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63)
562. 네 번째 문
네 번째 문.
말 그대로 죽음 속성으로 덕지덕지 붙어있으며, 아 여기부터가 진짜 악질 억까 마계의 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른 것보다, 이 이후로는 대부분 문 하나마다 숨겨진 기믹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돌입하지 않으면 진짜 제대로 망한다.
그래서.
“파티는 단 둘. 내가 끝을 낼 결전조. 그리고 밀푀유 네가 돌파조다.”
“네. 네!”
유니온가드도 있고, 검은 단검도 밀푀유를 챙겨줬다.
최소한의 회복물약과 빠듯할 정도의 방어구. 마지막으로 진입 전 호문클루스는 밀푀유 모드.
네 번째 마계의 문 앞에 파티 전원이 모였고,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씩 꺼냈다.
“역시 울프람. 루디카가 가는게 맞지 않겠나?”
“몇 번이고 말하게 하지 마라. 전원 이 곳에 있도록. 나와 밀푀유. 단 둘이면 충분하다.”
“으, 으음. 하지만···.”
제일 처음. 루디카가 나섰다.
그래.
사실 돌파조에 루디카가 있으면,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루디카의 신속성과 정밀성은 파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언터처블. 녀석만 있다면 돌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나는 루디카의 머리 위에 손을 폭, 하고 올려놨고 루디카는 내 손길을 거절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만 살짝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불안해 할 것 없다.”
“응···.”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우리 파티 내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취약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다른 녀석들과는 달랐던길. 너무나도 많이 봐 왔던 피. 가문의 전통. 그런 녀석을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던전’에 넣으면 확실히 좀···. 그렇긴 하지.
“울프람!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곧 10시다. 아일라.”
“응그으으으···.”
아일라를 퇴치하고 그 다음은 이브.
녀석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 문 안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래. 이브. 다른 녀석은 모를까 너는 진짜 안 된다.”
“예.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시간낭비죠.”
“맞다. 그러니까 돌아가서···.”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와요. 같이 일 해봐서 알고 있죠? 저도 업무가 바쁜 사람이에요.”
“그래. 그러도록 하지.”
끝까지 남아주겠다는 건가.
나는 픽 웃고는 이브 곁을 스쳐지나갔다.
“선배님.”
네프티. 녀석은 나를 바라보고, 그리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혼자 갈 거냐는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숨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로열가드는 충의에 사는 직업입니다. 함께 하고 싶지만···.”
“그 충의에 주군에 대한 신뢰는 적혀있지 않나?”
“신뢰와 걱정이 대등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가. 그러면 기다리고 있어라. 네 신뢰에 보답하고, 네 걱정을 지워주마.”
“네. 믿고 있겠습니다.”
그 뒤 내 옆에 레지나 시엘라가 섰다.
녀석은 그저 고개를 깊게 숙일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한 번 의심한 몸. 두 번의 의심은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의심은 해도 된다. 몇 번이고 받아들이마.”
“네?”
“무조건 성공하는 결과가 나올지언정. 누구 한 명쯤은 의심하는게 또 재밌지 않겠나?”
내가 농담을 던지며 웃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레지나도 나를 보고 마주 웃었다.
그리고.
“밀푀유.”
“네. 선배님.”
“할 수 있겠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저는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도 그런가.
“그렇군. 허언이었다. 갈까.”
“네. 가시죠. 선배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와 밀푀유만이 마계의 문 앞으로 걸어가고, 문을 열기 위해 마력을 조정하던 필티아와 슬쩍 눈을 마주친다.
“동생.”
“걱정하는 말은 필요 없다. 사죄의 말도 듣고 싶지 않다. 네 번째 들으면 둘 다 슬슬 질리지 않겠나.”
“그러면···. 누나가 뭘 해주면 될까?”
“흠. 당연히 무사히 돌아올거고, 위험한 일도 없을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평소처럼. 마치 새벽 두시에 편의점을 가듯. 웃으면서.”
내 말에 필티아는 억지로, 허나 끝끝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녀와. 동생. 그리고 밀푀유.”
“음. 다녀오도록 하지.”
“다녀오겠습니다!”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단 둘이서 마계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자.
네 번째 문 공략 개시다.
***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칠흑같은 어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문 이상의 어둠 속에서 나는 슬쩍 오른쪽으로 걸어 나갔다.
몇 번이고 봐온 어둠에 내가 두렵거나 공포에 질릴 리가 없지 않나.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옆에 있는 밀푀유다.
진짜 실전 앞에서 두려워 몸서리 치면 어쩌지 그런 생각에 밀푀유를 바라보자.
“작전 시작이네요. 선배님. 정말로 바람이 느껴지고 네. 여기서 왼쪽길.”
“음.”
내 걱정은 허튼것이었군.
밀푀유는 고양감도, 그리고 긴장감도 없이 정확하게 내가 지시한 것을 이행하려 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되물음이 없던 것.
만약 저 말이 ‘여기서 왼쪽길. 맞죠?’ 라는 식의 작은 의문만 있었어도 나는 이 작전을 크게 고민해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슬슬 가보겠다.”
“후후. 네. 먼저 가 계세요.”
밀푀유는 왼쪽 길.
그리고 나는 오른쪽 길.
우리는 가볍게 손바닥으로 터치한 후. 그렇게 갈라졌다.
어둠속을 걸으며, 공략을 떠올렸다.
음. 역시 대단할 건 없다. 다시 한 번 복기할 뿐이다.
【제목 : 응애를 벗어난 당신을 위한 마계문 공략집 (4)】
【글쓴이 : 슈퍼영진】
【마계 제 4문은 정말 짜증나는 던전이죠.】
【엿 같은 퍼즐 요소와 히든 기믹은 사람을 아주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우선 첫 번째. 진입하자마자 파티를 2분배해야합니다. 하나는 보스전용 이걸 결전조라고 부르죠. 그 다음 맵뚫기용 공략조. 이걸 돌파조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결전조에 좀 더 크게 투자해주세요. 그리고 공략조. 아 진짜 이게 겜인가.】
【죄송합니다. 아무튼, 공략조의 파워 분배는···. 아슬아슬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후술할게요.】
【아무튼 제일 먼저 결전조를 오른쪽 절벽 끝에 배치합니다. 절벽이라고 해도 떨어지지 않게 세팅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어둠속을 걸어주세요.】
【그렇게 결전조를 배치하면 저 멀리서 날개소리가 들립니다.】
그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날개소리.
쇠사슬을 손에 쥐고서, 이쪽을 낚아채려 하는 두 마리 검은 악마.
놈들은 이쪽을 보고서 쇠사슬을 투척했다.
차르르르륵.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않았고 쇠사슬은 내 몸을 묶었다.
마치 어망에 걸린 물고기마냥 나를 잡아채고 몸이 떠오른다.
인형뽑기에서 뽑힌 인형마냥 허공을 난다.
이전. 내가 했던 방송이 떠올랐다.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그러니까.
【자. 그 유명한 워우의 인두인마냥 인형뽑기로 뽑혀갔죠?】
【아니 아는데. 이거 디지사가인거 아는데 나도 그거보고 개 웃겨서 드립친거야.】
【아무튼. 이러면 결전조는 잡혀간 공주님마냥 보스방 앞까지 바로 배달됩니다.】
【자 그럼 나머지는 공략조의 배치인데요.】
【하 진짜 이거 설명하기 힘든데···.】
【여러분 진짜 눈 딱 한번만 감고 제가 공략하라는대로 해보실래요?】
【일단 스킬 최대한 몰빵쳐놓고, 스테이터스 구린애들로 세팅해보세요.】
【불사는 템으로 메꾸지 마시고, 가급적 유니온가드나 죽을 수 없는 영혼으로 세팅하시고요.】
【똥캐 망캐라도 좋으니까 본인의 컨을 믿으시고요. 진짜.】
【다시 한 번 요약할게요.】
【공략조는 스테이터스가 구리고, 장비 세팅도 구리고, 스킬은 그럭저럭 갖춰도 되고 최대한 소수로.】
【아셨습니까? 이게 공략입니다.】
【진짜 믿어보라니까요. 아니 진짜. 저 슈퍼영진임 저 못 믿음? 진짜??】
【너 밴.】
그래.
최약인 밀푀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
밀푀유 폰 사브레는 저 멀리서 철그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자신이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선배가 내린 지시를 의심하지 않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
선배님의 말마따나 왼쪽으로 가니, 긴 복도가 이어졌다.
언제 실내로 들어 온 걸까. 왜 복도인 걸까. 그런 의문은 품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사람 수 십 명은 거뜬히 들어갈 복도의 양 끝. 일정 간격을 두고 이어지는 수 십. 수 백. 수 천 개의 촛대에 일제히 불이 켜진다.
드러나는 것은 고풍스러운 저택. 아니 왕성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내부 장식.
바닥의 카페트는 부드럽고, 양 옆에 서 있는 갑옷 모형들은 수 억 린을 줘도 모자랄 정도의 품질을 자랑한다.
그런 복도를 긴장하는 기색 없이, 밀푀유는 그저 걸었다.
최소한의 장비와 가볍기 그지 없는 물품들.
믿을 거라고는 손에 쥐고 있는 모든것을 베어버린다는 ‘검은 단검’ 뿐.
이 어둠 속에서 이 단검이 어느정도 효용성을 보여줄지. 자신이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부담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밀푀유 폰 사브레에게 있어, 그 모든 ‘외부적 요인’은 자신이 ‘혼란에 빠져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를 파악하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할 뿐.
직후.
“그렇네요. 선배님 말대로 진짜 왔군요.”
저 멀리서 검은 인영들이 흔들리며 다가왔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저것은 만지면 죽는다. 닿으면 죽는다. 피할 길은 없다.
허나.
죽는다는 두려움은, 밀푀유 폰 사브레의 걸음을 결코 막지 못했다.
단검을 들고, 죽음과 대치했다.
그리고, 정해진 투로를 따라 정확하게 휘둘렀다.
그으으으으으.
죽음을 베어 넘기며, 밀푀유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루디카가 보면 느리다고 한숨 쉴 것이고, 네프티가 보면 위력이 부족하다 쓴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이브에 비하면 위력은 형편없고, 레지나에게 저지당하면 앞으로 나아갈자신도 없다.
허나.
그 단검술에 망설임이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상대의 강함을 알고, 그럼에도 내지른다.
강철조차 무르다 말 할 정도로 철저하게 연마된 정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
두 번째 죽음을 베어낸 후.
밀푀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
불쾌하기 그지없는 사슬비행이 끝나고, 놈들은 꽤나 곱게 나를 내려줬다.
놈들은 나를 끌고서 거대한 문 안쪽에 던져놨다.
몇 번이고 와본 ‘옥좌의 방’.
말 그대로 화려하다. 음. 화려함의 레벨이라면 엠펠리움의 로엔그린 황성보다 더 압도적일지도 모른다.
그야 뭐.
여기가 네 번째 문의 보스전이 펼쳐질 방이니까. 그야 당연하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고 놈과 대치하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다. 아쉽게도 저는 철창 안에 갇힌 몸입니다. 응애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잡힌 공주님이야.
거기에.
“저쪽도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 말이다.”
옥좌의 중앙. 허공에서 무언가가 차오른다.
그것은 기운의 응집. 혹은 죽음의 응집이다.
둘. 아니. 셋.
이 속도면 ‘정확하게 내가 지시한 속도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내가 했던 공략 방송을 반추한다.
【네 번째 문의 공략조가 쎄야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죠. 저도 이해합니다.】
【가는 길에 퍼즐을 풀고, 즉사기만 쓰는 원령과도 맞서면서 싸워야 하는데 불사템 둘둘 말고 가고 싶죠.】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요.】
【내 말 들어봐. 다 이유가 있다니까?】
【네 번째 문의 히든 트리거가 바로 공략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썼던 스킬을 원령이 그대로 학습해서 네 번째 문 보스가 된다 이겁니다.】
【뭐라고 하더라. 설정집에는 페이크 & 트레이스라고 했던가?】
【아무튼 아셨죠? 아군의 스테이터스가 쩔면 쩔어줄수록 보스도 쩔어진다고요.】
【그러니까.】
【공략조는 최대한 약하게 하세요. 몇 번 박아보고 내가 뚫을 수 있겠다 싶을 수준으로 낮추세요.】
【네? 그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하급 상자 하나 돌려서 신화 먹는거랑 비슷한 확률이라고요?】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게임을 몰라서 그렇게 하는 말이에요.】
【이건 그런 운과 확률에 기대서 하는 공략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변수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정밀하게 뚫고 들어가려고 하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 고난이도 하드코어 트라이는 결코 운에 기대는 플레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은 행운이 아니에요.】
【정신력이 쩔어야 해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알아두고 그대로 정밀하게 트라이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이브도, 아일라도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다.
“밀푀유. 오직 너만이 가능하다.”
오