기 말고 뭐 공짜로 주는 거 봤어?
***
그리고 두근두근 캠핑 산행날 아침이 밝았다.
모이기로 한 곳은 잠든 산맥 쪽을 향하는 아카데미 출구 앞이었고, 오후 일찍 모이기로 했기에, 나는 정오 부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브와, 낯익은 한 명의 기사학부생이 있었다.
“왔군요.”
“음. 기다리게 했나?”
“아뇨. 괜찮습니다. 그, 이 ···일.”
“뭐지?”
이브는 우물쭈물거리다 이내 한숨을 푹 쉬고, 쓰디 쓴 약을 한 번에 삼키듯 속사포로 내뱉었다.
“일찍왔네요.수고하셨습니다.부지런하군요.대단하네요.”
“······.”
이렇게까지 감정이 안 실린 칭찬은 또 처음이군.
이게 네 방식의 띄워주기인가?
믿겠다. 너는 멍청이가 맞군.
“됐다. 어울리지 않는 짓은 하지 마라.”
“······으.”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한다. 너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 질 거 같을 때. 나를 비호해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모두가 적으로 돌아서도, 이브는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면 도망쳐 볼 만 하지.
“···그게 무슨 의미지. 울프람 폰 로엔그린.”
“무슨 의미냐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니, 무슨 의미냐는 말이다.”
은발을 휘날리며, 나를 노려보는 기사학부생.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이브의 검이자, 그녀가 나에게 반역을 성공할 때 옆에서 나에게 시비를 걸던 기사다.
얘가 아마 나보고 혼자서 못 살 거라고 으름장을 놨던가. 내가 그 때 하면 어쩔건데. 라고 답했지?
그러니까 얘는 주변의 색만 봐도 알지만 푸르딩딩한게 나를 적대할 기색이 가득하다.
솔직히 좀 쎈 애기도 하고, 무기에 바람정령을 인챈트해서 공격해오는 속성검은 빠르고 날카로워서 무섭다. 깝치면 안 되는 애 중 하나.
맞아 깝치면 안 된다. 안 되는데
“네가 알아서 어쩔 거지?”
“···뭐라?”
“주제를 알아라, 엘프. 네놈은 황실의 혈통이 나누는 대화에 감히 끼어들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큭.”
안 되는데 어쩌라고?
내 배알이 너를 까라고 말하고 있는걸. 내 안의 작은 울프람이 ‘엿이나 까잡수세요! 하하!“를 외치는걸!
“······후우.”
이브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있다. 심경으로는 실피아의 편을 들고 싶지만, 나를 띄워주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아무튼 이 묘한 공기를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연 것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었어요. 울프람 참 착하다. 분위기 엿 같으니까 바꿀 줄도 알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다들 늦는군. 산행 아니었나? 일찍 출발하는 편이 좋을 텐데.”
“···그런가요?”
이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
아니 이걸 되물어 본다고?
“여기서 잠든 산맥. ···어디를 향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턱까지만 가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만?”
“네. 어차피 야영 할 거니까요.”
“야영 준비는 제대로 끝마쳤나?”
“그럼요. 다들 텐트하고 침구는 가져 오라고 했는걸요.”
“식사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
묘하게 불길하다.
“그럼, 한 가지 더 묻지. 불침번은 정했겠지? 모닥불은? 경계를 위한 보조 도구나 체온 저하 방지를 위한 온열 도구는?”
“······?”
이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흥. 고작 잠든 산맥이다. 몬스터가 나와 봐야 얼마나 강한게 나오겠나. 그리고 계절은 봄이다. 밤이라도 추워져봐야 얼마나 추워지겠나?”
“······이브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아.”
실피아는 자신이 내 뱉은 말을 완전히 긍정하고 있는데, 이브는 그제야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내가 하는 말과,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 이제야 일체화가 된 것이다.
“한 가지 묻지. 이브. 혹시 외부 원정은 처음인가?”
“···교수님 지도 아래에 해본 적은 있어요.”
“그 때는 ···외부가 아니라, 외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든 곳이었겠지?”
“···············.”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얘네는 ···외부로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다.
비슷한 환경을, 교수님이 제공하는 와중에 그저 겪어 본 것 뿐.
해병대 캠프와 해병대가 다르듯.
실내 클라이밍과 암벽 등반이 다르듯.
지금부터 향하는 곳이 진짜 몬스터가 나오는 전장이라는 사실을 쉽게 보고 있다.
“나중에 울며불며 나에게 매달리지 마라.”
진짜 어떻게 되어도 모른다.
이 모지리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