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58)
557. 상관 없다
이걸로 나와 신뢰도 최상을 찍은 것은 아일라, 네프티. 밀푀유, 그리고 방금 전 루디카가 확인되었다.
동시에 유니온 가드 사용자도 한명 더 늘어난 셈.
이걸로 우리 파티원은, 누구 한 명이 즉사 공격을 맞아도 다른 한 명이 살려줄 수 있는 진정한 유대 관계를 구축했다 이 말이다.
뭐? 그건 그냥 목숨 돌려막기 아니냐고? 아니다. 원래 우정이니 유대니 연대니 하는 것들은 다 그런 식이다.
왜. 최종 보스의 압도적 포스에 쓰러지려는 주인공을 밀쳐내며 대신 죽어가는 동료들은 우정의 연대고, 평상시 즉사기를 서로 돌려막기 하는 것은 채무의 연대야? 아니잖아. 우정은 그런 게 아니야.
언제 어느 때나. 죽을 때는 함께. 그것이 진정한 인연이고 신뢰지.
“내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SNS에 쓸 법한 말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동료의 불살을 목표로 이 세계를 진행하고 있다.
언젠가, 이 제프린을 졸업하고, 야생에 나가더라도 모두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기를.
물론 모두 다 함께 생활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당장 내년만 해도 네프티와 이브, 밀푀유는 제프린에 남지 않나.
모두가 졸업하면?
그때 즈음이면 루디카는 이브의 즉위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것이고, 네프티와 밀푀유는 아마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아일라도 에덴 영지의 계승을 위해 후계자 연수에 들어갈지도 모르지.
아무튼.
이전처럼 언제나 함께 지낸다. 같은 꿈같은 이야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유니온 가드가 필요하고, 우리 모두의 신뢰가 중요한 법이야.
언제 즉사형 몬스터를 만나서 살해 위협을 당할지 모르니, 즉사 회피 수단은 모두가 갖춰둬야지.
물론.
그렇지 않은 파티원도 있을 것이다.
당장 내년에 뭘 하고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
“리더. 아니 황자님. 계신가요?”
“음. 이른 아침인데…. 드문 손님이 왔군.”
“후후. 보고드릴 것이 있어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혹시 폐가 되었나요?”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파티원을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들어오도록.”
“후후.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히 그 은혜에 기대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나는 레지나 시엘라 얘가 1년 후에 뭘 하고 있을지 감도 안 온다.
***
레지나 시엘라.
우리 파티원 최악의 자폭병기이자, 동시에 그 누구보자 제국 중심의 핵에 가까이 있는 녀석.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아버지 피카로 시엘라와 결판을 짓겠다느니,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영압이 부족해서 ‘너 정도의 힘으로 감히 나를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면서 폭주를 일으키거니 했다.
내 기억에 오차가 있다고? 설마 그럴리가. 저는 언제나 최신식 M.2 SSD마냥 최고의 기억력을 자랑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가문의 일은 해결이 잘 됐나?”
“물론입니다. 황자님의 은혜 덕에, 조금의 문제도 없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군.”
“어머. 믿지 못하시는 표정이군요. 후후…. 그러실 것 같아서 이걸 가지고 왔습니다. 봐 주세요.”
그리 말하며 레지나는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두꺼운 종이 봉투였고, 당연히 종이답게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 푹 하고 들어간다.
내용물도 엄청 가벼워서, 거의 봉투의 무게만 느껴진다.
“이건 뭐지?”
“아, 그것은 ‘레지나 시엘라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미천합니다.’ ‘가주는 역시 피카로 시엘라님이 맡으셔야 합니다.’ ‘그 어린 계집이 우리를 지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명령만 하시면 제가 직접 나가서 제대로 교육을 시키고 오겠습니다.’ ‘마력이 세상을 순환하듯, 그 순환을 역천하면 돌아오는 것은 끔찍한 파멸 뿐입니다. 레지나 시엘라는 가주에 어울리지 않아요.’ 라고 말한 피카로 시엘라의 손이 닿은 친족들의.”
“친족들의?”
“머리카락입니다.”
“…….”
끼야아아아악?!
그걸 왜 제 앞에 가지고 오셨어요?!
【상상하지도 못한 끔찍한 물품에 정신에 심각한 충격을 입습니다.】
【황실혈통이 완전한 저항에 성공합니다!】
설마했던 내성굴림까지 해야 했다. 대체 뭐야. 이걸 왜 내게 가져온 거야?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군. 그래서 이걸 내게 왜 가져온 거지? 아니 설마…. 그런가.”
“네?”
“저질렀나. 해치워 버린 건가?”
일가친척을 전부 슥삭?
그런가 이 녀석 해버렸구나!
그래서 수급을 가져오는 대신 머리카락을 가져와 내게 보고하는 것이다.
두렵다.
레지나 시엘라는 제국 13가문중 하나. 를 담당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지팡이】지만, 다른 이명은 【황금】의 시엘라. 대놓고 황금의 시엘라라고 칭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시엘라 가문은 마도에서도, 그리고 돈에서도 제국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절대자다.
그런 가문의 가주 싸움에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시엘라 가문의 동족상잔을 질타할 수 있는 것은 가문이 지지를 선언한 황손 ‘이브 폰 로엔그린’ 뿐이다.
허나 이브가 지금의 레지나를 혼낼 수 있을까?
그러면 이 세계에 머리를 잃고 고삐가 풀린 시엘라 가문이라는 미친 괴물이 등장할 뿐이다.
즉. 레지나는 다른 모든 경쟁자를 제거함으로서, 자신은 절대로 제거당하지 않을 초법적 위치에 오른 것이다.
무섭다. 아아, 실로 두렵다.
이 피를 머금은 붉은 마도사가, 그 광기의 끝에 무엇을 보고 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뇨. 안 죽였습니다.”
“그런가?”
아님 말고.
“대신…. 예에. 조금 우스꽝스럽게 머리를 밀어드렸습니다. 이렇게 이마 가운데에만 길게 길을 낸다거나 정수리를 중심으로 한쪽만 밀어버리거나 말이죠. 쿡쿡.”
“그건…. 끔찍한 일이지만…. 언젠가 자랄 테니 그저 괴롭힘에 지나지 않구나. 레지나 시엘라에게 그런 악동같은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리고 제 늪의 마력을 모근에 쳐 막아서 절대로 자라지 않게 했습니다.”
꺄아아아악!
【황실혈통이 끔찍한 정신공격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그렇군…. 어째서 그런 일을 했지?”
“그야. 그렇게 해둬야 외부 활동을 삼가고, 귀찮은 협잡질을 안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제가 나중에 마력을 거두면 머리카락은 언제든지 자라겠죠.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길. 아. 아버님의 머리는 이렇게…. 직선으로 밀었답니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
그런가. 그 피카로 시엘라의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고속도로가 뚫린 채로, 마력이 압착된 것인가.
레지나 시엘라의 마력량을 생각해보면 이브 수준이 아니면 해제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나마 엘피라네나 필티아정도.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아일라도 이것저것 지원을 다 땡기면 가능할 거같긴 한데 말이지.
이 녀석의 복수는 진짜다.
그만큼 강렬하고 강인하며 또 두렵다.
“하여, 가문 내의 모든 문제가 정리되었다는 것을 보고드리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렇군. 실로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하여….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시엘라 가문의 현 가주. 레지나 시엘라.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제프린 황실의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피를 이은 이가. 레지나 시엘라 현 가주의 인사를 받겠다.”
“어머나. 후후….”
“갑자기 왜 웃지?”
“아뇨, 황자님께서 그리 격식차려 제 인사를 받아주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지나는 쿡쿡 웃다가, 얼마나 웃겼는지 살짝 흐른 눈물을 검지로 닦아내기까지 했다.
뭐.
황실 예법은 공부 안 해도, 피가 알아서 발동시키는 거라.
짜증나지만,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예법은 지킨다.
즉. 지금 레지나의 인사를 받은 것도 내 혈통 덕분이지. 딱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무튼.
“그렇구나. 그러면 제프린을 졸업하지 않고 바로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졸업까지 어차피 일 년도 안 남은 몸. 지금 가주가 되든 졸업하고 되든 큰 상관이 없기에, 오히려 지금 제프린에서 이브님과 함께 있는 것을 조금 더 이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왜 그러시는지요. 혹여나…. 제가 곁에 없는 쪽이 더 편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조기 졸업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겠지요. 제가 지금까지 끼친 민폐가.”
“아니다.”
“네?”
“네가 있기를 바란다. 이 여정의 끝을 함께 보고, 함께 졸업하기를 바란다. 그렇군. 단적으로 말하여. 네가 졸업하면…. 무척이나 곤란하다.”
레지나 시엘라라는 대마도사는 반드시 내 곁에 있어야 한다.
다른 거보다, 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가문의 어르신들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후, 제모 크림 대신 마력을 덕지덕지 바를 수 있는 여자다.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여자를 한 번 파티에 들여놓고 아무런 갱생 없이 사회에 풀어버린다면, 내 잘못은 아니더라도…. 파티 리더로서의 죄책감이 생기고 말 거야.
“그러…. 십니까.”
“음. 그러니 네가 졸업하겠다고 하면 어찌 만류해야 할지 그걸 고민하고 있었다.”
“제가, 곁에 있기를 바라셨습니까.”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라.”
“그렇다면 몇 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음?”
레지나 시엘라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필요하다고, 단 한 번 더. 그 입으로 말씀해주십시오.”
“네가 필요하다. 레지나 시엘라. 네가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
내 말에 레지나는 숨을 삼켰다.
이내 고개를 숙여 떨리는 손을 가슴께에 가져다 대고는, 몇 번이고 숨을 몰아 쉬었다.
“저는 황자님의 전 약혼녀라는 이유를 핑계로 한 때 불경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상관 없다.”
“저는 황자님의 파티원이라는 이유로, 몇 번이나 불경스러운 죄를 지었습니다.”
“상관 없다.”
“저는 황자님께서 원하실 정도의 이용가치가 없는 여자일지도 모릅니다.”
“상관 없다.”
“저는….”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내가 내놓을 대답은 하나다. 상관 없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녀석의 떨림은 멎고, 숨은 안정되었으며 그 모든 자리를 미소가 차지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이 레지나 시엘라. 죽을 때 까지 황자님 곁에 있겠습니다.”
“…….”
아니 그건 좀 너무 가지 않았니?
하지만 뭐.
레지나 시엘라 공략 루트에서도 그렇고, 내 눈 앞에 있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레지나도 그렇고.
이 녀석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방법은 언제나 단 하나.
무한한 신뢰.
이 녀석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것.
【레지나 시엘라의 신뢰가 최상으로 오릅니다.】
【유니온 가드 사용자 목록에 1인이 추가됩니다.】
【대상. 레지나 시엘라.】
내 말이 맞지?
***
자.
이렇게 레지나 시엘라의 신뢰도 또한 최상으로 올랐다.
그럼 이제, 우리 파티에 유니온 가드를 쓸 수 없는 녀석은 단 한 명 뿐.
이름하여.
이브 폰 로엔그린.
“뭐에요?”
학생회실에 들어가자마자, 이브가 까칠하게 나를 바라본다.
그래.
나는 지금부터 이 녀석과의 신뢰도를….
신뢰도를 최상….
이브의 신뢰….
하.
진짜.
“아니다.”
지금부터 이브의 신뢰도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먼저 꺾일 것 같다.
그래.
신뢰가 올라갈 행동. 호감가는 행동.
바로 이거다.
나는 이브의 눈앞에서 중지를 치켜들고는 문을 닫았다.
맞아.
우리는 이것부터 시작한 거야.
이브. 너도 내 중지에 담긴 의미를 알겠지?
“야!!!!!”
직후, 학생회실 문이 폭파.
성광창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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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