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56)
555. 햇살처럼 따스한
【유니온 가드】
고인물인 내 기준에서 사기스킬이라는 건 꽤 큰 무게를 가진다.
본디 ‘교과서’ 혹은 ‘정석’과는 다른 최단루트 발굴.
혹은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스킬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용.
고인물들은 언제나 변칙플레이의 달인이며, 교과서적 플레이만 하는 것은 고인물이 아니라 그냥 중수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플레이를 넘어서 게임을 응용.
하지만, 그런 D/Z SAGA에서 초보 중수 고인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개사기 스킬들이 몇개 있다.
당연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이브의 ‘빛’속성 마법 전부. 단일. 광역. 치유. 버프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이브의 마법은, 마력을 떠나서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그 다음이 바로 ‘로엔그린의 처형’ 중간계에 넘어온 마족들 천족들의 목을 슥삭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리고 그에 준할정도의 사기스킬이 바로 유니온 가드다.
물론 유니온 가드 단독으로는 개사기라 부르기 애매하긴 하다. 【그레이트 네이처 필드】와 함께 겹쳐 써야 하는데 뭐 아무튼.
“꽤나 얻기 어려운 능력인데 잘 되었군.”
“그런가요?”
세 명을 불돌 앞에 앉혀놓고 이번에 얻은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제일 먼저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얼마나 좋은 능력인지 모르는 모양.
“좋지 않다고 생각하나?”
“좋아 보이긴 하는데···. 결국 절반으로 체력이 깎이면 그 상황에서 전투속행이 쉬운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죽지 않는다. 아니. 나아가서 영원히 즉사공격을 무시할 수 있다.”
“네?”
그래.
이 스킬이 진짜 개사기인점이 바로 그거다.
“즉사 패턴보다 빠르게, 파티원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모든 즉사공격에서 면역이다.”
“아···.”
그래.
즉사기를 나눠맞는 순간 즉사가 아니게 되듯.
그 상태에서 다른 파티원의 회복량이 최대치를 찍어버리면 영원히 즉사기 면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삼백년 전에 누구도 죽지 않았을 텐데요.”
음.
아일라의 의문은 합당하다.
그래서 그레이트 네이처 필드가 필요하다.
【대기/휴식중인 아군의 체력을 초당 최대치의 10% 회복합니다.】
즉. 아무리 길어도 10초면 풀피가 되어버리는 이 개사기 스킬은 얻기 까다로운 편.
하지만, 수 백 개의 파티 스킬 중 본의 아니게 유니온 가드를 저격한 나라면, 반드시 【그레이트 네이처 필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보다.
“우선,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르는 다음 전투를 확실하게 살아나올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도록 하지.”
“네. 그건 정말 기쁜 일입니다.”
네프티가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고, 밀푀유도 방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유니온 가드라는 능력을 저희 전원이 쓴다면, 차륜전도 가능한가요?”
“가능하다. 얼마든지 가능하지. 다만 모두가 쓸 수는 없다. 이 유니온 가드는, 나와의 상호 신뢰도가 최상인 파티원만이 쓸 수 있다.”
“네? 그럼···.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너희들은 최상이다. 하지만···. 남은 녀석들은 잘 모르겠구나. 분명 나와의 신뢰관계가 굳게 이어져있지만, 그것과 더할나위 없는 최상은 다르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죠?”
“어쩌겠나. 선물을 하든 함께 놀러다니든···. 나와의 신뢰를 올려야겠지.”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입에 담자마자, 공기가 스윽. 하고 가라앉았다.
“······.”
나를 응시하는 차갑고 묵직한 시선.
뭐지.
얘네들 왜 이러지.
***
아무튼, 그렇게 심해에서 벗어날 준비를 마치고, 떠나가기 직전 아리엘이 찾아왔다.
“나의 벗. 신뢰하는 울프람. 성과는 있었나?”
“물론이다. 아리엘. 내가 신뢰하는 인어의 수장이여.”
“아직은 수장은 아니다. 곧 되겠지만. 이것도 전부 네 덕분이다.”
“내 덕분?”
입을 가리고 쿡쿡 웃은 아리엘은 내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래. 네가 만든 떡밥이···. 지금은 이 남해에 다시 없을 명물이라 말이다. 다른 지역에도 떡밥을 가지고 세력에 복속되길 권하면 넘어오는 실정이다.”
뭔데.
내가 만든 게 떡밥이 아니라 마약이었나? 상표 앞에 마약 붙이는거 위법 아니었어?
“그렇군. 좋은 일이다.”
“음. 언젠가 반드시, 너를 우리 용궁에 초대하고 싶구나.”
“그 초대 기꺼이 받도록 하지. 이번 여름에 찾아가도 되겠는가?”
“여름? 급하군.”
그야 급할만도 하다.
남부 용왕의 용궁에는 그것이 있다.
그레이트 네이처 필드의 중심이 될 두 번째 태초의 돌이 있다.
***
그렇게 천혜의 고도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급하게 파티원 한 명을 초대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하여 최상의 신뢰냐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녀석.
그래 그 녀석.
바로
“루디카를 불렀나. 울프람?”
“그래. 불렀다.”
루디카 핫산 샤도우였다.
하지만, 막상 불러놓고도 말문을 떼기가 애매하다.
루디카에게 뭐라고 말하지.
사실 내가 시스템창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너는 나를 믿고 있지 않으니, 지금부터 우리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자?
미쳤냐. 있던 신뢰도도 다 떨어지겠다 아주.
음. 이럴 때는 일단···.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법.
“요새, 별 일 있나?”
“없다.”
“최근 잘 지내나?”
“최근 안부를 무를 정도로 우리가 안 만났던가 울프람?”
“나중에 식사나 한 번 하도록 하지.”
“지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
현대 대한민국 안부 메세지 3종은 서로간에 연락이 안 될때 하는 무척이나 사무적인 인사구나.
으음.
“루디카.”
“울프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이에 거리낄 것이 있나?”
“그렇군. 사실 너와 나의 상호 신뢰가 부족하지 않은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신뢰를 올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너를 신뢰하고 있지 않다고?”
루디카는 내가 내뱉은 진심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진심을 속이지 말고 말해달라면서요.
잠시 루디카에게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하고, 이내 루디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 【유니온 가드】 라는 능력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상호 신뢰가 최상일 필요가 있다.”
“음. 그렇지.”
“하지만 나와 너의 신뢰는 최상이 아니기에 나는 유니온 가드라는 능력을 쓸 수 없다?”
루디카는 내가 건네준 검은 단검을 슥슥 돌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둬. 그건 대체 언제 꺼내온 거야.
그 단검은 모든 방어를 무시하기 때문에 한 번 베이면 진짜 끝장이라고.
내가 슬쩍 어깨를 으쓱하자, 루디카고 풋. 하고 웃고는 단검을 원래 봉인된 장소에 수납했다.
“아니. 농담이다. 음. 그렇군. 충분히 납득 가는 이야기다. 너와 나의 신뢰도가 최상이 아니라면···. 아마 문제는 네가 아니라 나 때문일 거다.”
“그런가?”
“음.”
그리 말하고, 루디카는 검지만 펼쳐서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샤도우 가문의 핫산에게 처해지는 봉인에는 감각을 죽여버리는 능력과 함께···. 감정을 죽여버리는 능력도 있다.”
내가 침묵하자, 루디카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해봐라. 내가 몇 살때부터 ‘살인’을 했을 것 같나? 아니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니···. 살생을 했을 것 같나? 그런 끔찍한 유년시절을 보낸 암살자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것 같나?”
“······.”
“하지만 핫산이라는 위치는···. 가주라는 위치는 그 어느 상황에서든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루디카의 말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군.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다.
가문의 최고 어른이 되게끔 확정된 삶을 사는 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고통으로 사악하거나 잘못된 성정으로 자라 가문을 멸망으로 이끌면 안 되지 않나.
“그러면 방법이 없군.”
“왜 방법이 없나?”
응?
아니, 네가 감정이 잘려있다면서.
그러면 방법이···.
“울프람. 네가 나에게 감정을 하나 둘 일깨워주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말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그렇군. 그러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으음. 그렇게 말하면 또 재미가 없지.”
그리 말하고 과장된 표정으로 비틀거리던 루디카는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이쪽을 올려보며 웃었다.
“뭐지?”
“당장 내일이라도 함께 놀아주고 밥을 먹어주고 같이 돌아다녀주지 않으면, 나는 감정을 또 잃고 울프람이 말하는 최고의 신뢰를 구축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혀를 빼꼼 내미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알겠다. 그러면 내일 함께 놀도록 하지. 마침 내일은 휴일이니 말이다. 식사를 하고, 놀고, 제프린을 돌아다니도록 하지.”
“그거 좋구나. 아득히 좋아.”
쿡쿡. 손으로 입을 가리고 녀석이 웃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된 미소.
정말, 감정이 잘려나간 거 맞지?
***
다음날.
정갈하게 다려진 교복을 갈아입고, 제프린 중앙구를 향했다.
편의점 앞 기숙사는 공실도 많으니 거기서 한잠 자고 아침에 같이 출발하면 되는 것을 루디카 녀석이 그건 재미가 없다면서 약속장소를 정하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중앙구 노점상 앞에 루디카가 서 있었다.
“울프람!”
“음.”
이쪽을 보며 밝게 손을 흔드는 그 모습에, 마주 흔들어주며 다가가자. 루디카가 스윽 이쪽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아무리 빨리 움직일 때 좋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핫산류 살보를 쓰지 마라. 누가 보면 목 찌르러 오는 줄 알겠다 야.
“자. 어서 가자. 하루는 짧다.”
“정해놓은 가게가 있는가?”
“없다. 어딜 가도 즐거우니 움직이자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울프람은 서있는 게 좋아? 나는 그것도 좋은데.”
루디카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럼 어디보자.
여자애랑 놀때는 뭐가 좋더라?
그러니까···. 아. 그렇군.
“그렇군. 그럼 의복을 보러 갈까.”
“의복?”
“음. 위그드라실쪽 거래도 풀렸으니, 네게 맞는 옷이 있는지 우선 보러 가도록 하지.”
“아, 아니···. 제프린에서 옷을 산다는 것도 꽤 이상한 일이잖아. 입을 일 자체가 없고 말이야. 거기에 나는 더더욱···.”
“무얼. 네 귀여운 얼굴과 맞는 옷은 얼마든지 있을 거다.”
“귀엽···.”
“왜 그러지? 어서 움직이도록 하지.”
“아, 응···? 응···. 네···.”
묘하게 조용해진 루디카의 손을 잡아 끌고, 위그드라실의 노점이 가득 찬 곳을 향했다.
***
그렇게 잠시 위그드라실의 노점을 걷다가 우리 둘이 동시에 낸 결론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울프람 나는 정말 기쁘니 돌아가도···.”
“어쩔 수 없군.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어.”
“응···?”
아무래도 기성복보다는 내가 맞춤형으로 만드는게 낫겠다.
“따라와라. 괜찮은 옷감 가게가 있다.”
“어, 응···. 네.”
우선 위그드라실에 도착해 제일 먼저 스티그마 옷감 상점을 돌아다니자, 검은머리의 엘프. 티아라 스티그마가 마중을 나왔다.
이제 스티그마 상회는 제프린에서 내노라 하는 옷감 상점으로 자라, 여기서 만드는 의복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원정을 나서고 있다.
그녀는 이전의 냉랭한 표정과 다르게, 살포시 웃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오래간만이네요. 황자님. 거의 일년쯤 된 거 같은데, 잘 지내셨죠?”
“음.”
“그래서, 오늘은 어떤 옷감을 사러 오셨나요?”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옷감을 사러 왔다.”
“예에. 이 분께서는···. 어머나. 무색 속성이지만 굉장히 진한 어둠의 향이 나시네요. 혹시···.”
“루디카 핫산 샤도우다.”
“그렇군요. 단검의 가주셨습니까. 그러면 어디보자···. 어둠속성 원단은 그 수량은 적긴 해도 몇개 있긴 합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옷감이 아니다.”
“그러면 무슨 옷감을 바라시죠?”
“이 평범한 아이가 입을 따스한 순백의 원피스 위에 항상 선선하게 불어올 바람이 필요해. 태양의 원단과 바람의 원단을 가져다 줄 수 있겠나?”
내 말에 티아라는 이쪽을 빤히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후후. 하고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최고의 원단을 가지고 오도록 하죠. 울프람님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평범한 루디카 님께서는 잠시 기다려주시길.”
그리 말하고 티아라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울프라암···.”
루디카는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뭐야.
왜 그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