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55)
554. 발칙한 상상
심해 속.
몸은 수압에 짓눌리고, 움직일 자신도 없다, 해류에 말려들어 멀리 사라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붙잡는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눈 앞에 있는 낙원.
우리의 휴식처가 코앞에 있음에도, 한 발도 다가가선 안 된다.
어쩔 수 없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가빠지다 이내 멈춰가는 숨.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머리. 사라져가는 의식.
그건, 그냥 상황이다. 상태다. 흐르는 피도 쉬어지지 않는 숨도 그 뒤에 따라올 공포를 넘어설 수 없다.
가장 끔찍한 것.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목표. 희망. 그 모든것이 꺼져가는 것이었다.
사장 형이 내어준 기회. 허리병신 이영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희망. 행복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던 삶에서 마지막으로 발급된, 행복해질 수 있는 티켓이 눈 앞에서 찢겨지는 절망.
그래서, 나는 기회를 잡자마자 목표에 집중했다.
두 번째 기회를 잡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인간이란 이토록 간단하게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단 한 순간도 눈을 돌릴 틈이 없다.
두 번째 눈을 감을 때는 웃으면서 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슬쩍, 옆에 있는 밀푀유를 바라봤다. 괴로워 보이는 얼굴.
솔직히. 나도 괴롭다.
저 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게 맞는 걸까.
저 녀석들은, 정말 마계의 문에서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있을까.
꽤 무거운 이야기고, 무서운 이야기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나 혼자서 하도록 하자.
아일라에게 손짓해 자기 자신을 흑수정의 구 안에 감싸게끔 한 다음, 밀푀유와 상호 이동시키면 아일라는 바다속에 들어왔음에도 숨이 막히지 않고, 밀푀유는 저 낙원으로 몸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밀푀유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메세지가 날아왔다.
【조금 더 버텨볼게요.】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저 의지를 꺾을 자신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뭐, 나도 밀푀유도 1회 부활하잖아.
호문클루스가 있는 장소에서 안전부활하니까 괜찮겠지.
***
아일라는 멍하니 심해 저편을 바라봤다.
“둘 다 굉장히 괴로워 보입니다.”
“그렇네요···.”
옆에서 들려오는 네프티의 고통 어린 말에 아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째 마계의 문부터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울프람의 그 말이 허언이 아닌 듯.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모험이나 훈련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훈련.
아니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훈련이네요. 진짜 죽더라도 상관없다···.”
“네.”
울프람에게는 1회 부활 능력이 있다고 들었다.
밀푀유 또한 네프티가 꼭 끌어안고 있는 호문클루스 인형으로 부활할 수 있다고 한다.
죽음이라.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야 자신의 나이가 몇인가.
올해로 열아홉. 졸업하면 스물이다. 어리기 그지 없는 나이에 뭔 죽음을 벌써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네프티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매일 생각합니다.”
“네?”
“저는 로열가드. 그리고 울프람 선배님이 가시는 길은 험난한 길. 그렇다면 제일 먼저 화살을 막고, 검을 쳐내고···. 선배님이 계신 전장에서 제일 먼저 죽어야 하는 건 저니까요.”
“그런가요.”
“하지만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대단하네요.”
그 충의는 실로 대단하다. 아일라는 내심 감탄했다.
허나, 거기까지면 그저 감탄으로 끝났을 것이다.
“제가 죽으면 울프람 선배님은 엄청 후회하실 것 같습니다. 평생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네. 그렇겠죠.”
“그래서 죽는게 두렵지 않지만, 무섭습니다. 제가 빠지는 것 만으로도 울프람 선배님이 웃지 못한다면···. 그 때문에 다른 분들도 웃을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아일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말은 정확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과 밀푀유가 조금 다쳤다는 이유 만으로 스스로를 폭주시켜, 그 거대한 여우 괴물의 목을 쳐버리지 않았나.
그 뒤로 한동안 울프람이 체력 1···. 즉, 조금만 움직여도 죽어 버리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단 한명도 잃지 않는다.
파티원을 지키고 싶다.
‘상실’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남자.
그 ‘상실’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죽어 없어지는 것?
아니면···.
평소의 밝디 밝은 모습이 아니라, 트라이스타 가문의 후계자로서···. 그리고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약혼녀로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자각해 사고를 더욱 깊게 회전시켰다.
상실이 꼭 죽음을 포함시키지 않을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래 누군가가 울프람에게 고백을 해서, 성공시킨다고 치자.
그 사람과 울프람이 맺어진다.
그렇다면 연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울프람 곁을 떠나거나, 이전처럼 울프람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 또한 상실.
만일.
나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울프람과 결혼한다고 해서···. 네프테리안의 빈 공간을 대체해 줄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럴 수 없다. 최선을 다 하겠지만, 우리는 가끔 네프테리안을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저 극단적으로 상실을 두려워하는 울프람은···. 행복하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떠올렸다.
“흐음···. 영 불가능한것도 아닌가요···.”
“아일라 선배님?”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아일라는 픽 웃고는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아직은 한참 남은 이야기.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놓은 아일라는 기지개를 쭉 폈다.
-울프람. 슬슬 죽을 거 같지 않나요? 안색이 창백함을 넘어섰는데요.
-내 체력치는 언제나 수치로 전환할 수 있다. 0.5정도 남았구나.
-죽는거 아니에요?
-아직 안 죽었잖나. 그보다 밀푀유의 체력도 슬슬 위험하다. 내가 신호하면 위치를 바꿔라.
-네. 그럴게요.
***
푸하아아아아아!
밀푀유가 휴식처 안에 들어가 내뱉은, 녀석 답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의 큰 숨은 모두를 움찔 떨게 만들었다.
저체온증. 탈진. 공포. 혼란 등. 수 없이 많은 상태이상이 밀푀유의 상태창 위에 떠오르고 다시 가라앉았다.
“괜찮나.”
“괜찮···아요.”
“버틸 수 있겠나.”
“네.”
정말.
정말 호문클루스가 발동하기 직전까지 갔다.
밀푀유 스스로도 나를 원망하거나, 혹은 ‘아 한 번 죽어서 되살릴려고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허나, 녀석의 ‘네’ 라는 대답에는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엇보다.
【밀푀유 폰 사브레의 신뢰도가 한층 더 상승합니다.】
【아일라 트라이스타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고정이동과 음성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이 녀석은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인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더더욱 신뢰해줬다.
정말로 나를 믿고 자신이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가. 알겠다. 이번 원정에서 너는 빠지지 않을 거다.”
그 믿음에 보답해주기 위해, 나 또한 최선을 다 할거다.
부활 아이템 따위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밀푀유를 살려낸다.
“후우. 그럼. 네 뜻은 알았으니 수중 여행을 즐겨도 되겠군.”
“하아···. 아하하. 네. 그래요. 선배님. 즐거울 것 같아요.”
나는 밀푀유의 손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빤히 녀석을 바라봤다.
“밀푀유.”
“네. 선배님.”
녀석은 동글동글한 얼굴로 평소와 같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나를 올려봤다.
그저 말로만 죽어도 상관없다가 아니라, 그런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게 나를 더 믿고 신뢰해준 그 모습.
고인물이라 한들 파티원 하나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파티장을 끝까지 믿어준 그 신뢰.
나는 녀석을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고맙구나.”
“앗, 익?! 헷?! 힝?!”
묘한 김 빠지는 소리를 내는 밀푀유.
그래. 미안해. 알고 있어.
다감한 나이의 여자애를 함부로 끌어안으면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이거 말고는 이 아저씨가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
한 번 더 등을 두드려 주고, 포옹을 풀었다.
“정말 고맙다. 너의 신뢰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마.”
“아, 아하하···. 저, 저야말로···. 가, 감사합니다?”
뭐야.
왜 네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거지.
“어디보자. 그러면 이제 조금 휴양을 즐겨볼까.”
시선을 돌려 다른 파티원에게 동의를 구하자.
“······.”
“······.”
두 녀석이 퀭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뭐지.
“울프람.”
“선배님.”
뭐야 저 눈.
마치, 3단계의 레지나 시엘라를 보는 듯 하다.
어째서지.
“음. 쉰다는게 그리 싫은건가?”
“그게 아니잖아요···.”
“그, 어떻게 저희 앞에서···.”
뭐야. 무슨 소리야?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네요. 밀푀유는 좋겠어요. 오늘 적금을 깬 것 수준의 보상이잖아요?”
“아하하···.”
“아일라 선배님. 방법이 있습니다. 밀푀유는 죽음 직전까지 선배님을 믿었기 때문에 저런 보상을 받았으니, 저희도 그렇게 하면···.”
“네프티. 당신은 천재에요!”
뭐지.
세 사람은 뭔가를 쑥덕거리더니, 이내 밀푀유가 한 발 물러서고, 아일라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으, 으흠. 울프람. 밀푀유는 당신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건 저희도 똑같거든요?”
“그렇군,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못 알아 들었군요. 그렇다면 증명할 수 밖에 없네요! 네프티!”
“네! 선배님!”
“지금부터 우리도 임사체험을 하러 갑니다! 호문클루스는 당신용으로 전환하세요! 제가 먼저 갑니다!”
“금방 뒤따르겠습니다!”
네프티는 호문클루스를 쓰윽 만져 자신 용으로 바꾼 뒤. 아일라와 네프티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풍덩, 하고 바다에 다이빙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상황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어째서지.
도저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그리고 방금 전부터···.
네프티의 호문클루스가, 이쪽을 빤히 올려보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쪽으로 와서 내 발목을 툭툭 치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만세를 한다.
아. 그건가.
들어올려 달라는 건가.
나는 네프티의 호문클루스를 집어들어 품에 끌어안았고, 그러자 녀석이 히죽 웃었다.
직후.
【······!!】
바다 속에서 네프티가 이쪽을 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네가 체력이 좋다 한들, 그렇게 하면···.
봐라.
금방 지치지 않나. 뭐 하는 짓이야 진짜.
***
그렇게 아일라와 네프티 둘 다 익사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에 꺼내올 수 있었다.
아일라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트라이스타류 체술은 극한 상황에서도 몸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다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꽃의 마력으로 산소는 그렇다 쳐도 주변 물을 데움으로서 저체온증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네프티는.
“푸후우우우···. 흐으···. 흐이이이이···.”
바다에서 그 허공난무가 직격타로 들어갔는지 물을 제대로 빨아들여 금방 쓰러졌다.
저쪽에서 바닷물을 빼내고, 태초의 루비를 깔아줘서 의식은 없지만, 다른 데미지도 없었다.
“울프람!”
“으, 음.”
그리고 쫄딱 젖은 상태의 아일라가 바닥에 주저앉아 이쪽을 보며 소리쳤다.
“응!”
“······.”
이쪽을 보며, 만세하듯 팔을 펼친다.
이 자세는, 방금 전 본 기억이 있다.
네프티의 호문클루스가 들어올려 끌어안아달라고 한 것.
“으응!”
“······.”
언어가 아니라 음성. 의견이 아니라 떼. 어른의 언어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칭얼거림.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으으응!”
녀석을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정말 애 썼다. 아일라. 두려웠을텐데, 한계까지 노력했구나.”
“네. 에헤헤···.”
밀푀유와 같은 방법으로 아일라를 칭찬해주고, 그 뒤에 일어난 네프티까지 칭찬해줬다.
【파티 내 ‘3인’의 신뢰도가 크게 오릅니다.】
【파티 스킬 중 랜덤하게 1개를 활성화 합니다.】
【파티 스킬 ‘유니온 가드’가 활성화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일격을 받았을 때 다른 파티원이 그 데미지를 ‘절반’ 대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또한 우리의 새로운 결속을 칭찬하고 보상을 지급했고, 기쁜 마음에 텍스트를 읽은 후, 고개를 갸웃했다.
어···.
잠깐.
이 개사기 스킬이 여기서 나온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