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59)
558. 차라리 지옥 갈게요
그 뒤.
성광창과 이브 폰 로엔그린의 함성. 그리고 지상에 그대로 울릴 발걸음 소리까지.
순식간에 우리는 학생회실 건물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아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이건 좀 억울한 공격 아닌가.
내가, 진짜 이 역겨움과 구역질을 참아내며 이브 폰 로엔그린의 신뢰도를 최상으로 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힘겹게 결심했고, 우리의 첫 인사이자 최고의 사인인 중지 치켜들기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를 공격하다니. 이게···. 정의의 학생회장? 아. 정의는 여기서 죽었다!
허나 이브의 공격은 나에게 명중하지 않고, 주변의 기물을 파손시킬 뿐. 이브가 멈춘 것은 총 수리금액이 대충 천 만 린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돈이 꽤 나오겠군.”
“누구 때문인데요!”
아무튼 저 때문은 아닌듯 함.
그렇게 화를 식힌 이브는, 난장판이 된 주변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살짝 창백해진 표정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브. 고칠 수 없는 잔재는 전부 다 빛의 마법으로 날려버리도록.”
“네?”
“집기나 책장같은 가구들은 내가 즉석에서 만들면 된다. 청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내 말에 이브는 으음. 하고 인상을 쓰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전 학생회장. 그리고 현 학생회장.
단언컨데, 이 학원에서 가장 유능한 두 사람이 나서자 층 하나가 말끔해지는 데에는 십 분을 소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그런 능력을 익혔지?”
“하다보니까 되던데요.”
파손된 물건에 ‘빛’을 불어넣어 그대로 접착시키는 고유 스킬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저거 배우기 굉장히 까다로운데 말이야.
이것 참.
이브의 신뢰도를 최대로 올리는 걸 포기하고 싶어도, 이 정도로 유능해버리면···. 생각보다 포기하기 힘들다.
***
그렇게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다시금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울프람. 당신이 파티 스킬중에서 즉사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데.”
“그 능력은 파티원의 신뢰도가 최상이어야만 발동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래. 그래서.”
이브는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켰고, 나는 힘겹게, 정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에요? 당신이? 저를?”
“놀랍게도. 나도 지금 내 머리를 검은 단검으로 가르면 뇌수가 아니라 마요네즈가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저도 좀 동의해요. 뇌 대신 다른 게 들어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요?”
이브는 진정 어이가 없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
그래.
진짜 웃기고 개쩌는 생각이지.
울프람이, 그 이브 폰 로엔그린의 신뢰도를 올려야 한단다.
“······.”
“······”
우리는 잠시, 무척이나 불편하고도 불쾌하며, 끈적거리면서도 혐오스러운 침묵을 고수해야만 했다.
아냐.
역시 이건 아닌 거 같아.
이브. 그냥 생존 아이템을 너에게 몰빵 쳐 줄테니까 알아서 살아남아주지 않을래?
“안 되겠군. 나는 이만···.”
“앉아 봐요.”
“음?”
내가 그리 생각하며 먼저 백기를 올리고 칼서렌을 치려는 그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었어요?”
“맞다. 맞다만···.”
“그렇다면···. 음. 흠. 어쩔 수 없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정말 역겨운 일이지만···. 동시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이브는 그리 말하고,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서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쇼파에 등을 깊게 기대고 앉아 나를 올려봤다.
“뭐지. 그 건방진 자세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뭘···. 말이지?”
아니 설마.
진짜? 진짜 하게?
내 기대를 부수고, 내 물음에 이브는 답했다.
“신뢰도라는 거. 어떻게 올리는 거냐고요.”
***
이 게임의 설정은 솔직히 말해서, 말이 존나게 많다는 생각을 도저히 버릴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인게임에서 ‘몬스터는 뒤에서 칼찌 제대로 박으면 어떤 몬스터든 원큐에 갑니다.’ 같은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과 전혀 관계 없는 설정을 디테일이랍시고 인게임 내에 주저리 주저리 써놓은 것은 유저들의 호불호를 자극했다.
예를 들면.
【Tip .신뢰도라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큰 비밀을 가지지 않은 채 상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싶다. 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런 것들 말이다.
대체 게임 내에서 신뢰도가 성립되는 기준을 저렇게 모호하게 써놓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에 따른 유저들의 의견도 찬반이 갈렸다.
-이브님호위무사 : 솔직히 좀 얘네 설정 디테일에 집착하는 건 좋은데, 이런건 좀 뻘소리같음
-동탄사우나실내복도둑시에스타 : ㅇㅈ 쫌 그···. 제작진들이 찐 아닐까? 그런 생각? 하고 있어요.
-사랑스러운천사의날개를끌어안고 : 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없으면 저는 유즈나엘과 만나지 못했을 것. 감사드립니다. ZezakTeam.
-필티아의 용아병 : 팀만 철자 맞는거 개꼴받네
허나 이게 웬걸.
이 세계가 현실이 되고 나니 이렇게나 놀라울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나.
“그래서. 다시 말해주시죠.”
“몇 번이고 다시 말하게 만들지 마라. 네가 나에게 감추는 것 없이. 진심으로 나를 신뢰하면 우리의 신뢰가 더욱 깊어진다. 라고 말했다.”
“제가. 당신을. 진심으로. 신뢰.”
“그렇다.”
그렇게 하나하나 끊어서 말하지 마. 무서워 죽겠네.
“정말 그게 가능할거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활 아이템을 네게 건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그게 아니면···. 다음 원정에서부터 이브 폰 로엔그린을 빼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겠구나.”
“당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차라리 죽고말지.”
“차라리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너는 내 파티원이고, 나는 파티원을 절대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
내 말에 이브는 후우. 하고 큰 숨을 내쉬고는 호흡을 정돈했다.
“알겠어요. 그러면 저는 지금부터···. 당신을 믿으면 되는 거죠?”
“그래. 그렇다고···. 한다.”
“네. 믿어보죠. 믿도록 하겠어요. 예.”
이브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나를 믿겠다고 선언했다.
보이스웨어로 교과서를 읽게 시켜도 이것보단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읽어주겠다.
그래. 나를 믿는다 이거지.
어디보자 그러면.
“얼마 전에 이전 내가 숨겨놨던 공금 3억린으로 도박장 건설을 시작했는데.”
“나가 죽어 이 쓰레기야!”
그렇게 쏘아지는 성광창.
믿는다면서? 나를 신뢰한다면서?
이 녀석···. 전혀 안 믿고 있잖아.
***
그렇게 한참을 드잡이질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브와 나는 그 어떤 수를 써서든 둘만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학생 시절 자유와 평등이라는 표어를 가진 톱니바퀴 꼬라지를 보듯, 두 개의 톱니바퀴를 맞물려놓고 테두리에 레일을 깔아버리면 톱니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나와 이브가 딱 그 짝이다. 우리 둘이서는 절대로 공존과 평화 화합과 신뢰를 이야기 할 수 없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나를 신뢰한다고 말 해 놓고 내가 부정을 저질렀는데 이래도 신뢰하냐. 라고 물으면 바로 성광창을 쏘는 이브와, 그걸 검은 단검으로 베면서 수습하는 내 모습을 보니 절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여.
해결사를 불렀다.
무려 학부 내에서 ‘아 그 아이는 친구에요.’ 라고 백 명에게 물어보면 백 명이 대답해 줄 것 같은···.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에 누군가는 질투 할 법 하지만, 죄다 친구로 만들어버린 인싸 중의 인싸킹.
네프테리안.
나의 로열가드.
“그렇군요. 이브님과 황자님께서는 서로 친해지고 싶다. 라는 건가요?”
“친해지고 싶다고는 하지 않았다.”
“예. 친해지고 싶지는 않네요.”
“?”
네프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얘가 아직 이야기를 이해를 못 했나?
“그러면···.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데···. 신뢰 관계는 구축하고 싶다. 라는 것이죠?”
“정확하군.”
“정확해요.”
“······.”
네프티는 우리 둘이 하는 말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친해지는게 아닌가요?”
“결코”
“아니죠.”
“그럴리없다.”
“그럴수도 없어요.”
“뭐지, 이미 친한 거 아닌가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친해지지는 않으면서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사실.
알고 있다.
아무리 인싸킹 네프티라고 해도, 우리의 이 질문은 곤란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네프티는 몇 번이고 턱을 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이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네요. 그런 방법.”
“있나?”
“어떻게 그게 있어요?”
네! 하고 네프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방법을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들은 우리의 표정은, 단언컨대 시시각각 썩어갔다.
“정녕···. 그 방법밖에 없나.”
“정말···?”
“하지만, 납득하셨죠?”
네프티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
짹짹.
실내의 중앙 정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치 속에서, 새들 또한 나는 방법을 잃었으나 맹금류에게 살해당할 두려움을 벗어던지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그저 모이를 먹으며, 행복하게 울 뿐. 날개를 내어준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은 이들의 비굴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푹신하기 그지 없는 침대에서 기지개를 쭉 펴고 일어서 커튼을 걷으면 햇살이 얼굴을 적신다. 창문까지 열어 빛으로 세안하며 봄바람으로 샤워했다.
나를 위해서만 준비된 푹신한 털실 슬리퍼에 양 발을 밀어넣고 로비로 향하면 그 곳에는 이미 조식 직전의 위장을 깨우기 위해, 부드러운 홍차와 자그마한 쿠키등이 준비되어 있다.
건물 최정상의 실내에 분수를 놓고, 그 안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여기저기서 듣기만 해도 간지러워지는 기품 드높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이곳은 글레스트헤임 최상층 바로 아래. 임페리얼 층.
진정한 최상층의 주인은 단 한 명 뿐이기에, 내가 그 곳에 발을 들일 수는 없지만 그 바로 아래에는···. 이 정도의 사치와 향락을 기본이라 생각하는 명문귀족가 소년소녀들이 있다.
그리고.
위잉. 하고 마동석으로 장식한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계단이 있으며, 그 계단은 오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나, 내려오는 이는 숭앙하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저벅.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학생들의 웃음이 멎고, 모두가 그 너머에서 다가올 이를 기대한다.
그래.
이 제프린 제 1 기숙사 글레스트헤임 최상층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 된 유일한 이.
이브 폰 로엔그린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좋은아침입니다. 여러분.”
“네. 좋은아침입니다. 이브 폰 로엔그린님.”
이브의 인사에 모두들 자신에게 건네진 인사라 생각하여, 새의 지저귐 이상으로 행복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오늘.
이브 폰 로엔그린이 인사를 나눠야 할 이는, 평소보다 한 명 더 많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음. 좋은 아침이다. 이브 폰 로엔그린.”
그래.
오늘부터 며칠간, 이 글래스트헤임 기숙사 임페리얼 층에서 거주하기로 한 울프람 폰 로엔그린. 즉 나 되시겠다.
“오늘 일정은 어떻죠?”
“별 대단한 일은 없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학생회 업무를 조금이나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영광이에요. 그럼 오후에 뵙도록 하죠.”
“이쪽이야말로 영광이다.”
뇌내에, 필사적으로 네프티가 했던 말을 되새긴다.
‘기사학부에서 학생들의 유대감을 높히는 훈련은 한 곳에 몰아놓고 공동체 생활을 시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이브님께서는 글레스트헤임에 생활하시고, 울프람 선배님은 편의점에서 생활하시니 두 분의 생활 공통점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면서, 서로의 업무를 돕다 보면···. 분명 신뢰감이 생길 겁니다!’
어째서.
나는 그 때 네프티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는가.
그래.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브 너라도 반박해야 했을 것 아니냐.
응?
“그럼. 잠시 후. 오후에 뵙겠습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당신은 신뢰···, 하고 있으니, 까요. 늦···지 않게 오시길.”
“음. 늦지 않게 가도록 하지. 이브 폰 로엔그린. 너의 대업···을 돕는다고 생각하니, 내 앞길에도 광명이 어리는 것 같구···나.”
서로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눈가에 살심이 깃든다.
지금 당장이라도 성광창과 검은 단검을 꼬나쥐고.
오늘 저 새끼 죽이고 지옥갈랍니다. 외칠 것 같은 분노를 겨우 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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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